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74년
1. 개요
후한 말의 반역자.양주 회계군 출신으로 《후한서》에서는 허생(許生)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며, 후한서 효영제기, 《정사 삼국지》 <손견전>, 《자치통감》 등에 나온다.
2. 생애
허소(許韶)의 아버지. 한자가 공교롭게도 도시 이름인 허창(쉬창)과 같다.[1]172년에 회계에서 아들 허소와 함께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켰지만 양주자사 장민과 단양태수 진인의 공격을 받았으며, 174년 11월에 이들의 공격을 받아 참수되었다.
정사에서는 아들 허소와 함께 구장에서 봉기한 것으로 나와 양명황제[2]라 자칭하면서 여러 현을 선동해 그 무리가 수만이었다고 하며, 이 때 당시 오군의 사마로서 손견이 용맹한 자들을 모집해 1천여 명의 군사를 모아 손견에게 토벌되었고 이 일로 자사 장민이 손견의 공적을 열거해 올리니 염독현의 현승이 되었다고 한다.
《삼국지연의》에서 손견에 대해서 소개할 때 언급되지만 판본에 따라서는 언급되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는 등장한다.
아마도 손견이 이 때 주준과의 친분도 얻은 것으로 보이는데 주준은 회계 상우현 출신으로 이 당시 회계태수 윤단의 주부였다. 이후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이 때의 친분을 계기로 손견은 주준의 추천을 받고 좌군사마가 된 것으로 보인다.
3. 미디어 믹스
일본의 소설인 吳 삼국지에서는 자가 백리(伯理)로 나오며, 요술을 사용하면서[3] 다수의 부하를 거느렸다. 백성들을 괴롭히고 구강 일대를 마음대로 할 정도의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고 나오며, 소싯적부터 사람의 마음을 읽는 술수에 능해 학문을 가르쳐준 스승인 서홍의 표정을 보고 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꿰뚫거나 자신의 집에 방문한 염호라는 사람이 자객임을 꿰뚤어보는 것이 나온다.또한 자신의 부하로 사천왕이라 불리는 호옥과 가상인물인 양비, 여등, 장랑랑을 허창이 등용하는 이야기도 나오며, 손견이 공격하자 군사회의를 열어 회전을 치른다, 농성으로 시간을 번다 등으로 의견이 갈렸고 허창은 손견의 기세가 무너뜨리기 힘들 것이라 여겨 농성하기로 했다. 그러나 양비가 멋대로 빠져나와 매복으로 손견을 물리치려고 했다가 간파당해 패하고 돌아오자 양비를 싸늘하게 쏘아붙였는데, 이 때문에 양비가 구장에서의 입지가 줄어들었다.
손견 측에서 양비가 이런 사정이 있는 것을 파악해서 양비에게 편지를 보내 배반하도록 부추겼는데, 결국 손견이 이끄는 군사에게 기습을 당해 패했고 이 때 양비가 식량고의 위치를 알려줘 식량이 불태워졌다. 결국 허창은 자신의 부하였던 양비에게 살해당했다.
삼국지를 품다에서 손견의 과거편에서 적으로 등장. 여자와 놀고 있다가 손견의 습격을 받자 싸우는데, 허소가 게으름 피우다가 기습을 받아 도망친 것을 알고 못난 놈이라면서 나가서 싸우라고 했으며, 허소가 먼저 사망하자 그런 놈은 아들도 아니라면서 손견과 싸우지만 패하고 사망한다.
김경한 삼국지에서는 사이비 종교 지도자로 치병치레를 하는 무속인이며, 용하다는 소문이 나자 많은 이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3에만 등장한다. 근데 이건 심각한 고증오류다. 아니 사실상 삼국지 시리즈 최악의 고증오류 대열에 올라갈 만한 일이다.[4] 왜냐하면 삼국지 3 처음 시작년도가 189년, 삼국지연의의 시작인 황건적의 난이 184년인데, 삼국지 이야기가 시작하기도 전인 174년에 죽은 허창이 나오는 건 확실한 고증오류다. 능력치는 전투요원으로 그럭저럭 굴릴만한 무력 70 찍는 그저 그런 잡무관. 참고로 생년이 168년이다.[5] 차라리 하진을 넣으면 비록 등장하자마자 죽지만 그래도 고증은 되는데 허창은 정말 막말로 얘기하자면 두무와 진번이 살아있던 그 시대 사람이다.[6] 사실모드로 하면 회계 영지의 재야장수로 등장한다. 왕랑이나 바로 옆 영지인 엄백호로 플레이한다면 초반에 천군만마와도 같은 전투용 무장으로 괜찮다. 3 이후 시리즈는 허창에 대한 고증을 반영하여 허창의 출연 자체가 당연히 없다.
[1] 도시 허창은 221년에 조비가 개명한 것이라 인물 허창과 연대가 겹치지는 않는다. 이 시절의 허창의 명칭은 '허(許)'이다.[2] 후한서 효령제기에서는 월왕(越王)이라고 나온다[3] 연의에서 허창을 요적(妖賊)이라고 칭했기 때문인 것 같다.[4] 사실 삼국지 초기 시리즈가 이거 외에도 235년 시나리오에 아직 생존해있던 오의, 장익, 비의 등이 이미 죽고 없다던지, 반대로 이미 고인이였던 장로, 이전 등이 생존해 있다던지, 수춘과 합비가 동오의 영지로 나온다던지, 요동 공손씨 정권의 수괴들의 혈연 관계가 인정이 안 된다든지의 문제로 고증오류가 많다. 그래도 174년에 죽은 인물을 184년부터 시작하는 삼국지에 등장시킨 건 공손찬을 "손찬이 형"이라고 부른것에 비할만한, 실드 불가능한 수준의 고증오류다.[5] 다시 말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이 인물은 몰년이 174년인 인물이다. 결론은 이 게임의 설정과 실제 역사를 최대한 맞춰보면 7세 유딩 나이 이전에 아들도 낳고(...) 황제 노릇도 하다가 죽은 후에 환생(...)한 셈.무슨 공포물이냐[6] 게다가 아들 허소가 장성해 같이 반란을 일으켰을 정도니 174년에 최소 40대 정도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러면 최소 하진, 동탁 세대라는 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