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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명 | Dong, Zhou & Zhang, 1983 |
분류 | |
<colbgcolor=#FC6> 계 | 동물계Animalia |
문 | 척삭동물문Chordata |
계통군 | 석형류Sauropsida |
목 | †조반목Ornithischia |
계통군 | †합치류Genasauria |
과 | †신조반류Neornithischia |
속 | † |
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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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랍토르에게 쫓기는 공부사우루스 무리를 그린 복원도[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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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생대 쥐라기 후기에 중국에 서식했던 조각류로 추정되는 의문명 조반목 공룡.속명은 '두공부(杜工部)의 도마뱀'이란 뜻으로 이백과 함께 중국의 한시 문학을 대표하는 두보의 이명[2] 중 하나에서 따온 것인데, 해당 이명을 가잔 인물이 이 공룡의 모식표본이 발견된 쓰촨성 지역에 연고를 두고 있기 때문에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2. 연구사
1983년 이 녀석이 지금과 같은 속명으로 학계에 처음 소개되었을 당시 근거 자료로 활용된 화석은 중국 쓰촨성 쯔궁(自贡/自貢)시 룽현(荣县/榮縣)의 샤시미아오층 상부에서 발견된 이빨 2개가 전부였다. 각각 전상악골과 상악골 부분에 위치해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1cm 남짓한 크기의 이빨들은 발굴 당시 서로 흩어진 채로 발견되었는데, 이 녀석의 종명이 흩어지고 빠진 부분을 모아 보충한다는 의미를 가진 습유(拾遺)라는 한자어의 표준 중국어 발음 shíyí에서 따온 것은 이 때문이었다.[3]모식표본의 보존률 상태가 이처럼 낮아서 이 녀석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추측이 제기된 바 있다. 이 녀석에 관한 정식 논문을 처음으로 학계에 제출한 둥즈밍(董枝明) 등의 중국 고생물학자들은 원시 조반류의 일종인 파브로사우루스(Fabrosaurus)와 유사한 소형 초식성 조반류라고 보았지만, 이후 2006년에 공부사우루스의 이빨 형태가 가스토니아 등의 곡룡류 공룡들과 흡사하다는 이유로 곡룡류의 일종일 가능성을 제기하는 피터 M. 갈톤(Peter M. Galton)의 논문이 발표되는 등 현재까지도 논의가 분분한 상태. 일각에서는 이빨 화석만으로는 이 녀석이 어떤 공룡인지 파악하는 것은 고사하고 아예 이 녀석이 공룡이 맞기는 한 것인지 밝혀내는 것조차 요원하기 때문에 이 속명을 의문명 처리해야 한다고 보기도 한다.
이처럼 속명의 유효성 여부까지 의심하게 하는 모식종의 열악한 화석 근거는 한때 공부사우루스속의 우카이와넨시스종(G. wucaiwanensis)으로 분류되었던 개체의 계통분류학적 위치에도 영향을 주었다. 1989년 둥즈밍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 우차이완(五彩湾/五彩灣)의 스수거우(石樹溝) 층(Shishugou Formation)에서 출토된 부분적인 하악골과 미추골 일부 및 앞다리뼈 일부, 그리고 완전한 두 뒷다리뼈를 비롯해 엉치뼈와 미추골 일부를 공부사우루스의 두번째 종인 우카이와넨시스종의 모식표본과 부모식표본으로 동정하였다. 이 화석을 근거로 둥즈밍은 공부사우루스가 힙실로포돈과의 일원이며, 이족보행을 하는 소형 조반목 공룡들의 기원일 것이라는 관점을 피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힙실로포돈과 자체는 현재 유효하지 않다.
그러나 이 녀석과 모식종이 같은 공룡이라고 분류할 하등의 해부학적 공통 형질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우카이와넨시스종을 별도의 속으로 재명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데이비드 B. 웨이샴펠(David B. Weishampel)과 래리 위트머(Larry Witmer) 등의 학자들에 의해 계속 제기되었고, 현재 이 녀석은 일단 편의상 공부사우루스라고 불리고는 있지만 사실상 공부사우루스와는 별개로 여겨지는 상태다.[4] 대략적인 몸길이는 1.5m 정도로, 19.5cm 가량 되는 정강이뼈를 가졌다는 점으로 미루어보건대 튼튼한 뒷다리로 민첩하게 움직이던 녀석이었으리라 추정된다. 아마 부리와 나뭇잎 모양의 이빨을 이용해 식물을 뜯어먹고 살다가 천적을 만나면 빠른 다리를 이용해 달아나는 식의 생태를 보였을 듯.
[1] 소형 조각류 공룡의 일종이라는 관점을 토대로 묘사되었다. 현재 공부사우루스는 조각류로 간주되지 않는다.[2] 당나라 숙종 재위기에 두보가 벼슬을 내던지고 지금의 쓰촨성 청두에 해당하는 익주로 낙향한 적이 있었는데, 마침 해당 지역에 치소를 두고 있던 검남절도사(劍南節度使) 엄무(嚴武)의 추천으로 검교공부원외랑이라는 자리를 얻어 활동한데서 유래한 별칭이다.[3] 공교롭게도 이는 두보의 또 다른 이명인 두습유(杜拾遺)를 의미하기도 한다. 안사의 난이 일어나고 1년 뒤 두보는 장안을 탈출해 당 숙종의 행재소에 귀부했는데, 그 공을 치하하는 의미에서 숙종으로부터 좌습유(左拾遺)라는 관직을 제수받았기 때문.[4] 이 녀석만의 새로운 이름으로 에우공부사우루스(Eugongbusaurus)가 제시된 적은 있으나, 해당 속명이 아직 학계에서 공인된 것은 아니라 아직까지는 비공식적인 명칭 취급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