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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Paul Bocuse(1926년 2월 11일 ~ 2018년 1월 20일)
프랑스의 셰프. 프랑스 요리계의 전설이자, 요리계의 교황이라고 불리는 요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셰프 중 한 명이다.[1] 이러한 명성을 바탕으로 프랑스를 방문한 국빈 만찬을 도맡는 등 프랑스 요리계의 거장이다. 미쉐린 가이드 3스타 레스토랑 폴 보퀴즈의 오너 셰프로 3스타를 1965년부터 48년 이상 유지해왔다.
2. 일생
1926년 리옹 근교의 요리사 가문[2]에서 태어났으며, 1941년 리옹의 레스토랑 드 라 수아리의 클로드 마레(Claude Maret) 밑에서 견습으로 요리 인생을 시작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후반기였던 1944년에 샤를 드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에 자원 입대해 복무하다가 부상을 당한 적이 있고, 1946년에는 라 메르 브라셰에서 다시 수행을 쌓았다.이후 파리로 가서 라 피라미드의 오너 셰프 페르낭 푸앙(Fernand Point)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59년에 생가의 레스토랑을 이어 받아 자신의 이름으로 개명한 뒤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1961년에 프랑스 국가 장인상인 MOF를 수상하였으며, 1965년 이후 2019년까지 미슐랭 가이드의 별 셋을 유지했다.
1970년대에는 일본을 방문했고, 일본식 정식 요리인 가이세키 요리와 쿄 요리[3]의 영향을 받았고, 식재료의 있는 그대로의 맛을 살리는 것과 그릇에 계절을 담아낸다라는 사상을 프랑스 요리에 반영한 누벨 퀴진을 주창하게 되었다.
농어의 파이요리를 처음으로 만들어내 요리인으로서는 최초로 레종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을 수상하였으며,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프랑스 대통령에게 송로버섯 수프를 대접하고 찬사를 받아 더욱 유명해졌다. 또한 디저트 요리인 크림 브륄레(Crème Brûlée)의 고안자로도 유명하다.
말년에는 파킨슨병 등의 병에 시달리다가 2018년 1월 20일 향년 91세를 일기로 수면 중 사망했다. 사망한 장소는 자신의 집을 개조해 만든 레스토랑 2층의 방으로 이 방에서 보퀴즈가 태어났다. 기묘하게도 인생의 처음과 마지막을 같은 방에서 맞았다. 그의 사망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제라드 콜롱 내무부 장관[4]이 추모 멘트를 남기고 리옹 대성당에서 열린 장례식은 필립 바르바랭 추기경이 주재했을 정도로 프랑스인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5]
3. 대표 요리
- 전채(Hors-d'oeuvre)
- 송로버섯 소스를 곁들인 랑구스틴 샐러드
신선한 노르웨이가시발새우(랑구스틴)와 새콤한 맛을 살린 오로라 소스(토마토와 버터를 이용해서 만드는 소스의 일종)를 사용했다. - 딜향 신선한 연어 마리네
1980년대에 파리8구에 있던 북유럽요리 레스토랑 "코바나그"에서 폴 보퀴즈가 도입했다고 알려져 있다.
- 수프(Soupe)
- 생선 요리(Poisson)
- 고기 요리(Viande)
- 쇠고기 안심 로시니 페리골(프랑스의 과거 지명) 풍 요리
원형은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이자 송로버섯과 푸아그라의 열광적 애호가로 알려진 미식가 조아키노 로시니가 고안했다는 스테이크 요리인 투르느도 로시니(Tournedos Rossini)로, 오귀스트 에스코피에의 저서에 나온 방식으로 변형시켰다. - 푸아그라를 닭가슴살로 감싼 후 곰보버섯을 곁들인 요리(Supreme de Volaille au Foie Gras et Morilles)
프랑스 북서부 지역인 브레스트산 닭가슴살을 푸아그라로 감싼 것으로, 신선한 곰보 버섯을 곁들인다. - 브레스트 산 닭을 돼지 방광으로 감싼 요리(Volaille de Bresse en vessie "Mère Fillioux")
파일:external/img.over-blog.com/PICT0056.jpg
이 사진은 먹을 수 있게 준비가 끝난 모습이고, 처음 내올 때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돼지 방광째로 가져온다. 돼지 방광에 고기를 넣고 조리하는 것은 앙 베시(en vessie)라는 조리법으로, 안에 든 고기를 굉장히 촉촉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 디저트(Dessert)
4. 이력
- 1926년 2월 11일: 리옹 교외에서 출생
- 1944년: 프랑스 해방 이후 프랑스군 소속으로 참전
- 1946년: 리옹의 “라 메르 브라쉐”[8]에 견습으로 입사
- 1950년: 여러 레스토랑에서 수행한 뒤, 빈의 “라 피라미드”에 들어가 페르난 푸앙의 밑에서 수학
- 1959년: 생가의 레스토랑 “폴 보퀴즈”를 이어받음
- 1961년: 프랑스 국가 최우수 장인상“MOF"를 취득 미슐랭 가이드의 별한개를 획득
- 1962년: 미슐랭 가이드의 별 2개 획득
- 1965년: 미슐랭 가이드의 별 3개 획득
- 1975년: 프랑스 요리계에 있어서 최초로 레종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 수상
- 1987년: 레종 도뇌르 오피시에 훈장 수상, 보퀴즈 도르 국제요리 콩쿨을 설립
- 1989년: 프랑스 국가최우수 장인(레스토랑 부문)에 선발 되었으며, 선발위원장에 취임
- 1993년: 프랑스 국가공훈상의 수상
- 1994년: 리옹에 브라스리(brasserie)“르 노르”(프랑스 북서부의 중심이 된 전통적 요리 레스토랑) 개점
- 1995년: 리옹에 브라스리“르 서드”(남프랑스 요리를 다루는 레스토랑)를 개점
- 1996년: 리옹에서 열린 G7 정상회담의 공식 요리사 중 한 명으로 참여
- 1997년: 리옹에 브라스리 “르 이스트”(프랑스 동부의 요리를 다루는 레스토랑)을 개점
- 2003년: 리옹에 브라스리“르 웨스트”(프랑스 서부의 요리를 다루는 레스토랑)을 개점
- 2004년: 6월 3일 폴 보퀴즈 재단 설립, 6월10일 레종 도뇌르 코망되르 훈장 수상
4.1. 수상 경력
- 프랑스 국가 장인 상인 MOF(Meilleur Ouvrier de France) 직인장 취득 (1961)
-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5급) 수상 (1975)
- 레지옹 도뇌르 훈장 오피시에(4급) 수상 (1987)
- 레지옹 도뇌르 훈장 코망되르(3급) 수상 (2004)
- 프랑스 최고 장인 위원회 위원장 (1989)
- 독일 공로훈장 제1급 공로십자장 수상 (1992)
- 프랑스 국가 공로상 수상 (1993)
- 미국 요리 연구소(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세기의 요리사 상 수상 (2011)
5. 운영 식당
- 폴 보퀴즈 - 원래 이름은 'L'Auberge du Pont de Collonges'다.
홈페이지
폴 보퀴즈가 소유한 수많은 레스토랑 중에서 본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프랑스 리옹 인근에 위치해 있다. 1965년 문을 열었다.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영업하며, 영업시간은 점심은 12시부터 1시 15분까지, 저녁은 8시부터 9시 15분까지 영업한다. 코스메뉴는 총 3종류가 있으며, 메뉴 1은 225유로[9], 메뉴 2는 300유로[10], 메뉴 3은 340유로[11]다. 메뉴판 그외 다른 메뉴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재는 보퀴즈의 수제자들이 운영 중인데, 다만 2020년부터 해당 식당은 반 세기 이상(1965~2019)의 미쉐린 3스타 기록을 깨고 미쉐린 2스타로 강등되었다고 한다.
폴 보퀴즈가 소유한 수많은 레스토랑 중에서 본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프랑스 리옹 인근에 위치해 있다. 1965년 문을 열었다.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영업하며, 영업시간은 점심은 12시부터 1시 15분까지, 저녁은 8시부터 9시 15분까지 영업한다. 코스메뉴는 총 3종류가 있으며, 메뉴 1은 225유로[9], 메뉴 2는 300유로[10], 메뉴 3은 340유로[11]다. 메뉴판 그외 다른 메뉴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재는 보퀴즈의 수제자들이 운영 중인데, 다만 2020년부터 해당 식당은 반 세기 이상(1965~2019)의 미쉐린 3스타 기록을 깨고 미쉐린 2스타로 강등되었다고 한다.
프랑스 외에도 스위스, 미국, 일본에서도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6. 여담
- 그의 이름을 딴 요리대회 보퀴즈도르(Bocuse d'Or)는 1987년부터 2년마다 24개국이 출전하여 요리 대결을 펼치는 최정상 요리대회(요리 올림픽이라고도 불린다.)이다. 여기에 출전 하는 셰프들은 그 나라의 최정상 셰프들만 참전 할 수 있으며 까다로운 지역예선을 1년전부터 펼쳐 최종적으로 홀수년째 1월에 프랑스 리옹(Espace Paul Bocuse, Lyon)에서 24개국의 요리사들이 전부 모여서 최종 우승자를 가리게 된다.
- 그가 세운 폴 보퀴즈 학교의 노하우와 그의 레시피들을 집대성한 요리 책 '앵스티튀 폴 보퀴즈'가 2019년 한국에 출간되었다.
- 폴 보퀴즈 요리 학교 출신 한국인 중 유명 인물로는 허찬 쉐프가 있다. 허찬은 요리 실력을 인정 받아 폴 보퀴즈 요리 학교 교수 요원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이는 2022년 현재까지도 한국인 중 유일한 사례이다.
- 폴 보퀴즈 요리 학교는 프랑스 리옹에 있는 본교 말고도 다른나라에도 폴 보퀴즈 조리학과 형태로 유치되어 있다. 전세계 22개국에 유치되어 있는데 대한민국에는 우송대학교에 유치되어있다.[12]
- 폴 보퀴즈의 아들인 Jerome Bouce는 미국의 CIA를 졸업했다.
- 일본의 프랑스 요리 권위자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학교인 츠지조리사전문학교(辻調理師専門学校)를 세운 츠지 시즈오(1933~1993)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미식예찬"(에비사와 야스시 지음)에 폴 보퀴즈의 이야기가 나온다. 20대의 츠지 시즈오가 본격적으로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기 위해 여러 요리사들을 만났을 때 폴 보퀴즈도 만났고, 두 사람은 말년까지 좋은 동료로서 교류를 지속했다.
- 에어 프랑스 소속 콩코드 여객기 기내식 메뉴를 만드는 데에도 참여하기도 했다. 사실 콩코드 여객기가 1등석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다만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1969년 첫 비행 당시 메뉴를 만든 것은 아니라고 한다. #[13]
- 보퀴즈 생전 보퀴즈의 식당에 방문한 한국인들의 리뷰는 다음 링크를 참고하자. 2011년 주간조선 기사 2012년 탐방기 2014년 탐방기[14] 다만 당시 보퀴즈는 고령에 환자였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아도 오너 셰프였던지라 직접 요리는 하지 않았다.[15]
- 보퀴즈가 직접 요리하는 모습인 여기서 볼 수 있다. 전성기에는 후대의 고든 램지[17]와 유사하게 방송에 많이 출연하면서 안방극장 시청자들에게도 이름을 알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가장 조회수가 많은 영상은 크림 치킨을 만드는 모습[18]으로, 조회수가 100만 회를 넘기고 있다.
[1] 프랑스 셰프 중에서는 마리 앙투안 카렘, 오귀스트 에스코피에 같은 기리성 중의 기리성 같은 인물들 외에는 적수가 없는 수준.[2] 무려 1765년부터 대대로 요리사로 일해왔다고 한다.[3] 일본의 전근대 사회 천황의 거처가 있었던 교토의 요리를 의미하며, 왕족과 귀족들이 즐기던 요리다. 당시에는 호화요리였으나, 현대 기준으로는 평범한 일본식 정찬에 불과하다.[4] 16년 동안 리옹 시장을 역임했다.[5] 참고로 그로부터 반 년 후 조엘 로부숑도 사망했다.[6]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의 약자[7] 향기로운 국을 뚜껑이 달린 공기에 담고, 손님이 뚜껑을 여는 순간 향이 피어오르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8] La Mère Brazier. 1933년에 미슐랭 별 3개를 획득한 곳으로 오너 쉐프는 오줴니 브라쉐(Eugénie Brazier)(1895~1977)였다.[9] 약 33만 원[10] 약 45만 원[11] 약 51만 원[12] 22개국 동일하게 공동학위 과정이라서 졸업시 본교졸업증이 나온다.[13] 더 타임즈 구독을 해야 읽을 수 있다.[14] 셋째 글은 작성자가 맛집 블로거 겸 유튜버 비밀이야다.[15] 물론 여기서 파는 식품들의 레시피는 모두 폴 보퀴즈의 레시피에 따른 것이다.[16] 프랑스는 영국, 서독, 소련과 같은 1967년에야 컬러 방송을 시작했다.[17] 램지도 방송으로 유명해지기 훨씬 전부터 미쉐린 3스타를 얻은 실력파 셰프다.[18] 1977년 2월 25일 방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