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7-02-18 22:14:25

조성태(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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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成台
1942년 11월 3일 -
대한민국 육군제2작전사령관
27대 박세환 28대 조성태 29대 김진호
역대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
34대 천용택 35대 조성태 36대 김동신

대한민국군인, 정치인. 제35대 국방장관을 역임했다.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출생했다. 천안중학교,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육군사관학교 제20기 과정을 졸업하였다.

대령 시절 육군본부 전략기획과장으로 2차 율곡계획 작성에 참여하며 군사력 건설, 기획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했다. 다만, 하나회 출신들에 밀려 대령, 준장, 소장 진급은 2차에 걸쳐서야 이루어졌다. 연대장 시절에는 자신의 부대에서 지뢰 사고로 장병 5명이 부상을 당해 하마터면 군복을 벗을 뻔하기도 했다.


(1995년 제2군 사령관 임명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직 신고를 하는 모습. 사진 속의 해군 제독은 같은 시기에 해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던 안병태 제독)

이후 그의 재능을 눈여겨 봤던 이종구 제2군 사령관이 국방장관에 임명되면서, 1991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으로 발탁되었다. 1992년에는 1군단장, 1993년에는 국방부 정책실장 등의 중장 직책을 거쳐, 1995년에는 대장으로 진급하여 제2군 사령관으로 재직한 후 이듬해 전역했다.


군복을 벗은 후 잠시 국방대학교에서 초빙교수로 활동하다가, 율곡사업 시절 상관이었던 임동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추천으로 1999년 김대중 정부의 2번째 국방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해 6월 제1차 연평해전에서의 성공적 대응으로 군 내외의 찬사를 받았고, 당시 개발이 막 끝난 K-9 자주포를 연평도, 백령도의 해병 부대에 가장 먼저 배치했다.


2000년 9월에는 사상 첫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위해,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북한 측의 김일철 인민무력부장과 만났다.

장관직을 떠난 후인 2004년 ~ 2007년에는 열린우리당의 공천으로 제17대 국회의 국방위 소속 비례대표로 활동했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정부의 전작권 전환 추진에 반대했고, 2007년의 2차 남북정상회담을 전후로 공론화된 북방한계선(NLL) 의제화 여부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후 더 이상의 공직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가 2016년에는 김제동영창 발언으로 한때 논란이 되었었다. 제2작전사령관 재임 당시 김제동이 제2작전사령부에서 군복무 중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