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무어 Tomm Moore | |
<colbgcolor=#011B32><colcolor=#fff> 본명 | 토마스 무어 Thomas Moore |
출생 | 1977년 1월 7일 ([age(1977-01-07)]세) |
영국 북아일랜드 뉴리 | |
국적 | [[아일랜드|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작가, 애니메이션 감독, 애니메이터 |
학력 | 발리퍼몬트 대학(Ballyfermot College of Further Education) |
활동년도 | 1998 ~ 현재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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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일랜드의 애니메이터, 일러스트레이터, 애니메이션 감독.2. 상세
아일랜드 애니메이션 회사 카툰 살롱의 설립자 중 1명으로, 켈스의 비밀 - 바다의 노래 - 울프워커스로 이어지는 애니메이션 영화 연작 '카툰 살롱 아일랜드 민속 트릴로지'의 감독으로 유명하다.여러모로 스튜디오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감독. 그의 후기 작품들의 배경이 일본으로 고정되고 전설을 소재로 한 작품을 자주 만들었던 것처럼, 톰 무어 역시 20여년간 작업한 아일랜드 민속 트릴로지가 그의 대표작으로 자리잡았다. 그 외에 본인이 밝힌 바로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 욤욤 공주와 도둑으로 유명한 리처드 윌리엄스의 영향을 받았다는 듯.
3. 생애
싱어송라이터 키어런 고스(Kieran Goss)의 조카. 슬하에 아들 벤 무어(Ben Moore)를 두고 있으며, 이후 2010년대에 벤이 딸 마라 무어(Mara Moore)를 낳으면서 40대라는 이른 나이에 할아버지가 되었다. 아내 리셀로트 올로프손(Liselott Olofsson)은 교사로, 현재는 도자기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는 듯. 주변인을 캐릭터의 모티브로 삼는 경우가 많아, 바다의 노래 주인공 벤은 각각 어릴 적의 자신과 아들 벤을, 울프워커스의 주인공 로빈은 아내 리셀로트와 손녀 마라를 모티브로 만들었다.어릴 적부터 TV[2]에서 미국 슈퍼히어로 코믹스와 애니메이션[3]를 챙겨보며 애니메이터의 꿈을 키웠다. 특히 1987년판 마이티 마우스와 그 스핀오프 작품들을 즐겨 봤으며, 코믹스 덕질 경력 때문에 배트맨 이스터 에그를 바로 알아봤다는 듯. 중학교 시절에도 배트맨 디 애니메이티드 시리즈를 챙겨 보기 위해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에 가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현재에도 그는 배트맨을 주요 스케치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그 외에는 동유럽의 애니메이션이나 동물 소재의 어린이 드라마 등을 시청하기도 했다는 듯. 한편 11살 때부터 친구 로스 스튜어트와 그의 어머니[4]에게 미술을 배웠으며, 로스는 나중에 울프워커스의 공동 감독을 맡게 된다. 정작 톰 본인의 아버지는 프로그래머라 부모가 "제발 예술가만은 하지 말라"고 본인을 뜯어말렸다나.
대학교 졸업 이후 대학교 동문이었던 폴 영 및 노라 투메이와 합심하여 카툰 살롱을 설립했다. 처음에는 톰 무어의 1인 기업 상표나 마찬가지어서 대학생 시절부터 '카툰 살롱' 명의로 애니메이션/일러스트 의뢰를 받았으며, 창립 이후에도 톰 무어와 친구들이 모인 단체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1999년 켈스의 비밀 구상을 시작으로 상호를 등록, 본격적으로 카툰 살롱을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성장시키기 시작했다.
이 시절에는 컴퓨터조차 망한 애니메이션 제작사에서 사 온 중고 컴퓨터 하나로 작업을 할 정도였으며, 켈스의 비밀 또한 작품이 회사 크기에 비해 너무 큰 규모의 프로젝트였던 만큼 연기가 길어지면서 베이퍼웨어가 될 뻔 했다. 이 때문에 켈스의 비밀 제작을 임시 중단하고 타 회사의 하도급을 받아 회사를 연명시켰다고. 로스 스튜어트는 아예 미국 회사에 취직할 정도로 여러 제작사를 전전해야 했으며, 톰 무어 또한 회사를 매각해달라는 수많은 요구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아일랜드 민속 트릴로지가 전부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될 정도로 그 작품성을 인정받자, 카툰 살롱은 창립 25주년이 될 때까지 살아남아 아일랜드 애니메이션계의 좋은 선례[5]가 되었으며 톰 무어 역시 예술적인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2024년 현재는 프랑스 파리의 파리 보자르 미술대학에 다니고 있다. 인터뷰(번역문 링크) 울프워커스 제작 이후 아일랜드 민족 트릴로지 제작에 몰두하느라 약 20년 동안 카툰풍 그림체를 그리자, 카툰풍 그림체가 아닌 극화 그림을 그리지 못할 정도의 매너리즘이 찾아온 것. 이 때문에 캐리커처나 팬서비스용 그림을 제외하고는 데포르메 없이 그림을 그리는 한편, 그림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 위해 대학교를 다시 다니게 되었다고. 또한 이 인터뷰에서 '화풍'이라는 개념이 허상[6]이라고 이야기하며, 스튜디오의 미래[7]를 위해서라도 설립자 3인방(본인, 톰 영, 노라 투메이)이 개입하지 않은 제 3자 감독의 신작을 준비하는 등 여러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밝혔다.
4. 참여 작품
- 카툰 살롱 아일랜드 민속 트릴로지 - 감독, PD, 각본가로 참여한 작품.
- 예언자(2014) - '사랑' 파트 참여
-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2017) - 감독, PD
- 용과 주근깨 공주(2021) - 프로덕션 디자이너
- 앨머의 모험(2022) - PD
- The Inventor(2023) - 2D 애니메이션 컨설턴트
5. 기타
- 적극적으로 채식주의를 홍보하는 채식주의자로 유명하며, 어릴 적부터 베지테리언이었다가 성인이 된 이후로는 아예 비건이 되었다. 울프워커스 제작 도중 2020년에 그린피스 광고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하필 그 내용이 비판 문단에 실려 있을 정도로 공격적인 내용이라 문제지만. 경솔한 SNS 사용도 문제시되고 있다. #1 #2
[1] 이 때문인지 톰 무어는 수채화풍 색감과 도형이 작화에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작화로도 유명하다.[2] 1980년대 아일랜드는 공영 채널이 단 2개밖에 없었다고 한다.[3] 반면, 당시 인기를 끌었던 우주의 왕자 히맨은 낮은 프레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라 싫어했다고 한다.[4] 로스의 부모는 아마추어 예술가였으며, 로스 또한 본업이 화가다.[5] 그도 그럴 것이, 톰 무어 이전 아일랜드 애니메이터들은 대학교를 나온 후 하나같이 유럽이나 미국 회사로 떠나는 게 일상이었다.[6] 화풍이란 굉장히 유동적이라 늘 변화하며, 애니메이션 업계는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작업하기 때문에 특정한 화풍을 '한 사람' 또는 '한 회사'의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7] 당장 본인이 롤모델로 삼았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스튜디오 지브리만 해도, 후계자 양성에 실패해 미야자키 하야오 원맨쇼라는 인식까지 자리잡으면서 골치를 앎고 있다. 톰 무어의 카툰 살롱도 비슷한 이미지가 있었던 만큼 후계자 양성에 힘쓰고 있는 듯.[8] 감독 데뷔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