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01 17:25:18

유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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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약과(藥果). 약과라고 둥근 꽃 모양만 있는 건 아니다.

유밀과밀가루, , 참기름으로 반죽한 것에 무늬를 찍고 기름에 튀겨 집청한 것(조청에 담근 것)으로,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건 약과가 대표적이다. 요즘 볼 수 있는 공장제 약과에선 볼 수 없지만 제대로 만든 것, 특히 개성의 약과는 서양의 페이스트리처럼 반죽에 층이 생긴다. 맛이나 질감도 확연히 다르다. 다식처럼 무늬를 찍어서 만들기 때문에 다른 말로 다식과(茶食果)라고도 부르고, 모양이나 세부적인 재료에 따라 매작과, 만두과 등의 종류도 있다. 옛날에는 약과를 '과줄'이라고 불렀다.

옛 기록에는 심심하면 "유밀과의 제조를 금한다"고 나온다. 도 귀하던 조선 시대에, 이 한과의 재료는 당시 쌀 이상으로 귀하던 밀가루기름 또는 조청[1]을 섞어 반죽하여 말린 뒤 기름에 튀겨 다시 조청에 절여내는 과자였기 때문. 유과와 비교할 때 재료의 비용과 더불어 감미료와 기름[2]의 소모량이 상당한 고급 과자였다.

유과는 겉에 조청을 묻히는 정도지만 유밀과는 최대한 과자 사이사이에 조청이 스며들도록 절여낸다.[3] 위에서 언급한 페이스트리와 같은 결이 생기는 개성약과의 경우, 결 사이사이에 조청이 스며들어 한 입 베어 물면 조청이 결 사이에서 배어 나오는 경지에까지 이른다. 그야말로 꿀과자. '다식과'라고도 불렸듯이 모양을 찍기 위한 이 한과만의 별도의 도구가 필요한 점도, 당시 귀한 과자로 몸값을 올리는 원인이 되었다.

춘향전에서 암행어사 이몽룡이 출두할 때, 변 사또는 한 손에 이것을 들고 깨작거리고 있었다. 변학도는 남원부사인데 부사는 종3품 관직이다. 현대 군대로 치면 준장급으로 그럭저럭 부릴 수 있는 사치.

하지만 유밀과도 밀가루와 유지, 감미료의 비용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가 하락한 데다가 틀에 찍어내어 튀긴다는 대량생산에 적합한 공정까지 더해져서, 오늘날에는 가장 흔한 한과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수제 고급 한과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유과와는 달리 아직도 가장 비싼 종류의 한과이다.[4]

고려 충렬왕원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유밀과를 그렇게 좋아했다고. 그 당시 고려병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고, 지금도 몽골의 과자 중 이때의 교류로 영향을 받은 과자[5]가 있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유밀과 생산이 활발했다. 고려는 불교 국가라 살생을 금했기에 어육류를 제사상에 올릴 수 없었는데, 그것 대용으로 물고기 모양 유밀과 따위를 제사상에 올린 것. 붕어빵 유밀과 소비량이 지나치게 많아 제사상에 유밀과 대신 과일을 올리게 했다고 한다. 원래 과자 종류가 과일의 대체품으로 올라가던 것을 생각하면...

유밀과의 종류로 약과, 만두과, 다식과, 박계, 매작과, 요화과 등이 있다.

[1] 조청도 쌀로 만든 물엿이니 만만한 재료가 아니다.[2] 더욱이 이 당시 유밀과에 사용되는 기름은 죄다 참기름이었다. 지금도 참기름은 상당히 고가의 기름인데, 대량생산이 불가능했던 옛날에 귀하고 비싼 참기름을 이용해 튀겨냈으니 엄청난 사치스러움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3] '집청'이라고 한다.[4] 흔히 5~6개 단위로 포장되어 파는 미니유과를 먹어보면 그저 뻑뻑할 뿐 단맛을 느끼기 어려우며, 제수용으로 파는 유과도 맛있는 것을 찾기란 쉽지 않지만 적어도 미니유과 같지는 않다. 그만큼 대량생산에서도 격의 차이가 확실한데, 수제로 넘어간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5] 매작과와 거의 제법과 모양이 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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