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24 16:25:40

곡산 척씨


{{{#!wiki style="margin: -15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160><tablebordercolor=#fff> 谷山 拓氏
곡산 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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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황해도 곡산군
시조 척위공(拓謂恭)
중시조 척준경(拓俊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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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실존 인물

1. 개요

시조 척위공은 곡산의 가난한 향리였으나 아들 척준경의 공으로 검교대장군이 되었다. 척준경은 고려 무신으로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합문지후에 제수되었고 후에 길주 전투에서 공을 세워 공부원외랑이 되었다. 후에 문하시랑평장사까지 올랐다. 이자겸사돈 관계이기도 했다.

현재는 사라진 성씨이다. 조선 초기의 지리서인 세종실록지리지에 망성(亡姓)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늦어도 조선 초기에는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출처

2. 실존 인물

  • 척위공 - 검교대장군. 고려의 여진 정벌 당시에도 살아있었고, 공을 세운 아들 척준경 덕분에 상을 받았다.
  • 척준경 - 문하시랑 평장사, 이부상서 참지정사 등을 역임했다.
  • 척준신 - 척준경의 동생. 형을 잘 둔 덕에 미관말직에서 병부상서로 승진했다. 그러나 이자겸을 축출할 때 최탁오탁 등 장군들에게 살해당했다.
  • 척순 - 척준경의 아들로 내시[1]와 호부원외랑을 지냈지만 이자겸을 축출할 때 삼촌 척준신과 함께 살해당했다.

[1] 고려의 내시는 고자가 아니라 명문가 자제들만 역임할 수 있는 자리였다. 내시를 역임한 대표적인 인물은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의 아들이자 정중부의 수염을 태운 것으로 유명한 김돈중이 있다. 또한 내시를 역임한 후 재상이 될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