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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호(야구)

이명호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44번
박종호
(1998~1999)
이명호
(2000~2001)
루크
(2002)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5번
신성필
(1996~2001)
이명호
(2002~2002.4.28.)
권동식
(2003~2004)
{{{#000000 [[롯데 자이언츠|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24번}}}
정진식
(2000~2001)
이명호
(2002.4.29.~2003)
손인호
(2004~2006)
}}} ||
파일:빈 정사각형 이미지.svg
이명호
Lee Myeong-ho
출생 1981년 2월 10일 ([age(1981-02-10)]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학력 배명중 - 배명고
포지션 외야수[1]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2000년 2차 2라운드 (전체 13번,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2000~2002)
롯데 자이언츠 (2002~2003)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연도별 주요 성적5. 여담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배명고등학교 출신으로, 2000년도 2차 지명에 나온 최고의 고교생 타자로 각광받았다. 신인 지명 당시 제 2의 이승엽이 될 수 있는 타자라는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1999년 제33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동기생 심수창과 활약하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으나, 2학년 투-타겸장 에이스 추신수와 내야수 정근우가 있던 부산고에게 3-6으로 패했다. 이명호 본인은 타격상(타율 0.545)와 최다홈런상(3홈런)을 수상했다.

2.2. 삼성 라이온즈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으며, 김태균과 함께 임재철과 맞트레이드되어 롯데로 이적한다.

2.3. 롯데 자이언츠

그러나 당시 롯데의 감독이었던 백인천이 이명호가 어깨가 좋다는 이유로 그를 타자에서 투수로 전향시킨다.[2] 그것도 좌완 사이드암 투수로, 이유는 좌완 사이드암 투수는 희귀하니까.

이후 백인천이 롯데 감독에서 해임된 이후 다시 타자로 복귀하지만, 타격감은 잃어버린지 오래라서 결국 은퇴를 하고 만다.

3. 플레이 스타일

파일:이명호투구폼.gif
좌완 사이드암 투수는 희귀하다는 이유로 사이드암으로 던졌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타자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0 삼성 1군 기록 없음
200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2 삼성 / 롯데 7 11 0.091 1 0 0 0 0 1 0 0 .091 .091
2003 롯데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1시즌)
7 11 0.091 1 0 0 0 0 1 0 0 .091 .091
역대 투수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0 삼성 1군 기록 없음
2001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2 삼성 / 롯데 21 14⅔ 0 0 0 1 4.30 15 2 10 11 7 7 1.64
2003 롯데 11 5 0 0 0 0 3.60 6 0 5 1 2 2 2.00
KBO 통산
(2시즌)
32 19⅔ 0 0 0 1 4.12 21 2 15 12 9 9 1.73

5. 여담

  • 아버지 이교준 씨도 배명중 - 배명고 - 연세대에서 야구선수로 활약했다. 아들에게 "힘든 야구를 하지 말라"고 만류했으나 이명호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승낙했다고 한다.

6. 관련 문서


[1] 외야수투수외야수 순으로 전향했다.[2] 이는 당시 롯데의 참담한 투수력 상황과 전년도의 롯데 타선이 썩 나쁘지 않았다는 점의 두 가지 요인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투수력이야 할 말 없고... 이명호가 트레이드되기 전 해인 2001년 이명호가 들어갈 수 있을 외야수 자리에는 조경환과 김대익 등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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