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6 20:17:41

고려 흑태자

고려 흑태자
파일:고려__흑태자.jpg
장르 대체역사
작가 마천대성
출판사 KW북스
연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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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
연재 기간 2020. 02. 02. ~ 연재 중

1. 개요2. 줄거리3. 연재 현황4. 특징5. 등장인물6. 개변된 역사
6.1. 개변된 사건6.2. 고려6.3. 몽골6.4. 남송6.5. 유럽
7. 평가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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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천대성의 대체역사소설. 배경은 고려 중기로 주인공은 왕식(원종)에 빙의한 현대인이다.

2. 줄거리

고려 고종 19년. 금 천흥(天興) 원년, 몽골 태종 4년(1232년).

시대를 잘못 타고난 현대인이 고려의 왕자 왕식에 빙의하였다.

국내로는 권신과 반란의 소란이,
외부로는 점점 거세지는 몽골의 외침.

외우내환의 위기 속.
왕식은 원간섭기조차 없는 고려를 만들고자
고려의 흑태자가 되고자 하는데……
고려 태자 왕식(원종)의 몸에 빙의한 현대인인 주인공이 여몽 전쟁에서 원 간섭기마저 막겠다며 내우외환을 막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역사에 개입하면서 원 역사보다 일찍 터진 동경의 난을 진압하고, 최우와의 대립으로 몽골의 동하국 정벌에 고려지원군으로서 강제 친정하게 된다.

3. 연재 현황

문피아에서 연재하기 전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에서 먼저 연재를 시작하였다.

2020년 2월 2일 문피아에서 연재를 시작하였다.

2020.12.31, 2021.01.02 기준으로 1부 완결, 1부 에필로그가 올라왔다.

2021.11.26 기준으로 2부가 완결되었다.

2022.08.15 기준으로 3부가 완결되었다.

2023.04.17 기준으로 4부가 완결되었다.

4. 특징

특이하게 빙의자의 이름이 안 나오고 보통 대역물에서 쓰는 사학과 출신이라는 설정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사학과나 역덕 등의 친구가 있었고 그에게 들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라면서 작중 스토리를 전개하고 나간다.

덧붙여 작품 소개에서부터 시대를 잘못 타고난 현대인이라고 언급되는데 최근 소설 주인공으로는 흔치 않게 현대인이면서 치트나 트립하면서 모종의 사건 없이 순수하게 애깃살을 쏘는 법을 처음부터 알고 만드는 법도 알며, 뛰어난 무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5. 등장인물

5.1. 고려

5.1.1. 왕식→왕검

작중 주인공. 본명은 불명. 고려국의 태자. 작중 주인공으로 현대인이 빙의되어 있다. 보통 대역물 초기에 나오는 빙의 후 반응이나 적응기간을 등장 자체를 빙의하고 시간이 지난 뒤라는 설정으로 전개하면서 쿨하게 스킵했다. 제목의 흑태자는 작중 주인공을 지칭하며 주인공의 복장과 명성으로 생긴 별명이다.

고려가 외왕 내제를 했기 때문인지 작중 인물이나 시점마다 고려에 대한 서술이 다르게 하는데 보통 고려인들은 태자, 황제 폐하 등 황제국 용어로 서술하는 반면, 다른 나라, 나레이션 등에선 세자나 왕등 제후국 용어로 쓰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 또한 제후국 용어로 설명한다.[1]

흑태자라는 제목답게 주인공은 검은 옷을 자주 입는 것이 나오는데 대표적으로 갑옷이 흑표범 가죽으로 만든 검은 갑주.[2] 모델은 창세기전 시리즈흑태자 칼 스타이너로 추측되었지만 작가왈 그걸로 종종 드립하기는 해도 모델 자체는 영국의 흑태자 에드워드라고 한다.

작품 소개에 대놓고 시대를 잘못 타고난 현대인이라고 적혔는데 그 말대로 작중 무력은 출중한데 그중 궁술은 고주몽이나 이성계를 연상시키는 신기를 종종 보여준다.[3] 작중 궁술에선 남들에게 밀린 적이 없고 이 때문에 작중에선 동명성제의 재래라는 평가도 받기도 한다. 또한 전장에 직접 나서는 행동들을 보면 정말 일반 현대인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과학 치트나 시스템 초능력 치트가 없는 대체역사 주인공중에서는 그야말로 손꼽히는 능력자다. 화살은 날아가는 새의 눈을 맞추는 백발백중의 신궁에 출중한 기마술. 몸이 성장한 3부쯤에선 한손에 검과 창을 들고 백병전 무쌍을 펼치는 무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전략과 전술도 대단하여 주인공이 직접 예측하고 개입한 전투에선 단 한 번도 패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 범주에서 본다면 2부 3차 여몽 전쟁에서 옷치긴의 침략을 염두에 두고 대비는 했으나 정작 테무케의 전략은 고려의 연승조차 감안하여 짜놓은 전략이라 주인공은 옷치긴 남하 직전에 겨우 눈치채 요동을 친정하고, 몽골 조정을 끌어들이고 나서야 위험을 모면했다. 그리고 3부 1차 옷치긴 전쟁에서도 초반에 대승을 거두었다가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예상못한 요동에 당도한 옷치긴의 지부겐의 서북면 침공에 서북면이 초토화 될뻔하다가 이자성과 귀주성 우주방어로 옷치긴 군대가 멈춘 틈에 부랴부랴 당도하여 겨우 격파하는 등, 아슬 아슬하게 넘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작가 왈 이렇게 잡아도 당시 고려로 당시 몽골 상대하는 것은 헬 난이도라고 잡았다고 한다.(...) 다만 작중 역사 지식의 기반 대부분은 전생의 친구들에게 들은 내용들인 것 같다. 물론 궁술이나 검술, 승마술 등 본인이 알고 있었던 것도 상당수 있어 보이기도 한다.[4]

세력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빌드업 준비인지 작중 프로파간다를 종종 해대는 모습을 보인다.[5]

다만 친구들에게 들었던 역사적 지식과 도구를 만들어보려고는 하나 본인은 어디까지나 들어서 아는 수준에 불과해 고려의 수준을 정확히 몰라 폴리보로스를 만들려하다가 실패[6]하거나 최우의 허용범위를 넘었다가 동하국 정벌에 끌려가는 등 언제나 성공하거나 하진 않는다.

대체적으로 공적이나 성과를 이루면 그만큼 부담도 가지는 식으로 전개되는데 난을 지배하고 자신의 입지를 세운 만큼 최우의 경계를 받다가 희종을 만난 것 때문에 동경의 난을 진압하고 곧바로 동하국 정벌에 강제 지원하게 되어 카라콜룸에 끌려갈 뻔 했고 갈라전을 얻으면서 테무케 옷치긴과 대립이 매우 높아지고, 완안자연에게 의해 공식석상에서 금 황녀 소문이 거론되어 더욱 위험도 가지게 되었다.

사족으로 작중 주인공은 14살 시점에 이미 동정을 졸업했다.(...)[7]

5.1.2. 척인사

오리지널 인물. 왕식이 가출(?)하는 것을 보고 호송하기 위해 따라나왔다가 그대로 끌려간다. 첫 등장 때만 해도 견룡군 산원으로 있었으나 이통의 난때 활약으로 진급했다. 최신화 기준 내솔부로 이속하고 낭장까지 올라갔다. 작중 무기는 대도인데 사람을 한번에 반토막 내고 성벽에 걸친 공성 사다리를 혼자서 밀어내는 등 무력과 완력이 출중하다 못해 고려 제일의 장사 취급을 받는다. 다만 작중 척준경의 후손임을 암시하는 발언이 나와서 납득되는 분위기다. 북정 파트에서 구유크와 주인공의 면담 장면에서 주인공이 김방경과 대동한 인물. 주인공에게 자신의 갑옷이라고 지칭받을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다. 어찌 보면 가장 언급 없이 신임 받은 캐릭터다.[8]
동경의 난 이후 내솔부로 이직한다.

1부 마지막에 거사의 공으로 장군에 오른다. 불과 2년만에 산원->별장->낭장->장군 직에 올랐으니 아주 파격적인 승진이라 할 수 있다.
2부에선 존재감이 적다.
3부에서는 훈련 중 마주한 대호를 대도 하나로 잡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과거 관련이 짤막하게 나온다. 대요수국의 난 시절 전장에 참여했으며 김취려 밑에서 종군 한 적이 있었으며, 거란과의 전쟁에서 활약하다가 이후 가문이 척씨 가문인 것이 위에 알려지면서 최씨 가문에서 척인사를 견룡군에 이적시켰다고 한다. 이때 묘사되는 모습은 천성이 무인 그 자체.

실제 척준경의 가문인 곡산 척씨는 조선 초기에도 이미 사라진 성씨로 사라지기 시작한 시기는 고려 중기로 보고 있다. 어쩌면 작중 내에선 척인사가 멸성하던 시기의 마지막 후손 내지는 멸성하던 세대였을 가능성도 있다.

5.1.3. 유갑수

오리지널 인물. 척인사와 함께 주인공을 따라갔다가 휘말린 견룡군 교위. 쌍검을 사용하고 실력도 뛰어나긴 하나 이렇다 할 욕심이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척인사와 달리 출세욕이나 안락함 등 욕망을 드러내는 장면이 나온다. 동경의 난 이후 내솔부로 이속되고 산원이 되었다.

작중 위치는 돌격대장 포지션.
1부 막바지에 거사에 참가하여 공을 세우고 중랑장에 오른다. 대사를 보면 원래 김방경이 해야 할 임무인데 김방경이 최종준과 대화하게 되어 서로 바뀐 듯 하다.

2,3부에서 종종 전쟁에서 활약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금나라 출신 정안연과 나름 친분이 생긴 것으로 나온다.

5.1.4. 김방경

당시 최우의 당여였던 최종준이 총애하였던지라 최종준이 가출한 왕식을 감시 겸 호위를 위해 견룡군으로 이속시켜 보냈다. 신라 경순왕의 후손이기 때문에 동경의 난 때 최산 일행들에게 허수아비 군주, 신라왕으로 추대 받았다. 그러나 추대받기전부터 주인공 측에 포섭된 상태라, 오히려 내부의 적으로서 주인공을 도와서 딱히 벌을 받지는 않았다.

이후 내솔부로 이직되고 주인공 따라 북정에도 동행되는데 이때 구유크와의 면담에서 주인공에게 또다른 자신이라고 지칭받을 정도로 신임받고 있음이 드러났다.

1부 막바지에 주인공의 거사에 참가하여 큰 공을 세워 대장군에 올랐다.
3부에서 남해안 수적 토벌과 탐라국 왕자의 난을 토벌하는 등 큰 공을 세운다. 옷치긴 왕가 전쟁에도 주인공과 함께 공을 세운다.
4부에선 동요국에 고려군을 이끌고 주둔한 상태라고 한다.

주인공 진영에서 주인공 다음가는 실질적 No.2로 보인다. 작중 주인공 측근 중 가장 완벽한 타입으로 보이는데, 척인사나 유갑수가 무력캐, 정안연과 이장용이 지능캐라면 김방경은 양쪽전부 뛰어난 것으로 나온다.

5.1.5. 이안사

태조 이성계의 조상. 역사가 개변되고 주인공과 만나면서 갈라전으로 이주되었다.

1부 외전 시점부터 부병마사 아부한 두문과 친교를 쌓고 현지 여진족들과도 친교를 쌓다가 2부에서 동하 부흥군이 쳐들어오자 친한 추장들의 병력들로 의병을 일으켜 친구들과 함께 아부한 두문을 도우러 간다.

참고로 이 시대 저 상황에서 여진족에게 고려에 의병을 일으킬 정도로 충성심이 있는 것도 이안사가 친교를 쌓은 여진 추장들도 목숨 바쳐 갈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안사는 여진족들 추장을 불러 연회를 벌여 술에 취하게 한 뒤 바람잡이로 싸우자고 했고 술에 취한 여진 추장들이 그러자고 대답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납치하듯 전장으로 데려간 것. 추장들과 자기 사병을 끌고간 후 전령들을 각 부족에 보내 너희 추장들은 이미 나와 함께 의병으로 진격하니 군대를 끌고 오라고 지시를 내려 만든 반쯤 공갈과 사기로 만든 의병들이다. 작가왈 유금필과 송 태조 조광윤 등의 고사를 보고 구상했다고 한다.

2부와 3부에서도 종종 등장하는데 아부한 두문과 의형제를 맺고 남갈라전에서는 아부한 두문 다음 가는 세력이 되고, 무협소설의 표국 표사 같은 것을 하며 부를 축적하고 있다.

5.1.6. 금수유

개봉이 함락되었을 때 고려로 넘어온 금나라의 황녀...라는 소문을 가지게 된 성격이 더러운 선자(?). 작중 외모는 현대 미인관에 부합되는 외모에 표독한 눈매를 한 미녀라고 한다. 등장 에피는 20~24장. 도사다보니 불진과 태극검을 소유하고 있는데 작중 무기로 써먹는다. 의외로 무력이 출중한데 수정전의 행적에서는 화가 나서 끼어든 유갑수를 상대로 허를 찔렀다곤 하나 우위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고 그 다음 끼어든 주인공을 상대로 무협소설에서나 나올법한 비무를 보이다가 척인사가 끼어든 공격을 막았다. 악인이라곤 할 수 없으나 성격이 더러워 어그로가 끌린다. 성격이 더럽다는 것은 빈말이 아니라 작중&작가 공인인데 고려인 어부를 보고 어깨가 부딪쳤다고 온갖 욕과 모욕은 다 주고, 그거보고 여진인과 고려인의 불화가 일어나길 원치 않던 주인공이 끼어들었으나 그대로 욕했다.

다만, 해당 에피 내에서 암시하길 어부 상대로 깐깐하게 군 것은 고려인 어부가 금나라에서 고려로 넘어온 금나라 소녀를 도둑으로 몰고 때렸기 때문이라는 것이 암시되긴 했다. 그러나 잠행을 하여 당시 아무도 눈치 못챘다고 해도 고려 태자의 뺨을 때리고 칼부림까지 일으켰을 정도라 빈말로도 성격이 부드럽다고는 못한다.

특히 이 왕식을 때리는 장면과 주인공도 여진족과 고려인 사이에 감정의 골이 심해지고 정체가 드러날까봐 주인공이 순순히 넘어가는 장면으로 작중 최고의 어그로를 끌었다. 그리고 얼마 뒤 흑표에서 주인공에 의해 구해지는 장면이 히로인같아서 더욱 히로인이 되는가 우려가 되었으나...해당 에피에서 바로 프로파간다용 미끼라고 밝혀졌다.

정확히는 주인공이 여진족들을 동화, 유입시키고자 금 황녀가 고려에 넘어왔고 금 황녀는 고려 태자와 눈이 맞았다라는 근거 없는 소문을 퍼트렸는데, 그 소문에서 나오는 황녀의 용의자로 이 금수유를 만든 것. 특히 흑표를 잡을 때 주인공의 정체가 사실상 밝혀져 주변에선 당연히 함께 있던 그녀를 황녀라고 오해 혹은 의심한다.

당연하지만 저 시기에서 금 황녀가 고려에 넘어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당연히 몽골의 어그로를 끈다. 이 때문에 만약 몽골이나 기타 문제가 될시 이 금수유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처리할 생각이었던 것. 즉, 금나라나 여진인들 유입과 프로파간다이되 잘못될 경우 처리할 희생용으로 금수유를 지정한 것이다. 이렇게 희생용 떡밥을 남기고 본편에선 직접적인 등장은 사라졌다.

그런데 논란이 많아 안티도 많고 여도사가 사라졌으면 한다는 평이 많은 이 금수유는 해당 에피 올라오고 얼마 후 작가가 올린 외전 흑태자 야담(...)에서 보여준 모습으로 평가가 반전 했다. 실제 야담이 올라오고 난 다음 평가가 매우 반전되어 살려달라는 댓글이 올라왔고 작가에게는 쪽지도 날아왔다고 한다.

이에 작가는 투표를 하였으나 투표 결과 압도적인 생존과 출세를 지지받고 생존이 결정되었다. 정작 작가는 여도사에 대해 작중 비중을 크게 주지 않고 누가봐도 얘를 히로인으로 곱게 놔두겠냐고 알 수 있게 발암용으로 올리고 여차 무사히 완결되면 수정할 의향도 있다고 하는데 투표 결과에 이제 막혔다고 좌절 중이다. 작가는 두 버전으로 올리겠다고 했으나 출판사측에서 하나만 내라고 했는지 수정 버전이 올라가는 걸로 바뀌었다. 본편에선 1부 에필로그에서야 겨우 다시 등장했다. 거사의 1등 공신 전 금나라 상인이었던 정안연의 양녀로 입적되고 투표대로 태자비가 되었다.
2부에선 결국 이 소문이 테무케 옷치긴의 귀에 들어가 이걸 빌미로 전쟁이 일어났다.

3부에서는 직접적인 등장은 적지만 존재 그 자체에 의한 파급이 크다. 금나라의 잔존세력이 고려와의 연계를 위해 금수유가 금 애종의 딸이 맞으며 그때문에 금나라 옥새까지 쥐어줬다는 식으로 소문을 퍼트려 몽골의 시선을 고려에 돌리고자 했고, 옷치긴 테무케는 이 소문을 이용해 몽골 조정에서 고려에 대한 의심을 키우고 본인은 2차 옷치긴 전쟁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남송은 남송대로 고려에 대한 의심이 커졌다.

사족으로 19금 외전 야담에서 나온 바에 의하면 당시 시대상에 맞게 방중술의 지식도 있는 걸로 밝혀졌고 주인공의 건강과 연상의 주도권을 쥐고 사용했지만...

참고로 위에 첫 만남 에피 부분에 적힌 내용들은 전부 작가가 해당 에피를 수정하기 전 기준의 내용들이다. 수정된 이후에는 결과적으로 프로파간다에 쓰인다는 것 말고는 상당히 다르게 전개되었다.

5.1.7. 고려왕

원 역사의 고종. 권신에게 휘둘리는 유약한 왕이란 이미지와 비슷하게 나오나 했으나 심도에서 몇 안되는 주인공의 아군으로 주인공의 안전과 도움을 준다. 주인공에게 내려진 오도양계 안무사라는 직위도 이 사람이 하를 찔러 내린 결과. 다만 최우가 작정하고 주인공을 처리하려고 하자 잘못 건드렸다고 판단하고 서둘러 주인공과 최우를 화해 시키고자 하는 걸 보여주는 등 결국 권신에게 휘둘리는 왕이란 모습도 보여주었다. 작중 묘호를 받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작가 취향인지 모르지만 고종이라는 단어보단 왕이나 대왕으로 자주 서술된다.

2부에서 자신보다 태자인 주인공이 나라와 황실에 도움이 된다 여겨 왕위를 넘기려 하지만 왕이 되었다가 몽골과 전쟁 중 납치되거나 전사할 것을 우려한 주인공이 반대해서 계속 왕위에 있다. 다만, 권욕이 없는 것은 아닌데 작중 스스로도 권욕을 품게되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 나오고 실제 최항의 문제에선 권력을 자신이 쥐고 행사하려는 욕망이 분출되기도 하였다.

3, 4부 시점에서 권력과 권위 욕구가 표출되었다가 주인공의 대화에서 포기하지만 그래도 권위욕이 생겨 연호 문제로 이기회에 남송과의 사대관계 청산을 추진하려다가 주인공이 그렇게 될 경우 해야하는 총력전안을 듣고는 기겁하며 포기한다. 이후 주인공이 패도가 아닌 왕도를 걸으라는 말에 그걸로 납득하며 물심양면 주인공을 도와준다.

이러니 저러니 원역사에 비해 가장 큰 수혜자인데, 4부 시점에선 남송 황제와의 거래를 이행하여 연호를 포기하는 것으로 남송에게 정식으로 패자(霸者)의 지위를 인정받아 남송에선 의전서열상 남송의 태자보다 위로 남송황제 바로 다음으로 취급받게 되었다.[9]

5.2. 몽골

5.2.1. 오고타이

작중 시기 몽골 제국의 2대 칸.
1부에선 금나라의 문제가 우선이라 고려의 화친을 받아주고, 구유크와 주인공의 관계도 일임하는 식으로 방치하지만 2, 3부부터는 서서히 고려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남송의 배신을 보복할 겸 쿠추가 공적을 쌓게 하기위해 남송정벌을 시작하나 우세는 했으나 명확히 승리를 얻지 못하고 서방 원정문제로 흐지부지하게 단평조약을 맺고 끝나고, 서방원정에 앞서 고려를 견제하고 쿠추의 공적을 쌓게하기 위해 동방원정(작중 4차 여몽 전쟁)을 시작하지만 명분부터 전적까지 전부 휘말리다가 주인공과 구유크의 밀약으로 쿠추의 공적을 쌓게 하는 것으로 고려 원정을 중단한다. 이후 서방원정이 끝난 후 고려를 처리하려고 미루고 서방원정에 친정을 하게 되는데, 칸의 친정이다보니 원역사보다 훨씬 빠르게 진격하게 된다.

그러나 3부 시점 후반부에 아끼며 내심 다음 칸으로 밀어주려고 했던 아들 쿠추가 신성로마제국의 사신을 배웅하다가 죽고 신성로마에서 선물로 준 포도주 원액으로 폭음하다가 죽었다. 년도상으론 원역사와 같은 1241년이지만, 서정의 진척도는 원역사보다 수년 빨라 그가 죽은 시점에서 이미 루스 공국들은 다 정복당하고, 튜튼기사단국도 멸망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5.2.2. 테무게 옷치긴

옷치긴 왕가의 1대 주인. 작중에선 국내 몽골 인명에 대한 번역이 들쑥날쑥하던 시절에 종종 나온 테무라는 이름으로 적혀있다.
칭기즈칸의 막내 동생으로 작중에서도 이미 고령인 노익장. 몽골 제국의 일익이라고 불리던 시기 답게 강력한 세력을 떨치고, 작중에서는 고려마저 영향권에 반쯤 넣은 상태로, 몽골 조정과 별개로 고려에 사신을 보내는 정도로 위상도 높았으나 주인공이 구유크와 손을 잡으면서도 점점 고려에 직접 간섭하거나 외교를 하는 것은 어려워지고 몽골 내에서도 은근 견제를 받아, 실제 동진국 멸망에 큰 도움을 줬으면서도 갈라전 지역이 고려에 넘어가는 것을 두고 고려에 적대한다. 이때문에 갈라전 탈환을 위해 동진국 잔당을 끌어들여 그들을 겉으로 내세워 고려를 치고, 동요국까지 끌어들여 고려를 약화 시키려 하던 것이 작중 3차 여몽전쟁.

작중 주인공이나 고려에 번번히 물먹긴 하지만 어릴 때 부터 칭기즈칸과 함께 제국을 만들었다는 노익장 답게, 막대한 경험과 지식, 군재는 작중 내내 높게 묘사된다.

3차 여몽전쟁에서도 주인공이 미리 대비하여 전투에선 대개 무난히 막아내고 있었지만, 정작 전쟁판도 자체는 테무게가 노린대로 된 것을 뒤늦게 눈치채고, 눈치채고 난 후에도 타파하는 것이 쉽지 않아, 결국 요동을 친다. 이 마저도 테무케가 명분을 위해 숨긴 상태였기에 가능했다는 식으로 묘사된다. 작중 아무리 이겨도 결코 방심해서는 안되는 난적으로 묘사되고, 실제 테무게가 주인공에 대해 방심을 하지 않게 되면서 테무케가 지휘하지 않는 군대조차 테무게가 미리 준비한 주인공 군대용 전술에 주인공도 큰일날뻔했다.

6. 개변된 역사

6.1. 개변된 사건

  • 제2차 여몽전쟁
    주인공의 개입으로 인해 틀어진 첫번째 사건이다. 빙의한 주인공이 몽골의 침입에 강화도로 몽진하는 중 대열에서 이탈하여 개성에 남아 때마침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고 그대로 평양성으로 호위군을 이끌고 올라간다. 그리고 그대로 평양성에서 수성전을 벌이는 도중 성 위에서 살리타이의 눈을 편전으로 저격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몽골 입장에서는 아직 금나라도 남아있는 마당에 알아서 숙이고 들어오는 고려를 상대로 구태여 전쟁을 지속할 필요를 못 느껴 적당히 물러난다. 원 역사와 다르게 극히 경미한 피해로 2차 여몽전쟁을 승전으로 이끌고 적절하게 화약을 맺는다.
  • 동경의 난
    전쟁의 승전 직후 전국을 위무하면서 원 역사의 흐름대로 동경에서 난이 일어나는걸 방지하기 위해 주인공이 동경으로 향한다. 용문창의 난을 진합하고 동경으로 들이친다. 반란의 무리는 태자인 주인공을 사로잡으려 하지만 주인공이 더 적은 병력으로 상대의 군대를 깨부숴버려 그대로 반란을 조기 진압한다.
  • 동하국 정벌
    주인공의 계속된 활약에 심기가 상한 최우가 몽골의 동하국 정벌 지원요청에 멋대로 태자가 갈 것이라고 공문을 보내고 그대로 태자에게 명령을 내려 태자를 동북방면으로 보내버린다. 사실상 몽골에 인질로 보내버린 격.[10] 여기서 구유크를 만나 그를 상보로 모시기로 하고 전투중 성문이 열리자 그대로 돌격해버려 큰 공을 세운다. 그뒤 구유크와 협약(옷치긴 왕가를 견제)을 맺고 보상으로 갈라전을 할양받으며 무사히 귀환한다.
  • 이연년의 난
    원역사와 비슷하게 일어났지만 역시 주인공에게 빠르게 진압당한다.
  • 호협하 전투
    구유크에 의하여 거의 강제로 갈라전 순방을 가게 된 주인공이 동하국 잔적들에게 포위당하여 일어난 전투. 훨씬 적은 숫자에 불리한 전투였지만 주인공의 기량과 전술등으로 승리한다.
  • 계사지주(癸巳之誅)
    1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에피소드. 계사년(1233년)마지막 날 밤. 주인공을 김약선의 딸과 결혼시켜 손발을 묶어버리려던 최우였지만 주인공이 약혼기념 연회 와중에 친위세력을 이용하여 최우 일파를 모조리 쓸어버리고 정권을 안정화시키며 끝내버린다. 1부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
  • 제3차 여몽전쟁
    3차 여몽전쟁이라곤 하지만 실상은 동요국, 옷치긴 왕가의 지원을 받은 동하국 잔당과 고려의 전쟁에 가깝다. 옷치긴 테무케가 고려의 태자비가 금황녀라는 거짓소문을 이용하여 동하잔당을 이용하여 동북방면에 전투를 일으키고 그와 동시에 옷치긴 왕가에 영향을 강하게 받는 동요국을 이용하여 서북 방면을 공격한다. 주인공이 친정하여 통주에서 대승을 거둔 뒤 그대로 압록강을 건너 동요의 왕을 직접 사로잡은 뒤 몽골 조정에 분쟁사실을 알리고 협상을 하여 압록강 이남을 온전히 지배하는 것으로 전쟁을 끝낸다. 갑오년(1234년)에 저쟁이 끝나고 조약을 맺어서 조약 이름도 갑오조약이다.[11][12]
  • 송몽전쟁
    주인공의 개입으로 인해 원역사보다 조금 이르게 시작된다. 고려가 요동을 공격했다는 소식을 접한[13] 송 조정에서 그대로 군사를 일으켜 몽골을 공격한다. 주인공의 조언과 개입으로 원역사보다 훨씬 치열하게 양국이 전투를 벌인다. 몽골에서는 칸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공격해왔고 송은 주인공의 조언으로 좀 더 차분하게 대비를 하며 치열한 싸움을 벌이다 결국 화약을 맺는다.
  • 만전(최항)의 난
    주인공의 계략과 만전의 욕심과 멍청함이 합쳐져서 일어난 사건이다. 만전이 지방에서 사찰을 운용하며 백성들을 수탈하고 패악질을 일삼던 걸 주인공이 알게 되어 만전을 역모로 역었고 그걸 기회삼아 강화도 조정에서 주인공의 종노릇을 하던 만종을 엮어서 주인공과 우봉가문의 힘과 심도의 정치적 영향력을 없애려 하였으나 주인공은 이미 계사지주가 일어난 이후부터 그런 불순분자들을 모아서 없애버릴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주인공의 뛰어난 정략 아래 모조리 일소당하고 우봉가문의 영향력과 군사들은 거의 해산되다시피 하였다.
  • 제4차 여몽전쟁
    서정에 들어가기 앞서 우환을 제거하고 오고타이가 아끼는 아들인 쿠추에게 공을 세워주기 위해 침략을 시도한다. 허나 이 전쟁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주인공이 예상한 판이었다. 전쟁에 앞서 고려왕을 출륙시켜 각지를 순회시켰고 군사를 미리 모아 단련하였고 병참과 배까지 미리 준비하였다. 명분에서 앞선 주인공은 청천강[14]과 정원에서 대승을 거두며 어렵지 않게 몽골을 격퇴하고 화약을 맺는다.
  • 몽골의 서정
    주인공의 개입으로 인해 역사가 뒤틀리며 몽골의 서정의 중요성이 훨씬 강해지자 오고타이 칸이 직접 친정하여 서방대원정을 강행하였다. 주인공의 조언과 칸의 친정 덕분에 원역사보다 진격속도가 빠르고 강하다.
  • 탐라국 왕자의 난
    탐라국의 왕자[15] 양원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수적 토벌후 잔당을 처리한다고 내려보낸 김방경이 이끄는 군대에 의해 진압되었다. 탐라국의 반란 자체는 주인공 진영도 나름 짐작했으나 예상외로 유능하고 결단력이 있는 왕자의 신속한 행동에 김방경이 아니었으면 왕자가 주도하는 탐라국 독립과 왕자의 중앙집권이 성공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16]
  • 탐라 폐현치번(廃県置藩)
    고려 중기 시점 이미 고려의 현이 된 탐라국이나 제주도를 이용하기 위한 주인공과 친 고려파 성주의 입지를 올리기 위해 탐라국을 고려의 현에서 폐하고 번으로 다스리게 되었다.
  • 제1차 옷치긴 전쟁
    몽골의 본대가 서정으로 자리를 비운 틈에 옷치긴 왕가와 갈라전의 국경선을 놓고 전투를 벌인다. 동모산에서 각기 1만 명으로 회전을 벌여 대승을 거둔다. 그리고 직후 동북방면으로 쳐들어온 테무케의 아들 지부겐마저 격퇴하여 옷치긴 왕가의 힘을 확실하게 꺾는데 성공하고 갈라전의 범위를 더욱 크게 확정짓는다.[17]
  • 유구경략
    남송과 새로운 사대관계를 맺으며 이루어진 송의 해금령과 이어 동쪽 바다에 대한 무역권을 이용하여 해상중계무역을 시작한 고려가 그 대송 대일 중계무역 거점지로 이용하기 위하여 유구를 경략한다. 또한 이 경략에는 화약을 만들기 위한 재료 수급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아직 제대로 된 국가가 들어서기 전이어서 생각보다는 함락은 수월하게 이루어냈으나 반대로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서 번거롭고, 제법 거리가 있어서 제법 재정을 소모했다.
  • 잔금
    공식 칭호는 이전 그대로 대금(大金)이지만 작중 주인공은 '금의 잔당'이라는 의미로 잔금(殘金)이라고 부른다. 원 역사에서는 채주가 포위되었을 때 금 애종에게 선위는 받았으나 결국 잡혀 죽었던 금 말제 완안승린이 원역사와 다르게 살아남았다. 원 역사와 달리 금 말제가 죽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떡밥은 1부 완결 후 외전에서 채주성 함락시 금 애종의 분투때부터 시작됐는데, 2부에서도 황제는 죽였는데 금의 옥새는 구할수 없었다며 한층 더 살아있을지 모른다는 복선을 남겼다. 그리고 3부에서 말제가 직접 등장한다. 계기는 금 애종이 선위 후 직접 성벽으로 가서 송몽연합군과 맞서 싸우며 시선을 집중시킨 덕분인데, 이렇게 분투한 원인은 고려와 주인공의 분투를 듣고, 황제인 자신도 최후의 발버둥으로 한 것. 이렇게 탈출한 완안승린이 곽하마와 합류하여 어찌 남긴 하였으나 본래라면 이 마저도 금새 사라져야 했다. 그러나 고려가 갈라전을 취함으로 변질된 3차 여몽전쟁에서 주인공이 요동정벌을 강행하며 원의 시선이 동쪽으로 쏠려 일단 살아남았고, 그 뒤에 고려의 요동정벌 소식을 들은 송이 원역사보다 조금 일찍 시작한 단평입락으로 다시 살아남았으며, 그 뒤에 원역사보다 좀 더 치열하게 벌어진 송몽전쟁으로 다시 연명하고, 그 뒤에 4차 여몽전쟁으로 다시 고려로 시선이 쏠려 살아남은 뒤 이번에야말로 망하나 싶을 시점에 원역사보다 좀 더 일찍 좀 더 대대적으로 서정을 떠나버리며 실낱 같은 목숨을 건진다.
  • 중동의 평화
    원역사와 달리 몽골군이 중동이 아닌 러시아 쪽으로 서정을 집중하면서 중동에 진출하지 않고 군량을 구매하는데 수준에 그쳐 덕분에 압바스 왕조도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단, 몽골 성격 어디 안간다고 무역을 하면서도 무례하게 구는지 후일 아바스 왕조의 마지막 칼리파가 되는 알 무스타심은 반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부친이자 명군으로 유명한 작중 칼리파인 알 무스탄시르 1세가 몽골의 기세와 강함을 간파하곤 성급한 무스타심을 설득하고 식량을 몽골에 전할때 동행시켜 몽골의 상황을 알아보게 하는 등,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다.
  • 제2차 옷치긴 전쟁(불발)
    잔금세력이 주인공과 고려를 옭아매기 위해 옥새 중 하나인 천자지보를 고려에게 넘겨준 뒤에 고려의 태자비가 금의 황녀가 맞고 그녀에게 옥새까지 있다는 소문을 적극적으로 퍼뜨렸다. 이것을 빌미로 카라코룸에서 시찰단이 왔으나 고려와의 전쟁을 바라던 테무케가 보낸 간자가 일으킨 사건으로 사찰은 조기에 파탄났고 카라콜룸과의 중재 끝에 갈라전에서 다시 한번 고려와 옷치긴 왕가와의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양쪽 모두 전력으로 군사를 모았고 고려에서는 주인공의 노력 끝에 일구어진 군사력 거의 전부인 7만대군을 모으고 옷치긴 왕가 또한 자신들의 자신들의 모든 군사와 인재를 전부 끌어 모아 10만에 가까운 숫자를 모아 양군의 건곤일척의 한판 승부가 벌어지기 직전 오고타이 칸이 서정에서 사망하며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이때 주인공은 이 전쟁에서 노왕 테무케의 목까지 잘라버린 뒤 원정으로 옷치긴 왕가를 아예 소멸시킬 생각이었으나 아쉽게도 이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 대신 주인공은 서쪽으로 떠나는 테무케와 나름 협약으로 동요국에 군대를 일부 주둔시키고 영향력을 강화하는데 끝났다.
  • 제2차 옷치긴 전쟁
    남송에서 보낸 최후 통첩과 마침 동요국의 야율수국노가 고려를 끌어들여 이용하려는 수단을 역으로 이용하여 옷치긴 왕가에 죄를 뒤집어 씌우고 전쟁을 일으킨다. 테무케 본인부터 당연히 서정에 주력하던 상황이라 테무케가 있던 시절보다 병력은 모자랐지만 테무케가 있던 시절부터 준비했던 것이 있어서 주인공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으나 결국 패하고 만다. 이 이후 요동의 패권은 명백히 고려로 넘어가게 된다.
  • 천하회맹 개최
    거듭된 남송의 개전요구를 미루기 위해서, 그리고 동시에 그들의 의심을 완전히 불식시키기 위하여 대 몽골을 위한 천하회맹을 고려가 주관하여 개최한다. 장소는 제주도. 고려와 남송을 포함하여 안남국등 여러나라가 참석하고 금나라도 참석한다. 각자 위신을 살리기 위해 번국들까지 참석시킨다. 결국 회맹이 개최되어 대몽골을 상대로 반드시 싸우겠다는 결의를 표명하고 의식을 진행한다. 그리고 결국 이 사실이 잔금의 병사들 입을 통해 몽골에 전해지게 되며 생각보다 조금 이른 진정한 여몽대전이 발발 하고 만다.
  • 여몽대전 개전
    몽골의 서정이 끝나고 언젠가는 발생하리라 여겼던 여몽대전이 일어나고 만다. 계기는 천하회맹에 참석한 정보가 새어나가서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결국 몽골의 고려정벌의지였다. 구유크는 서정이 프랑스를 멸망시키며 일단락 되자 유럽의 통치가 안정되기전까지 시간을 두고 미뤄뒀던 동정을, 그중에서도 고려를 치기 위하여 이미 회군 중이었고 마찬가지로 아리크부카가 고려왕의 퇴위와 흑태자의 왕위를 명목으로 이미 약탈전을 준비중이었기에 회군한 병력과 아리크부카가 모은 병력 9만으로 본격적으로 고려침공을 개시하며 마침내 여몽대전의 그 서막이 오르기 시작하였다.

6.2. 고려

  • 한글
    계사지주로 최우일파를 쓸어내고 권력을 잡은 주인공이 문무양도를 기치로 내세우며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좀 더 쉬운 문자의 필요성을 위해 한글을 창제(?)한다. 일단 본인이 기본 틀을 만들었고(?) 나머지를 이규보를 중심으로 한 문신들이 좀 더 가다듬은 뒤 한글창제(?)의 의미와 원리를 담아 반포하라고 명하였다. 작중에선 해동문자(海東文字)라고 지칭되고 있다. [18]
  • 농업의 발전
    계사지주로 권력을 잡게 된 왕검이 자신이 알고 있거나 지식이나 혹은 전란 통에 고려로 넘어온 강남의 인물들을 통해 강남농법을 전수시키거나 농기구를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이앙법과 시비법을 보급하고[19] 우마를 사용한 역마법을 도입하고 농사에 도움이 되는 끄으레와 이앙마 수답차[20] 풍구를 개발하고 저와 보를 보수하는 등 농업을 발전시켜 여로모로 원역사보다 농업의 생산량이 조금씩 올라가는 중이다.
  • 인구의 증가
    발전된 농업과 행정력의 증가. 그리고 압도적으로 크게 늘어난 영토와 유입된 인구로 인하여 10년동안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물론 단순히 농업생산력의 증진과 상업의 발달로 인하여 사람이 더 많이 태어나고 자란 것은 아니다. 일단 북방 영토가 증가하며 그 안에 살던 사람들이 고려인으로 유입되었고 북방여진인을 비롯하여 전란에 휩싸인 화북지방에서도 전쟁 위험이 거의 없는 고려로 많이 넘어왔다. 무엇보다 무신정권동안 완전히 망가지고 박살났던 행정체계가 주인공으로 인하여 도리어 조선시대 수준으로 급상승하며 실제 인구와 행정상의 인구차이가 크게 줄었다. 주인공의 선정으로 경제와 치안이 매우 좋아지며 산에 숨어살던 이들이 내려오고 전란이 줄어 죽는 이들도 줄었다. 이렇게 증가한 고려의 전체 인구는 무려 800만으로 조선 중기 수준의 인구다. [21]
  • 건축의 발전
    주인공이 보와 저수지를 만들고 무너진 성을 보수하고 새롭게 증축하는데 드는 인력을 줄이기 위해서 기술자들로 하여금 거중기와 녹로 그리고 양토기[22]를 만들게 하였다.[23] 어차피 저 도구들 전부가 결국 도르레의 원리라서 단순한 발상의 전환과 번뜩임만 있으면 현시대의 기술로도 충분히 만들수 있었기에 잘 만들어 성의 보수와 증축을 하느데 그럭저럭 쓰이고 있다.
  • 상업의 발전
    외상들에게 관세를 차등으로 매겨 세수를 증가시키고 오래 거래한 자에겐 팔관회 참가의 자격을 주고 몇몇 주요 상단을 성장시켰다. 특히 주인공의 장인인 정안연이 운영하는 용강상단은 조정의 지원아래 혜택과 주인공의 조언으로 거대상단으로 발돋음 하였다. 황해 및 동중국해 방면은 고려가 해상을 통제하고 있고 중원을 반갈죽 당하여 바다에 신경쓸 여력이 없는 남송에게 바다에 대한 권한을 맡았고 동요국과 일본 몽골과 남송 옷치긴 왕가와 안남국과 중계무역과 중개무역을 주도해가며 특산품을 교역하는 등 이익을 보며 상업이 발전중이다. 주인공은 이 상황에서 화폐까지 유통하길 원하지만 화폐의 원료가 없어 고민중이다.
    • 인삼의 재배
      주인공이 국고를 채우기 위해서 한 방책중 하나로 재배삼을 시작하였다. 비료로 활엽수의 생엽이나 낙엽을 이용하여 만들었다. 과거부터 미래까지 이어지는 전통적인 효자상품이라 어느정도 활성화되면 큰 돈을 만지게 해줄거라 기대중이다. 주인공은 일본과 남송과의 중계무역에서 인삼이 활약을 하여 조선후기만큼의 돈을 벌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 만약 그렇게 되면 팔관회 비용이나 북방 여진족에게 나가는 조공 화사품정도는 대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 천일염
      주인공에 의해 훨씬 일찍 시작되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퍼지거나 한건 아니고 용강현의 염전에서만 사용된다. 염전에서 쓰이는 인력은 대부분 전쟁 포로나 노비들이다. 호족들이 흉내내서 수입이 줄어들까봐 현재는 방법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건 작중에서도 말하지만 같은 고려의 전체 수익보다 주인공 개인의 수입을 고집하는 것은 전체적으로 보면 제살깎아먹기에 가깝다. 그래도 견룡군 강화를 우선한다고 공개는 안하고 있다고 한다. 2, 3부부터는 그나마 다른 곳에서도 염전이 만들어지고 있으나 여전히 전국적으로 다 퍼진 정도는 아니고, 그마저도 조정에서 관리하는 식이다. 그러나 용강현 염전은 주인공 측이 관리하고 있다.
  • 을미개혁(乙未改革)
    연속된 전쟁의 승리로 왕권이 강해진 왕검은 향.소.부곡의 폐단을 개혁하고 사찰의 장생표를 몰수하는 등 개혁에 박차를 가한다. 단, 그 개혁들은 어디까지나 약팽소선(생선을 굽듯이 아주 점진적으로 조금씩)으로 하고 있다. 급진적인 개혁으로 지방유지와 귀족들이 반감을 가지게 될 시 몽골의 침략으로 인한 전시 상황이 되면 고려 초기마냥 개혁이 전부 도로아미타불이 될 가능성이 있기에 무리가 안 가는 선에서 아주 조금씩 개혁을 해나가고 있다.
  • 영토 확장
    동하국 정벌의 참여와 그 이후 옷치긴 왕가와의 전쟁을 통해 동만주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였다. 일단 최소로는 금나라의 합라로를 포함하여 발해시절의 중경현덕부상경용천부 위치까지는 고려의 옛 갈라전이라 인정받았으며 그 이상, 즉 목단강 이동에 대한 영유권은 좀 더 논의를 위해 그에 대해 옷치긴 왕가와 협의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24] 4부 기준 발해의 5경을 전부 점령하는데 성공하고, 분쟁지였던 미타호와 수분하 이동 지역에도 나비효과로 급격히 성장한 여진 추장들과 합의하여 외번으로 만들었다. 서쪽으론 요동 지역의 동요국도 사실상 번국으로 만든 상황이다.
  • 군사력의 발전
    대 몽골전을 위해 계사지주 이후 정권을 잡은 주인공은 기효신서(紀效新書)와 연병지남(練兵指南), 병학지남(兵學指南), 민보의(民堡議) 등의 내용을 저술하고 장수들과 함께 연구하고 토의하여 병사들에게 병법과 진법을 철저하게 훈련시키고 능력을 발전시켜 대 기병전을 위한 훈련을 확실히 소화시켰다. 하여 3부에 이르러서 고려의 1군이라 할만한 정예병들은 주인공이 직접 지휘한다는 가정아래 같은 숫자의 정예 몽골군과도 충분히 싸울 수 있을만큼 강병이다.
    • 화포
      대 몽골전을 위해 초기부터 줄기차게 연구하던 화포를 완성했다.[25] 현 시점 세계 최고의 화기이지만 아쉽게도 상대가 알고서 대비한다면 충분히 대응이 가능한 수준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고려말 수준 이상 조선초 미만 수준의 화기라고 한다. 화포의 수준 자체는 높지만 화약의 부족 등으로 인해 그 자체만으로 병력의 질이나 수를 완전히 뒤덮을 정도는 되지 않기에 아직까지는 그냥 비장의 수단정도다.[26] 4부 시점에서 드디어 조총...은 아니지만 나름 소형화기, 핸드캐논 정도의 무기가 만들어진 상태다.
  • 판옥선
    주인공의 제안으로 인해 원역사보다 300년이나 일짝 완성되었다. 몽골이 서정을 가며 송나라를 견제하라는 명으로 인해 목재를 주며 군선을 만들라 하였고[27] 주인공이 이 기회에 미리 만들자며 만들었다. 당연히 당대에 해적이든 뭐든 상대가 될리 없는 배다. 이 배로 유구를 경략하거나 대마도 남구주등에 위협을 가하거나 밀무역하는 잠상들을 소탕하는데 혁혁한 효과를 발휘한다.
  • 해동유학의 연구
    주인공이 주희의 후손들에게 명하여 연구 제작중인 학문이다. 주요골자는 혜심이 주장했던 유불일치를 목적으로 한 유학이다. 성리학이 비록 여로모로 쓸모는 있으나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문제점이 많다고 생각한 주인공이 주희의 해동이 아닌 해동의 주희가 되어달라며 서토와 해동의 차이를 이해하고 현재 불교의 급진적인 개혁의 어려움을 논하여 유불일치의 사상을 접목하고 좀 더 실용성을 살린 학문으로 만들어달라 부탁하여 현재 진행중이다. 한 나라의 국학을 새롭게 정리하고 만든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주인공이 딱히 유학자도 아니며 주자 후손인 주잠의 제자들이 불만도 있고 아주 열의가 있는 상황도 아니라서 주인공이 말하길 자기 사후에도 제대로 만들어 질지 어떨지 모른다고 한다. 다만, 만드는 것 자체는 묵인하자 명예욕 때문에 만들고 싶다는 욕구는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주자학이 강한 경향이 있다.
  • 착호갑사
    주막을 만들어 물류의 이동을 활성화하고 상업을 발전시켜 화폐의 유통을 준비하려는 주인공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엄청난 호환이 닥쳐 군사훈련겸 민생구제 차원에서 호랑이 사냥을 실시한다. 정식으로 착호갑사라는 이름을 붙지는 않았다.
  • 연호 폐지와 패자(覇者) 책봉
    2부 마지막에 남송 이종과 밀약으로 사용하던 연호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북진을 준비하는 중인데 그전에 힘을 모으기 위해서라도 연호를 대처할 것이 필요하다고 주인공이 말했는데 실상은 회사품이나 많이 주길 바란 것인데 남송에선 정말로 연호를 대신할 것으로 고려왕을 패자(覇者)로 책봉했다. 패자의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제후들의 우두머리로 남송에선 이를 보다 정확히 구분하여 고려왕을 남송 태자보다 위로 올리고, 옷 또한 태자나 친왕이 입는 9장복보다 높은 10장복을 만들어 보냈다.

6.3. 몽골

  • 서정
    원역사와 다르게 고려의 정벌에 몇 번이나 실패하고 남송과의 전쟁에서 크게 재미를 보지 못하자 서정의 중요성이 무척이나 강해지며 대칸이 직접 서정을 향했다. 그리고 주인공의 조언으로 중동을 공격하는 대신 그들과 거래를 하며 유럽 공략에 좀 더 힘을 쏟아 원 역사보다 좀 더 빠르고 강하게 공격을 들어갔으나 신성로마제국 공략을 앞둔 운명의 1241년. 차가타이 칸이 서정 물자 공급에 힘쓰며 지원을 해주다가 과로로 원역사보다 1년 일찍 사망한다.[28] 그리고 대칸이 아끼던 쿠추는 사자로 갔다가 돌아오던 중 사망하고, 그에 분노하고 상심한 오고타이 칸마저 일전에 신성로마제국이 보내준 포도주 원액을 폭음을 하다 건강을 해쳐서 사망하고 말았다.[29][30] 그리고 오고타이 칸은 쿠릴타이를 서쪽에서 실시할 것과 서정을 끝까지 완수할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사망하였다.
  • 테무케 옷치긴의 정변
    원역사대로 오고타이가 사망하자 카라코룸을 점거한다. 원역사에서는 그때즘을 해서 구유크가 군을 이끌고 귀환하여 정변에 실패하였으나 변화된 역사로 인해 구유크가 귀환을 안 하게 되며 수월하게 궁을 점거하였으나 서정중에 사망한 오고타이가 쿠릴타이를 서쪽에서 개최하고 서정을 완수할 것을 유언으로 남기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 동서 민족대이동
    유럽을 정벌한 구유크가 민족 대이동을 동반한 통치 및 통합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정비된 역참과 화북지역의 막강한 인맥을 이용하여 화북의 인구를 유럽으로. 유럽의 인구를 동방으로 이동시켜서 함께 지내게 만드는 흠좀무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아무래도 이동중에 죽는 인원들도 꽤 많고 유럽에 정착하게 되는 동방인의 숫자에 비해 화북에 오는 유럽인은 좀 더 적은 듯 하다. 아무래도 유럽에서 동방으로 가는 중에 중간 중간 울루스에서 빼가기도 해서. 주인공은 이 이야기를 접하고 자기들이 무슨 알렉산더 대왕인줄 아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6.4. 남송

  • 해금령
    정식으로 입조한 고려의 부탁으로 입조를 하지 않은 일본을 상대로 해금령을 선포하였다. 그로 인해 일본 구주 지역에 여러 변화상이 불어왔고 고려의 해상 영향력이 좀 더 강해졌다.
  • 황권의 강화
    고려를 정식으로 다시 입조시킨 황제의 권력이 강해졌다. 또한 원역사와 다르게 진행된 단평입락과 송몽전쟁으로 정청지와 사숭지의 조정 내 영향력이 비슷해지면서 반대급부로 황제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 황권의 재강화
    남송 황제와 주인공 사이에 고려가 몰래 연호를 사용하되, 이후 황제의 위신이 흔들릴 때 고려가 연호를 몰래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이를 폐지시킨다는 밀약을 맺고 있었는데, 황제의 의도와 상관없이 남송의 사신이 우연히 고려가 몰래 연호를 사용하는 것이 간파하면서, 연호를 폐지할 것이 청하면서 밀약과 별개로 연호가 폐지되고 고려에게 퍼주다시피 한 황제의 위신에 진짜 문제가 생길 뻔 했으나, 고려에서 칙서가 없다는 핑계로 사신을 돌려보내면서 기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남송 이종이 설유하자 고려가 전례는 없지만 당대 남송 황제의 덕에 감명받아 이례적으로 따른다며 순순히 연호를 폐지하면서 이종의 위신이 더욱 강화되었다.

6.5. 유럽

  • 신성로마제국의 파멸
    원 역사와 달라진 몽골제국의 서정으로 인하여 유럽의 피해가 더욱 커졌고 그중에서도 신성 로마제국의 피해가 극심하였다. 원역사대로라면 전쟁이 진행되기에 앞서서 오고타이 칸이 죽으면서 서정이 취소되었을 테지만 바뀐 역사로 인하여 대칸의 친정이라는 변수와 원역사보다 더욱 집중화된 병력과 지휘체계, 그리고 그 중요성으로 인하여 서정은 오고타이 칸의 죽음 이후에도 지속되었고 프리드리히2세의 방심과 그 당시 신성로마가 가지고 있던 여러 내부의 문제[31]로 인하여 파멸을 맞이하였다.
  • 프랑스 왕국의 파멸
    신성로마제국의 멸망과 동시에 프랑스 왕국도 멸망을 피하지 못했다. 프랑스 왕국의 경우에는 당시에 유럽최강의 국력을 가진 강대국이었고, 군주도 경험은 조금 부족하지만 성왕 루이9세라는 명군이 즉위중이었으나 공격해오는 몽골의 병력이 너무나 대군이었고 결정적으로 앙주땅을 회복하기 위해 잉글랜드가 서쪽에서 쳐들어오면서 양면전선이 만들어지며 결정적으로 꼬이기 시작했다. 결국 양면전선을 해결하기 위해 파비뉴에서 몽골군과 대회전을 벌였으나 명장 수부타이의 지휘와 막대한 병력차에 대패를 하고 말았다. 이후 여려모로 노력하고 분투하였으나 결국 잉글랜드와 몽골에게 나라를 멸망당하고 루이9세는 발칸 반도로 몸을 피하게 되었다.
  • 잉글랜드의 앙주회복
    변화된 역사로 몽골의 서정이 그대로 이어지자 몽골과 손 잡고 프랑스를 양쪽에서 공격하여 존왕 시절 잃어버린 앙주땅을 전부 회복하였다. 그 대신 유럽의 기독교 세력들에게 유다 취급당하며 손가락질 당하는 중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보았다. 더군다나 몽골군은 프랑스를 멸망시킨 이후 동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귀환하였으니 앞으로의 전개여하에 따라 더욱 큰 이득을 볼 수도 있다. [32]

7. 평가

배경부터 한국 역사상 가장 처절한 전쟁기에, 제목은 먼치킨을 떠올리는 흑태자다 보니 읽기 전에는 대부분 주인공 무쌍 먼치킨물 혹은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해 주변 인물들을 너프하거나 지능을 떨어트리는 주인공 원맨물 같은 내용인가 오해하기 쉽지만 실제론 그런 먼치킨물과는 아주 아주 거리가 먼 작품이다.[33][34]

읽은 독자들 평은 대부분 의외로 수작이고 집필할수록 필력이 상승하고 있는 것도 보인다고 하는데 정작 나름 파이가 커진 국내 대체역사소설 시장에서도 여전히 희소한 고려시대 중기 여몽전쟁 시기 배경으로 한 작품이나 구매수는 매우 저조하다. 어지간하면 회당 구매수 300 이상은 나오는 대체역사물에서도 그 절반도 못 미친다.[35] 구매수가 떨어지는 가장 주된 이유는 극악의 연재속도로 꼽고 있는데 보통 다른 대역 소설과 웹소설이 주 6일, 주 5일로 연재를 하는데 비해 고려 흑태자는 주 3회(월, 수, 금)로 연재되고 있기 때문이다.[36] 그나마 3부부터는 주 4회(월, 화, 목, 금)으로 늘어났다.

사실 작품의 진행을 보면 1주일 4회도 부족한 게 이 작품은 결코 기본이나 근본없이 홱홱 진행되는 작품이 아니라 명군이 되어보세처럼 차근차근 쌓아가고 조금씩 진행되는 작품이라서 내용에 필수적으로 필요하지만 지루한 부분도 상세히 진행이 된다. 때문에 많은 연재가 필요함에도 연재속도가 느리니 재미나 수준에 비해 독자들이 극도로 적은 것이다. 특히 2차 여몽전쟁이 끝나고 동경반란 당시 극악한 연재속도와 흥미없는 에피소드에서 독자들이 우수수 떨어져나갔다.

8. 기타

본래 디시인사이드 대체역사 갤러리에서만 연재되던 작품이었는데, 20편 이후 문피아에만 올리게 됐다. 문피아와 대체 역사 갤러리 버전은 소소하게 차이가 있다. 대체로 문피아 쪽이 추가 내용에 고증에 맞게 수정한 편.

작가 말론 본래 여몽전쟁 배경이 아니라 후삼국 후백제 배경의 대역을 준비하고 있었다가 사정이 생겨 고려 흑태자를 적게 되었다고 한다.

주연의 경우는 아니지만 조연이나 엑스트라들의 경우 정보가 미흡하니 족보기록까지 조사해서 글을 적는데 이때 다른 기록들과 서로 차이가 날 경우 양자 기록상 차이가 난 이유가 있다는 식으로 작중에서 전개하는 경향이 있다.[37]

작가왈 고려 흑태자의 본편과 연관은 있으나 안 봐도 되는 외전 작품으로 흑태자 야담이 있다. 단, 본편과 따로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인지 무료로 볼 수 있으나 성적 묘사 때문인지 성인제한이 걸려있다.


[1] 이부분은 고려에서도 연호를 사용하게 되고 송에서도 태자로 부르게 되는 시점부터 바뀐다.[2] 금나라 상인 정안연이 고종에게 바치려고 안남국 흑표범을 들고 왔다가 우리에서 벗어났다가 주인공에게 사살되어 죽었다.[3] 편전(애깃살)사격은 현대에서도 익힌 이가 별로 없는데 편전을 쏘는 법을 알고 있었다.[4] 과거의 꿈을 꾸며 나온 내용 중 할아버지 집에서 무예도보통지 같은 것들이 있었고 주인공은 그걸 읽고 실제 익혔다는 듯 한 뉘앙스가 나온다.[5] 예를 들어 원 역사에서 매국노 홍복원을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죽인 뒤 몽골을 죽인 영웅으로 만들어 몽골과 홍대순 일가를 분열시켰고, 그의 뼈로 화살을 만들어 살라타이를 죽였다. 자신과 다툼이 있던 금나라 여도사의 경우는 고려로 넘어온 금 황녀라는 소문의 유력 용의자로 만들어 소문을 부각시키는 면모를 보이며 본인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유민들 선동용으로만 사용했고, 갈라전 여진족들을 포섭할 때는 고구려와 발해의 클레임만이 아니라 완안씨를 내세워 끌어들였다.[6] 통칭 인류 최초의 기관총. 이 폴리볼로스는 서양에서는 고려 건국 이전부터 제작, 사용하였으나 쉽게 고장나는 문제는 폴리보로스가 사장되는 그 순간까지 이어졌다.[7] 단순히 지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작가가 직접 흑태자 야담이란 제목으로 19금 외전을 적었다.이쪽이 더 인기 있다.[8] 같은 초창기 멤버중 유갑수는 동경의 난이 되고서야 주인공한테 자기 사람이라고 판정을 받았고, 조금 늦게 동행하게 된 김방경도 동경의 난 초기에서야 신임할 수 있는 자기 사람으로 판정받은데 비해 척인사만큼은 크게 경계하는 모습이 없었다.[9] 다만 주나라의 권위가 있던 춘추전국시대의 제후들과 달리 당대 남송에서 제후로 취급받는 나라들은 하나 같이 자국에서 황제를 칭하거나 자국만의 천하관을 가진 다원적천화관 시기라, 패자라는 위치에 있어도 춘추전국시대의 패자 같이 실제로 우위에 있다기보다는 그냥 남송과 고려 사이에나 통하는 칭호에 가깝다.[10] 주인공은 회군하여 최우를 칠까 고민했지만 강화도에 들어가 있고 중간에 여러 군대가 포진한 점. 이미 몽골에 내용이 전해진 점 등이 걸려 그대로 동하정벌에 나선다.[11] 사실 이때가 주인공의 가장 큰 위기 상황이었다. 협상장에 나온 구유크는 옷치긴 왕가를 견제하기로 한 약속을 어긴 주인공에게 화가 나서 어지간하면 주인공을 몽골로 끌고 갈 생각이었다. 주인공은 조만간 송나라가 몽골을 공격할 것이기에 일부러 그랬다는 말로 열심히 변명을 했고 실제로 곧바로 송이 몽골을 쳐서 간신히 별 탈 없이 빠져나왔다.[12] 이때 조약으로 인해 몽골에서는 사신을 조정에서만 보낸다는 조약을 내면서 이후 옷치긴과 분쟁이 일어났을 때 옷치긴의 사자는 조약 위반이라며 축객령을 내고 옷치긴과의 전쟁은 이전 같은 여몽 전쟁이 아닌 옷치긴 전쟁으로 규정된다.[13] 사실 주인공이 그 정보를 전달받도록 조작하였다.[14] 여수 전쟁 때 살수대첩이 벌어진 살수가 바로 청천강이다.[15] 왕의 아들인 왕자가 아니라 탐라국 지배자를 뜻하는 직위로서 왕자다.[16] 작가왈 왕자는 주인공이 실패한 사례로 생각하며 적었다고 하는데, 실제 고려와 탐라국을 몽골과 고려와 대입하면 비슷하긴 하다.[17] 옷치긴의 세력권을 제외한 목단강 이동 거의 전역. 다만 엄밀히 말하면 목단강 이동을 갈라전 범위로 만든 것은 그곳까지 고려의 땅이라기보다는 옷치긴과 고려의 분쟁지역으로 만든거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18] 조금 재밌는건 주인공이 발표한 한글창제 의미 중 가장 중요한 원리중 하나가 병사들이 익히기 쉬운 문자를 배우면 명령 하달이나 정보전달이 빨라져 군사력에 큰 증진이 될거라는 점이다. 작중 주인공의 군사적 업적으로 인해 애민정신보다 이쪽이 후대에는 더 강조될지도 모른다.[19] 물론 아직 전국적인 보급까진 아니고 왕실 직할지나 서경과 개경인근이나 빼앗은 사찰의 토지나 새로 넓힌 북방에서 위주로 도입되었다.[20] 강과 못에서 쉽사리 물을 퍼올리는 도구다.[21] 이것은 실제로 늘어난 인구가 많은 것도 있지만 행정업무가 좋아져서 실제 인구와 행정상의 인구가 적은 것도 무척 크다.[22] 손잡이를 돌리면 흙을 퍼올리는 기구[23] 주인공이 설계도를 그리고 장인들에게 만들게 시켰다.[24] 사실 목단강 이동 전부가 고려 땅이라고 한다면 그 넓이가 한반도 수배에 이를 정도로 엄청 확장될정도로 넓다. 사실상 무리수고, 주인공도 진짜 지배한다는 목적으로 주장한 것이 아니라 동북쪽이나마 고려군도 건너가서 싸울수 있도록 일부러 분쟁지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25] 1부 초반부터 연구를 시작해서 3부 중반쯤에 겨우 완성.[26] 그래도 주인공의 노력으로 인해 조선중후기의 화약제조법인 신전자취염초방언해와 신전자초방 등을 적극 도입하여 3부 후반부에서 고려의 1년 염초생산량은 약 8천근이나 된다. 조선초기나 고려말 화약수급량은 연1천근이라는 걸 생각하면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전투 1회당 소모량이 1천근을 넘는 수준이라는 고려하면 아직 한참 멀었다.[27] 사실상 송과 고려 둘을 이간질 시키기 위한 책략이다.[28] 사실 차가타이 칸의 사망 시점이 1241년이라는 설이 원래도 있었다고 한다.[29] 사실 쿠추는 원역사보다 더 장수한 거다. 원역사에서는 앞선 송몽전쟁에서 죽었는데 역사의 개변으로 살아서 서정까지 간 것이니.[30] 또한 오고타이 칸도 원래 그 해에 죽었으니 사실상 수명대로 살다가 죽은 것이다.[31] 교황과의 극심한 대립과 황권강화를 위한 숙청으로 대귀족들과 분열과 갈등이 심한 상태였다.[32] 가령 몽골제국이 고려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각 울르스가 찢어지거나 한다면 앞으로 잉글랜드에게 더욱 큰 기회가 올 수도 있다. 가장 큰 라이벌인 프랑스가 멸망한 이상 적어도 잉글랜드를 막을 세력은 나타나기 어려우니.[33] 주인공 입장상 당연히 타파해야 최씨 정권을 붕괴시키는데 무려 1부 전체가 걸렸다. 1부 완결 이후 나온 작가의 말에 의하면 작중 시기 최씨 정권은 이미 철저하게 권력 기반을 굳혔기 때문에 1부나 걸렸다고 한다.[34] 게다가 상대하는 몽골쪽 장군들은 역사에 이름을 크게 남기지 못한 장수들도 꽤나 유능하고 뛰어난 장군으로 묘사되며 군사들의 강함도 대단하다.[35] 절반은 커녕 1부 완결화인 107화 기준 첫날 구매수가 100에도 못미친다. 이정도면 작가가 당장 연중하고 새 작품이나 만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저조하다.[36] 이러한 극악한 연재 속도는 유료화 되기 전부터 이어진 것으로 유료화 되기 전에도 초반을 제외하면 마지막 쯤에는 1주 1화로 연재해서 유료화 전부터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37] 대표적으로 능성 구씨 가문 시조 관련 이야기는 능성구씨 족보에서도 고려 초기 개국공신인 고려 토착설과 여몽전쟁기에 송에서 이주했다는 해외 이주설이 나뉘는데 작중에선 둘 다 절충하여 고려 초기에 능성 구씨의 시조가 있었지만 고려 초기 혼란을 피해 송으로 갔다가 작중 시기에 주잠과 함께 넘어왔다고 전개했다. 또한 고려 초기 시기적 맞지 않은 직위를 받았다는 기록 문제도 비슷한 직위에 있었고 족보상 기록은 사후 추증했다는 식으로 설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