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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 구트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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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se of Béla Guttmann
1. 개요
벤피카가 유럽을 평정할 당시 팀의 최전성기를 이룩하던 벨라 구트만[1] 감독은 프리메이라 리가와 유럽대항전을 휩쓸고 보드진에게 급료 인상을 요구했다.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당연히 요구를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보드진은 차갑게 거절했고, 그 소식에 불쾌함을 나타낸 구트만 감독은 팀을 떠나면서 벤피카에게 크나큰 저주를 내린다. 가히 축구판 염소의 저주.앞으로 100년 동안 벤피카는 유럽 대회 우승을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Sem mim, nem em cem anos o Benfica vai conquistar outra taça europeia!
벤피카의 서포터들은 처음에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구트만이 나간 그 이후 정말로 벤피카는 지금 현재까지도 유럽대항전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챔피언스 리그야 워낙 벤피카를 뛰어넘는 상위급 팀이 즐비하니 그렇다 치더라도, 유로파리그 정도는 충분히 우승을 노려봄직한데도 결승은커녕 제대로 성적을 낸 적이 별로 없다. 그 내용들을 보자면 정말 벤피카 팬들 입장에서는 눈물이 절로 나오는 저주다. 벤피카 팬들에게는 더 절망적인 내용은 2024년 기준으로 저주가 풀리려면 아직도 38년이 남았다(...)Sem mim, nem em cem anos o Benfica vai conquistar outra taça europeia!
2. 일지
- 1962-63 유러피언컵 결승전 1-2 패배 AC 밀란
당시 1961-62 시즌 위너로서 디펜딩 챔피언의 입장이였던 벤피카에게 새로운 변혁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벤피카의 기둥이자 주장이였던 조제 아구아스는 혜성같이 나타난 특급 유망주 흑표범 에우제비우와 함께 큰 활약을 펼치며 팀을 유럽의 챔피언으로 올려놓았지만, 1962-63 시즌에는 아구아스가 부진하면서 주전 경쟁에서 지고 만 것이다. 어쩌면 원인은 이때문일수도 있었다. 벤피카의 유일한 에이스가 된 에우제비우는 팀을 3연속 결승에 올려놓는 활약을 펼쳤다. 그렇게 해서 만난 결승 상대는 유럽의 명문이자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밀란의 축구팀이였다. 결승전이 시작되자 에우제비우가 선제골을 넣으며 앞서 벤피카의 3연속 우승에 청신호가 켜졌었다. 그러나 밀란의 조제 알타피니[2]에게 후반전, 두골을 얻어맞고 역전당했다. 그리고 이것을 기점으로 저주가 시작됐다. 이 결승전이 벤피카에겐 특히 아쉬울 수 있는 게, 이때 우승했다면 벤피카는 3연속 유로피언 컵 우승으로 포르투갈 팀들 중 유일하게 UEFA 영예의 배지를 부착할 수 있는 팀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에는 16강전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만나 일찌감치 탈락하고 말았다. 하필이면 에우제비우가 결장했던 도르트문트 원정 경기에서 1차전의 승리가 무색하게 0-5 스코어로 대패했기 때문이다.
- 1964-65 유러피언컵 결승전 0-1 패배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이 당시의 벤피카는 벤피카의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모습을 보였던 시즌이다. 저번 시즌 16강딱을 겪은 이후로 절치부심했는지, 에우제비우를 필두로 조세 토레스, 조세 아우구스투 삼각편대가 유럽을 폭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승전까지 도달하면서 에우제비우와 조세 토레스가 각각 9골로 공동 득점왕을 달리고 있었고, 조제 아우구스투도 5골을 기록하는등 폭발적인 화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렇게해서 만난 상대가 이번에는 저번 시즌 레알을 격침시키고 유로피언 컵 우승을 차지했던 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밀란의 축구팀이였다. 밀라노에서 열린 유로피언 컵 결승전은 인테르가 안방의 가호를 받은 덕분인지 벤피카의 삼각편대가 역대급으로 조용했었고, 오히려 16강전에서 2골을 넣은게 전부였던 인테르의 검은 화살 자이르 다 코스타에게 결승골을 헌납하여 패배하고 만다. 다만 단순 안방가호 뿐만이 아니라 당시 인테르도 초 강팀이었다, 루이스 수아레즈, 산드로 마촐라와 자친토 파케티를 주축으로 하여 마리오 코르소, 타르키시오 부르니치 등 우수한 선수들을 이끌며 62-63 시즌 및 64-65, 65-66 시즌의 세리에 A를 연속으로 우승함과 더불어 63-64시즌과 언급한 64-65 시즌도 우승하여 유러피언컵 2연패를 달성하였으며 또한 유럽 챔피언과 남미 챔피언끼리 맞붙는 인터컨티넨탈컵에서 1964년과 65년 모두 승리하며, 1960년대의 인테르는 그 유명한 '위대한 인테르(L‘a Grande Inter)'라는 별명으로 명성을 날리던 팀이었다.
- 1967-68 유러피언컵 결승전 1-4 패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후반전에 벤피카가 동점을 만들면서 경기는 연장전까지 갔지만 그후 3골을 내리 얻어맞고 진다.
- 1982-83 UEFA컵 결승전 1-2 패배 RSC 안데를레흐트
- 1987-88 유러피언컵 결승전 0-0 승부차기 (5-6) 패배 PSV 아인트호벤
당시 PSV는 8강전 보르도전과 준결승 레알전 모두 1, 2차전 무승부를 거둔 후 승부차기로 올라왔다. 결론은 5연속 무승부로 우승했다. 트레블까지 달성했다. 당시 PSV의 감독을 맡고있던 사람은 바로 거스 히딩크다.
- 1989-90 유러피언컵 결승전 0-1 패배 AC 밀란
결승전을 앞두고 에우제비우와 수뇌부는 구트만의 묘소에 참배를 하였지만(...) 그 결과는 당시 밀란이 자랑하는 오렌지 삼총사 멤버 중 한 명인 레이카르트에게 결승골을 얻어맞고 1-0 패배했다.
- 2012-13 유로파 리그 결승전 1-2 패배 첼시 FC
바르사와 셀틱 FC때문에 유로파로 밀려났으나 30년만에 유로파 결승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룬다. 그러나 함께 챔스 조별리그에서 유로파로 밀려난 첼시 FC에게 패하며 우승을 헌납하였다. 후반전까지 1:1로 잘 버티다가 추가시간이 다 끝났을 무렵 첼시의 마지막 공격인 코너킥에서 이바노비치에게 헤더 한방 얻어맞고 그대로 끝났다.
- 2013-14 유로파 리그 결승전 0-0 승부차기 (2-4) 패배 세비야 FC
유로파리그에서 2연속 결승 진출에 성공하지만 이번엔 세비야 FC에게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또 져서 준우승했다. 참고로 이 시즌 우승을 차지한 세비야는 2013-14, 2014-15, 2015-16 시즌까지 유로파 리그 3연패를 비롯해 총 7번의 유로파 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유로파 최다 우승 클럽이라는 영예와 함께 '유로파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3. 여담
벤피카는 1962년 마지막 우승 이후로 2023년 기준으로 유럽대항전에서 5번의 결승을 다 졌고, 특히 강호들이 즐비한 챔피언스리그에서만 결승전을 제외하고도 8강이상의 성적을 14번이나 냈다.[3] 그러나 2015년 이후로는 결승전은커녕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강호'의 이미지는 옅어지고 빅클럽에 유망주를 팔아 먹고사는 셀링클럽 취급을 받고 있다. 이처럼 구트만 감독의 저주와 함께 챔피언스리그에서의 결승전 5회, 유로파리그 결승전 3회에서 우승 기회를 싸그리 다 날려버린 역사는 벤피카 최대의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4][5] 이에 더해서 벤피카는 챔피언스리그 우승팀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빅 이어를 들어보지 못한 구단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빅 이어는 1966-67 시즌부터 사용했기 때문이다.사실 진지하게 분석하자면 진짜 저주 때문에 그런게 아니라 1990년대 이후로 유럽 축구가 빅리그와 다른 리그와의 격차가 커지면서 유럽대항전 우승을 빅리그의 빅클럽들이 독식하면서 이런 현상이 빚어진 거라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6][7] 벤피카 뿐만 아니라 포르투갈 축구 자체도 1960년대 이후부터 2000년대 이전 사이엔 유럽 축구계에서 변방으로 몰락하여 월드컵과 유로 본선 진출을 가끔 하는 수준이었던 시절도 있던 것도 이런 불운이 강화, 지속 되는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또한 벤피카의 체급이 빅클럽이라기엔 규모가 작고, 그렇다고 셀링클럽이면서도 일반적인 중소리그 상위팀들과 비교하면 체급이 크기 때문에 벤피카가 8강은 갈만한 전력을 보유했으나 그 이상을 봐라보기에는 힘들어 볼 수 있다. 물론 챔스보다 난이도가 낮은 UEFA 유로파 리그가 있긴 하나 이쪽도 난이도가 만만찮은 것은 여전하다.
2022년 벤피카 U-19 팀이 UEFA 유스 리그를 우승하면서 일부 언론은 ‘저주가 깨졌다’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지만, 고작 유스 우승으로 저주가 깨졌다고 볼 수 있는지는 애매한 것이 사실이다.
2021-2022 시즌부터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가 생겼는데, 상대적으로 위상은 낮은 대회긴 해도 어쨌거나 공식 유럽 대항전에 속하고 난이도도 상대적으로 낮은 대회인만큼 이 대회에 참가하면 저주를 깰 가능성이 어느 정도 생겼다. 다만 벤피카가 이 대회에 나가려면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 리그에 못나갈 정도 수준으로 리그에서의 성적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 함정.
[1] 헝가리가 자랑하는 전설적인 명장 중 한명이다. 선수시절에선 오스트리아와 미국에서 활동하였고 은퇴 후 감독으로써 헝가리,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스위스, 루마니아, 그리스, 브라질, 우루과이, 키프로스의 클럽을 지휘하는 등 북미, 남미와 유럽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감독이었으며 벤피카에선 에우제비우와 함께 UEFA 챔피언스리그(당시 유러피언컵)을 두번이나 제패하는 등 정상급 감독이었다.[2] 알타피니는 이 대회에서만 14골을 넣으며 득점왕도 차지한 바 있다.[3] 90년대 이전에는 빅 리그 팀이 아니더라도 8강에 간혹 진출하는 팀들이 있었다지만 딱 의외의 모습만 몇번 보여주는것에 그쳤을 뿐이었고 1993년 유러피언 컵이 챔피언스리그로 개칭되면서는 더욱 리그간 격차가 더 심해져 이후에 조별리그에서 탈락할것이라 생각한 팀들이 8강에 올라오면 거의다 이변수준의 평가를 받는다.[4]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7회 준우승을 한 세리에 A의 유벤투스에 이어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과 함께 준우승 횟수 공동 2위에 랭크되어 있다. 다만 뮌헨은 6회 우승 기록도 보유하고 있는 빅 이어 영구 소장팀이다.[5] 유로파 리그에서는 아예 리그 1의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와 함께 공동 최다 준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6] 비슷하게 염소의 저주 때문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못한다는 소리에 시달리던 시카고 컵스의 경우도 오래 되고 열악한 홈경기장으로 인해 낮경기를 주로 하는 특성을 비롯한 구단 운영의 문제, 그리고 염소의 저주라는 소문 때문에 어차피 우승 못하는 팀으로 인식 되어 잘 하는 선수들은 굳이 오려고 하지 않고, 소속 선수들은 소속 선수들대로 염소의 저주를 의식하고 부담을 느끼는 경우 등이 겹쳐서 염소의 저주가 깨진 2016년 이전까지 오랫동안 월드시리즈 우승을 못했던 것이라고 분석 되고 있다.[7] 1990년대 이후로 빅리그의 빅클럽이 아닌 클럽이 유럽대항전에서 우승을 한 경우로 대표적으로 벤피카의 라이벌인 FC 포르투의 2003-2004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경우가 있긴 하지만 당시의 포르투의 감독과 선수들이 역대급 수준이었고 또한 이 시즌은 포르투 뿐만 아니라 AS 모나코와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가 일찌감치 레알 마드리드, 첼시 FC, 유벤투스 FC, AC 밀란 등 기존의 빅클럽들을 탈락 시키는 등 역대급 이변이 속출한 대회였다. 게다가 포르투의 토너먼트 대진도 16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를 제외하면 8강 올랭피크 리옹, 4강 데포르티보, 결승 모나코라는 쉬운 상대였다. 물론 그걸 감안해도 빅리그 팀이 아닌 포르투가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할거리는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지금도 최대 이변으로 평가받는 것은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