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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국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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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기울어질 나라 어조사
1. 개요2. 유래3. 고찰4. 목록5. 여담6. 관련 문서

1. 개요

"나라를 기울게 하는 미모"[1]라는 뜻으로,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워질 정도로 임금을 혹하게 만들 만한 절세미인을 가리키는 고사성어이다. 한무제 때 이연년(李延年)의 시에서 처음 나온다.

2. 유래

孝武李夫人,本以倡進。初,夫人兄延年性知音,善歌舞,武帝愛之。每為新聲變曲,聞者莫不感動。延年侍上起舞,歌曰:「北方有佳人,絕世而獨立,一顧傾人城,再顧傾人國。寧不知傾城與傾國,佳人難再得!」上嘆息曰:「善!世豈有此人乎?」平陽主因言延年有女弟,上乃召見之,實妙麗善舞。由是得幸,生一男,是為昌邑哀王。李夫人少而蚤卒,上憐閔焉,圖畫其形於甘泉宮。及衛思后廢後四年,武帝崩,大將軍霍光緣上雅意,以李夫人配食,追上尊號曰孝武皇后。初,李夫人病篤,上自臨候之,夫人蒙被謝曰:「妾久寢病,形貌毀壞,不可以見帝。願以王及兄弟為託。」上曰:「夫人病甚,殆將不起,一見我屬託王及兄弟,豈不快哉?」夫人曰:「婦人貌不修飾,不見君父。妾不敢以燕惰見帝。」上曰:「夫人弟一見我,將加賜千金,而予兄弟尊官。」夫人曰:「尊官在帝,不在一見。」上復言欲必見之,夫人遂轉鄉歔欷而不復言。於是上不說而起。夫人姊妹讓之曰:「貴人獨不可一見上屬託兄弟邪?何為恨上如此?」夫人曰:「所以不欲見帝者,乃欲以深託兄弟也。我以容貌之好,得從微賤愛幸於上。夫以色事人者,色衰而愛弛,愛弛則恩絕。上所以攣攣顧念我者,乃以平生容貌也。今見我毀壞,顏色非故,必畏惡吐棄我,意尚肯復追思閔錄其兄弟哉!」及夫人卒,上以后禮葬焉。其後,上以夫人兄李廣利為貳師將軍,封海西侯,延年為協律都尉。

효무제의 이(李) 부인은 본래 기생으로서 (황궁에) 들어왔다. (그보다) 앞서, 부인의 오빠인 이연년(李延年)은 천성적으로 음률을 잘 알았고 가무에 능했으므로 무제가 아꼈다. 곡조를 바꿔서 새로운 노래를 할 때마다 듣고 감동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연년이 황제를 모시면서 일어나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길,

북방에 미인이 있어
세상에 비길 데 없이 홀로 서 있으니
한 번 돌아보면 그 사람의 성(城)이 기울고
두 번 돌아보면 그 사람의 나라가 기운다네.
차라리 성이 기울고 나라가 기우는 것을 모르리라
미인은 다시 얻기 어려우니!

황제가 탄식하며 말했다. "좋구나. 세상에 어찌 그런 미인이 있겠는가?" 평양 공주가 (그런 미인으로) 이연년의 여동생이 있다고 하자, 황제가 불러서 만나 보았더니 실로 아름답고 고왔으며 춤도 잘 추었다. 이로 말미암아 승은을 입어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바로 창읍 애왕(昌邑哀王)이다. 이 부인은 젊어서 요절했으므로 황제가 가엾게 여겨 그 모습을 감천궁(甘泉宮)에 그려 놓았다. 위 사후(衛思后)가 폐위되고 4년이 지난 뒤에 무제가 붕어하자 대장군 곽광(霍光)이 황제의 고상한 뜻을 들어 이 부인을 종묘에 모시고 효무황후라는 존호를 올렸다.

(그보다) 앞서, 이 부인이 병으로 위독했을 때 황제가 친히 가서 살펴보았는데 부인이 이불을 덮어쓰고는 사양하며 말했다. "신첩이 오랫동안 병을 앓느라 얼굴이 망가졌으므로 황제를 뵐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창읍왕[2]과 제 오빠 동생들을 돌봐 주십시오." 황제가 말했다. "부인의 병이 심해 위태롭기가 장차 일어나질 못하므로, 한 번 나를 보며 창읍왕과 오빠 동생을 부탁하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부인은 용모가 꾸며지지 아니하면, 군주와 아버지를 보지 않습니다. 신첩은 감히 흉한 몰골로 폐하를 뵐 수 없습니다." "부인이 단 한 번만 나를 봐 준다면 황금 천 근을 하사하고 오빠와 동생에게 높은 관직을 내리겠다." "높은 관직은 황제께 있는 것이지, 한 번 보는 일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황제가 그 얼굴을 대하고 싶다고 재차 부탁했으나 부인은 결국 더욱 흐느껴 울기만 하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이에 황제는 말도 안 하고 일어났다. 부인의 언니와 동생이 꾸짖었다. "귀인[3]께서 딱 한 번만 황제를 대하고 오빠와 동생을 부탁하면 안 됩니까? 어찌하여 이같이 황제를 한스럽게 하십니까?"

부인이 말했다. "황제를 보지 않겠다고 한 것은 오빠와 동생을 더 잘 부탁하려고 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용모가 좋아서 비천한 신분으로도 황상의 총애를 받았던 것입니다. 대저 미모로 사람을 섬기는 자는 미모가 시들면 사랑도 식고 사랑이 식으면 은총도 끊어지게 됩니다. 황제께서 저를 깊이 그리워하고 지난날을 생각하며 어여삐 여기시는 것도 평소의 생생한 용모 때문이니, 이제 저의 망가진 모습을 보시면 얼굴이 예전 같지 않아서 반드시 싫어함을 드러내고 저를 버리실 터, 제 뜻은 오히려 즐겨 다시 가엾게 생각하시고 오빠와 동생을 돌보아 주시라는 것이지요!"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황제가 황후의 예로 장례를 치뤘다. 그 뒤에 황제가 부인의 오빠인 이광리를 이사장군(貳師將軍)으로 삼고 해서후(海西侯)에 봉했으며, 이연년은 협률도위(協律都尉)에 임명했다.
한서 漢書》〈외척전 外戚傳〉
중국 한무제(漢武帝) 때 훗날 음악을 관장하는 벼슬인 협률도위(協律都尉)가 되는 이연년(李延年, ? ~ 기원전 101)이 지은 시[4]에서 "북방에 미인이 있어, 세상에 비길 데 없이 홀로 서 있으니, 한 번 돌아보면 그 사람의 성(城)이 기울고, 두 번 돌아보면 그 사람의 나라가 기운다네. (北方有佳人,絕世而獨立,一顧傾人城,再顧)"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서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단어가 유래했다.

이 시를 들은 무제는 그 곡조에 감동해서 "세상에 그런 미인이 있겠는가!"하고 짧게 탄식하듯 말했는데, 옆에 있던 평양 공주가 이연년의 여동생이 그런 절세가인이라고 알려주었고, 호기심이 동해 불러 직접 만나보니 역시나 무제는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와 날아갈 듯 춤추는 솜씨에 곧 매혹되었다. 이 여인이 무제의 만년에 총애를 독차지했던 이부인(李夫人)이다. 그녀는 아들 창읍애왕을 낳고 곧 죽을 병에 걸렸는데, 무제가 친히 문병을 와서 얼굴 보기를 청하였으나, 이부인은 초췌한 얼굴을 무제께 보이기 싫다며 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무제는 화가 나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이부인이 죽은 뒤 그리움은 더욱 깊어져 그녀의 장례를 황후의 예로서 치뤄주고 그녀의 형제들에게는 높은 관직을 내렸다.

3. 고찰

이러한 고사가 만들어진 것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남성이 빠지기 가장 쉬운 욕망이 바로 성욕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경국지색의 사례들은 (고사가 중국에서 만들어졌으니 당연하지만) 중국 고대사에 특히 많이 나오는데, 문제는 말희, 달기, 포사, 서시, 초선 등의 스토리가 세부적인 디테일만 제외하면 하나같이 판에 박힌듯 똑같다는 것이다. 심지어 실존여부를 의심받는 말희나 아예 가공인물인 초선의 스토리까지도 똑같다는 것은 당시의 여성에 대한 시각이 반영되었다고 보여진다.

당시 이나 제후 등 역사의 주인공은 거의 반드시 남성이었으며, 여성은 철저히 부차적인 존재였다. 물론 이는 중국만 그런 것은 아니고 특수한 몇몇 사례를 제외한 당시의 국가 대부분이 그랬다. 주색잡기(酒色雜技)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성은 아예 이나 도박과 같은 '대상'으로 취급되었다. 당장 말희, 달기, 포사, 서시, 초선 등의 스토리(정사의 기록이든 소설의 창작이든)에서 당사자들은 군주를 주색에 빠뜨리기 위해 적이 동원한 '매개체'로만 등장하지 당사자 본인의 인간적 의지가 투영된 장면은 거의 없다. 기껏해야 일이 다 끝난 후 자살했다느니 하는 후대의 창작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미인계를 기반으로 한 연환계 가운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초선의 케이스가 특별 취급을 받는 것이다. 현대 매체에서 많이 등장하는 팜 파탈 캐릭터들이 대부분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한다는 것과 대조적이다.

4. 목록

5. 여담

  • 현대 중국어에서는 '경국지색(傾國之色)' 대신 경국경성(倾国倾城), 국색천향(国色天香), 천자국색(天姿国色)을 사용한다.
  • '성을 기울게 하는 미인'이라는 뜻의 경성지미()와 보통 함께 쓰인다.[7]
  • 팜 파탈의 동양 버전이지만, 아주 같지는 않다.

6. 관련 문서


[1] 여기서 色은 '미색', '미모'를 가리키지 '미인'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다.[2] 이 부인과 효무제 사이의 아들. 앞에서 말한 창읍 애왕(昌邑哀王)을 가리킨다.[3] 이(李) 부인을 가리킨다.[4] 경국지색이란 단어만큼이나 유명한 시. 장예모 감독의 영화 연인에서 장쯔이가 노래로 부르기도 했다. #[5] 다만 왕소군은 나라를 기울게 하기보다는 한과 흉노의 화평의 상징이 되면서 오히려 양국의 정세를 안정시켰다.[6] 평원대군[7] '경성지미'는 경국지색의 하위호환으로 종종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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