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루크너의 교향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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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 교향곡 제9번 D단조
(Sinfonie Nr.9 d-moll/Symphony no.9 in D minor)
|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1944년 10월 7일 실황. |
| 오이겐 요훔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1964년 12월 스튜디오 녹음. |
1. 개요
안톤 브루크너의 열한 번째 교향곡이자 유작. 3악장까지는 제대로 완성했지만, 4악장을 쓰다가 작곡자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미완성으로 남았다. 이 때문에 9번 교향곡의 저주의 예로 꼽히기도 한다.보통 3악장까지만 연주되지만 1~3악장만 가지고도 엄청난 완성도와 음악성을 가진 작품이 되어 7, 8번과 함께 브루크너의 만년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해탈, 세상을 다 산듯한 느낌이라고 말하는 음악적 경지를 보여준다는 평가가 많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브루크너는 이 곡을 '경애하는 하나님께(Dem lieben Gott)' 헌정했다.
여러 부분에서 미래지향적인 요소들이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전형적인 브루크너 교향곡의 특징에서 좀 벗어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 때문에 의외로 비브루크너 애호가들 층에서 이 작품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1]
2. 곡의 형태
브루크너 자신은 분명히 4악장 구성을 의도하고 시작했고, 전작인 8번에서처럼 2악장과 3악장에 각각 스케르초와 아다지오를 두는 도치형 구성을 취했다. 형식도 예전 곡들처럼 소나타 형식 등에 기반해 크게 확장시킨 형태인데, 여기서는 아예 하나의 틀에 짜인 주제를 내놓는 관행조차 버린 대목까지 있다.다만 브루크너 본인은 이 곡이 베토벤의 아류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유사성이 약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d단조 형식에 조용히 시작되는 1악장[2], 빠른 2악장과 느린 3악장의 도치형 구성이 비슷하기는 하다. 후술되어 있지만 죽기 전 유언으로 4악장을 테 데움으로 대체할 경우 합창으로 끝나는 형식까지 유사성을 보인다. 그러나 이 곡이 가지는 특이한 위치, 작곡가 본인의 작곡 기법의 독창성과 주제 의미에서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가령 1악장의 제1주제는 수많은 단편적인 악상들이 차례로 나타나면서 몇십 마디나 되는 커다란 형태의 대주제를 형성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브루크너가 클라이맥스를 구축할 때 종종 쓰는 최강음 유니즌 총주 기법도 가장 효과적으로 나오고 있으며, 발전부에서는 주제들을 뒤섞어 알아보기 힘들게 흩어놓거나 호른의 폐쇄음으로 독특한 음색을 보여주는 등 노작곡가로서는 꽤 여러 가지의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2악장 스케르초도 종래의 것과 달리 다소 신랄하고 야성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전작인 8번 1악장의 첫머리에서처럼 제대로 조성을 설정하지 않고 시작해 수수께끼같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마지막 3악장 초반에도 수시로 조성을 바꿔가 보여주는데, 특히 2악장 도입 등의 부분에서는 후배인 아르놀트 쇤베르크가 시작하는 무조 기법의 문턱까지 다다랐다고 할 정도다. 이렇듯 조성뿐 아니라 화음 취급도 자유자재로 하고 있고, 조성이 모호하다는 인상도 단순한 화음에 여러 음을 겹치거나 빼서 연속시키는 방식 때문에 더 강화되고 있다.
심지어 3악장의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는 심지어 일곱 개의 다른 음정들을 최대한의 힘으로 질러내도록 하는 불협화음까지 쓰고 있는데, 재즈화성학의 고급 단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파격적인 표현이다. 정확히는 이 부분을 화성론적으로 보자면 G#음 위의 딸림13화음(G#-C-D#-F#-A-C#-E)인데, 달리 말하자면 c#단조의 화성적 단음계 7음이 모두 울렸다고 보면 된다.[3]
그리고 4번 초고 이후 한참 쓰지 않았던 '자작 인용' 스킬도 여기서 마지막으로 발휘되고 있는데, 3악장 후반부에서 전작들인 8번 3악장과 7번 1악장의 주제들이 과거를 회상하듯이 등장하며 조용히 끝을 맺도록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새로운 시도와 오랫동안 안 하던 기법 재시도 외에도 '브루크너 오프닝', '브루크너 휴지', '브루크너 리듬', '브루크너 시퀀스' 등 기존에 자주 쓰던 기법도 그대로 녹여넣고 있다.
미완성으로 끝난 4악장에서도 기존의 조성과 화음을 갖고 놀듯 하는 개인기를 보여주며, 선행 악장들의 주제를 끌어와 얽히게 만드는 기술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단, 마지막에 가서는 원래 조성의 장조형인 D장조로 확실히 복귀시키려고 했다.
전작인 8번이 화성적으로 대단히 정돈되어 있고 악상이 유기적으로 짜여져 있는 반면, 9번은 앞서 언급한 이유들 때문에 전반적인 곡의 난이도와 난해함은 8번을 초월하고 있다 볼 수 있다. 그러나 복잡하기로 유명한 4악장이 미완성으로 빠진 데다가 세상 다 산 듯한 느낌을 주는 곡상 때문에 오히려 이 쪽을 더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
(바그너튜바 4대를 겸하여) 8대나 되는 호른 운용도 특기할 만하다. 호른 자체의 사용은 전작들에서도 두드러지지만 9번에는 호른이 여러 성부로 갈라져 폴리포닉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특히 여러 갈래로 갈라진 호른 성부 중에서 어떤 성부가 부각되느냐에 따라 연주가 다른 느낌으로 들리는 경우도 많다.
관현악 편성은 8번에서 확대한 3관 편성을 유지하고 있으나 하프와 심벌즈, 트라이앵글 등의 특수 악기는 사용하지 않았다. 7번, 8번에서 사용했던 바그너 튜바도 3악장과 4악장에서 쓰고 있다. 플루트 3/오보에 3/클라리넷 3/바순 3/호른 8(5~8번 호른은 테너 바그너 튜바 2와 베이스 바그너 튜바 2 겸함)/트럼펫 3/트롬본 3/튜바/팀파니/현 5부(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4]
3. 작곡 과정
첫 스케치는 8번 교향곡을 완성한 직후인 1887년 8월 12일 만들어졌으며 이 작업은 9월 중순까지도 지속되었으나, 얼마 안 가 브루크너의 교향곡 8번이 지휘자 헤르만 레비에게 혹평을 듣자 좌절하고는 8번 교향곡과 1~4번 교향곡의 개정에 착수하느라 교향곡 9번의 작곡은 중단되었다.개정 작업 이후 본격적인 9번의 작곡은 늦어도 1891년 2월 18일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1892년경까지는 스케치 작업 중심으로 9번 교향곡을 만들었지만, 1892년 10월 14일 1악장의 총보화를 시작하면서 9번 교향곡의 작곡도 본격화된다. 이후 1악장의 작업은 1893년 12월 23일 완료되었다. 한편 스케르초는 1889년 1월 4일경부터 스케치 작업을 시작했으며, 총보화는 1893년 2월 27일 시작되어 1894년 2월 15일 완료되었으며, 그동안 브루크너는 습관처럼 스케르초의 트리오를 2개 만들었으나[5] 다 버리고는 오늘날 쓰이는 트리오를 새로 만들었다. 아다지오는 1893년 초부터 스케치를 시작했으나[6] 2악장 완성 후에야 작곡이 본격화되어 1894년 11월 30일 완성했다.
3악장까지를 완성한 브루크너는 제자에게 보관하도록 부탁했다. 마지막 4악장은 1895년 5월 24일 쓰기 시작했다는 자필 기록이 있으며 1896년 10월 11일까지 이 악장을 작곡했지만, 안타깝게도 브루크너가 이 날 사망하면서 이 곡은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미완성이라고는 해도, 4악장의 전체 골격은 의외로 많이 진척되어 전체의 3/4 정도가 완성되어 있다. 중간에 연결 부위가 빠져있긴 하지만 코다 거의 전까지 완성되어 있는 수준이다. 때문에 후대 음악학자들이나 작곡가들이 완성본을 만들고 있다.
4. 초연
미완성으로 끝난 곡이라 초연과 출판 모두 브루크너 사후에 이뤄졌다. 하지만 둘 다 역대 브루크너 교향곡 연주와 출판 역사에서 최악으로 손꼽히게 되었다.1~3악장의 최초 공연은 1903년 2월 11일 빈에서 브루크너의 제자였던 페르디난트 뢰베가 지휘하는 빈 연주협회 관현악단(현재의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로 이루어졌는데, 뢰베는 스승의 유작을 세상에 소개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초연 전에 피아노 연주로 해설의 밤도 주최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오케스트라의 첫 교향곡 9번 연주에는 뢰베가 어려운 곡의 난이도를 낮춘다며 무단 개정을 자행한 악보가 사용되었다.[7] 그리고 뢰베는 일단 3악장까지를 연주한 뒤 브루크너의 유언에 따른다는 의도로 테 데움을 추가 공연했다.[8]
5. 판본
5.1. 1903년 초판(뢰베판)
| 한스 크나퍼츠부슈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1950년 1월 28일 티타니아 팔라스트 실황. |
1903년 빈의 루드비히 도블링어 출판사에서 출판되었으며, 최초로 출판된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의 판본이며, 1931년 음악학자 로베르트 하스에 의해 뢰베판과 원본의 차이가 지적되기 전까지는 이 판본이 브루크너가 작곡한 원본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전술한 것처럼 뢰베의 편집이 가해진 판본이었는데, 관현악법과 화성법, 다이내믹 등 여러 부분들이 원본과 심하게 달라진 것을 넘어 몇몇 악구들은 자의적으로 첨가되기까지 한, 한마디로 요즘말로 원작파괴 수준의 심각한 무단 개정들이 펼쳐졌다. 특히 중요한 무단 개정 부분은 다음과 같다.
- 제1악장: 발전부 중반의 전체 휴지에 오보에의 단편적인 선율 추가, 제3주제군 재현 전 전체 휴지에 호른 삽입, 재현부 막바지의 클라이맥스의 다이내믹을 시종일관 fff에서 fp와 크레셴도 반복으로 변경, 그 뒤에 이어지는 호른의 신호를 데크레셴도에서 전음 액센트로 바꾸고는 그 직후의 목관의 선율 후반부를 현으로 옮김, 종결부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팀파니의 트레몰로에 간간이 휴지를 둠[9]
- 제2악장[10]: 도입부의 목관의 지속음을 딱 끊고는 현의 피치카토 파트에 플루트와 바순을 더블링, 주부 주요주제의 관현악법을 사실상 재작곡 수준으로 변경, 제1주부의 코다의 4마디를 삭제하고 그 직전의 4마디에 피콜로와 플루트의 트릴 첨가, 트리오 시작 전과 트리오 종결 후에 팀파니 솔로 첨가[11]
- 제3악장: 제1주제에서 현의 트레몰로 위에 트럼펫의 팡파르가 울리는 부분과 악장 중후반 현의 코랄의 다이내믹을 크레셴도-데크레셴도 반복으로 변경, 제2주제 제2악절에 목관의 대위구 첨가, 후반의 불협화음을 대폭 간소화[12], 후반의 불협화음 뒤의 전체 휴지 후에 현의 피치카토 첨가, 마지막 마디 직전에 금관의 지속음을 끊고 바로 다음 마디에 별개의 금관의 지속음 가필[13]
9번 교향곡의 뢰베판은 5번의 샬크판과 함께 다른 교향곡의 무단 개정판들과 비교해 봐도 왜곡된 정도가 심한데, 이는 4번과 5번 등의 다른 교향곡들은 브루크너 생전에 출판되었기 때문에 제자들이 브루크너의 눈치를 보느라 완전히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었지만, 9번은 브루크너 사후에 출판되었기 때문에 브루크너의 견제나 개입이 전혀 없이 뢰베가 자유롭게 개찬할 수 있었던 것에서 기인한다. 이런 이유로 제자들에 의한 개정판(초판본)의 장점을 열거하는 이들이라도 9번 뢰베판만큼은 옹호를 포기하고 일방적인 혹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뢰베판은 지휘자 한스 크나퍼츠부슈[14]가 사망한 1965년 이후에는 녹음하는 지휘자가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사실상의 기록말살형 취급까지 받게 되었다.[15]
5.2. 원전판(Originalfassung, original version)
1934년, 1951년, 2000년 각각 알프레드 오렐, 레오폴트 노바크, 벤야민 구나르 코어스의 편집으로 출판된 브루크너가 작곡한 원본. 3자 간에 실질적인 차이는 전혀 없고, 주로 오식이나 오기 등을 수정하고 있다. 단, 코어스판에서는 미발표로 남아 있던 2악장 초고에 대한 설명이 추가로 병기되고 있다.첫 원전판인 오렐판은 브루크너 교향곡들 중 최초로 나온 공인 개정판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하다. 지크문트 폰 하우제거(Siegmund von Hausegger, 1872~1948)가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이 판본으로 1932년 4월 2일 뮌헨에서 초연하면서 브루크너 교향곡 연주 역사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하우제거는 1부에서 뢰베판으로 이 곡을 공연했고, 이어 2부에서 새로 나온 오렐판으로 공연해 양자 간의 차이점을 청중들로 하여금 비교하게 했다. 결과는 오렐판의 압승이었고, 이를 계기로 무단 개정된 초판 대신 국제 브루크너 협회가 인정하는 공인 개정판을 쓰는 것이 대세로 자리잡게 되었다.[16]
현재는 예외없이 원전판인 오렐판, 노바크판, 코어스판 중에서 택일하고 있는 상황인데, 노바크판의 채택 빈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코어스판은 비교적 최근에 나왔기 때문에 보급률이 높지는 않지만, 최신 개정판이라는 점 때문에 채택하는 지휘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그 외에도 2악장 트리오의 1889/1893년 미발표 초고들이 1998년 코어스의 편집으로 출판되었다.
6. 4악장의 미완성 문제
미완성 곡이라면 늘 따라다니는 것이 잔여 부분의 처리 문제인데, 다음과 같은 방법들이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브루크너가 환생해서 작곡을 재개하지 않는 이상,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은 나오는 것이 불가능하다.6.1. 미완성 그대로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 그냥 1~3악장까지만 공연하고 녹음하는 것이다. 4악장이 공연 불가능 상태라서, 뭘 덧붙여 완성하는 것이 언어도단이라는 이들에게 적합한 해결 방법이다. 하지만 d단조로 시작한 곡이 E장조로 끝난다는 태생적 어색함을 감수해야 하고, 브루크너가 의도한 것은 분명히 4악장짜리 교향곡이었다는 진실을 무시하거나 다른 변명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6.2. 테 데움 겸연주
뢰베의 초연 때처럼 3악장 다음에 '테 데움' 을 연주하는 것도 대안으로 여전히 쓰이는 방법인데, 브루크너 자신의 유언이라는 점에서 권위를 얻고 있다. 하지만 d단조의 교향곡이 C장조의 테 데움으로 끝나는 것도 확실히 모양새가 좋지 않고, 오히려 미완성이라는 원모습만 강조한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 국제 브루크너 협회에서는 브루크너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이 교향곡과 테 데움을 따로 출판하고 있다.6.3. 자료 정리
국제 브루크너 협회에서는 미완성 그 상태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제3자의 손으로 보완한 악보를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1934년 간행된 오렐 개정판의 부록으로 처음 공개된 스케치를 포함해, 지금까지 확보된 모든 4악장의 자필 원고를 총망라한 연구용의 스케치 정리본을 간행했다. 이것이 브루크너 협회가 인정한 유일한 9번 4악장의 공식 자료다.이후 오스트레일리아의 음악학자 존 앨런 필립스는 4악장의 오리지널 스케치를 편집해 1994년 관현악 총보 형태로 정리한 것을 우선적으로 출판했고, 이어 1996년 자필보의 복사본과 사진판 등의 편집판이 간행되었으며, 1994년의 관현악 총보 정리본은 추가 발견된 자료를 포함해 1999년 재개정되었다.
연구용으로 작성된 자료라 공연이나 녹음에 그대로 쓰기는 힘든데, 오렐판 부록 스케치를 가지고 요아브 탈미 지휘의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녹음이 영국 음반사인 샨도스에서, 필립스 편집의 오리지널 스케치를 가지고 페터 히르슈 지휘의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이 연주한 녹음이 소니 클래시컬 독일 지사에서 발매된 바 있다. 탈미 지휘의 샨도스 음반은 스케치 연주와 더불어 1~3악장과 캐러건이 완성한 4악장의 연주까지 포함하고 있어 브루크너가 원래 작곡한 부분과 캐러건이 완성하여 덧붙인 부분을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이 스케치를 가지고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강연을 겸한 시연을 열기도 했다. 관객들에게 브루크너의 작곡 의도와 곡의 진행 상태를 설명하고, 그 부분의 단편을 연주해 보이는 방법이었다. 미완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 윤곽만을 보여주는 방법이라 협회 측에서도 딱히 비판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6.4. 4악장 완성
하지만 이렇게 착실히 작성된 정리본은 완성을 바라는 수많은 편집자들에게 더없이 훌륭한 떡밥으로 작용했고, 오렐판의 스케치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자료들로 상당히 많은 양의 완성본 혹은 그에 준하는 악보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이런 사례들은 완성본'이라기보다는 공연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작업이라 연주용 판본(Aufführungsfassung/Performing Version)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하지만 대부분 제대로 시연도 못하고 묻혔는데, 1980년대에 와서야 공연과 녹음의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래의 다섯 판본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모두 공연과 음반 출반 또는 음원 공개가 행해진 것들이다. 일반적으로는 SMPC의 제5차 개정판이 가장 선호된다.후술하듯 브루크너 협회가 인정한 편집자들인 필립스와 코어스, 캐러건이 완성 작업에 참가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특히 캐리건 등은 교향곡 8번 출판을 위한 편집 과정에서 하스가 복수의 판본을 하나로 결합하기 위해 본인이 몇 마디를 직접 작곡한 것에 대해 "하스판은 쓰레기통에 던져져야 하며 더 이상 연주되어서는 안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여러차례 강변해왔다. 하스의 몇 마디 작곡을 비판했던 캐리건이 정작 본인은 이 작품에서 수십 마디 이상을 본인이 직접 작곡한 것은 매우 모순적이다. 사실 캐러건의 하스 비판은 하스판을 매장시킴으로써 캐러건 자신의 판본의 로열티 수입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가 있을 수도 있다. 아무튼 협회 측에서 해당 편집자들을 제명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일단 묵인해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아무리 브루크너의 자료를 이잡듯이 뒤지고, 작곡 스타일을 최대한 따라간다고 해도 제3자가 작곡자를 대신할 수 없다는 절대적인 문제를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완성본은 브루크너 협회를 통한 출판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악보를 입수하려면 완성자에게 직접 연락하거나 출판사 소재를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17]
6.4.1. 캐러건 완성판
캐나다의 음악학자 윌리엄 캐러건이 1981~83년 보필 완성한 악보. 1984년 처음 발표했고, 2003년과 2006년, 2010년 세 차례 추가 발굴 자료를 토대로 개정했다. 2010년 최신 개정판은 같은 해 8월 1일 에브라흐 여름 음악제에서 게르트 샬러 지휘의 필하모니 페스티바 연주로 초연되었고, 이 공연의 실황이 독일 음반사인 프로필의 CD로 나와 있다.
6.4.2. 사말레, 마추카, 필립스, 코어스 완성판(약칭 'S.M.P.C 판'.)
이탈리아의 작곡가 겸 지휘자인 니콜라 사말레와 주세페 마추카, 호주(오스트레일리아)의 음악학자 존 앨런 필립스, 독일의 음악학자 겸 지휘자 벤야민 구나르 코어스가 공동으로 보필 완성한 악보로 우선 1984~85년 사말레와 마추카 2명이 편집했고, 1987년 마추카가 작업 열의를 잃었다며 하차하자 이듬해 코어스가 새로이 합류해 1차 개정판을 내놓았다. 이어 1992년는 필립스가 또 공동 편집자로 합류했고, 1992년 2차 개정판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공동 완성자로 참가한 탓에, 첫 발표 뒤 두 차례 개정하는 과정에서 필립스와 코어스가 심한 논쟁을 벌였다. 결국 필립스가 2005년의 3차 개정 작업 직전에 탈퇴했고, 사말레와 코어스만이 멤버로 남아 있다. 이후 2007년과 2012년 계속 발굴된 단편 자료를 반영해 추가로 개정되었고, 2012년 제5차 개정판은 같은 해 2월 7~9일 사이먼 래틀 경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초연했다. 연주회가 끝난 직후 래틀 경은 편집자 4명을 소개했고 이들은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EMI에서 CD로 발매된 이 공연 실황은 맨 위 연주 예시에서 들어볼 수 있다.
6.4.3. 조셉슨 완성판
1992년 독일계 미국 음악학자 겸 피아니스트 노스 S. 조셉슨이 보필 완성한 악보. 2007년 처음 발표되었고, 그 해 가을에 아리 라실라이넨 지휘의 라인란트-팔츠 국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음원이 완성자의 허가를 받아 브루크너 교향곡 음반 목록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참고 그리고 2015년 3월에는 이 판본의 첫 공식 음반으로 영국 지휘자 존 기본스가 덴마크의 오르후스 교향악단을 지휘해 다나코드에 녹음한 CD가 출시되었다.
6.4.4. 르토카르 완성판
2008년 벨기에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인 세바스티앙 르토카르가 보필 완성한 악보. 완성 직후인 2008년 10월 28-29일 니콜라 쿠통 지휘의 헝가리 국영철도회사 교향악단 연주로 녹음되었고, 리리카에서 처음 출반되었다.
6.4.5. 샬러 완성판
2016년 독일의 지휘자이자 오르가니스트 게르트 샬러가 보필 완성한 악보. 2016년 7월 24일 에브라흐 여름 음악제에서 게르트 샬러 지휘의 필하모니 페스티바 연주로 초연되었고, 이 공연의 실황이 독일 음반사인 프로필의 CD로 나와 있다.
그리고 2020년 샬러는 자신이 보필한 판본을 직접 오르간으로 편곡해서 연주했고, 이를 음반으로 내기까지 했다. 브루크너 9번 오르간 버전 녹음 전체적으로는 파이프오르간의 다양한 음색들을 잘 살린 명편곡이라고 할 수 있으며, 특히 2악장의 편곡은 매우 우수하다고 볼 수 있다.
[1] 일례로 말러리안 지휘자였던 레너드 번스타인의 경우 평생을 통틀어 브루크너 교향곡 중에서 6번과 9번만을 지휘하였다. 교향곡 6번도 가장 덜 브루크너적인 작품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곡이다.[2] 베토벤의 교향곡 9번에서 영향을 받은 브루크너 개시부이다.[3] 화음의 활용 가능성이 극대화된 재즈화성학에서는 이것도 13화음 등의 구조로 설명하지만, 클래식 화성학의 영역에서는 7화음 이상의 복화음을 인정하는 경우가 드물다. 하여튼 불협화음으로 보지 않는 음악학자들도 있으므로 주의.[4] 후술할 초판에는 피콜로와 콘트라바순이 첨가되었다.[5] 1889년 만들어진 F장조 트리오와 1893년 만들어진 F#장조 트리오가 있는데, 둘 다 비올라 솔로를 포함했다고 한다. 이후 이 트리오는 1940년 현악4중주로 연주된 적이 있다고 전해지며, 1998년 코어스의 편집으로 출판되었다. 2013년 11월 6일 출반된 'Bruckner unknown'이란 음반에서 실내악 편곡 버전으로 들을 수 있다. F장조 트리오는 오늘날 연주되는 트리오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다른 곡이고, F#장조 트리오는 중반부의 느린 파트만큼은 오늘날 연주되는 버전과 기본적인 주제가 유사하다.[6] 1887년 스케치가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7] 실제로 뢰베가 리허설에서 자신의 기분대로 원본을 수시로 수정했다는 요제프 라세르(빈 연주협회 교향악단의 첼로 주자였으며 1880년대에 브루크너에게서 화성법을 배운 적이 있었다.)의 증언이 있다.[8] 하지만 이것이 유언이라고 해도 곡에 썩 맞는 결말은 분명히 아니다. '4악장 처리 문제' 항목 참조.[9] 단순 관현악법 변경 같지만 이로 인해 코다가 심하게 나사가 빠진 분위기로 변했다.[10] 뢰베의 개악 과정에서 유난히 심한 피해를 입은 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들어보면 사실상 다른 곡으로 만든 수준. 브루크너의 원본이랑 비교하지 않아도 웃기기까지 하다.[11] 불행 중 다행히도(?) 뢰베판에서의 트리오는 원본에서 관현악법상의 근소한 수정만 거친 상태였다. 거의 재작곡 수준으로 개정된 주부와는 다른 점.[12] 그 불협화음이 초판에서는 지속음(정확히는 으뜸음) 위의 감7화음(C#-D#-F#-A-C), 달리 말하자면 c#단조의 딸림9화음으로 엄청나게 간략화되었다. 게다가 원본에서는 길게 끄는 화음을 뢰베는 짧게 끊어버렸다.[13] 브루크너가 작곡한 원본에서는 현의 피치카토가 한 번 있고 나서 모든 음이 멈춘다.[14] 생전에 브루크너 작품을 제자들에 의한 편집본으로만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이런 독특한 판본 선택과 함께 연주 또한 명연으로 취급되어 그가 남긴 녹음은 브루크네리안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다.[15] 교향곡 5번의 샬크판도 악평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크나퍼츠부슈가 죽은 후에도 적어도 5명의 지휘자가 녹음을 남기긴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16] 여담으로 1932년 성공적으로 초연된 브루크너 9번 오렐판이 왜 초연 2년 뒤인 1934년 출판되었냐면, 오렐판을 출판하기로 한 출판사가 이미 도산해서 오렐판의 출판이 미뤄졌기 때문이었다.[17] 다만 SMPC판은 독일의 유르겐 회플리히 음악출판사가, 조셉슨판은 독일의 카루스 음악출판사가 정식 출판해서 구하기가 한결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