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11:31:09

포스틸 야구단

포항제철 야구단에서 넘어옴
파일:external/www.paepae.com/10952986543.jpg
포스틸 야구단
Posteel Baseball Club
창단 1977년 12월 9일([age(1977-12-09)]주년)
해체 2002년 11월([age(2002-11-01)]주년)
모기업 포항제철(1978~1992)
포스콘(1992~1995)
포스틸(1995~2002)
구단명 변천 포항제철 야구단(1978~1991)
포스콘 야구단(1992~1994)
포스틸 야구단(1995~2002)

1. 개요2. 역대 유니폼3. 관련 인물4. 경기 영상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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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7년 12월 9일 포항제철 야구단이라는 이름으로 창단했다.창단 선언 기사.창단식 기사. 당시에 포항제철은 국영기업이라 선수 공급에 제한이 있어, 때마침 기업은행이 해체되자 남은 선수들을 영입했다.

창단 당시 포항제철 측이 "너희들이 한국화장품 야구단 창단 때처럼 우리에게도 대학졸업선수 15명을 특별지명하는 혜택을 주기로 해 놓고 왜 안 해주냐"라고 항의한 적이 있었다. 사실 이것은 당시 대한야구협회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롯데 자이언트한국화장품 야구단 창단 때 신인선수들을 죄다 퍼주는 바람에 기존의 실업팀들이 전력 수급을 할 수 없게 되자 부랴부랴 막아버린 건데, 문제는 그 정책을 시행하기 전에 포항제철측에 특별지명에 대한 권한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당시 기사

우여곡적끝에 창단된 포항제철 야구단은 1978년 한국실업야구 사상 처음으로 고과연봉[1]제도를 도입해 관심을 끌었다. 이때 혜택을 본 인물이 1978년 준우승을 이끈 1루수 유태중과 2루수 배대웅으로, 직장 입사 1년차[2]임에도 직급을 승진시켜주고 봉급도 20만원에서 25만원으로 올려줬다. 당시 기사 이 때문에 같은 공기업 산하 구단으로서 라이벌이었던 한국전력이 자극을 받아 산하 체육관리위원회에 선수들의 처우개선 문제를 논의했다고.

이후 1992년 포항제철의 자회사였던 포스콘[3]으로 운영주체가 넘어가 팀이름을 바꿨으나 실업야구의 인기 저하와 리그 축소 속에 방치되다시피 운영되었고, 1995년 4월 22일에는 포항제철의 또다른 자회사였던 포스틸[4]이 팀을 인수했다.##[5]

그후 2001년에 들어서면서 실업야구팀이 단 3개 구단(제일유리, 한전, 포스틸)만이 남은 상황에서 선수 수급도 어렵고 리그도 제대로 돌아갈 리가 만무하니 구단 운영의 이유가 사라져버렸다. 결국 제20회 전국실업야구대회 준우승을 마지막으로 2002년 11월에 제일유리·포스틸·한전 세 팀 모두 해체되었다.

2. 역대 유니폼

파일:attachment/poscobaseballteam19791.png
파일:attachment/poscobaseballteam19792.png
1979년 유니폼. 아래 홈 밟는 타자는 김용희.
파일:attachment/1981poscobaseballteam1.png
1981년, 김용희
파일:attachment/poscobaseballteam19793.png
1995년 줄무늬 유니폼

3. 관련 인물

  • 배대웅(1978년~1981년)
    삼성 라이온즈 입단전에 이곳에서 활약했으며 당시 최고의 수비형 2루수로 평가받았었다. 김성근감독은 그시절 배대웅을 "수비력 하나만큼은 박진만과 동급."이라는 평가를 내렸을 정도. 프로야구 출범이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 유대성
    에가와 스구루가 고교 시절 공식전에서 유일하게 홈런을 허용한 것으로 유명한 강타자였으나, KBO 리그에 진출하지 않고 평생 아마추어 야구계를 지킨 인물이다.
  • 신현석
    전 감독. 포스틸 감독 시절, 한국야구사 첫 드림팀이라 불리었던 98방콕아시안게임 대표팀 코치를 역임하기도 했다.
  • 장효조(1979년~1980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기 전, 이 곳에서 활약했다.[6] 참고로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이 장효조를 영입하려고 할때 장효조가 강남 아파트 1채를 달라고 하니 거기다 보너스를 얹여서 데려온 일화는 유명하다.
  • 함학수(1979년~1981년)
    당대 최고의 유격수중 한 명으로 꼽히던 인물. 1976년~1978년에 병역의무를 위해 육군 야구단에서 뛰었으며 이후 포항제철에 입단해서 뛰었다. 배대웅과의 키스톤 콤비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프로출범 이후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4. 경기 영상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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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엔 메리트 시스템이라고 불렀다.[2] 당시 실업야구는 직장에 입사한 개념으로, 야구시즌이 아닌 비시즌엔 회사일을 하는 직장인으로 돌아와야 했다.[3] 1979년에 설립된 포스코의 계열사로 시스템 엔지니어링 회사였다. 2010년에 포스데이타와 합병하면서 합병법인은 포스코ICT가 됐다.[4] 포스코그룹 내에서 철강 해외 수출 및 내수 판매를 담당하던 회사로 2011년 3월에 포스코P&S로 사명을 변경했다가, 2017년 3월 포스코인터내셔널에 합병되었다.[5] 당시 감독은 신현석(포스콘 감독), 코치는 오성규였다.[6] 포항제철 야구단을 거쳐 군입대겸 육군 경리단에 입단(1980년 10월~1982년 11월), 그 후 1983년 삼성라이온즈에 입단.[7] 現 장충고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