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활동했던 오기가 자신의 저서 「오자병법」에 기술한 내용으로 전쟁터에서 장수가 지녀야할 기본적인 마음가짐에 대한 내용이다. 전쟁터에선 죽음을 각오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며 요행히 살고자 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항상 필사적인 심정으로 싸움에 임하고 겁에 질리고 우유부단한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손자병법에도 비슷한 취지로 하는 말이 나온다.
陷之死地然後生 (孫子兵法 第十一篇 九地)
죽는 곳에 빠진 뒤에야 살게 된다. (손자병법 제11편 구지)
故將有五危︰必死,可殺也﹔必生,可虜也 (孫子兵法 第八篇 九變)
장수에게 위험한 다섯가지가 있다. 반드시 죽고자 하면 (상대를) 죽일 수 있다. 살고자 하면 (적에게) 사로잡힐 수 있다. (손자병법 제8편 구변)
죽는 곳에 빠진 뒤에야 살게 된다. (손자병법 제11편 구지)
故將有五危︰必死,可殺也﹔必生,可虜也 (孫子兵法 第八篇 九變)
장수에게 위험한 다섯가지가 있다. 반드시 죽고자 하면 (상대를) 죽일 수 있다. 살고자 하면 (적에게) 사로잡힐 수 있다. (손자병법 제8편 구변)
워낙에 유명한 병법인 동시에 지휘관이라면 시대와 상황을 막론하고 마땅히 가져야할 근본적인 마음가짐이자 전략이기에 1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동북아권은 물론이고 서구권에도 널리 알려졌으며, 특히 한국인들에겐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 시기 명량해전 전 날 그가 병사들에게 오자병법을 인용한 연설이 「난중일기」를 통해 전해지며 크게 유명해졌다. 다만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은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로 약간 변형하여 생즉사 어구를 좀 더 강조하여 인용했다.
2. 난중일기에서
정유년 9월 15일 (명량 해전 전날)
十五日癸卯。晴。數小舟師。不可背鳴梁爲陣。故移陣于右水營前洋。招集諸將約束曰。兵法云。必死則生。必生則死。又曰。一夫當逕。足懼千夫。今我之謂矣。爾各諸將。勿以生爲心。小有違令。卽當軍律。再三嚴約。是夜。神人夢告曰。如此則大捷。如此則取敗云 (亂中日記)[1]
15일 계묘, 날씨 맑음, 배를 맡은 장수들을 헤아리고 명량을 버릴 수 없기에 진영을 고수했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되,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 (必死則生, 必生則死)"고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는 일이 있다면 즉시 군율을 적용하여 조금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고 재삼 엄중히 약속했다.(난중일기)[2]
十五日癸卯。晴。數小舟師。不可背鳴梁爲陣。故移陣于右水營前洋。招集諸將約束曰。兵法云。必死則生。必生則死。又曰。一夫當逕。足懼千夫。今我之謂矣。爾各諸將。勿以生爲心。小有違令。卽當軍律。再三嚴約。是夜。神人夢告曰。如此則大捷。如此則取敗云 (亂中日記)[1]
15일 계묘, 날씨 맑음, 배를 맡은 장수들을 헤아리고 명량을 버릴 수 없기에 진영을 고수했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되,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 (必死則生, 必生則死)"고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는 일이 있다면 즉시 군율을 적용하여 조금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고 재삼 엄중히 약속했다.(난중일기)[2]
위의 이순신의 논지를 현대적인 화술로 재해석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나는 (병법을 인용하면서) 군사학에 충실하게 전략/전술적 유불리를 따져서 충분히 이길수 있는 작전을 수립했다. (이겨서 살 계획을 짰다)
2. 그런데 내 휘하 군관(장교)들은 왜군이 보유한 배의 숫자만 보고 쫄아서 튈 기회만 엿보고 있네?
3. 왜 여기까지 와서 나를 믿지 못하냐. 나의 계획은 탄탄하니 너희들은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4. 도망쳐서 우리 모두의 승리(=생존)가능성을 위협하는 놈은 군법대로 사형에 처하겠다 .
실제로 난중일기 원문에서도 바로 다음에 "군율을 어긴다면 용서치 않겠다."라고 되어 있고, 전투 도중에 우물쭈물대는 안위와 김응함에게 "너희들 진짜 뒈지고 싶어?"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으므로, 그냥 기강잡기식 의지드립이 아니라 회유와 협박을 섞어 배수진을 칠 의도가 다분히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신기하게도 보통 상관이 부하들을 이런 식으로 사지에 처넣으면 "미친놈아! 죽고 싶으면 너 혼자 죽어!"라면서 반발하거나, 심하면 프래깅을 당하기 일쑤인데, 현실에서는 한 PTSD 온 환자가 빤쓰런을 처버린 게 전부였다. 명량 해전에서도 참전하지는 않을 망정 바로 도주하지는 않고 "혹시 이순신이라면..?" 하고 지켜보고 있었던 걸 보면 부하들은 저 "내가 살려주겠다"라는 말이 꽤나 설득력 있게 들릴 정도로 충무공에 대한 신뢰를 두텁게 가지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순신은 그 신뢰에 완벽하게 보답해서, 죽어라 싸우다가 적들에게 둘러싸여 위기에 처한 안위와 그의 배를 손수 구해내면서 "살려줄 것이다." 파트도 완벽히 지켜낸다.
2.1.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아직도 살고자 하는 자가 있다니,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정녕 싸움을 피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냐? 육지라고 무사할 듯싶으냐? 똑똑히 봐라! 나는 바다에서 죽고자 이곳을 불태운다. 더 이상 살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목숨에 기대지 마라! 살고자 하면 필히 죽을 것이고, 또한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니! 병법에 이르기를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 명의 적도 떨게 할 수 있다 하였다. 바로 지금 우리가 처한 형국을 두고 하는 말 아니더냐?”
영화 《명량》에서[3]
영화 《명량》에서[3]
3. 왜곡
종종 이 문구와 같은 의도를 왜곡하여 보다 효율적인 방법이 있는 상황에서 비합리적인 선택을 정신론으로 정당화하거나 억지로 개인의 의지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를 요구할 때 이를 합리화하는 의도로 쓰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군의 반자이 돌격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말의 대명사인 이순신부터가 자신의 연설에 처음부터 "병법에 이르기를"이라고 말했다. 곧 이 말의 출처는 병법이다. 병법이라는 게 원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군사 운용방식과 군사전술이론을 설명하는 것인데, 이런 병법에서 비합리적인 정신론을 주장할 리가 없다.필사즉생행생즉사의 원전 오자병법 제3 치병편을 보면 시작부터 四輕(사경), 二重(이중), 一信(일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먼저 보급, 전투병기, 병사의 사기를 충만하게 해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이다.[4] 그 전투에서 승리하고자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잘 육성한 군대'를 갖추어야 한다. 이 상황에서 병사들이 죽을 수도 있단 생각에 주저한다 하면 오히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것보다 패배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또한 다음 구절에서도 "용병에서 주저함은 가장 큰 병폐이며, 군대를 재앙으로 몰고 가는 것은 의구심을 갖는 것에서 비롯한다"라며 전장에서 망설임을 가지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구의 의미는 어디까지나 문제를 해결할 때, 최선이라 생각하는 결정을 했다고 하면 그 후에 행동을 주저하지 말라는 것이지, 애초에 합리적이 아닌 결정을 해놓고서 모든 것을 정신력만으로 끝내라는 뜻이 아니다.
즉, 이 문구를 쓴 오자의 원 뜻은 '의지드립'이 아니라 "만반의 준비를 하여 최선이라 생각되는 결단을 내렸다면, 망설임은 실패의 가능성만 높일 뿐이다"라는 의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이순신은 무과급제를 한 조선군 장수답게 장수의 교과서인 오자병법의 FM대로 승리한 것이며, 의지드립으로 여러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이 아니다. 이 오자병법의 정수를 깊숙이 체득한 이순신은 자신이 싸웠을 때 승산이 가장 높은 장소인 울돌목에서 일본 수군에 비해 상대적인 강점을 가지고 있던 판옥선과 각종 화포들을 활용하여 말도 안 되는 교전비로 명량 대첩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요행히 살고자 하는 자'의 의미는 '제대로 싸울 준비를 갖추지도 않은 주제에 준비가 잘 되어 있는 상대와 싸워서 이기고자 하는 자'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제 멋대로 해석하여 결론을 내리기 이전까지의 합리적인 과정을 마치 겁쟁이의 행동인 것처럼 왜곡하는 경우도 있다. 이 문구의 의미는 어디까지나 결론을 도출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끝난 이후의 문제에 직면한 상황에서 도망치거나 문제를 회피하는 행동을 경계하는 것이지, 그 이전의 모든 과정들을 무시하고 아무 생각 없이 닥치는 대로 강행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자칫하면 기호지세처럼 될 수도 있다. 이순신이 울돌목을 전장으로 선택한 것도 대량의 정찰선을 띄워서 적을 정탐하는 합리적인 정보 탐색 과정이 둿받침되었기 때문이었다.
손자병법에서도 "상황이 불리할 때는 처음부터 전투를 피해야 한다", "무능한 장수는 일단 싸움을 한 뒤에 요행수로 승리를 바란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승패의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유불리에 따라 전투의 여부를 결정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며, 불리한 싸움을 피하고 이길 수 있는 싸움을 선택하는 것 또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이 멋진 격언을 '의지드립' 따위의 쓸데없는 아집에 대입하는 것은 꼭 경계해야 하며, 반대로 "누가 칼들고 협박함?" 식으로 몰아도 안 될 것이다.
4. 기타
- 전혀 다른 맥락이기는 하지만 신약성경 복음서에서 예수가 비슷한 말을 하기도 했다.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 제3보병사단에서는 "필사즉생必死則生 골육지정骨肉之情"이라는 구호로 바꿔서 여기저기서 사용하고 있다. 사단 구호라든가 연대 마크라든가.
- NC 다이노스의 유니폼 중 매년 4월 28일 홈경기에만 착용하는 충무공 유니폼이라는 게 있는데, 유니폼 안쪽 윗부분에 "必死則生 必生則死"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 존 윅 4의 후반부에 존과 케인의 결투에서 마지막 한 발을 남겨두고 두 사람이 읆조린다. 그리고 그라몽 본인이 살려고 결투 규칙을 어기고 대결에 끼어들어 존의 샷에 맞고 죽는다. 반면 죽음을 각오한 존은 결투에서 이기고 원하던 자유를 얻는다. 생사 여부 또한 해석에 따라 살았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 2023년 방영한 한국 드라마 스틸러: 일곱 개의 조선통보에서 메인 빌런 김영수의 비밀 창고에 잠입한 최민우와 스컹크가 마지막으로 조우한 함정에서 언급된다.
[1] 한국고전종합DB 李忠武公全書卷之八 > 亂中日記四(제4권중 제4권) #[2] 충무공의 부대는 전사자보다 군율 및 군령 위반으로 처형된 사람이 더 많았다. 당시 충무공 휘하 장병들의 사망 원인 1순위는 전염병(2500명), 2위는 처형이고 전사(300여명)는 3위였다고. (참고로 0순위는 칠천량 해전의 주인공 원균. 당시 이순신은 백의종군 중이었으므로 '충무공이 지휘하다 발생한 사망자'로는 집계되지 않지만, '충무공의 부대'로 집계하면 무려 17,000명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원흉이 부정할 수 없는 0순위.) 물론 이순신이 포악해서 처형이 많았다거나 한 게 아니라, 군기와 군율 유지에 그만큼 철저했고 그 결과 전투에서의 전사자 수가 극적으로 적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순신이 처형했던 병사들의 죄목을 보면 현대의 기준으로도 중형을 피할 수 없는 중범죄를 범한 경우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물론 그 사정을 알고 보더라도 이순신이 처형한 병사 > 일본군과 싸우다 죽은 병사라는 게 상당히 기묘한 일인지라, 역사 동호인들이나 밀리터리 동호인들에게 "충무공 휘하 부대 사망원인 2위가 이순신", Execution(처형)에서 따와 'E순신' 등의 드립거리가 되곤 한다. 충무공 휘하에서 전사자 수가 비상식적으로 적었음을 역설적으로 칭송하는 농담이다.[3] 위 영상의 1:15 부터[4] 오자병법의 해당 항목을 참고하라.[5] 이 밖에 마태오 복음서 16장 25절, 마르코 복음서 8장 35절, 루카 복음서 9장 23~24절, 루카 복음서 17장 33절, 요한 복음서 12장 25절에서 비슷한 얘기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