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07:20:53

이상훈(좌완투수)/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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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코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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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상훈(좌완투수)의 지도자 경력을 다루는 문서.

은퇴 후 밴드 활동, 개인 사업 등으로 아예 야구와 거리를 두고 지냈지만, 그래도 야구에 아예 손을 놓지 않았는지, 2010년 이후로는 LG 시절에 함께한 후배 전승남과 함께 하남시에서 'J47 스포츠 스쿨' 이라는 야구 클럽을 운영하기도 했고,[1] 대치중학교와 배재중학교 등에서 인스트럭터 역할을 하며 아마추어 야구부 선수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2. 코치 경력

2.1. 고양 원더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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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원더스의 투수코치가 된 이후. 상징과 같았던 장발과 수염을 정돈하였다.[2][3]

2012년 시즌 후 스승인 김성근 감독의 권유로 고양 원더스의 투수코치로 합류, 본격적으로 야구계에 돌아왔다. 그리고 외모가 깔끔하게 정돈됐다.

2014년 9월 고양 원더스가 해체되면서 원더스의 수많은 선수, 코치진들이 무직 신세가 되어 버렸고, 이상훈 코치 역시 마찬가지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에 많은 LG 팬들이 2015 시즌 이상훈이 코치로 친정 팀에 복귀해 주기를 염원하고 있다.

하지만 팬들의 바람과 다르게 2014년 10월 30일, 결국 스승인 김성근 감독의 뒤를 따라 한화 이글스로 간다는 기사가 나왔다. 관련 기사 하지만 이상훈 코치 본인이 직접 아니라고 알려 왔고, 그 소식을 들은 LG 팬들은 다들 안심했지만....

이보다 더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이상훈의 거취는 김성근의 한화도, 친정 팀인 LG도 아니었다.

그 행선지는......

2.2. 두산 베어스 시절

바로 잠실 라이벌 팀인 두산 베어스였다.관련 기사

두산 프런트는 이상훈에 대해 "검증되지는 않았으나, 좌완 투수를 육성하는 데 최적의 인물로 판단되었다"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송일수 감독 관련으로 욕을 바가지로 먹은 두산 프런트의 입지를 되살리고 무엇보다 두산의 고질병 오브 고질병인 "좌완투수 잔혹사"를 끝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전의 LG와의 악연이 끝내 걸린 것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으나, 어쨌든 영원한 LG맨이라고 생각되던 이가 하필 다른 곳도 아닌 잠실 라이벌 팀에 간 것 때문에 많은 LG 팬들이 멘붕했다.

하지만 기사 직후 인터뷰에서 아직 확정된 적이 없다고 했다. 다만 두산 베어스와의 논의는 현재진행형이고, 한화 이글스는 비공식적으로도 제의가 없었다고 한다. 알다시피 2010년의 일 때문인지, LG 트윈스에서도 이상훈에게 코치 제의를 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일단 11월 30일까지 고양 원더스의 코치로서 활동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의 인터뷰를 보면, 두산행을 굳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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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기자회견이 아니다
원더스에서의 활동이 끝난 날인 2014년 11월 30일, 잠실에서 열린 '2014 곰들의 모임'에서 신임 코치 환영식 때 정식으로 인사했다. 이로서 두산행 확정.

김태형 감독은 이상훈을 2군 투수코치로 기용한다고 밝혔다.[4] 여담이지만 김태형 감독과는 사적으로 조금 친한 편이었다고 한다.[5] 그리고 김태형 감독이 갓 취임한 후, 이상훈에게 연락하여 코치 제의를 했다고 한다.

2015 시즌 2군에서 괜찮은 투수를 발굴해 내면서 두산 팬들에게 투수코치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1군에 올라와 깜짝 선발로 등판해 호투를 펼친 김수완허준혁이나, 2군에서 영점을 잡고 돌아와 괜찮은 모습을 보이는 오현택 등을 보면 확실히 선수를 길러내는 데 능력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두산 베어스는 2015년 전반기가 끝난 시점에서 좌완 투수들이 총 30승(유희관 12승+장원준 9승+진야곱 3승+허준혁 2승+함덕주 2승+이현승 1승+이현호 1승)을 합작, 좌완투수 잔혹사를 완전히 털어내고 선발 4명이 좌완 투수인 좌완 왕국으로 거듭났다. 덧붙여 비록 2군에 있어서 현장에 같이하지 않았지만, 본인은 21년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았다.

2.3. LG 트윈스 시절

파일:76195430.3.jpg
코치로서 다시 친정팀 LG의 일원이 됐었던 3년 [6]

2015 시즌 후 LG로 복귀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LG 프런트가 직접 이상훈의 상징성을 들어 두산 프런트를 설득한 끝에, 두산에서 이상훈의 LG행을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이에 각 커뮤니티의 LG 팬들은 일제히 감동의 눈물을 쏟고 있다.[7]

그러나 두산 팬들은 '이제 겨우 팜 구실이 갖춰지나 했는데, 유능한 투수코치를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냐'며 두산 프런트를 신랄하게 까고 있다.

정식으로 계약해 11년 만에 코치로 줄무늬 유니폼을 입게 된 이상훈 코치는 투수 육성을 위한 LG 구단 내부의 피칭 아카데미 초대 원장을 맡게 되었다. 이는 삼성 라이온즈의 BB 아크같은 기초 육성 시설을 벤치마크한 것이고, 2016년부터 류택현 2군 투수코치가 육성군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았을 때 아카데미는 육성군과 별도로 운영하는 듯하다. 두산에서 그의 2군 투수 유망주 지도가 괜찮게 검증받은 것도 LG 프런트의 마음을 이끈 듯.

비록 2009년과 2010년에 구단과 불쾌한 일이 있었지만, 이상훈은 LG에서 코치로 다시 불러 주어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포수 조윤준이 이상훈 코치를 위하여 자신이 쓰고 있었던 47번을 양보하기로 하여 이상훈은 코치로도 47번을 달게 됐다.

2016년 10월 8일 마지막 홈경기에서 시구자로 나서게 되었다. 무려 13년만에 LG 소속으로 잠실의 그라운드에 등판한다. 이미 팀은 4위로 포스트시즌을 확정지은 상태. 이날 경기는 클래식 유니폼 데이로 검은색 원정 유니폼이 오랜만에 다시 부활하는 경기이기도 하다. 시타는 노찬엽 코치가 맡았으며, 이날 이상훈 코치는 현역 시절처럼 불펜에서 몸을 풀다가 마운드로 뛰어나와 현역 시절 못지 않은 1루 견제와[8] 시구를 보여주었다.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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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그의 어퍼컷 세리머니.

2017년 들어 LG 투수진에 김대현, 고우석 등 20대 초반의 젊은 투수들이 1군에 올라와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자 피칭 아카데미 원장으로써 좋은 평가를 받는 중이다.

시즌이 끝난 뒤 11월 17일 스포티비 객원해설위원으로 2017 APBC 대회 한국:대만전 해설을 하였다. 처음이고 옆에 선배인 김경기가 있어서 그런지 중간에 말하는 타이밍을 잘 잡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중저음의 목소리가 여성 시청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2018년 들어 LG가 Again 2011을 시전하면서 이상훈 코치에 대한 평가도 하락하고 있다. 전년도와는 다르게 투수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 다만 투수라는 게 키우기 쉬운 것도 아니여서 섣부른 비판만 할 수도 없다.

그리고 "피칭 아카데미가 사라진 게 이유"라며 LG 코치직에서 사퇴하며 친청팀과는 3년만에 다시 헤어지고 말았다. LG 이상훈 코치 자진 사퇴 피칭 아카데미 해체는 양상문이 LG를 나가기 전에 한 일로 새로 온 차명석 단장과는 관계 없는 일이다. 이후 인터뷰에서는 구단에서 2군 코치직을 제안했지만 봉급만 받고 있을 거면 있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사퇴했다고 한다.

항간에는 차명석 단장과 선수 시절부터 서로 성향이 안 맞아서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소문이[9] 있었지만 불투명한 게 사실. 다르게 보면 한편으로는 팀 투수진의 성적 부진에 대해 나름의 책임을 진 거라는 평도 있다. 선수시절부터 책임감이 투철한 성격이기도 했고, 투수 분야가 완전히 무너져 버리면서 팀이 추락한 것이 더해졌다는 해석.. 향후 2019년 2월 10일 이영미 기자 인터뷰를 통해 지난 시즌 1군 성적이 안 좋으니깐 피칭도 소문이 안 좋았던 게 사실이었다고 한다. 물론 기사를 통해 알았다고 했으며 팀 성적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게 맞다며 팀에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아쉬워했다고.. 다만 그냥 팀에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나왔다고 한다.
작년 시즌 후반기부터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요. 1군 성적이 좋지 않으니 아카데미까지 여파가 올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기사를 통해 피칭 아카데미를 없애겠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제가 학원 원장인데 학원이 폐지되는 걸 기사로 알게 된 것이죠. 팀을 이끄는 수장이 바뀌면 정책에 변화가 올 수 있습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인 것이죠. 그래도 직접 얘기해주기를 바랐습니다. - 이영미 기자 인터뷰 중-

차명석 단장이 47번을 비워놓고 이상훈 원장을 다시 기다리겠다고 말하면서 LG의 47번은 비공식적이나마 영구결번이 되었다.

2019년 시즌 초반, 그의 지도를 받은 김대현이 빠른 배팅볼과 직구와 다름없는 슬라이더를 던지는데 반면 고우석최일언 코치와 함께 바꾼 슬라이더 그립으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상훈의 코칭 능력에 대한 평가가 급하락했고, 지난 3년간 대체 한 게 무엇이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1] 여담으로 이 때 지도한 선수 중 하나가 황덕균이다. 황덕균에 의하면 두산에서 방출당한 뒤 공익 복무를 마치고 방황하던 중 지인의 소개를 통해 이상훈과 전승남을 만났고, 투구 지도를 거쳐 일본 독립리그 팀 서울 해치의 입단 테스트도 주선해 줬다고 한다.[2] 이상훈이 고양 원더스로 올 때 김성근이 첫 미팅에서 수염을 보고 그게 뭐냐고 지적하자 수염을 자르고 왔다고 한다. 이상훈과 김성근이 LG 트윈스 선수와 감독으로 만났을 때에도 이게 문제가 되었었는데, 이 때도 김성근이 이상훈에게 머리를 자를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이상훈은 머리는 자를 수 없다고 했고, 김성근은 "너만 예외를 인정할 수는 없다. 너뿐 아니라 어느 선수도 머리를 자르게 하지 않겠다."라고 넘어갔다. 그러나 김성근의 성격 상 지도자 수업 중에는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상훈 본인도 후배들을 가르치기에는 긴 머리가 적절치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잘랐다.[3] 다만 머리카락은 원더스 합류 이전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정리했다고 한다. 기사[4] 2군 투수코치로 보직을 선택한 이유는, 1군 투수코치로 올리면 특히 잠실 야구장에서 일부 LG 팬들로부터 야유받을 우려가 있어서였다.[5] 김태형 감독이 전자기타 연주를 좋아해서 이상훈과 같이 술마시고 기타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기사[6] 이 사진이 정말 애틋한 사진인 것이 이상훈은 저 글씨체의 유니폼을 입기 직전에 팀에서 강제 트레이드되었고, 이상훈이 돌아온 1년 뒤에 멋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구홍로고 유니폼으로 교체되었기 때문. 2016년에 팀에 돌아온 덕분에 이상훈은 LG의 3가지 유니폼(1990~2005, 2006~2016, 2017~)을 전부 입고 사진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7] 실제로 이동현은 이상훈의 복귀 소식이 수면위로 오르자 바로 이상훈에게 전화했다고 한다.[8] 훗날 밝힌 비하인드 스토리에 의하면 원래는 계획에 없었으나 당시 1루를 보던 정성훈과 눈이 맞아 즉흥적으로 견제구를 보여줬다고 한다.[9] 엠팍에서는 또 다른 글이 있었다. 이상훈 코치 아내의 글이 "구단에서 쫓아냈다" 등 안 좋은 글이 돌기도 했지만 자세한 건 불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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