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8 02:52:29

이인성(화가)

1. 개요2. 상세

1. 개요

李仁星

파일:external/www.snunews.com/11916_6048_3220.jpg

대구 출신의 서양화가. 1912년에 태어났다.

2. 상세

다수의 수상경력이 있고 1938년 개인전, 1940년 김인승(金仁承)·심형구(沈亨求)와 함께 3인전을 가졌으며 개인 아틀리에를 열어 후배를 양성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작품경향은 인상파적인 감각주의에서 그의 이국취향과 토속적 소재를 발전시켰다. 작품으로 《경주(慶州)의 산곡에서》 《실내》 등이 있다. 한국의 고갱이라는 평가도 있다. 수창공립보통학교(13회)를 졸업했다.

술을 즐겨먹고 호탕한 성격이었는데 이게 화근이 되어 비참하고 안타깝게 짧은 삶을 끝냈다. 1950년 11월 밤 술 먹고 밤길에 경찰에게 호통치다가 총살당했다. 물론 6.25 전쟁이 한창이던 터라 심야 통행금지 법규가 정해져 있던 시기지만 그가 큰소리치자 경찰들이 높으신 분인지 알고 보내줬다고 하지만 어느 동네 주민에게 물어보니 그냥 평범한 화가라고 말하자 이에 화가 난 경찰들이 집까지 쫓아와 잡아간다고 소리쳤고 이 와중에 한 경찰이 공포탄인지 알고(그 경찰 주장에 의하면) 쏜 게 실탄이었다. 경찰들은 자기들이 한 짓을 숨기고자 한동안 간첩이니 친북이니 해서 억울하게 매장되었다가 사후 지인들의 필사적인 조사로 억울하게 죽은 게 드러나서 관련자들이 처벌받긴 했지만 경찰이라고 하여 과실치사 정도로 대충 면직 처분 정도 솜방망이 처벌을 가했다고 한다. 여하튼 전쟁 당시 비전투 지역이었던 후방에서도 그 시절 치안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알 수 있다. 석주명도 억울하게 군인들에게 무고하게 사살당하고 범인이 밝혀지지 않았듯이 말이다.

사후 평가가 극과 극인데 그가 참여했던 조선미전은 일본에서 한국의 화풍을 일본에 동화시키고자 설립한 것으로, 1930년대 중후반을 지나며 일제는 조선미전에 향토색 짙은 작품제작을 요구했다. 여기서 말하는 ‘향토색’은 한국을 전근대적이며 정체된 식민지 풍경으로 묘사하라는 주문을 담은 말이었기 때문에 이런 풍경을 즐겨 그리던 그에게 친일 논란이 있었다. 이인범 교수(상명대 조형예술학과)는 “이인성은 관전과 같은 일제의 제도적 인프라를 통해 성공했다”며 “그에 대한 평가가 일제의 이데올로기와 별개로 이뤄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물론 반론도 있다. 화가 손동진(1921~ )은 이인성이 그림을 배우며 입상하던 30년대 그림을 그리자면 조선미전에 참여할 수 밖에 없었다며 친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반론했다. 그래도 김기창이나 김은호 같이 대놓고 친일 선전물 같은 그림을 그려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화가와 달리 이인성이 그린 당시 풍토적인 모습이 꼭 친일로 보기에는 어렵다고 판단해서[1]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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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렇게 치자면 유명화가인 박수근이라든지 여러 화가도 해당한다는 반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