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18 22:28:25

고등보통학교



高等普通學校

1. 개요2. 역사3. 목록4. 기타5. 관련 항목

1. 개요

일제강점기에 존재했던 중등교육기관. 보통학교(심상소학교)에서 초등교육을 마친 만 12세 이상의[1] 남학생이 시험을 쳐서 입학할 수 있었다. 현재의 남자중학교남자고등학교에 해당되며 약칭으로 고보라고 불렀다.

당시에는 남녀공학이 없었기 때문에[2] 여학생들이 다니는 '여자고등보통학교'가 따로 있었고 약칭으로 '여고보' 또는 '여고'라고 불렀다.[3]

1911년에는 4년제였으나 1922년 개정 조선교육령(제2차 조선교육령)에서 중학교와 같은 5년제로 바뀌었으며 1938년 개정 조선교육령(제3차 조선교육령)에서 명칭이 중학교로 변경되었다. 이때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는 경기중학교로, 대구고등보통학교는 경북중학교 등으로 개칭되었고 여자고등보통학교 또한 고등여학교로 바뀌었다.

태평양전쟁 말기 전시 수학연한 임시단축 조치에 따라 방학을 없애고 4년으로 단축되었다가 해방 후 5년제로 복귀, 1946년 미군정에 의거 6년제 중학교로 개편되었다가 1951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전기 과정(3년)과 후기 과정(3년)이 분리되어 오늘날의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되었다.

2. 역사

1938년까지는 보통학교와 마찬가지로 조선인일본인의 제도적인 차별[4]이 있었다. 일본인은 6년제 소학교 졸업 후 5년제 구제중학교에 진학한 반면, 조선인은 4년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4년제 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기 때문에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도 수학연한을 모두 인정받아야 중학교 3학년 편입이 가능했다. [5] 심지어 고등보통학교 1, 2학년 때 내지의 소학교 5, 6학년에 해당하는 내용을 가르쳤을 정도였다. 다만 일본에서 소학교가 6년제로 연장한 것은 1900년 이후였고, 조선에서 보통학교 4년, 고등보통학교 4년 학제를 취했던 시점에도 완전한 개편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상태였음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 조선보다 먼저 합병된 대만 역시 상황은 비슷했으며 조선에서도 1911년에 4년제로 운영되었던 관립학교 외의 여러 사립 중등교육기관들은 1911년 이후까지 재정 부족으로 인해 2~3년제로 돌아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으며, 중앙학교의 경우는 대한제국 시절부터 3년제로 있다가 1915년 11월 총독부의 고등보통학교령에 따라 4년제로 이행하였다.

3.1 운동 이후 내지연장주의가 채택되고 사이토 마코토 총독 체제가 들어서자 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에서 보통학교의 수업연한이 심상소학교와 같은 6년으로 늘어나고, 고등보통학교도 5년으로 연장되며 제도적 차별은 사라졌다. 실제로 1924년 설립된 경성제국대학 예과 신입생 선발에서는 4년제 보통학교와 5년제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조선인들이 심상소학교 6년과 구제중학교 5년을 졸업한 일본인과 동일한 입시 자격을 부여받고 경쟁하여 입학했다.

그러나 1922년 조선교육령 개정 이전에 4년제 보통학교를 졸업했던 사람들은 2년 부족한 수학연한 때문에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해야 구제중학교 3학년 학력을 인정받을 뿐이어서, 일본의 구제대학(대학예과 또는 전문부)이나 구제전문학교로 진학하기 위해서는 내지의 중학교 4학년에 편입하거나 연희전문, 보성전문 등 조선의 전문학교 3년 과정을 마쳐야 했다. 또한 내지의 제국대학 입학을 위해서는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졸업하거나, 경성제국대학 예과를 수료한 후 별도의 입학사정을 거쳐야 했다.

1938년에 공포된 제3차 조선교육령에서는 고등보통학교/여자고등보통학교를 구제중학교/구제고등여학교로 명칭을 통일하면서 일본인 학교와의 차이점이 사라진다. 해방 후인 1946년 미군정청에서 미국식 학제에 맞추어 6년제 중학교로 개편하였고, 1951년 9월 현재와 같은 3년제 중학교와 3년제 고등학교로 분리되었다.

3. 목록

인가연도 고등보통학교 여자고등보통학교
1911 관립경성고등보통학교, 관립평양고등보통학교, 사립함흥고등보통학교 관립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립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1912 사립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1913 사립양정고등보통학교
1914 관립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
1915
1916 관립대구고등보통학교, 사립배재고등보통학교, 사립동래고등보통학교
1917 사립보성고등보통학교, 사립송도고등보통학교
1918 관립함흥고등보통학교[6], 사립휘문고등보통학교, 사립광성고등보통학교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
1919 관립전주고등보통학교
1920 사립오산고등보통학교(고창)[7], 사립광주고등보통학교
1921 관립경성제2고등보통학교[8], 관립신의주고등보통학교, 사립중앙고등보통학교 사립정의여자고등보통학교
1922 관립광주고등보통학교[9], 관립동래고등보통학교[10], 관립경성(鏡城)고등보통학교, 관립해주고등보통학교, 관립공주고등보통학교
1923
1924 관립청주고등보통학교, 관립춘천고등보통학교
1925 관립진주고등보통학교 및 全관립고보를 공립 이관 全관립여고보를 공립 이관 및 사립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 사립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부산), 사립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
1926 사립오산고등보통학교(서울)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사립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1927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부산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1928 공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1929 사립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1930
1931 사립김천고등보통학교, 사립영생고등보통학교
1932 해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1933
1934
1935 함흥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나남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1936 안주공립고등보통학교 신의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1937 대전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1938년 제3차 조선교육령 공포, 시행으로 기존의 고등보통학교/여자고등보통학교는 각각 심상중학교고등여학교로 일괄 개칭된다. 이후 설립된 구제중학교의 목록은 해당 문서를 참조.

4. 기타

일제강점기고등학교는 지금처럼 중등교육기관이 아니라 고등교육기관으로 대학예과에 해당되는 학교였다. 즉, 고등학교를 마치면 대학 본과로 진학하는 것. 식민지 조선에는 고등학교가 존재하지 않았고, 대신 경성제국대학에 예과 과정을 설치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고등학교를 마치면 대학 본과로 가기 위해 따로 선발 과정을 거치지만, 대학 예과에서는 자동으로 본과로 진입했다. 구제고등학교 참조.

고등보통학교의 교원은 교유(敎諭)라고 불렀다.

5. 관련 항목



[1] 월반을 통해 만 12세보다 빨리 보통학교를 졸업한 경우에는 만 12세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2] 사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의 중고등학교 중 남녀공학 자체가 거의 없었다.[3] 고녀(고등여학교)는 구제중학교에 대응되는 여자중등교육기관으로, 1938년 3월 고등보통학교가 중학교로 명칭이 통일될 때, 여자고등보통학교 역시 고등여학교로 일괄 개칭되었다.[4] 명목상 내선일체을 표방했기 때문에 '조선인', '일본인'이라 표현쓰지 않고 '국어(일본어)를 상용하는 자'와 '상용하지 않는 자'로 구분했다.[5] 실제로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일본어 실력이 부족해 소학교 졸업학력만 인정받았기 때문에 구제대학이나 구제전문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사범학교에 들어가거나 구제중학교에 신입생으로 입학해야 했다.[6] 기존 사립함흥고등보통학교를 관립 이관[7] 1922년 사립고창고등보통학교로 개칭[8] 기존 관립경성고등보통학교는 관립경성제1고등보통학교로 개칭[9] * 기존 사립광주고등보통학교를 관립 이관[10] 기존 사립동래고등보통학교를 관립 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