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6 00:17:03

파파 부바 디오프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디오프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아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 펼치기 · 접기 ]
* OGC 니스 소속 축구선수 소피안 디오프
* 풀럼 FC 소속 축구선수 이사 디오프
* 아리스 테살로니키 FC 소속 축구선수 파페 셰이크 디오프
세네갈의 前 축구선수
파일:837626545.jpg
<colbgcolor=#000><colcolor=#fff> 이름 파파 부바 디오프
Papa Bouba Diop
본명 파프 "파파" 부바 디오프
Pape "Papa" Bouba Diop
출생 1978년 1월 28일
세네갈 다카르주 다카르
사망 2020년 11월 29일 (향년 42세)
프랑스 일드프랑스 파리
국적
[[세네갈|]][[틀:국기|]][[틀:국기|]]
신체 196cm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유스클럽 응데페앙 살티 (1994~1995)
ASC 디아라프 (1995~1996)
프로클럽 ASC 디아라프 (1996~1999)
FC 베베이 스포츠 05 (1999~2000)
뇌샤텔 크사막스 FCS (2000~2001)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 (2001~2002)
RC 랑스 (2002~2004)
풀럼 FC (2004~2007)
포츠머스 FC (2007~2010)
AEK 아테네 FC (2010~2011)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11~2012)
버밍엄 시티 FC (2012~2013)
국가대표 파일:세네갈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63경기 11골 (세네갈 / 2001~2008)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디오프를 향한 언사5. 사망

[clearfix]

1. 개요

세네갈의 전직 축구 선수.

프리미어 리그에서의 경력이 탄탄한 선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국내에선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상암 대첩이라 불리는 개막전에서 대회 첫 골을 넣은 선수로 알려져있다.

선수 시절에 피지컬을 이용한 플레이로 유명했으며 이러한 점 때문에 파트리크 비에라와 비교되기도 했다.[1]

2. 클럽 경력

파일:파파부바.jpg

2.1. 초기 경력

세네갈의 수도인 다카르에서 태어난 그는 1996년 주니어 은데판 살티케에서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세네갈 프리미어리그의 ASC 디아라프에 입단하였고, 2000년 오프 시즌에 스위스 슈퍼 리그뇌샤텔 크사막스로 이적하면서 해외로 진출했다.

동년 12월, 그는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에 입단하여 챔피언십 타이틀을 우승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다음 시즌에는 유럽 대항전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2002년 1월, 그는 리그 1RC 랑스와 5년 계약을 맺고 입단하였다.

2.2. 풀럼 FC

랑스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그는 2004년 7월 600만 파운드에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풀럼과 4년 계약을 채결했다.

그리고 2004년 8월 14일,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데뷔하여 90분 풀타임 활약하였다. 디오프는 첼시를 상대로 자신의 첫 골을 득점하였으며, 이는 4:1로 패배한 경기에서 유일한 팀의 득점이었다. 풀럼에서 첫 시즌 동안 훌륭한 활약을 선보이며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5-06 시즌에도 활약을 이어가면서 풀럼 올해의 선수 후보에 지명되었다. 또한 2009년까지 재계약을 채결했다. 재계약을 채결한 뒤 그는 풀럼과 재계약을 하게 되어 기쁘다고 밝히면서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2006-07 시즌에는 부상 문제로 결장하는 경기가 잦아지면서, 대니 머피에게 주장을 넘겨주었다. 2007년 1월, 위건 애슬레틱으로부터 500만 파운드 이적 제안이 왔었으나, 그는 거절했다.

이후 시즌이 끝난 뒤 포츠머스로 이적하게 된다.

2.3. 포츠머스 FC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350만 파운드 이적료에 포츠머스에 입단했다. 계약기간은 5년.

2007년 9월 15일, 리버풀전에 데뷔하였으며, 0:0으로 끝났다. 그는 2007-08 시즌 FA컵 결승전에서 카디프 시티를 상대로 경기내내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며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2시즌간 활약하다가 팀이 챔피언십으로 강등되자 2010년 7월 AEK 아테네로 이적했다.

포츠머스에서 3년간 득점없이 72경기를 뛰었다.

2.4. AEK 아테네

2010년 7월 13일, 그는 풀럼, 셀틱 그리고 파리 생제르맹의 관심에 불구하고, 아테네와 계약하였다.

2010년 8월 19일, UEFA 유로파 리그 플레이오프 던디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후반 36분 교체투입되어 데뷔전을 치렀다.

2011년 6월 3일, PAOK를 상대로 자신의 첫 슈퍼리그 골을 득점하였으며, 팀은 4:0으로 대승을 거두었다.

그는 그리스컵 결승전에 출전하며 우승컵 획득을 기여했으며, 또한 그리스 슈퍼리그 플레이오프 3라운드에서 PAOK를 상대로 2골을 득점하며 3:0 승리를 이끌었다. 리그는 3위[2]로 마무리했다.

2.5.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11년 8월 30일,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 1년 계약을 채결하게 되면서 1년만에 영국 리그에 복귀했다. 출전 경기는 리그 16경기로 많은 경기를 나서지는 못했지만, 팀의 EPL 승격을 돕는데 성공했다.[3]

시즌이 끝난 뒤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

2.6. 버밍엄 시티 FC

2012년 10월 19일, 풀럼 시절 동료 선수였던 리 클라크가 감독으로 있는 버밍엄 시티와 단기 계약을 채결했다. 그리고 2012년 11월 27일, 블랙풀전에 후반 교체 선수로서 버밍엄 데뷔전을 치렀다.

2012년 12월 15일,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원정 경기를 앞두고 헤이든 멀린스의 징계와 조너선 스펙터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센터백 자리가 무주공산이 되자 그는 중앙 수비수로 선발 출전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날 경기에서 롭 홀의 코너킥을 강력한 헤딩으로 연결하며 데뷔골을 만들어내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또한 팰리스 전 활약 덕분에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고, 곧 복귀했으나, 구단의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연장 계약을 할 수 없게 되면서 2013년 1월에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

1999년, 21살의 나이에 세네갈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10년 가까이 대표팀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2002년에 개최된 한일 월드컵 때 그는 국가대표로서 커리어 정점을 맛보게 된다. 치열한 지역예선을 뚫고 처음으로 본선에 진출하는 감격을 누린 세네갈이었지만 당시 본선 조 편성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세네갈은 디펜딩 챔피언프랑스와 더불어 월드컵 초대 챔피언인 우루과이, 북유럽의 다크호스 덴마크와 함께 A조에 속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일 월드컵 개막전이자 A조 1차전 상대는 바로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였다. 공교롭게도 프랑스는 과거 세네갈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나라이며, 세네갈의 감독인 브루노 메추는 프랑스인이었다.
프랑스 0 - 1 세네갈

비록 팀의 에이스 지네딘 지단이 경기 닷새 전에 치른 대한민국과의 평가전에서 김남일의 파울로 인해 큰 부상을 당해 결장하게 되었다지만 당시 프랑스엔 지단 말고도 티에리 앙리, 다비드 트레제게 등 스타 플레이어들로 잔뜩 도배되어 있는 명실상부한 우승후보였다. 그렇기에 경기 전 예상은 당연히 프랑스의 압승이었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니 세네갈은 탄탄한 수비로 프랑스의 맹공을 막아냈다. 그리고 전반 30분, 엘 하지 디우프가 문전으로 쇄도한 파파 부바 디오프를 보고 패스를 했고 디오프는 프랑스 수비수 에마뉘엘 프티의 방해로 인해 미끄러지면서 슛을 날렸다. 파비앵 바르테즈가 한 번 쳐냈으나 잡지 못하고 흘렸고 흐른 볼을 파파 부바 디오프가 다시 한 번 왼발로 밀어넣어 선제골을 터뜨렸다.

이후 경기는 계속해서 프랑스의 공세, 세네갈의 수세로 이어졌지만 세네갈은 수문장 토니 실바의 신들린 선방에 힘입어 디오프의 선제골을 끝까지 잘 지켜냈고 결국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를 1 : 0으로 격침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경기를 세네갈 쇼크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당시 프랑스 리그에서 뛰던 평범한 선수에 불과했던 파파 부바 디오프에겐 터닝 포인트가 된 경기가 되었다. 뒤이어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차전 덴마크와의 경기에선 전반 16분에 욘 달 토마손에게 페널티킥 선제골을 허용했으나 후반 7분에 살리프 디아오의 동점골로 1 : 1 무승부를 기록했다.[4]

1승 1무를 확보한 세네갈은 수원월드컵경기장으로 이동해 남미의 우루과이와 조별리그 최종전을 치르게 되었다. 당시 세네갈은 초반부터 컨디션이 덜 풀린 우루과이를 강하게 몰아붙였고 전반 20분 만에 칼릴루 파디가의 페널티킥 선제골로 앞서갔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도 디오프는 맹활약을 하게 되는데 전반 26분과 38분에 연달아 멀티골을 터뜨리며 우루과이를 상대로 무려 3 : 0으로 크게 앞서가는데 기여했다. 이렇게 전반전을 기분 좋게 3 : 0으로 크게 앞선 채로 끝냈으나 후반전엔 우루과이가 뒤늦게 각성하여 맹추격을 감행했고 결국 후반 시작과 동시에 리차르드 모랄레스에게 만회골을 내준 것을 시작으로 후반 24분엔 디에고 포를란에게 또 1골을 허용했다. 그리고 후반 43분엔 알바로 레코바의 페널티킥 동점골까지 허용하여 3 : 3으로 따라잡히고 말았다. 만약 1골을 더 내주게 되면 세네갈은 승자승 원칙에 밀려 우루과이에 16강 티켓을 넘겨야 했다. 세네갈은 우루과이의 파상공세를 끝까지 막아냈고 결국 1승 2무(승점 5점)로 조 2위를 차지해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비록 16강 진출 이후 파파 부바 디오프의 활약상은 좀 저조했지만[5] 오이타 스타디움에서 사상 최악의 죽음의 조로 꼽힌 F조에서 1위를 차지한 스웨덴을 상대로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2 : 1 역전승을 거두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때 8강 신화를 썼던 카메룬에 이어 두 번째로 월드컵 8강을 이룬 아프리카 팀이 되었다. 8강에 진출한 세네갈은 나가이 육상경기장에서 48년 만에 본선 진출에 성공한 튀르키예와 맞대결을 하게 되었다. 세네갈은 90분 내내 터키를 상대로 잘 버텼지만 험난한 대진으로 인한 체력 소모를 견디지 못했고 결국 연장 전반 4분에 터키의 미남스타 일한 만시즈에게 골든골을 허용하며 0 : 1로 석패해 4강 진출의 꿈은 무산되고 말았다.[6]

이렇게 첫 월드컵 출전에 8강 신화를 쓴 세네갈 축구 국가대표팀이었지만 이후 번번이 지역 예선에서 탈락하여 더 이상 그를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그는 월드컵에서의 활약 덕분에 풀럼과 포츠머스 등 주로 잉글랜드 클럽팀으로 이적해 활약을 이어갔다.

4. 디오프를 향한 언사

훌륭한 발, 득점 능력, 수비 능력, 태클이 좋은 선수다.
크리스 콜먼

디오프는 지금까지 내가 상대한 선수 중 가장 어려운 선수 중 한 명이였다.
폴 스콜스

5. 사망

2013년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엔 한동안 근황이 들리지 않았는데 2020년 11월 29일 사망했다. 프랑스의 언론 레키프에 따르면 사인은 그가 지병으로 앓고 있었던 근위축성측색경화증이었다고 한다.[7] 불과 나흘 전에 축구계의 큰 별이자 아르헨티나가 낳은 불세출의 축구선수 디에고 마라도나가 향년 60세로 사망한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축구계에 충격이 배가 되었다.
파일:2022-11-29T163454Z_1572137007_UP1EIBT1A23HO_RTRMADP_3_SOCCER-WORLDCUP-ECU-SEN-REPORT.jpg.webp 파일:RAS-OFF-PLATFORM-PAPA-BOUBA-DIOP-TRIBUTE.jpg.webp 파일:senegal-fans-display-poster-memory-779199303.jpg

작고 2년 후인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콰도르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고국 후배 칼리두 쿨리발리는 그의 등번호 19번이 새겨진 완장을 착용하고 경기에 나섰고, 팬들 사이에서도 19번 바디페인팅을 한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해당 경기에서 세네갈이 에콰도르를 1-2로 꺾으며 20년 만의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후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던 중 TRUE LION NEVER DIES가 쓰인 추모 현수막을 관객석에서 넘겨받아 카메라에 비추기도 했다.


[1] 잉글랜드 현지 팬들 사이에선 장롱 (The Wardrobe), 혹은 인간산 (Man Mountain)이라고 불리였다.[2] 플레이오프는 4위[3] 불랙풀과의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승리하며 승격 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두 팀 모두 지난 시즌 EPL 강등팀이었다.[4] 그러나 살리프 디아오는 득점 이후 반칙으로 퇴장당하여 가린샤 클럽 멤버로 가입하게 되었다.[5] 16강 이후부터는 앙리 카마라의 활약이 더 돋보였다.[6] 참고로 만시즈의 골든골이 월드컵 역사상 마지막 골든골이다.[7] 루게릭병으로도 알려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