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청와대에서 발생하는 모든 업무 내용과 문서 및 자료 등을 인터넷으로 연결된 네트워크에서 처리하면서, 업무과정과 추진실적을 표준화된 일지 형식으로 기록하고 통합 관리하게 하는 시스템으로 참여정부에서 개발 및 도입했다.[1] 이름의 유래는 청와대 정원인 '녹지원'. 즉, 청와대의 디지털 정원이라는 뜻이 담겨있다.[2]외부 인터넷과 분리된 일종의 인트라넷 개념의 전자 업무관리 시스템으로 정책입안자, 제시의견, 협의사항, 의사결정과정이 전부 관리되는 만큼 정책실명제의 기틀이 되는 시스템으로 평가 받았다. 현재 전자정부시스템의 규격인 '온-나라(On-Nara)'의 기틀이 되는 시스템으로, 시스템 구축 및 관리부처는 행정안전부가 맡고 있고, 역대 정부의 기록물 관리는 행정안전부 산하 대통령기록관이 맡고 있다.
2. 배경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보고방식도 여전히 대면(對面) 보고 중심으로 이뤄져 불편함이 많았던 행정업무관리에 대한 표준화, 통합화, 시스템화 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기 위해 고안해낸 결과물로 이후 청와대 업무흐름 전반을 디지털화하기 위한 정보화전략계획을 단계적으로 수립해 나가는 것을 골자로 개발되었다. 2003년 3월 게시판 위주로 하여 주요 정보를 공유하고 제공하는 형태의 그룹웨어(CUG)로 시작되었으며 같은해 11월, 업무일지 기록 방식 중심의 e지원 시스템을 오픈했다. 이후로도 문서관리시스템, 과제관리시스템 등을 차례로 구축하는 동시에 사용자들의 참여를 통해 완성되었다. 시스템은 국제 표준의 규격으로 요구되는 형태로 제작되었다.[3]다만 내부 한정으로 사용되는 시스템인 동시에 국가 업무 관련 내용을 담는 민감한 부분이 대부분인 만큼 폐쇄적인 구조로 개발되었으며, 이 때문에 외부에서는 일체 기능이나 용도에 대한 흐름을 알기 어려운 형태라고 하며 문서 검색 또한 쉽지 않다고 한다. 자르기나 복사/붙여넣기 같은 기초적인 기능 또한 제공되지 않으며 인증된 프린트에서만 출력이 가능한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e지원의 모태가 되는 솔루션은 삼성SDS가 개발한 에이큐브(ACUBE)로 국제 표준 기반의 통합 업무 솔루션으로 체계적인 문서분류 관리, 업무 추진현황 파악·분석 등을 지원하는 시스템이며, 해당 시스템을 기반으로 당시 청와대의 요청 부분등을 반영하고 제작하여 탄생하게 된 것이 현재의 결과물이다. 개발 초기에는 전기정 전 비서관, 후반부 작업에는 강태영 전 비서관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발을 요청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또한 직접 개발 및 설계 단계에 참여하여 애착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e지원을 개발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포함한 개발팀 5명은 이후 2006년 2월에 국유특허를 취득했다.
크게 청와대에서 사용하는 오리지널 e지원 모델과, 청와대의 업무 기능이 제외된 나머지 구성이 동일한 보급형 e지원 모델 총 2가지 모델이 있다. 이중 보급형 e지원은 각 정부 기관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제작되었으며 지속적인 관리와 활용. 업그레이드를 거쳐 '온-나라 (On-Nara)' 정부협업시스템으로 발전 되었으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역설적이게도 보급형을 바탕으로 대대적인 업그레이드와 신규 개발 및 고도화를 통해 현재까지 활용되고 있다.[4] 온-나라의 기반이 되는 보급형 e지원은 참여정부 시절 개발했던 e지원의 기능 중, 청와대에서 사용하는 부분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동일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3. 활용
2007년 4월 제정한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과 이 시스템 덕분에 참여정부는 대한민국의 모든 이전 정권 기록 전부를 합한 것보다 25배 많은 기록을 저장했다. 물론 90년대 이후에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량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것과 노무현 전 대통령 자체가 인문계의 성공루트를 탄 인물치고는 컴퓨터 관련 지식이 빠삭하고 활용능력이 상당한 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기록으로 남길 수 없는 일은 아예 하지 말라"라고 할 만큼 후대 정부에서 이를 반면교사 할 수 있도록 기록물을 남기는 것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이전의 대통령들은 여러 이유로 재임시 자료들을 남기지 않았는데, 그만큼 국가 정책 결정 과정에서 투명성에 문제가 많았다는 점이기도 하다.2008년에 발간된 참여정부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이지원이 도입된 후 대통령비서실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하는데, 정책을 처리한 모든 과정이 기록으로 남아있어 몇번의 검색으로 관리 보고서를 찾을 수 있는 동시에 정책실명제가 구현되었고,기존에는 몇주씩 걸리던 보고가 평균 하루, 늦어도 이틀 안에 처리될 정도로 빠른 업무 처리가 가능해졌다. 이를 바탕으로 업무정보와 지식정보 공유도 활발히 이루어져 업무의 효율성이 극대화 되었다고 한다. 이후로도 출범한 각 정부에서도 활용되며 현재는 각 겅부기관 및 지자체에서도 이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표준 전자업무시스템으로써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4.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 이후 생긴 실랑이
이처럼 기록에 대한 열의를 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발에 참여했던 e지원이 아이러니 하게도 문제가 된 일이 있었다. 퇴임 후 봉하마을로 이주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e지원의 내용 사본을 별도의 하드디스크를 이용하여 유출해 간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5] 대통령기록물의 규정상 임기 이후 모든 기록물은 청와대가 아니라 대통령기록관으로 이첩되도록 되어 있고, 전직 대통령 본인을 제외하면 열람도 제한된다. 이를 근거로 당시 이명박 정부는 반환을 요구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은 강하게 반발하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및 법률상 권리를 들어 반환을 거부했었다.그러나 e지원에 있는 내용들 중 상당수는 국가 안위와 관련된 중요 기록물들이었기 때문에 청와대에서는 사설 프록시 서버를 통한 접속은 정보 유출의 위험이 있기에 불가한다는 방침을 밝혔고, 이에 거세게 저항하던 노 전 대통령 역시 막판에는 이를 받아들여 결국 사설서버는 철폐되었다. 대신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해서 직접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은 확실하게 보장받았다.
사실 이는 법적으로 미처 정비가 안되어 벌어졌던 문제였다. 그래서 이후에 전직 대통령의 재임 중 기록 열람에 관한 세밀한 규정이 대통령기록물법과 시행령에 추가되었다. 이에 따르면 일반 기록은 전용 보안 라인을 통해 사저에 설치 된 열람 전용 컴퓨터로 열람이 가능하며, 대통령 지정 기록물[6]의 경우에만 대통령기록관에 직접 방문해서 열람해야 한다. 단, 두 가지 경우 모두 전직 대통령 본인뿐 아니라 그가 미리 지정한 대리인(비서관)이 대신 열람할 수도 있다.[7] 이후 마치 도서관에서 관외대출하듯이 대리인이 보안 대책을 마련한 상태에서 지정/비밀기록물 복제본을 갖고 나와서 기록관 외부에서 일정기간 보고 난 뒤 반납하는 것도 가능하도록 하는 규정이 생기는 등의 개정이 이뤄졌다. 문제는 그게 노 전 대통령 사후에야 이뤄졌다는 점. 물론 뒤늦게나마 법이 정비되었으니 이명박 전 대통령 이후로 전임 대통령들은 별도의 수고 없이 재임 당시 기록물을 열람하는 게 가능해졌다.
5. 현황
- 참여정부: e지원(e-知園) 최초 개발 및 도입
e지원이 탄생하고 활용된 시점. 2003년 3월 게시판 위주로 주요 정보를 제공하는 그룹웨어(CUG) 도입을 시작으로, 11월 업무일지 기록 방식 중심의 e지원 시스템을 오픈했다. 이후 문서관리시스템, 과제관리시스템 등을 차례로 구축하며 시스템을 고도화했다.
- 이명박 정부: 명칭 변경 및 시스템 개편
첫번째 개편이자 업데이트. 이런저런 갈등을 빚었지만 시스템 자체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개편되어 활용했으며, 이 때를 기점으로 명칭을 'e지원'에서 '위민(爲民)'으로 변경하였다. '국민을 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청와대의 새로운 이미지 개편 작업을 위해 단행되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시점으로 알려진 바로는 기본적인 형태는 e지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 박근혜 정부: 시스템 일부 개편
전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위민'이라는 명칭을 계속 사용했으며# 업무에 활용 되었다고 알려졌으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에서 전임 관계자들이 남겨 놓고 간 위민 시스템을 살펴본 결과, 기존 e지원과는 달리 문서의 최종 결과물만 볼 수 있고 결재과정에서 오간 코멘트는 볼 수 없는 등 기능이 많이 축소되어 있었다고 하며, 여기에 더해 업그레이드 또한 부실하여 시스템 자체가 낙후된 상태였다. 결과적으로는 해당 시스템을 업무에 대입하기 어려운 상태였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측에서 확인한 바로는 위민을 사용했다기 보단 예전의 수기식 보고, 처리로 활용했다고 한다.
- 문재인 정부: 보급형 e지원(온-나라) 기반 업그레이드 + 신규 시스템 개발 및 고도화 작업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새로운 전자업무시스템의 필요성이 대두 되었고, 이에 맞춰 새로운 전자보고 및 정보공유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큰 틀에서는 기존 e지원을 기반으로 하되 10년 간의 간극이 있는 만큼, 현재에 맞는 기능과 정보 및 보안기술들이 대거 적용되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출범 이후 업무 공백을 줄이기 위해 1차적으로 정부 부처에서 사용중인 보급형 e지원을 기반으로 제작된 온-나라를 도입하고 이를 대폭 보강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했으며,# 이후 개인 PC 접속 형태에서 클라우드 형태가 도입, 모바일 지원 및 문서 상의 메모또한 기록되는 보존 방식의 업그레이드 등. 단계적인 업그레이드와 신규 시스템 개발이 병행되었고 이후로도 고도화 작업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최종적으로는 전 부처에서 활용되는 행정포털 형태로 진화했다.[8]
- 윤석열 정부: 기존 시스템 (온-나라) 유지
취임 후 기존 청와대에서 용산 대통령실로 집무실을 이전하며 해당 시스템도 같이 이관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기존의 e지원이나 위민과는 별개의 새로운 전자결재시스템을 제작하여 도입한다고 밝혔었다.# 2023년 4월 경에는 디지털플렛폼정부를 구현하고 이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는 발표까지 진행했지만 이후 별도의 언급이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오리무중한 상태였고,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가결된 탄핵심판청구와 관련된 통지 문서 자료를 헌법재판소 측에서 인편, 등기우편 외에 온-나라 행정시스템을 통해서도 대통령 비서실로 발송했다는 내용이 전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사실상 전 정부에서 개편한 기존 시스템을 활용했다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별개로 정부부처는 여전히 온-나라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 이재명 정부: 기존 시스템 (온-나라) 유지
이재명 정부에서는 출범 이후 취임 후 첫 전자결재를 이용했다는 관련 보도가 있었으나 별도의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볼때, 현재 기준에서는 기존 온-나라 시스템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6. 역대 대통령 기록물 건수
국가기록원의 역대 대통령 기록물 건수이다. (전자/비전자 기록 포함)- 이승만 - 7,400여건
- 윤보선 - ?
- 박정희 - 3만 6,000여건
- 최규하 - ?
- 전두환 - 4만 2,500여건[9]
- 노태우 - 2만 1,200여건
- 김영삼 - 1만 7,000여건[10]
- 김대중 - 20만 8,000여건[11]
- 노무현 - 825만여건
- 이명박 - 1,087만건 (전자기록 902만건 | 비전자기록 185만건)
- 박근혜 - 1,106만건 (전자기록 934만건 | 비전자기록 172만건)[12]
- 문재인 - 1,116만건 (전자기록 888만건 | 비전자기록 228만건)
- 윤석열 - 1,365만건 (전자기록 777만건 | 비전자기록 587만건)[13]#
- 이재명 - 재임중
[1] 노무현 전 대통령 비서실에서 2007년에 펴낸 '대통령 보고서'라는 책에 이 시스템을 만들게 된 경위가 잘 나와 있다.[2] 영어로는 easy one으로 사용하기 쉽고 편리한 통합형 업무관리시스템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3] ISO 15489(기록관리), ISO 23081(기록관리 메타데이터) 등[4] 박근혜 정부 시절 기준으로 오리지널의 기능 축소 및 업그레이드 미비로 인해 시스템 자체가 상당히 퇴보된 상태였다고 한다.[5] 사후 밝혀진 내용에 의하면 봉하마을 사저 네트워크에 NAS를 이용해 열람 시스템을 개발하여 통합시켰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6] 국가 기밀 사항이거나 정치적인 파장이 커서 공개되면 곤란한 기록[7] 이 부분이 특히 문제였다. 개정 전의 법에는 이 규정이 없었으므로, 법을 엄격히 적용하면 자잘한 기록 하나 보려고 해도 전직 대통령 본인이 일일이 가서 열람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인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이런 절차를 끝까지 고집하였고, 노무현 측에서는 이걸 전직 대통령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대통령기록관을 성남에 만들었으므로 (현재는 세종시로 이전) 사소한 기록 하나 보는 데에도 봉하마을에서 성남까지 대통령 본인이 직접 방문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 입장에서 이는 사실상 열람을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모욕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8] 물론 기존 e지원과 같이 청와대와 정부부처에서 사용되는 모델은 구분 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9] 삼청교육대, 언론통폐합 등 관련자료 없음[10] IMF 관련자료 없음[11] 재임시 기준, 재임 전과 후는 김대중도서관이 관리하고 있다.[12] 단, 세월호 사건을 포함한 일부 기록이 누락된 것으로 밝혀졌다.[13] 2025년 6월 5일 대통령기록관에서 이관 공지한 기준. 이중 전자문서의 양이 39만건으로 해당 집계가 시작된 이례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으며, 종이문서는 3.4만건에 불과해 문민정부 출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