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중앙아시아 반란 Central Asian revolt of 1916 | Semirechye Revolt Среднеазиатское восстание 1916 года | |
제1차 세계 대전 중 아시아-태평양 전역의 일부 | |
기간 | |
1916년 7월 3일(율리우스력)[1] ~ 1917년 2월 | |
장소 | |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 |
교전국 및 교전세력 | |
[[러시아 제국| ]][[틀:국기| ]][[틀:국기| ]] | 튀르크 부족 연합 |
지휘관 | |
[[러시아 제국| ]][[틀:국기| ]][[틀:국기| ]] 알렉세이 쿠로팟킨 [[러시아 제국| ]][[틀:국기| ]][[틀:국기| ]] 니콜라이 수콤리노프 [[러시아 제국| ]][[틀:국기| ]][[틀:국기| ]]미하일 폴바움 모함메드 알림 칸 | 카나트 아부킨 † 아만켈디 이마노프 |
병력 | |
군사 30,000명 | 군사 100,000명 |
피해 | |
2,325명 사망 1,384명 실종 | 100,000 ~ 270,000명 사망 추정[2] |
결과 | |
반란 실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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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16년, 카자흐인과 키르기스인들이 러시아 제국에 일으킨 반란.2. 배경
러시아 제국은 18세기 후반부터 중앙아시아에 진출해 정복활동을 빠르게 진행했다. 이로 인해 당시 러시아 제국의 인구 중 10%가 중앙아시아의 민족들이었으나 이들 중 단 한명도 두마에 국회의원으로 활동을 못했다.이후, 러시아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이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다수 이주를 하면서 이 지역에서 민족간 갈등이 심해져갔다.
1886년 6월 2일과 1891년 3월 25일에 제정된 법 등을 통해 이 지역의 토지들을 러시아 제국 정부 소유의 땅으로 편입시켰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러시아 제국은 중앙아시아의 무슬림들을 러시아 제국군에 강제로 징집해 전투 인원을 충당했다. 이에 중앙아시아의 주민들은 토지 배분에 대한 불만과 강제 징집에 대한 불만이 쌓여 이슬람 지도자들이 부패한 러시아 제국에 대한 성전을 외치면서 반란을 꾀했다.
3. 전개
1916년 6월 25일, 니콜라이 2세는 중앙아시아 출신 남성 19세 이상 43세 이하의 남성들을 징집해 브루실로프 공세에 필요한 노동에 투입할 법안을 제정했다. 이에 무슬림들은 러시아 제국이 본인들을 인간 방패삼아 독일 제국군과의 참호전을 이어나갈 것을 알게 되고 총알받이 신세로 죽게 될 것에 대한 불안함 등이 기존의 불만과 합쳐져 반란으로 이어졌다. 7월 3일 타지키스탄의 후잔트에서 첫 반란이 일어났으나 러시아군이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면서 강제 해산했다.7월 17일, 투르키스탄 군관구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7월 31일, 알렉세이 쿠로팟킨이 니콜라이 2세에 징집령을 9울 중순으로 연기할 것을 설득했다.
8월 10일, 천여명의 반란군은 프레베차켄스카를 공격했다.
8월 11일, 키르기스 반란군이 전화선을 공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