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5 00:16:19

2010년 한반도 중부권 폭설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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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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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10SNOW.jpg
width=100%]]| 당시 한반도 위성사진. 그 와중에도 동남권 지역은 푸른색을 띄고있음을 보여준다.[1]

1. 개요2. 사태 이전3. 사태의 전개
3.1. 1월 3일 (일요일)3.2. 1월 4일 (월요일)
3.2.1. 수도권, 강원도 외 지역
3.3. 적설량3.4. 군인
4. 기타

[clearfix]

1. 개요

2010년 1월 4일을 전후해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기록적인 눈이 내린 사태로 1937년 적설 관측 이래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 또한, 박대기 기자가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시기.

2. 사태 이전

2009년 12월 초~중순은 엘니뇨의 영향으로 기온이 평년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았고 눈도 거의 안 왔지만, 성탄절에 진눈깨비가 내린 후 기온이 확 떨어졌다. 월말에는 강한 한파가 찾아왔고 27일 수도권에 약 2~3cm 눈이 내렸는데, 제설을 제때 하지 못해서 도로 곳곳이 빙판이 되었다. 제주도는 대설주의보가 발표되었다. 어느 정도 도로가 막혔는지는 기사를 보고 대략 짐작해보도록 하자. 많은 눈이 온 것은 아니지만, 곳곳에 도로가 통제되고 사고가 속출하고 난리가 나면서[2] 많은 뉴스가 쏟아졌다.

3. 사태의 전개

3.1. 1월 3일 (일요일)

1월 1일이 금요일, 그리고 3일이 일요일이었다. 다음 날인 새해 첫 출근을 위해 대부분의 시민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심지어 3일 밤 일기예보에서는 중부 지방에 2~7cm, 많게는 10cm의 눈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실 이 정도도 꽤 많은 눈이다.)

3.2. 1월 4일 (월요일)

6시부터 슬슬 사태가 심상치 않음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인천에서만 오전 6시에 8.7cm를 찍어버린 적설량은 수원과 서울 지방에 2시간 만에 10cm가 넘었다. 오전 7시에는 지하철 2호선 운행이 20분 간 중단됐다! 월요일 출근길에 헬게이트가 열린 것은 당연지사.

9시가 채 되기도 전에 서울의 적설량은 15cm를 돌파했으며, 특히 수원인천은 고가 통제 등이 이뤄진 상황이었다. 지상으로 건설된 지하철 1호선 또한 간헐적으로 운행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은 출근할 때 지하철 이용을 권장했다. #

10시 전후, 즉 실질적으로 출근이 끝날 시간대에도 교통의 막장화는 가속화되었는데, 이미 일반 열차는 40분 지연을 먹고 있었다. 1호선은 주요 구간에서 15~30분씩 전동차가 계속 고장 나고 있었고, 수도권 주요 간선도로는 아예 멈췄다. 반면에 이명박 대통령은 바쁜 국정 회의 중에도 깨알 같은 발언을 계속 쏟아내고 있었다. #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미 이 시점에 서울 적설량은 20cm를 돌파했다.

정오를 전후로 상황은 더 악화된다. 수원지법은 재판을 모두 연기하는 초강수를 뒀다. 김포국제공항은 9년 만에 모든 항공편 운행을 중단한다. 청와대는 신년인사를 중단했고, 실질적으로 도로교통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새벽 6시에 노원구 공릉동에서 출발한 통근버스가 오후 2시쯤 분당 국군수도병원에 들어왔을 정도면 말 다 했다. 한국철도공사는 시민 수송을 목적으로 지하철 연장 운행을 결정하였다.

드디어 오후 1시에 서울의 적설량이 25cm를 돌파한다. 대한민국 기상청 예보의 5배, 최대 적설 예상의 2.5배를 돌파. 사실 이게 측정 기준이 평판에 오직 그 날 쌓인 눈만 기록하는 방식이라서 실 체감보다 훨씬 적게 보인다. 이렇게 기상청 예측을 한참 능가해버린 눈은 오후 2시 정도를 기점으로 잦아들며 최종 25.8cm의 적설량으로 기록된다. 서울 한정으로 1937년 적설 기상관측 이래 최대 기록을 깨버렸다. 수도권 지역에서는 인천이 22.3cm, 파주(문산)가 20.2cm로 역대 2위, 이천이 23.0cm, 수원이 19.5cm로 역대 3위를 기록하였다.

참고로 이 날은 강원도 일대도 상당히 많은 눈이 내렸다. 특징으로는 원래 수도권 일대에 눈이 많이 내리면 강원도 영서지역까지만 눈이 많이 내리는데 이 날은 영동일대까지도 눈이 많이 내렸다. 물론 영동지역은 2011년에 기록적인 폭설이 기록되어서 이 날 기록은 기록 축에도 못 끼지만 20cm가 훌쩍 넘어가는 눈이 내렸고, 영서지역도 최대 20cm 가량의 폭설이 내렸다. 그래서 영월은 21.4cm로 역대 최대기록을 갱신하였고, 철원은 13.8cm로 역대 2위, 춘천은 23.0cm로 역대 3위를 기록하였다.

3.2.1. 수도권, 강원도 외 지역

수도권과 강원도 이외의 지역도 많은 양의 눈이 내렸다. 충청권은 최대 15cm 가량, 대구경북권은 최대 10cm, 호남권은 최대 5cm 가량의 눈이 내렸다.

3.3. 적설량

주요지점 최심적설량[3][4]
2010년 1월 5일 00시 기준
<colbgcolor=#f5f5f5,#2d2f34> 서울 25.8 <colbgcolor=#f5f5f5,#2d2f34> 이천 23.0 <colbgcolor=#f5f5f5,#2d2f34> 인천 22.3 <colbgcolor=#f5f5f5,#2d2f34> 문산 20.2 <colbgcolor=#f5f5f5,#2d2f34> 수원 19.5
대관령 31.6 북강릉 25.6 춘천 23.0 동해 21.6 영월 21.4
충주 15.5 천안 12.8 청주 7.9 추풍령 6.3 대전 5.3
울진 10.5 안동 7.2 상주 6.5 구미 6.0 거창 5.0
군산 5.3 전주 4.2 광주 3.3 남원 3.0 정읍 3.0

3.4. 군인

드디어 군 창설 이래 최초로 3군 사령부 지역이 1군 사령부 지역보다 눈을 빡세게 치우는 날로 기록될 줄 알았지만, 사실 대관령이 제일 많이 왔다. 당시 군 복무 중이었던 병사의 증언에 따르면 제설차량의 출동을 위해 주둔지에서 수송대까지 투입로 제설 → 수송대 차고 제설 → 제설차량 출동의 알고리즘을 수행했다 카더라. 게다가 이 폭설은 기록적인 한파를 동반했기에 많은 인원들이 상당히 괴로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명한 '철원 영하 30도' 짤방이 나온 날이 바로 이즈음이었다.

수도권 대부분 지역의 모든 시설을 비롯한 고속도로가 대거 마비되었기 때문에 군부대 내에 있던 모든 병력들이 대거 차출되어 시내 제설 대민지원에 동원되었다. 주둔지 내에는 정말 일부의 병사를 제외하고는 남아돌지 않았을 지경이다.

심지어, 폭설이 내린 날에 휴가를 나가야하는 날짜가 예정되어있던 병사들은 전국의 고속도로가 (특히 동해안권에서) 마비되어 통제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취소가 되었고, 결국 휴가 날짜도 미뤄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렇게 별안간에 폭설로 인해 날벼락을 맞아버린 병사들은, 결국 부대에 남아 피눈물을 흘리면서 눈을 치워야만 했다.

고통은 현역 병사들만이 아니었다. 상근예비역들, 특히 동대상근 역시 비상이 걸려서 뜬금없이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다. 그리고 연락을 받은 상근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동사무소 주차장을 메운 눈폭탄이었다. 그나마 이쪽은 동사무소 인력들도 함께 제설에 투입되었고, 상대적으로 눈을 치워야 할 범위도 현역들에 비하면 매우 작은 편이었다. 고작해야 주차장과 인근 인도가 전부. 하지만 제설은 제설이고, 고통받는 제설 작업은 누구에게나 평등했다.

4. 기타

청담동에서 스키, 차병원사거리에서 스노보드를 타는 남자가 목격됐다. 정확하게는 눈을 치워놓은 무더기에서 탔지만, 눈을 치웠음에도 불구하고 스노우 보드를 타기에 무리가 없는 환경이었던 것.

사실 이 사태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인도에서는 기온이 14도까지 떨어져서 노숙자 100명이 동사했다.

어찌보면 유치원(어린이집)~초등학생[5]들이 가장 좋아했던 겨울이라 할 수 있겠다. 당시 서울 동대문구에서는 제설작업을 하고 나서 마땅히 처리할 장소가 없자 그 지역의 홍파초등학교 운동장에 눈을 쌓아서 처리했는데, 그 덕분에 겨울 내내 그곳은 학생들의 성지가 되었다.

거의 대부분 초등학교 운동장 한켠에 눈이 쌓여서 3월까지 눈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6][7]

풍납토성은 이 시기에 아이들이 눈썰매를 많이 타면서 종이박스가 많이 널브러져 있었다.

박대기 기자가 이 사태 때 폭설을 맞아가며 보도를 하는 프로 정신을 보여주어 합성필수요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2020년 1월 4일, 폭설 사태 10주년을 맞게 된다. 하지만 날씨는 이 날과 다르게 맑고 따뜻했다. 물론 6~8일에 흐려졌으나 눈 대신 비로 왔다. 게다가 이 해 겨울은 10년 전과 다르게 이상 고온으로 폭설 대신 비가 자주 내렸다. 물론 2월에 폭설이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달력과 같은 요일인 2021년 1월 4일에는 전국적으로 구름이 많았고 일부 지역에서 눈이 날리는 정도였다.

그리고 14년 뒤인 2024년 11월,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이때를 떠올리게 할 만한 큰 눈이 쏟아졌다.[8][9]


[1] 평소에도 눈이 정말 안 오는 지역인 만큼 피해도 거의 없었다.[2] 거기에 성탄절 연휴(성탄절이 금요일이었다!)가 겹쳤다.[3] 기상청 기상관측자료[4] 단위: cm[5] 당시 1997~2007년생.[6] 사실 2010년 봄은 예년에 비해 기온이 매우 낮았다. 4월 18일에 봄이 시작되었다. 중부지방에서는 3월 하순에 적설 기록, 4월 하순에 눈이 내리기도 했을 정도. 남부지방조차도 4월 중순까지 눈이 왔다.[7] 2003년생까지 이것을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경험했다.[8] 서울의 일적설량 기준으로는 이해의 폭설에는 조금 못 미치기는 한다. 다만 이해는 한겨울인 1월인 반면 2024년의 경우 겨울이라고 하기에도 다소 애매한 11월이기 때문에 훨씬 더 기록적이다. 게다가 반나절 정도로 끝난 이해와 다르게, 2024년은 이틀 동안 끊임없이 쏟아졌고, 이틀 누적으로는 이해보다도 더 많았다. 심지어 수원 등 경기남부는 아예 대놓고 압도적인 적설량 1위를 기록하였다.[9] 그나마 이해와는 달리 한겨울이 아닌 11월이다 보니 기온이 높아서 쌓인 눈이 오래 가지는 않았고 대부분 일주일 이내에 다 녹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