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2 21:21:50

티에리 앙리/클럽 경력/아스날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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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리 앙리
1999-2007
파일:앙리 아스날 계약.jpg
▲ 1999년 계약 당시
소속팀 <colbgcolor=#ffffff,#191919>아스날 FC (프리미어 리그)
등번호 14
12(2011-2012)
기록
파일:프리미어 리그 로고(화이트).svg
258경기
175득점 75도움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가로형 화이트).svg
77경기
35득점 15도움
파일:UEFA 유로파 리그 로고 화이트.svg
8경기
7득점 1도움
파일:FA컵(잉글랜드)로고(화이트).svg
26경기
8득점 6도움
파일:카라바오 컵 로고 가로형.svg
3경기 2득점
파일:crR1Bvv.png
4경기 1득점
합산 성적
377경기
228득점 97도움
1. 개요
1.1. 1999-00 시즌1.2. 2000-01 시즌1.3. 2001-02 시즌1.4. 2002-03 시즌1.5. 2003-04 시즌1.6. 2004-05 시즌1.7. 2005-06 시즌1.8. 2006-07 시즌1.9. 2011-12 시즌(임대)

[clearfix]

1. 개요

티에리 앙리아스날 FC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

1.1. 1999-00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여덟경기 연속으로 득점을 뽑아내지 못하는 등 이적 직후에는 굉장히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지만[1] 그냥 적응기였을 뿐이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9월 초 사우샘프턴과의 아스날 역사 첫골을 시작으로 첫 시즌부터 20골을 넘게 득점했다.[2]

벵거는 유벤투스에서 윙 포워드로 뛰던 앙리에게 스트라이커의 임무를 주고 본격적으로 활용했다. 아스날의 패싱 축구와 공간침투는 피지컬보다는 스피드에 의존하는 앙리에게 안성 맞춤이었다. 시즌 초반 비난했던 팬들도 어느새 인정하고 앙리의 플레이에 감탄만 했으며 훗날 아스날을 이끌어가길 바라게 된다.

아스날에서 첫 시즌 리그에서만 31경기 17골 8도움을 기록했으며 전체 성적은 47경기에서 26골 11도움을 기록했다. 지난 유벤투스에서의 모습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1999/00 시즌: 47경기(선발 37경기) 26골 9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1 26 5 17 8
챔피언스 리그 4 0 4 1 0
유로파 리그 8 7 1 7 1
FA컵 2 2 0 0 0
EFL컵 2 2 0 1 0
합계 47 37 10 26 9

1.2. 2000-01 시즌

UEFA 유로 2000을 제패하고 개막된 아스날에서의 두 번째 시즌이며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동료들이 영입된다.

앙리와 함께 UEFA 유로 2000 우승의 주역인 실뱅 윌토르로베르 피레스가 아스날에 합류하면서 팀워크가 한단계 좋아졌다. 거기에 기존에 있던 데니스 베르캄프와의 호흡도 갈수록 좋아지면서 앙리는 팀 내 최다골을 기록했고 프리미어리그 득점 3위에 랭크된다. 두 시즌 연속 리그에서 17골을 기록했다.

다만 첫 시즌과 두 번째 시즌에 맨유의 기세가 너무 강할 때여서 아스날은 리그 우승 판도에서 잠시 밀려나있을 시기였기에 트로피와는 인연이 없었다.[3] 실제로 맨유와의 리그 8R 홈경기에서 맨유를 상대로 처음으로 1골을 넣고 비겼지만,[4] 28R 원정에서는 1골을[5] 넣고도 1:6으로 학살당했다. 또한 본인도 첫 두 시즌은 득점왕과는 인연이 없었으며 이후에는 득점왕을 4번이나 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8강에서 발렌시아에게 패했다.

그래도 시즌을 통틀어 리그에서는 35경기 17골 9도움을 기록하는 등 총 55경기(4,069분)에 나와 22골 11도움을 찍는 좋은 활약을 했다. 또한 이 시즌의 활약을 바탕으로 2001년 UEFA 올해의 팀PFA 올해의 팀에 동시 선정되었다.

2000/01 시즌: 53경기(선발 38경기) 22골 1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5 27 8 17 9
챔피언스 리그 14 8 6 4 2
FA컵 4 3 1 1 0
합계 53 38 15 22 11

1.3. 2001-02 시즌

아스날의 주장인 토니 애덤스가 은퇴하고 토트넘의 주장인 솔 캠벨이 자유계약으로 아스날로 온 시즌이다. 파트리크 비에라가 이때부터 주장직을 맡게 된다.

캠벨이 수비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아스날 역시 더 강해졌고 때맞춰 로베르 피레스가 적응을 끝마치고 엄청난 활약[6]을 보이며 앙리와 완벽한 호흡을 맞추었고 이는 아스날의 프리미어리그와 FA컵 더블을 기록으로 이어졌다. 비록 챔피언스리그에서 팀이 이기면 8강으로 가는 그룹 스테이지 마지막 경기에서 PK를 실축하며 탈락에 이바지했지만, 앙리는 맨유의 뤼트 판니스텔로이를 제치고 33경기 24골 6도움을 기록하며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7골을 넣으며 총 32골을 넣었다.[7] 또한 이 시즌의 활약을 바탕으로 2002년 UEFA 올해의 팀PFA 올해의 팀에 동시 선정되었다.

2001/02 시즌: 49경기(선발 46경기) 32골 8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3 31 2 24 5
챔피언스 리그 11 11 0 7 0
FA컵 5 4 1 1 3
합계 49 46 3 32 8

1.4. 2002-03 시즌

2002-03 시즌에도 아스날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으며 한창 전성기가 왔던 나이라 아스날은 그야말로 뽕을 뽑았다. 특히 2002년 11월 16일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약 60m를 질주하며 넣은 골이 압권이였다.[8] 이렇게 팀의 주포로서 열심히 활약하며 아스날을 먹여살리나 리그에서 막판 뒷심으로 맨유에게 역전 우승을 당했고,[9] 앙리 본인도 뤼트 판니스텔로이에게 득점왕을 내주었다.

하지만 리그에서 37경기 24골 20도움으로 20-20을 달성하며 이전 시즌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였다.[10] 득점왕이 유력했으나 판니스텔로이가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페널티 킥으로 한 골을 추가하며 아쉽게 1골차로 득점 2위에 머물렀다.[11] 하지만 PFA 올해의 선수 및 FWA 올해의 선수는 모두 앙리가 차지한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총 7골을 넣었다. 도르트문트와 아인트호벤에게 3골을 넣으며 그룹 스테이지로 무난히 올라갔다. 그룹 스테이지 1차전 로마 원정에서 3골을 넣는 최고의 활약을 했지만 이후 4경기에서 침묵했고, 6차전 발렌시아 원정에서 1골을 넣었지만 져서 탈락했다.

여기다 시즌 전체를 놓고 보면 32골 23도움으로 더욱 무지막지하다. 이 20-20은 앙리 이후 무려 16년 동안 나오지 않고 있다가, 2020년 7월 12일 리오넬 메시가 앙리를 이어 20-20 달성에 성공하였다.

이 시즌에서의 맹활약과 200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프랑스에서의 골든볼과 골든슈(득점왕) 동시 수상을 한 맹활약으로 UEFA 올해의 팀PFA 올해의 팀에 동시 선정되는 것과 함께 발롱도르FIFA 올해의 선수상에서도 2위를 차지한다.

2002/03 시즌: 55경기(선발 52경기) 32골 23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7 37 0 24 20
챔피언스 리그 12 12 0 7 3
FA컵 5 2 3 1 0
커뮤니티 실드 1 1 0 0 0
합계 55 52 3 32 23

1.5. 2003-04 시즌

파일:Berg3.jpg

커뮤니티 실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골을 넣고도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며 시즌을 시작했지만 팀과 본인 모두 역대급으로 잘했고 이 시즌 리그에서의 아스날은 명실상부한 최고의 팀이었다. 본인은 공격포인트를 꾸준히 쌓았고 리그에서만 30골을 넣으며 득점왕에 오르게 된다.[12] 아스날은 이런 앙리를 앞세워 26승 12무로 무패 우승을 달성했고 이때의 리그 우승은 앙리 본인과 현재까지 아스날의 마지막 PL 우승이다. 여기에 PFA 올해의 선수, PFA 팬 선정 올해의 선수, FWA 올해의 선수,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 등 리그 내 모든 개인상을 쓸어담은 것은 물론 유러피언 골든슈까지 수상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내게 된다. 거기에 2004년 UEFA 올해의 팀PFA 올해의 팀 선정은 덤이다. 하지만 정작 2004년 발롱도르는 리그 우승과 득점왕에 그쳐 앙리보다 부족한 활약을 보인 안드리 셰브첸코가 수상했고 앙리는 4위에 그쳤다.* 당시 발롱도르는 PL 명칭 변경 이후 최초의 무패 우승과 PL 내 모든 개인상들을 휩쓴 앙리 혹은 FC 포르투의 리그와 챔스 더블, 포르투갈의 유로 2004 준우승에 크게 일조한 데쿠가 좀 더 나은 대상자라는 논란이 컸다.] 거기에 FIFA 올해의 선수상바르셀로나 이적 후 매 경기 센세이셔널한 활약상과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지만 무관이었던 호나우지뉴가 수상하고 앙리는 2위에 그치게 된다.

FA컵에서는 4강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패했고, 챔피언스 리그는 8강에서 첼시에게 원정에서 비기고 홈에서 패하며 탈락했다. 이 시즌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총 3무 1패를 기록했는데 아스날 안티들은 무패이긴 해도 맨유에게 전적이 밀린다며 폄하한다.

시즌 기록은 리그에서는 37경기 30골 9도움, 총 51경기 39골 15도움.

2003/04 시즌: 51경기(선발 50경기) 39골 15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7 37 0 30 6
챔피언스 리그 10 10 0 5 7
FA컵 3 2 1 3 2
커뮤니티 실드 1 1 0 1 0
합계 51 50 1 39 15

1.6. 2004-05 시즌

파일:thierry-henry-arsenal_1kbbg6gqf2ct91xcxi4o0hsucr.jpg

아스날의 주장이었던 파트리크 비에라가 2004-05 시즌을 예기치 않게 출발하자 앙리는 잠시 동안 주장 완장을 달게 된다. 맨유와의 커뮤니티 실드에서 승리하며 좋은 출발을 한 앙리는 시즌 초부터 골을 적립했다.

리그에서 32경기 25골 14도움을 기록하며 2시즌 연속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모든 대회에서 31골을 넣으면서, 골든 부트를 수상했다. 또한 PFA 올해의 팀에도 선정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의 FA컵 결승전에서는 이전에 당한 부상으로 뛰지 못했다.[13] 그래도 팀은 승부차기 끝에 우승하였고, 이는 앙리 본인 커리어의 3번째 FA컵 우승이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조별리그 3차전부터 4경기 연속골로 16강 진출에 기여했는데 16강 1차전 바이에른 뮌헨 원정에서 1:3으로 패한 터라, 홈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었지만 대회에서 탈락했다.

2004/05 시즌: 42경기(선발 41경기) 30골 15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2 31 1 25 14
챔피언스 리그 8 8 0 5 0
FA컵 1 1 0 0 1
커뮤니티 실드 1 1 0 0 0
합계 42 41 1 30 15

1.7. 2005-06 시즌

파일:external/pallaintribuna.corriere.it/BRITAIN_.jpg

아스날의 옛 홈구장 하이버리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다. 주장이었던 파트리크 비에라가 유벤투스로 떠나면서 앙리가 새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첼시와의 커뮤니티 실드에서 1:2로 패배하며 시즌을 시작한 앙리는 2005년 10월 17일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프라하 원정경기에서 역전골을 터트리며 이안 라이트를 제치고 아스날 소속 185번째 골을 터뜨리면서 아스날 역사상 최다득점자가 된다.

2006년 2월 1일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와의 경기에서는 골을 터뜨리며 아스날의 전설 클리프 바스틴의 기존 기록을 깨고 리그 151골을 기록하면서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리그에서 32경기 27골 8도움으로 3시즌 연속 득점왕을 차지했다.[14] 팀은 전술의 중심인 비에라가 이적하면서 많이 약해졌고 마지막 경기에서야 겨우 4위를 할 수 있었다. 하이버리 경기장에서의 마지막 경기인 프리미어리그 38라운드 위건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승리를 거두었으며, 팀을 리그 4위로 마무리지으면서 챔스권 진입에 안착시켰다. 이 경기에서 마지막 PK골을 넣고 잔디에 키스하며 자신의 전성기와 함께한 하이버리 경기장에 작별을 고했다. FA컵은 4라운드 볼턴 원더러스 원정에서 패하며 탈락.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유벤투스, 레알 마드리드 같은 강호들을 차례로 꺾으며 결승에 진출한다. 특히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원정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진을 농락하며 기록한 골은 진정 끝판왕의 포스. FC 바르셀로나와의 결승에서는 옌스 레만이 18분 만에 퇴장당하면서 수적 열세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솔 캠벨이 선취골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지만 끝내 역전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앙리는 프리킥 상황에서 솔 켐벨의 선취골을 어시스트했지만 빅토르 발데스와의 두차례 일대일 기회를 놓치는 등 아쉬운 경기력을 보였다.
파일:external/i.telegraph.co.uk/thierry-henry_2087681b.jpg
빅 이어를 놓치고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메달을 받고 내려가는 앙리.

이 시즌의 활약과 직후 이어진 2006 독일 월드컵에서의 맹활약으로 이후 2006년 FIFPro 월드 XIUEFA 올해의 팀에 공격수로 뽑힌다. 거기에 PFA 올해의 팀에도 6년 연속으로 선정된다. 한편, 시즌 후 아스날에서 무관으로 인해 바르셀로나가 2천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제안했지만 아스날의 구단주가 거절했다는 등의 많은 이적설이 떠돌았으나, 앙리는 4년 재계약을 맺고 아스날에 남는다.

2005/06 시즌: 45경기(선발 42경기) 33골 10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2 30 2 27 8
챔피언스 리그 11 10 1 5 2
EFL컵 1 1 0 1 0
합계 45 42 3 33 10

1.8. 2006-07 시즌

파일:henry_0.jpg

앙리가 최고 선수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자 큰 힘이었던 동료들은 구장 이전 정책으로 구단이 긴축재정에 들어감에 따라 어쩔수 없이 하나둘 정리되고 있었다.

비에이라와 에두는 이미 떠났고 베르캄프는 하이버리 경기장과 함께 은퇴했고[15] 피레스는 비야레알로 갔다. 주전경쟁에서 밀려난 솔 캠벨은 포츠머스로, 애슐리 콜은 첼시로 떠났다. 기대를 많이 받던 호세 레예스도 프리미어리그에 끝내 적응하지 못하며 임대형식으로 스페인으로 떠난다. 프레드릭 융베리는 예전같지 않았다.[16] 팀은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주축으로 미래를 기약하고 있었다. 베르캄프와 피레스 등과 환상의 궁합을 보이던 앙리는 젊은 선수들과의 호흡에는 다소 문제를 보였다. 사실 호흡은 그럭저럭 맞았는데 문제는 베르캄프나 비에라 같은 선수들과 너무 잘맞아서 상대적으로 안 맞아보였다는 것이다.

원래 본인이 워낙 벤치에 앉아있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크지 않은 부상을 입었을 때는 출전을 강행했고 국가대표팀에서의 혹사 또한 이어졌다. 선수 본인도 최근 몇 년간 많은 경기를 뛰었고, 또 스피드와 활동량을 주무기로 하기에 신체적인 노쇠화가 점점 진행 중인 상태였다. 게다가 월드컵에서 프랑스는 결승전까지 올랐으니 시즌 초반의 부진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결국 2007년 3월 챔피언스리그에서 당한 3개월 짜리 부상을 당했고 시즌 아웃되어 전력에서 이탈했다. 리그 성적은 17경기 10골 4도움이었다.[17]

시즌이 끝나고 무한도전을 찍었다. 당시 개인 전용기로 밤에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는데 한국의 아스날 팬사이트인 ‘하이버리’에서 버스를 빌려 30명 정도가 앙리를 열렬히 환영하기도 했으며 당시만 해도 아스날 소속이었는데 얼마 후 앙리가 바르셀로나로 떠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게 된다. 구너들은 당연히 결사 반대를 외치는 중이다.

하지만 앙리는 챔스 우승권의 팀중에 호나우지뉴, 메시, 에투가 있던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된다. 벵거도 앙리의 피지컬이 떨어지고 있었고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대한 열망을 알고 있었기에 이름값에 비해 싼 가격인 2천 4백만 유로에 이적을 허락했다. 다음 시즌 구상하는 새로운 팀에 앙리가 적응을 하지 못한다고 판단하며 그를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18] 프리미어리그, FA컵, 유럽선수권대회, 월드컵 등 거의 대부분의 우승컵을 들어올린 앙리에게 남은 것은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었다. 아스날은 그 전에 빅이어를 들어올릴 절호의 찬스를 놓쳤고 경기장 이전으로 인한 재정 긴축정책 때문에 당분간 팀전력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앙리의 아스날 생활이 마무리 되었다. 369경기 226골. 다만 이 기록은 몇 년 후에 임대 생활을 통해서 업데이트된다.

2006/07 시즌: 27경기(선발 24경기) 12골 6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17 16 1 10 4
챔피언스 리그 7 5 2 1 1
FA컵 3 3 0 1 1
합계 27 24 3 12 6

1.9. 2011-12 시즌(임대)

파일:henry2012.jpg

2012년 1월부터 아스날로 2개월간 단기 임대가 확정되었다. 이로서 5년 만에 자신의 최전성기를 누렸던 팀으로 복귀를 하게 되었다.

1월 10일 FA컵에서 리즈 유나이티드를 만나 자신의 '후계자' 시오 월콧과 나란히 교체 출전하였고 0:0으로 답답하던 상황에서 78분 경 결승골을 뽑아냈다. 스피드는 느려졌지만 오프사이드를 뚫는 순간적인 움직임과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슈팅으로 역시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말 그대로 왕의 귀환이다. 더불어 기록은 현재진행형이다. 다만 선수들과의 호흡 자체는 아직 완벽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앙리 본인 탓이라기보다도 팀 호흡 자체가 그리 잘 맞고 있지 않는 아스날이다. 블랙번을 7-1로 폭격한 앙리의 마지막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경기에서 팀의 7번째 골을 기록했는데[19]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은 축제분위기였다고 한다.

그 직후 2월 12일에 열린 리그 25 라운드 선덜랜드 AFC 원정에서 인저리 타임에 극적인 역전골을 작렬하여 2:1 승리에 기여했다.[20] 이로써 자신의 프리미어리그 통산 득점 기록도 1골 더 올려놨다.[21][22] 아스날 통산 376경기 228골 92도움. 레드불스에서 은퇴하면서 이 기록이 아스날의 최종 기록이 되었다.

2011/12 시즌: 7경기(선발 0경기) 2골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4 0 4 1 0
챔피언스 리그 1 0 1 0 0
FA컵 2 0 2 1 0
합계 7 0 7 2 0

[1] 이적 직후 공격수로 뛰라는 벵거의 지시에 '네? 저는 윙인데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후일 앙리가 은퇴할 즈음에 벵거는 앙리가 스스로 '봐요. 전 골을 못 넣잖아요.'라고 밝혔다면서 골도 못 넣는 공격수 치고는 꽤 잘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2] 스트라이커 롤에 자신감이 없었던 앙리에게 아스날의 레전드 마틴 키언이 아스날 선수였던 어느 선수의 득점 영상을 보여주며 '너보다 발도 느리고 키도 작은 선수였지만 아스날에서 100골을 넣었다.'는 말을 해주었고 이것으로 앙리의 마인드가 바뀌었다는 얘기가 있다. 앙리보다 키도 작고 발도 느렸던 그 선수는 바로 이안 라이트였다.[3] 저 당시에는 맨유가 트레블을 한 이후인지라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또한, 사실상 92 유스들의 주축인 베컴 & 긱스, 네빌, 스콜스 등의 전성기였다.[4] 2000년 10월 1일 경기였는데, 오른발로 툭 띄운 뒤 곧바로 하프 발리 슈팅으로 연결했고 큰 포물선을 그린 볼은 그대로 빨려들어갔다. 앙리의 모든 장점을 잘 보여주는 골이니 꼭 한번 보길 바란다.[5] 앙리의 유일한 올드 트래포드에서의 득점이다.[6] 로베르 피레스는 2001-02 시즌 도움왕과 PFA 올해의 선수, FWA 올해의 선수를 휩쓸었다.[7] FA컵은 4경기 0골, 도움은 리그에서 1도움.[8] 이 골을 넣은 후 앙리는 토트넘 원정 팬들 앞으로 가서 그 유명한 무릎 셀레브레이션을 했고 이 세레머니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9] 맨유와의 리그 2경기는 1무1패였는데 앙리는 홈에서 멀티 골을 넣었다.[10] 한때 문서에서는 PK골 없이 24골 20도움이라고 기록되었으나 사실 PK골 3개가 포함된 기록이다.[11] 만약 앙리가 이 시즌에도 득점왕을 차지했다면 01-02 시즌부터 05-06 시즌까지 5시즌 연속 득점왕이라는 진기록이 나올 뻔 했다.[12] 더불어 2004년 2월 11일 사우스햄튼 전에서 프리미어리그 통산 100호 골을 달성했다.[13] FA컵 7경기 중 4라운드 울버햄튼전에서만 나와 1도움 기록[14] 재밌는 것은 이 시즌 최소 득점팀은 26득점을 기록한 선덜랜드 AFC였다. 즉, 득점수만 보면 앙리 > 선덜랜드였던 셈이었다.[15] 다만 은퇴 경기는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개장 기념 경기였다. 2006년 7월 22일 베르캄프의 전 소속팀인 아약스와의 경기. 60세가 넘은 요한 크루이프도 베르캄프 기념경기에 와서 뛰었다.[16] 결국 융베리도 2007년을 끝으로 아스날을 떠난다.[17] 2006/07 시즌 초반 아스날은 월드컵까지 풀로 뛴 앙리를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한 앙리를 벤치에 앉혔지만 프랑스 국가대표팀 감독인 도메네크는 그런 거 없이 친선경기에도 앙리를 풀타임 소화시켰다.[18] 이때 아스날팬뿐만 아니라 많은 축구팬들이 앙리의 빈자리를 걱정했다. 대체자라고 영입한 건 크로아티아리그의 에두아르도 다 실바에 뜬금없이 오른쪽 풀백 바카리 사냐를 영입한게 전부. 그런데 막상 새 시즌이 시작되더니 아데바요르가 갓데발이 되면서 1위를 질주했다. 물론 시즌 후반 이후에 부상신의 강림으로 팀전력이 흔들리면서 DTD하여 우승엔 실패했지만 적어도 시즌 전체로 볼 때 앙리의 공백은 느껴지지 않았다.[19] 이후에 자책골로 변경되었다.[20] 참고로 이 골은 티에리 앙리의 아스날 소속으로써의 마지막 볼터치이다.[21] 이 시즌 아스날은 승점 1점 차이로 토트넘을 제치고 3위를 차지했는데 만일 이 골이 터지지 못했으면 아스날이 챔스를 못갈 뻔 했다.[22] 이 시즌 첼시가 챔스를 우승하여 EPL의 챔스 출전권이 3위까지로 줄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트넘은 4위를 했지만 유로파리그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