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16 19:21:40

왕하오

파일:왕하오.jpg
<colbgcolor=#131230><colcolor=#eee156> 이름 왕하오(王皓, Wáng Hào)
출생 1983년 12월 15일([age(1983-12-15)]세)
지린성 창춘시
국적 중국 파일:중국 국기.svg
신체 175cm, 72kg
종목 탁구
전형 오른손 / 중국식 펜홀더 이면타법
특기 백핸드(이면) 플릭, 백핸드(이면) 드라이브
별명 이면타법의 달인

1. 소개2. 플레이 스타일3. 사용 용구4. 수상 기록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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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중국의 前 남자 탁구 선수이며, 마린, 왕리친과 함께 2000년대 중국 탁구 트로이카 중 한 명이다. 한국인들에겐 2004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에서 유승민에게 패배한 선수로 유명하다. 은퇴한 이후에는 중국 국가대표팀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1]

2.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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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오 하이라이트 영상
중국 펜홀더 최고의 백핸드를 가졌던 선수로 평가받는다. 펜홀더 특유의 강력한 포핸드 공격[2][3] 과 이면 타법을 통한 중진 양핸드 드라이브가 주 전략이다. 대부분 펜홀더 선수의 경우 탈인간급 순간 풋워크와 포핸드 파워드라이브에 대부분을 투자한다는 점과 대비된다. 또한 근력을 바탕으로 폭발적으로 힘을 사용하는 임팩트보다는 부드러운 힘의 이용과 체중이동, 양핸드 랠리 운영으로 플레이한다는 것도 펜홀더 선수로서는 특이한 점이다. 서브같은 경우엔 테이블 중앙 쯤에서 공격을 편하게 하기 위해 다양한 구질의 짧은 훅서브를 상당히 자주 넣었다.

왕하오는 사실상 중펜을 완성시킨 선수라고도 할 수 있다. 이면 백핸드 플레이를 크게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현대 탁구 셰이크핸드 전술의 백핸드 위주 플레이는 왕하오가 이미 일찍부터 많은 부분 실천하고 있었다. 왕하오의 치키타 이후 백핸드 연속 공격 기술, 코스 전환 등은 확실히 시대를 앞서간 플레이였다고 할 수 있다. 왕하오의 백핸드는 자세, 위력, 컨트롤 모두 일품이다.[4] 장지커 급의 백핸드를 가진 선수를 제외하고는 백핸드만으로 쉐이크핸드 선수에게 주도권을 쉽게 가져간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알려준다.기존 류궈량과 마린의 경우 보조무기로써의 성격이 강했던 이면타법을 양면 러버 중펜의 과도기 시절[5]에 이렇게까지 발전시킨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재능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왕하오의 최고의 업적 중 하나이다. 또한 수비수 킬러로 유명하다. 중국풍 타법과 중펜의 강력한 포핸드를 바탕으로 수비수에게 까다로운 공을 주는 동시에, 왕하오의 완벽한 완급 조절 능력으로 수비수가 공략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6] 현재 수비수 킬러 중펜 포지션은 쉬신이 물려받았다.

리치가 아주 길진 않았다는 점을 제외하면 탁구 기술적인 면에선 약점이 많이 없는 탁구선수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마룽 이전엔 탁구에서 가장 강력한 중진 공격수였다고 할 수 있다. 실수 비중이 적으며, 플레이를 보다 보면 펜홀더가 어떻게 저렇게까지 양핸드 드라이브를 위력적이면서도 꾸준히 안정적으로 넣을 수 있는지 의문일 따름이다. 이 안정성은 그의 탁구에 적합한 신체[7], 뛰어난 다음 볼 예측과 준비, 그리고 그만의 특출난 팔과 손목 감각에서부터 나온다. 단순히 드라이브의 파워와 안정성만 좋았던 게 아니라 탁구지능과 기술 자체가 매우 뛰어난 선수였다. 백핸드 플릭을 세계에서 가장 잘한다고 일찍부터 평가받던 선수가 왕하오였다. 안정적인 선제공격에 이은 공격랠리, 코스 선정 모두 훌륭했다. 특히 백핸드 치키타를 상대방의 백쪽으로 한 후 돌아오는 볼을 빠르게 상대 포핸드쪽으로 백드라이브를 거는 코스 가르기 플레이는 일품. 왕하오는 상대방의 강점을 억제하며 침착하게 랠리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나가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한다. 일단 상대방에게 기회를 잘 주지 않는다. 때문인지 왕하오는 절대다수의 선수들을 상대로 상대전적상 우위이며,[8]마룽을 상대로 가장 상대전적이 좋은 선수가 왕하오다. 상대전적이 엇비슷한 왕리친, 마린, 마룽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선수를 상대로 압도적으로 승률 차이가 날 정도로 뛰어난 전적의 보유자이다. 유일하게 왕하오를 상대로 압도하는 전적을 보유한 선수는 천적인 장지커다. 왕하오는 장지커와 총 5번의 메이저대회 결승에서 만나 1번 승리하고 4번을 패배했다.

3대 메이저 대회에서도 결승전까지는 어려움 없이 올라가지만 결승전에서는 비교적 약해지는 편이다. 최전성기였던 2007년과 2009년엔 결승전에서까지 압도적인 포스와 경기력으로 대회를 우승했다. 그러나 나머지 대회 결승에선 이전의 8강, 4강전때에 비해 경기력과 화이팅이 2% 혹은 그 이상 부족한 모습이었다. 결승전 경기운영도 아쉬웠다. 그에게도 분명히 이길 기회가 있던 세트에도 같은 전술을 반복해서 사용하거나 실패해 해당 세트 역전패를 당하는 경우가 있었다. 결승전에 올라가면 묘하게 평소에 비해 실수가 많아지고 상대의 노림수에 잘 당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이는 그가 3대 메이저대회 단식에서 무려 12번이나 결승에 진출했으나 우승 횟수는 4회[9] 에 그치고 준우승을 8번이나 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이렇듯 왕하오는 훨씬 더 뛰어난 커리어를 가질 수 있었으나 번번히 2위를 해버렸고, 특히 3회 연속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해 큰 여운을 남긴 탁구계 대표 콩라인 선수이다.[10] 끝끝내 올림픽 금메달 획득에 실패해 결국 그랜드슬램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가 커리어 내내 선보인 출중한 탁구 실력은 널리 인정받고 있다.

3. 사용 용구

전면 네오스카라인 3 블루스펀지, 후면 브라이스 백색폰지로 튜닝된 스라이버[11], 블레이드는 DHS 허리케인 하오 시리즈를 사용한다.[12]당시 공의 직경이 커지고 스피드글루가 금지되면서 점점 블레이드의 반발력이 높은 용품을 찾은 듯하다.[13]

4. 수상 기록

올림픽
<colcolor=#333> 금메달 2008 베이징 단체전
금메달 2012 런던 단체전
은메달 2004 아테네 단식
은메달 2008 베이징 단식
은메달 2012 런던 단식
세계선수권
금메달 2005 상하이 남자 복식
금메달 2009 요코하마 남자 복식
금메달 2009 요코하마 단식
은메달 2003 파리 남자 복식
은메달 2007 자그레브 남자 복식
은메달 2011 로테르담 단식
은메달 2013 파리 단식
동메달 2003 파리 혼합 복식
동메달 2007 자그레브 단식
동메달 2011 로테르담 남자 복식
세계 팀선수권
금메달 2004 도하 단체전
금메달 2006 브레멘 단체전
금메달 2008 광저우 단체전
금메달 2010 모스크바 단체전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6 도하 단체전
금메달 2006 도하 단식
금메달 2010 광저우 단체전
은메달 2010 광저우 단식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2003 방콕 단체전
금메달 2003 방콕 단식
금메달 2005 제주 단체전
금메달 2007 양저우 단체전
금메달 2007 양저우 단식
은메달 2007 양저우 남자 복식
동메달 2003 방콕 남자 복식
월드컵(단식)
금메달 2007 바르셀로나 단식
금메달 2008 리에주 단식
금메달 2010 마그데부르크 단식
은메달 2005 리에주 단식
은메달 2006 파리 단식
은메달 2011 파리 단식
동메달 2004 항저우 단식
주니어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1999 첸나이 단체전
은메달 1999 첸나이 남자 복식
은메달 1999 첸나이 단식

5. 여담

  • 백핸드 기술을 구사할 때 균형 감각을 위해 반대팔을 옆으로 드는 습관이 있다. 탁구선수들의 이러한 비슷한 동작 습관은 흔하지만 왕하오 특유의 날갯짓 포즈는 유독 두드러진다.
    파일:Wang-Hao-Career.jpg
  • 현재 얼빠 탁구 선수를 떠올리면 장지커가 많이 나오지만, 한창 젊을 때의 왕하오도 축구 선수 이동국을 닮았다는 말을 들으며 제법 잘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 먹는 걸 좋아하는지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푸는지 체중 조절에 문제를 종종 겪었다. 원래는 65kg 정도의 날씬했던 몸이 최대 195근(중국의 1근=500g)까지 나가기도 했을 정도. 한국의 탁구 팬도 사인 받으러 경기 보러 갔다가 옷 갈아입는 왕하오의 뱃살에 놀랐다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대스타 선수인지라 왕하오의 몸매나 체중도 화젯거리라 몇 키로가 됐다느니, 이번 다이어트로 얼마나 뺐냐느냐 따위가 종종 기사에 실리곤 했다. 체중은 민첩성과 체력소모에 영향이 큰데 하물며 근육도 아닌 물살이니.. 다이어트로 너무 압박 받으면 폼이 떨어지기도 해서 완급 조절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전 훈련 장면의 취재 장면에서도 웃통을 까고 땀을 짤 수 있을 정도로 훈련하는데도 상체를 본 기자가 ‘그렇게 훈련하는데도 살이 좀 되시네요’ 한 마디 했었다. 왕하오도 카메라로 요 윗부분만 찍으라고 농담했을 정도다. 그래도 적어도 대회 나갈 때엔 비만 수준으로 관리를 못 한 건 아니고 탁구가 극한으로 날씬함을 추구해야만 하는 종목은 아니다보니[14]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은퇴하고 결혼한 얼마 뒤 2015년엔 오랜 라이벌인 유승민 선수와 오랜만에 게스트 대결을 하긴 했는데, 둘 다 본격 불은 몸매로 등장해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 올림픽 3연속 은메달을 차지하며 탁구계의 콩라인에 자리잡았다. 각각 유승민, 마린, 장지커에게 패했다. 이중 비(非)중국인 선수에 패배한 건 vs유승민전이 유일하다.[15]
  • 은퇴 전엔 지구 대표라고까지 불리며 롱런 중인 마룽의 천적 중 하나로 유명했으며, 마룽을 수많은 중요한 고비에서 꺾으며 좌절을 안겨준 바 있다. 단순 승률 대비로만 보면 마룽과의 전적이 적으면서 어찌어찌 이긴 다른 선수가 더 좋을 수 있지만 세계 최정상의 기량인데다가 같은 나라의 선배 국가대표 선수로서 국내 대결에서도 무수히 마주쳤어야 할 대상임을 생각해 보면 가장 마룽을 괴롭혀 준 선수라 할 수 있다.
  • 많은 사람들이 왕하오가 과연 자식에게 쉐이크와 중펜 중 어떤 라켓을 쥐어줄 지 궁굼해 했지만, 자기 자식에게는 탁구채를 아예 쥐어주지 않고 싶다고 선언했다.[16]
  •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2004 아테네 올림픽 당시 통한의 은메달을 안겨준 유승민의 코치였던 김택수와 만남을 가져 서로 인증샷을 남기기도 했다.# 다만 2004 아테네 올림픽때와 달리 왕하오도 중국 국가대표 코치 자격으로서 참가한거라 코치 대 코치로 만나게 된 것이다.


[1] 특히 판전둥을 오랫동안 개인 코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 백핸드를 너무 잘해서 묻힌 감이 있지만 왕하오의 포핸드는 가공할 만한 위력이 나온다. 포핸드에 많이 집중하는 일식 펜홀더에 비해서만 위력이 떨어질 뿐이다. 찬스볼 포핸드 드라이브를 할 때 각이 꽤 닫힌 편이며 뒤에서 앞쪽으로 보내는 스윙으로 끝에는 손목을 활용하며 매우 강렬한 순간 임팩트를 가한다.[3] 일본의 탁구선수 켄타 마츠다이라 선수는 찬스볼을 칠 때의 스피드 만큼은 예외적으로 강해 파워 드라이브로 유명한 유승민 선수보다도 빠르다고 평했다. 유승민 선수의 드라이브는 코스를 읽기 힘들지만 왕하오의 찬스볼 드라이브는 어디로 올지 알아도 막기 힘들다고.[4] 유승민은 인터뷰에서 왕하오의 백핸드에 대해 ''왕하오의 백핸드는 유럽 최고의 셰이크핸드 플레이어들의 백핸드보다도 더 강하다.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백을 잘 친다. 왕리친이나 마린도 내가 드라이브를 하면 수비를 하는데 왕하오는 백핸드로 역공을 한다. 거의 모든 볼을 공격하고 디펜스는 하지도 않는다." 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강문수 코치는 왕하오의 백핸드에 대해 "완전히 똑같은 백핸드 스윙으로 완전히 다른 구질의 공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친다." 라고 표현했다.[5] 스웨덴에게 대패한 이후 중국 탁구 연구가들과 선수들에 의해 백핸드 개발이 크게 이루어졌다.[6] 주세혁 선수는 본인이 받아본 탑스핀 중 가장 파워가 강했던 선수들로 유승민, 왕하오, 쉬신을 뽑았다. 이 셋의 드라이브를 받으면 라켓이 밀려나갈 정도였다고.[7] 키와 체형이 탄탄한 탁구를 치기에 적합한 편이다. 175cm의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적절한 신장에 너무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체중, 두꺼운 하체, 안정적인 몸통, 강한 팔과 손목힘 등.[8] 왕하오가 수많은 선수들을 상대로 매우 좋은 전적을 가진 건 중국 펜홀더가 주는 볼이 까다로운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중펜의 볼은 비슷한 기술이라도 일반적인 쉐이크에 비해 바운드가 변칙적이며 펜홀더 특유의 강력한 포핸드는 유지된다. 애초에 펜홀더인데 백핸드가 그토록 좋은 게 사기 수준이다. 또한 항상 연습을 같이 하는 자국 선수들과 달리 해외 선수들은 평소에 왕하오같은 중펜 플레이어 연습 상대를 구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9] 2009년 세계선수권 단식 우승, 2007, 2008, 2010년 월드컵 단식 우승.[10] 말이 콩라인이지 왕하오도 2007년 10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무려 27개월 연속으로 세계랭킹 1위를 유지한 바 있는 선수이다. 올림픽 3연 은메달과 세계선수권 2연 준우승이 워낙 임팩트가 커서 그렇지, 마냥 2인자 선수였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 모든 게 상대전적 0승 6패였는데 하필 제일 중요한 올림픽 결승전에서 미친 기량으로 왕하오를 박살내 콩하오 역사의 스타트를 끊은 유승민의 탓이다.[11] 후처리 금지 이후 스라이버만한 감각의 러버를 찾지 못한 듯하다. 스피드글루잉의 효과는 부스터로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12] 본인은 허리케인 킹과 유사한 외관의 n656특주를 사용하였다[13] 왕리친과 마룽도 비슷한 용품 행보를 걸어왔다.[14] 우승을 밥 먹듯이 한 탁구마녀 덩야핑도 작달만한 키에 그렇게 날씬한 체형이 아니었고, 유명한 남자선수 왕타오는 164cm 80kg이라는 일반인 기준으로도 상당히 뚱뚱한 배불뚝이 체형이었다.[15] 결승상대 3인이 각각 일본식펜홀더, 중국식펜홀더(이면타법-왕하오와 달리 이면은 선제를 잡는 용도로 주로 활용하고 그 외 백핸드는 전면위주), 쉐이크핸드로 다른 전형이었다.[16] 물론 자식이 정 하고 싶다고 한다면 그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정상급 선수들의 자녀들은 탁구에 흥미를 가져 2세대 탁구 선수가 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왕하오의 아들로서 짊어지게 될 부담감을 생각해도 선수생활은 굳이 하지 않는 것이 좋을 수 있다. 참고로 여성 챔피언인 장이닝은 탁구에서 공을 치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을 정도로 즐겁지만 선수로서 신체를 단련하는 것은 아주 고된 일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자식이 프로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한다면 중국이 아닌 홍콩 팀에 들어가게 하겠다고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