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의 일반철도 노선 |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 고속 | 타이완 고속철도 | |
간선 | 서부간선 | 종관선 · 타이중선 · 핑둥선 | |
동부간선 | 이란선 · 북회선 · 타이둥선 | ||
남회선 | |||
지선 | 네이완선 · 류자선 · 지지선 · 사룬선 · 핑시선 · 선아오선 · 타이중임항선 · 청주이선 · 화롄임항선 · 아리산 삼림철도 | ||
폐선 | 신뎬선 · 단수이선 · 신베이터우선 · 린커우선 · 타이완당업철로 · 쑹산공항선· 뤄둥삼림철로· 타이핑산삼림철로 |
臺灣糖業鐵路 / Taiwan Sugar Railways
당업철로 중 하나인 윈린현의 마궁춰선
1. 개요
대만의 설탕 생산을 독점하는 국영회사인 타이완당업(臺灣糖業, Taiwan Sugar Corporation)에서 운영하는 사탕수수 및 설탕 수송용 전용철도이다. 약칭으로 糖鐵로 불리기도 한다.모든 노선이 762mm 비전철화 노선이다. 대만의 사탕수수 주요 산지인 타이중시, 장화현, 윈린현, 타이난시, 가오슝시 위주로 분포해 있다.
한 때는 3,000km 이상의 선로를 보유하고 있었다. 현재는 일부만 남아 운영되고 있으며 운용 기간도 일부 기간에 한정된다.
현지에서는 五分車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1435mm 표준궤의 절반 정도의 궤간을 가져서 붙은 별명이다.
2. 역사
2.1. 대만일치시기
대만은 식민지 시절부터 사탕수수 생산기지로 이름이 높았다. 대만총독부는 재정 자립 및 개발을 위해 일본의 자본가들에 대만의 사탕수수 재배 사업에 투자할 것을 권했고 이에 일본 자본가들은 여러 민간회사를 설립해 사탕수수 재배 및 설탕제조 산업에 나섰다. 이 설탕회사들은 일종의 플랜테이션 비슷하게 대량으로 사탕수수를 재배했고, 이를 통해 생산된 대량의 사탕수수와 사탕수수에서 생산된 설탕을 운반하기 위해 20세기 초부터 사탕수수 농장과 자신들의 설탕 공장, 그리고 설탕 공장과 대만 간선철도[1]의 역사를 연결하는 선로를 부설했다. 이것이 타이완당업철로의 기원이다. 이런 선로들은 모두 각지의 설탕회사들이 소유한 전용철도같은 것들이었고, 당연히 전국적이고 체계적인 노선망같은 건 없었다.초창기에는 소가 끄는 우마차에 철차륜 붙인 수준에 지나지 않았으나 1907년부터 증기기관차가 도입되었다. 대부분이 화물 전용 노선이지만 일부는 여객운송도 맡았는데, 1940년에는 2964.6km의 설탕 수송 전용노선이 있었고 그 중 627.1km가 여객영업을 병행하고 있었다.
2.2. 중화민국 시대
1945년 태평양 전쟁의 패전으로 일제는 대만에서 물러났고, 중화민국이 대만을 접수했다. 중화민국 국민정부는 대만의 일본인 설탕회사 자본을 전부 몰수하고는 국영기업인 타이완당업을 설립해 대만의 사탕수수 산업을 국유화하고 설탕을 전매했다.[2] 이 과정에서 대만 전역의 설탕수수 수송 노선은 타이완당업철로라는 이름이 붙어 타이완당업에서 관리하게 되었다. 이 때에도 사탕수수 수송과 여객 수송은 순조롭게 이루어져, 1950년대만 해도 매일 600회의 여객열차가 운용되었다고 한다. 동력 현대화도 이루어져 1960년대부터 디젤기관차가 운행되기 시작했다.한편 국공내전 패배로 인해 장제스의 국민정부는 대만으로 피난했고 장제스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침공에 대비하는 목적으로 타이완당업철로에 주목해 독립적인 각 노선을 연결해 종관선이 파괴될 때의 대체 노선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이에 타이중에서 가오슝까지의 사탕수수 수송용 노선이 모두 연결되었으며, 이를 남북평행예비선(南北平行預備線)이라 한다. 이 노선에도 여객열차가 운용된 바 있다.
그러나 1960년대를 이후로 타이완당업철로는 급격히 쇠퇴한다. 도로망의 확충과 자동차 보급으로 설탕 및 사탕수수 수송에 트럭을 활용하는 것이 더 저렴해졌고, 더불어 사탕수수 산업 자체가 사양산업이 된 탓도 컸다.
이리하여 1981년에 윈린현 후웨이진의 마궁춰선(馬公厝線)을 마지막으로 여객 영업이 중단되었다. 각지의 사탕수수 및 설탕 운송도 중단되어 현재는 앞서 언급한 마궁춰선(馬公厝線)만이 사탕수수 수확기에 한정해 사탕수수, 설탕 수송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 외의 노선은 아예 폐선되었거나 가끔 관광열차가 운행될 뿐이다.
3. 흔적
타이완철로유한회사 산하의 각 역의 문서에 사탕수수 언급이 있다면 100% 이 회사의 노선이 운행되었다고 보면 된다. 2016년까지 타이중역의 후문역으로 활용했던 건물이 예전 영업용 역사였다. 위에 언급된 남북평행예비선의 역사로 활용된 것이다.과거에 있었던 여객역사 일부는 현재 관광지로 전환되어 있는데 루강이나 치산(旗山)처럼 철도의 흔적이 다 사라지고 역사만 복원한 경우가 있다. 가오슝 첩운 홍선 차오터우탕창역(설탕공장이라는 뜻)처럼 현재 종관선의 선로 옆에 흔적이 남은 경우들도 있다.
타이완당업은 꽤 덩치가 큰 회사라 여러 관련 산업에 투자하고 있는데 타이완 고속철도 운영사 지분의 3.5%를 보유하고 있다.
4. 복원
2017년 10월 신잉역에서 바라오예(八老爺)역 간 바옹선(八翁線) 여객 영업을 시작으로 관광 상품으로 복원을 개시하였다. 현재는 중싱-훠샤오(NT$150) 구간을 주말 한정 하루 7회 운행중이며, 신잉-중싱(NT$60)은 2회만 운행한다.[3]2022년 10월 고속철도 자이역-쏸터우(蒜頭)공장 문화공원간 저청선(蔗埕線)의 여객영업을 재개한다. 현재는 국립고궁박물원 남부분원까지 연장된 상태다. 관광 노선이다보니 운임은 매우 비싸 1일권 기준 운임은 NT$300.
그 외 현재 남아있는 노선 중 일부가 고속철도역과 연계될 예정이다. 더우류역에서 더우난역을 경유해 후웨이까지 가는 옛 철도 노선 근처에 고속철도 윈린역이 생겨서 다시 여객영업을 할 계획이 있다.
[1] 현재 타이완철로유한회사, 당시 대만총독부 교통국 철도부(臺灣總督府交通局鐵道部)가 관리하던 철도들.[2] 일본 통치기 대만총독부는 재정 수입을 목적으로 여러 상품을 전매했는데, 전후 중화민국 국민정부는 타이완성에 한해 일본 통치기의 전매 제도를 유지하는 한편 타이완성의 재정 수입 확보를 목적으로 전매 품목을 더 확대하였고, 이는 2.28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이후 1947년에 타이완성에 일반 성정부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전매 제도를 대폭 축소하여 술, 담배, 소금 이외의 모든 상품의 민영을 허락해 전매 품목에서 제외하였다.[3] 신잉역 바로 남쪽에 당업철로역이 위치해 있는데 도로변도 아니고 외관이 영업용 건물처럼 생기지 않아 지나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