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0-15 23:12:41

왕삼구



1. 개요2. 행적
2.1. 나약한 과거2.2. 내 나이 오십2.3. 화산행2.4. 복수행2.5. 추적2.6. 새로운 시작
3. 무공

1. 개요

- 50년, 근성으로 버텨봐. 옆길로 새지 말고. 그러면, 건곤(乾坤)이 일기(一氣)로서 너를 인도할 날이 올 테고, 그러면······.
"사기꾼 도사! 이 망할 사기꾼 도사야, 나 이제 오십이야! 당신 말대로 근성으로 50년을 살았다고! 그런데 이게 뭐야, 뭐냐고! 왜 계속 이러고 도망쳐야 하냐고! 왜 당신처럼 손에서 불을 쏘고 바위를 밟아 깨고 나뭇잎 위로 뛰어다니지 못하면서 이러고 도망 다녀야 하냐고! 당신이 말한 대로 하루도 쉬지 않았단 말이야! 이 사기꾼 도사! 이 거지발싸개보다 더 천한 새끼야, 당장 이리 나와서 사과해!"
- 『녹림대제전』에서 함허자가 남겨준 말에 속았다 판단한 왕삼구의 울분에 찬 외침이다.
풍종호 무협소설 『녹림대제전(綠林大帝傳)』의 뜬금없는 주인공으로, 능력도 가진 것도 쥐뿔도 없는 왕가채의 두목이다. 데리고 있는 산채의 아우들도 어리숙하긴 매한가지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것이 다반사이다. 그러니 도적질도 제대로 못하여 명색만 산적패일뿐, 실제는 화전민과 똑같아 산채 인근에서 산과일 채취, 계곡에서 고기를 잡아 생활한다. 그나마 화전을 일궈 생산한 것들도 가까운 마을에 나가 필요한 것들로 교환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것도 힘든 왕삼구가 입고 있는 옷은 당연히 낡아 빛이 많이 바랬다. 그런 옷감의 낡은 꼬락서니는 주인의 모습에 비하면 새파랗게 어린 애나 다름없다. 이제 갓 오십임에도 고생이 너무도 많았기에 왕창 삭아 중늙은이를 넘어 상늙은이라고 부를 지경인 모습. 그렇게 언제나 비참했던 그의 산적 인생에 갑자기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과 같은 급작스러운 변화가 찾아온다. 덕분에 세상까지 눈치를 봐야 하는 세 번째 녹림왕(綠林王), 녹림대제(綠林大帝)가 된다.

2.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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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삼구의 알려진 행적 중 과거를 중점적으로 정리하였으며, 본 편의 진행에 따른 내용은 간략히 소개한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녹림대제전 - 줄거리』를 참고하자.

2.1. 나약한 과거

천천촌이라 불리는 고향 마을에서 나름 행복하게 지내던 왕씨 칠형제가 있었다, 그중 첫째인 왕일의 친구인 양일과 그의 동생인 양이는 양씨가문의 대부인이 자식을 낳지 못해 들여온 첩실의 자식으로, 동생 양이는 친모를 따라 대부인을 괴롭히지만 형인 양일은 마음씨가 착하여 괴롭힘을 당하는 대부인을 성심성의껏 모신다. 그 모습을 본 주변인들이 양일을 칭찬하는 동시에 양이에게는 욕을 하자 그는 독심을 품고 형을 제거할 흉계를 꾸몄다. 지나가던 괴한과 짜고 친형과 왕씨 칠형제에게 도둑놈이란 누명을 씌워 두들겨 패 죽인다.[1]간신히 숨통만 남은 왕씨 오형제는 다행히 지나가던 화산파(華山派) 열화문(烈火門)의 함허자(涵虛子)가 구해준다.[2]

함허자는 한동안 왕씨 오형제를 이끌고 여러 곳을 다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한 줄기 동아줄과 같은 건곤일월경(乾坤日月經)을 전수하곤 떠나간다.[3] 남은 오형제는 고향에서 쫓겨난 신세로 자연스레 녹림도의 길에 발을 디디게 된다. 이즈음에 그들은 부모가 남겨준 성씨와 숫자뿐인 이름 뒤에 각자 한 마디씩을 덧붙이기로 한다. 그래서 왕삼은 녹림도가 되어 애꿎게 죽는 자가 아니라 차라리 죽이는 자가 될지언정 오래 길게 살자고 간절히 염원해서 '구(久)'를, 왕사는 그냥 그런 놈은 싫다며 영웅을 꿈꿔 '영(英)'이란 글자를 고른다. 왕오는 살고 싶다고··· 그저 그뿐이라며 그럭저럭 많이 익힌 티를 낸답시고 '생(生)'자를 선택하면서 여섯째와 일곱째에게도 '산하(山河)'처럼 든든하고 오래 살자며 한 글자씩 따서 붙여준다.

하지만 힘이 없는 자들에게는 산적질도 쉽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산적들에게 당하기 일쑤에, 잘 숨은 듯해도 이리저리 치이며 도망치기 바빴다. 그리 10여 년을 버텨온 왕씨 오형제에게도 피할 수 없는 비극이 찾아온다. 다른 녹림도의 싸움에 휘말려 얼굴에 곰보 자국이 있는 놈에게 막내 칠하가 잡히는 바람에 그놈이 지명한 칼잡이에게 여섯째 육산이 덤빌 수밖에 없었다. 제법 칼질이 좋아진 육산이었지만, 칼잡이 얼굴에 칼자국을 남기며 목이 잘리고, 인질이 됐던 칠하도 곰보 놈에게 심장이 찔려 죽고 만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아픔을 치유할 때쯤 이번에는 새로 자리 잡은 산채를 노리고 노호채에서 쳐들어온다.

호조수(虎爪手)에 살이 찢겨 내장이 흘러내린 식구들의 참혹한 모습, 실력이 일취월장(日就月將)하여 앞으로는 핍박받고 살지 않아도 되겠다는 희망을 품게 한 넷째 사영도 죽어 남은 이들에게 절망을 안긴다. 결국, 강한 두목을 찾아간 녀석들과 어디도 못 가고 죽은 녀석들, 그래도 왕씨 형제와 함께하겠다고 남은 녀석들로 패거리가 토막 난다.[4] 본거지를 잃은 왕가채는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 해량산 산채에 얼마간 빌붙다가 누명으로 망하자 삼룡채로 옮겨 신세를 진다. 계속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닌 끝에 훌륭한 풍경에 산속 깊이 있으면서도 강까지 끼고 있어 목이 좋은 골짜기를 발견해 은룡곡(隱龍谷)이라 이름 지으며 새로운 근거지로 삼는다.

2.2. 내 나이 오십

짧지 않은 세월 10여 명만 남았어도 새로운 터전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왕가채, 인근의 맹촌에서 아주 불쌍해 보이는 한 녀석을 데려와 은룡곡을 자랑하며 먹을 것을 베푼다. 아뿔싸! 그 장이라는 놈은 은룡곡의 정보를 가까운 황가채에 알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황가채는 최근 녹림을 통합하려는 녹림백팔두(綠林百八頭)의 말석에 꼽혀 더 좋은 산채를 가지려던 차에 좋은 정보를 얻어 채주가 직접 부하들을 일부 이끌고 왕가채로 쳐들어온다.

이 사실을 안 왕삼구는 홀로 도망친다. 왕오생과 다른 아우들은 더는 도망칠 수 없다며 고집부리는 통에 어쩔 수 없이 혼자만 내빼고 만다. 중간에 그는 나이가 오십이 될 때까지 그동안 힘이 없어 당한 서러움, 절망, 분노 등이 폭발하여 눈물을 흘리며 수십여 년 전 자신들을 구해주고 이름 모를 구결도 알려줬던 도사까지 싸잡아 욕한다. 그 와중에 갑자기 몸에 이변(異變)이 일어난다. 드디어 봉오리 밑에 숨어 있던 건곤일기공(乾坤一炁功)이 개화한 것이다.

뜬금없이 생겨난 어마어마한 힘, 제대로 인식을 하기가 힘들어 왕삼구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런고로 마음먹은 대로 되돌아가 황위전 패거리의 멱을 전부 따버린다. 아우들도 급작스럽게 변한 큰 형님의 모습에 겁을 먹어 무조건 비위를 맞춘다. 그로 인해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것으로 여긴 그는 부근의 다른 마을 서진에서 난장판을 부렸으며, 뒤늦게 쳐들어온 황가채 부채주 패거리도 모두 죽여 육산이와 칠하의 통쾌한 복수를 한다.[5] 그놈들의 시체를 털은 아우들을 이끌고 맹촌에 간 왕삼구는 고깃집에서 황가채와 친한 홍가채의 부채주가 시비를 걸자 바로 죽인 후 마을에서 유명한 백학루의 식자재를 아우들과 끊임없는 먹성으로 모조리 먹어치운다.

하루가 지나 부채주가 죽은 일을 사냥개로 추적한 홍태정이 부하들을 이끌고 은룡곡으로 쳐들어온다. 철수철각공(鐵手鐵脚功)으로 유명한 녹림의 대가 철귀(鐵鬼)의 제자라 보무가 당당한 홍태정, 왕삼구는 그의 철수공은 물론 목숨까지 순식간에 채간다. 이 일로 꿈이 아닌 현실임을 자각한 왕삼구는 갑작스레 생겨난 힘의 원인이 이전에 쌍욕을 퍼부었던 그 도사에게 배운 구결 때문임을 깨닫고, 이 힘이 무엇인지 알기 위하여 화산을 찾기로 한다.

2.3. 화산행

왕가채 전원이 산길을 뚫고 내를 건너 화산으로 가는 길에 밥 먹을 겸 예전에 신세를 진 삼룡채에 들른다. 역시 식량창고를 싹 털은 왕삼구와 아우들, 대가랍시고 황가채와 홍가채와 대립하느라 물자 수급이 어려운 문제가 이미 해결됐음을 알려준다. 아울러 왕삼구는 삼룡채에서 고문 역할을 맡은 철권가(鐵拳家)의 곽단을 치료하며, 가전무공의 연성도 도와준다. 덕분에 그도 철포삼(鐵袍衫)을 배워 아우들에게 베풀 수 있었다. 또한, 철포삼의 한계를 고찰, 한 단계 더 나아가 금종조(金鐘罩)를 깨우친다. 배도 따사롭고 절기(絶技)도 챙긴 왕가채는 길을 나서 과거에 사기를 친 상백을 잡는다. 새 풍운기희단(風雲奇戱團)이 나타났다는 말에 공연도 신나게 본 그들은 소귀(小鬼)도 구출한다. 덤으로 상백도 나름 용서하고 형제로 받아들인다.

경지 상승의 목마름에 절실히 뒤를 쫓아온 맹촌 백학루의 호위무사였던 백견과 독술가인 설금을 만난 왕삼구는 호기심을 느껴 그가 대주천연기공(大周天練氣功)의 한계를 넘게 해 준다. 여기에 상백의 시연을 보면서 왕삼구는 삼재공(三才功)의 진정한 면모를 깨우친다. 다시 화산으로 가는 장도에 올라 갈림길에서는 10여 년 전 원한을 맺은 노호채가 분할된 호문삼채(虎門三寨) 중 백호채를 찾아간다. 원한보다 백호 가죽이 더 탐이 난 왕삼구의 고집이었다. 과거에 당한 혈채(血債)를 그대로 돌려준 왕가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시끌벅적하게 낙월산장(落月山莊)이 있는 낙월촌에 당도한다.

섭혼검마(攝魂劍魔)의 무경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유명한 낙월산장, 마침 시비를 거는 그곳 소속의 검을 든 네놈을 혼내준 왕삼구는 발걸음을 그리로 옮긴다. 소문에 이끌린 침입자들을 입구의 회풍검진(回風劍陣)의 소모품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아 야밤에 검마의 무경을 박살 내려고 한다. 그러나 알고 보니 낙월산장은 검마가 강시마군(殭屍魔君)을 유인하여 잡을 함정을 파놓은 곳이었고, 매씨 부자는 검마의 섭혼술(攝魂術)에 홀려 그저 이용당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결국, 어찌하다 그 함정이 발동되어 낙월산장은 홀랑 불에 타 재가 된다.

녹림백팔두에 쫓겨온 타룡채에 낙월산장의 매씨 부자까지 일행으로 이끌고 왕삼구는 드디어 화산 아래에 도착한다. 그는 일행을 남겨둔 채 홀로 열화문의 제자 양무악의 안내를 받아 화산을 오른다. 아주 오래전 열화문에 은혜를 베푼 건곤자(乾坤子)는 후인을 위한 안배를 한 비동에 따로 남겨놓는다. 왕삼구는 그 비동에 들어가 건곤자의 잔령(殘靈)과 만나 자신에게 깨어난 힘이 건곤일기공임을 알게 된다. 더불어 환우육존(寰宇六尊)의 비급을 집대성한 환우대전(寰宇大典)과 잔령의 가르침도 배워 순식간에 건곤일기공의 허무경(虛無境)에 이른다.

2.4. 복수행

화산에서 내려온 왕삼구는 너무 빠르게 건곤일기공의 허무경에 이른 것이 문제인지 한동안 허무에 빠져 만사가 귀찮아진다. 그토록 꿈꿔온 복수조차 귀찮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상태, 우선 소귀의 과거를 찾아주기로 한다. 기희단 노부(老父)의 안내로 소귀의 어미를 알고 있는 소요(小妖)를 만나러 예인들의 마을에 이른 왕가채, 도적질 하러 온 것으로 섣부르게 판단한 소폭개(少暴丐) 주아영의 도발에 왕삼구가 대응한다. 이로 인해 개방(丐幇) 방주 무정신개(無情神丐) 백무흔과도 추격전 끝에 인연을 맺게 된다.

소요에게서 얘기를 들은 왕삼구는 소귀만 대동하고 성하진을 찾아간다. 그 마을의 지주인 고가장에서 잠시나마 소귀와 어미를 만나게 한 그는 겁도 없이 덤벼든 취진인(醉眞人)에게서 취죽(翠竹)을 갈취한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쉬고 있던 왕삼구는 개방주와 함께 나타난 태대노인(太大老人)의 재촉에 취죽을 살펴보다 비밀을 풀어낸다. 그 덕에 취선(醉仙)과 담화를 나누게 되어 그는 허무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상백과 딸린 아우들의 한(恨)부터 풀기로 결심한다.

류하촌에 도달한 상백은 임신한 누이를 배신해 죽이고 자신의 약혼녀였던 류씨와 결혼한 등태원의 자식인 등도항의 목부터 베 복수를 시작한다. 등태원의 사지를 부숴 남은 세월을 끔찍한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했으며, 류씨 부인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도록 마을 전체를 깡그리 태워버린다. 이동수단으로 번강노호(飜江怒虎) 장일항의 큰 배를 빼앗은 왕가채는 장헌의 고향 약사촌으로 이동한다. 새 어미니가 아버지를 독살하고 재산을 가로채 오라비라 속였던 황익과 붙어먹어 자식까지 낳은 상황에 남은 마을 사람들도 그들에게 콩고물을 받아먹는 자들뿐이었다. 장헌은 상백을 본받아 왕가채 형제들의 도움을 얻어 마을의 논밭은 물론 주요 수입원인 약초밭도 싹 불태운다. 황익과 그의 자식은 고문으로 죽였음에도 새 어미니는 나름 가문에 정식으로 들어온 사람이라고··· 사지만 자른다.

황익과 연관된 조가채, 과거 은혜를 베푼 해량산 산채를 박살 낸 곳이었기에 왕가채는 찾아가서 풍비박산(風飛雹散) 낸다. 가는 곳마다 평지풍파(平地風波)를 일으키는 왕씨 패거리, 다음 차례는 장강(長江) 상류로 움직이는 중간에 들른 적사진이라는 마을의 오래전에 구걸하다가 쫓겨난 화양루라는 주루였다. 상백의 계책에 따라 도둑놈과 잡는 놈으로 연기하면서 털어먹으려던 것이 삼룡채의 아는 얼굴들이 있어 실패하자 왕삼구는 냅다 용권풍을 일으켜 주루를 산산조각으로 부수고, 마을까지 가루로 만든다. 그러고는 자신인 척 가장하여 위세를 부리고 있는 태대노인에게 죄를 떠넘기고자 "불만이 있으면 녹림백채를 정벌하고 있는 왕삼구를 찾아와라"라며 범행 성명을 남긴 뒤 떠나간다.

용권풍을 타고 왕가채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왕씨 형제의 고향, 지금은 양가촌이라고 불리는 천천촌이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원수인 양이의 집은 회갑을 맞아 잔치를 벌이는 중이라 왕삼구가 잔혹한 천벌을 내린다. 고문으로 과거에 양이가 협력한 괴한이 독을 사들일 목적으로 돈을 구했다는 사실을 입수한 왕가채는 수소문해 거래처였던 독군자(毒君子)의 은거지로 찾아간다. 한데 묶여 녹림삼흉(綠林三凶)으로 불린 다고 섭혼검마를 대동한 왕삼구가 숨어 있는 놈을 끌어내 보니 새파랗게 어려 보이는 낯짝을 하고 있었다. 그가 독군자로, 뛰어난 주안술(駐顔術)로 진짜 나이를 떠올릴 수 없을 정도였다. 이미 상늙은이, 그 이상의 주름을 가지고 있는 왕삼구로서는 괜히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 다짜고짜 두들겨 패고 본다. 주먹 아래서는 독군자도 질문에 술술 불어 그 괴한이 강시마군을 도우려 약물을 구했음을 알게 된다.

왕삼구는 섭혼검마와 독군자를 데리고 강시마군이 숨어있는 빙굴로 즉시 쳐들어간다. 심장박동을 완전히 지우지 못하여 위치를 들킨 강시마군이 겁도 없이 덤벼들자 잘 걸렸다는 듯 두들겨 팬다. 섭혼검마, 독군자, 강시마군을 귀검, 약사, 마졸이라 부르며 부하로 삼은 왕삼구는 괴한을 잡는 것에 그들을 앞장 세우기로 한다. 빙굴 밖에서는 어찌 된 일인가 아우들 중 포수가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원인은 바로 빙굴 옆에 있는 대룡채의 하부 산채, 그의 극렬한 원한을 산 칠살채였다. 얻어걸리는 게 많은 듯한 왕가채는 바삐 칠살채로 달려가 살아 있는 제 누이의 살을 강제로 뜨게 시켰던 놈들에게 포수가 그대로 돌려줄 수 있게 도와준다.

2.5. 추적

칠살채를 끝장낸 왕가채는 본격적으로 왕씨 형제의 원수인 괴한을 쫓기 시작한다. 독군자의 후각을 이용해 당시 괴한이 사용한 약상자를 가진 놈이 장강에서 수약사(水藥師)로 활동하고 있음을 파악한다. 장강은 장일항이 용왕으로 믿고 있는 왕삼구를 구심점으로 세력을 정비하기 위한 용왕제(龍王祭)로 한창 소란을 빚고 있었다. 걸리면 귀찮게 될 것을 잘 안 왕삼구는 은근슬쩍 숨어서 녹림삼흉을 시켜 수약사만 잡아온다. 그렇지만 그 수약사, 마교(魔敎)의 재림을 바라는 음마문(陰魔門)의 제자인 제무상은 어린놈이라 당시의 괴한일 수 없었으며, 고통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별종이라 고문도 통하지 않아 정보를 캐낼 수도 없었다.

독군자의 냄새를 이용한 추적도 음마문의 거점을 찾는 것에 그쳐 원수를 찾을 방법이 막막해진 왕삼구는 별수 없이 태대노인과 개방주 백무흔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개방의 거점에 들러 태대노인보다도 나이가 많은 세 장로의 도움을 얻어 부시분(腐屍盆)을 재배하는 음마문의 중요 거점을 찾아낸다. 왕삼구는 산을 부수는 기세로 입구를 강제로 파괴하고 안으로 들어가 남악초자(南岳樵子)의 문하생이라고 밝힌 자들을 변함없이 두들겨 팬다. 끝내 남악초자이자 음마문의 태상장로가 시체를 얻으러 사천사마(四川四魔)가 패악을 떨고 있는 청성파(靑城派) 인근으로 갔음을 알아낸다.

촉도를 거쳐 사천(四川) 땅에 왕삼구 일행이 당도했을 때, 사천사마는 청성파 장문인의 하나뿐인 제자를 납치한 상태였다. 왕삼구는 거침없이 사마와 패거리들을 처단한 다음, 제자의 목숨 때문에 주변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호호도인(好好道人)을 끌어낸다. 안 그래도 청성파 장문인을 패 달라는 태대노인의 부탁도 있었고, 검을 쓰면 사람이 쉽게 죽을까 봐 검을 뽑지도 못하는 호호도인의 행태에 실력이 궁금해진 왕삼구는 제대로 판을 벌여 비무한다. 승리한 그는 전신 곳곳에 피멍이 든 호호도인에게 주변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못했는지 묻는다. 기억을 더듬어 독특한 냄새를 맡았던 사실을 호호도인은 떠올린다.

독군자를 앞세워 얼른 쫓아 드디어 30여 년 전의 그 괴한인 음마문의 태상장로를 잡는다. 이놈도 제무상처럼 별종이라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아 왕삼구는 데리고 다니며 괴롭히기로 한 채 인근에서 녹림백팔두가 주최하는 녹림대회에 훼방을 놓으러 간다. 모여 있는 많은 녹림도와 노대가들을 실력으로 찍어 누른 그는 배후였던 귀족 집안의 꼬맹이도 발가락을 자르며 겁을 줘 녹림을 접수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게 한다. 부탁을 들어준다는 말에 대리 용왕 역할을 맡은 태대노인은 왕삼구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조금 늦게 눈치채 휘하 수적들 데리고 뒤를 쫓아간다. 왕삼구는 독군자에게 배워둔 주안술을 이용, 젊디 젊은 옥삼구로 변모해 이들을 따돌리고 잽싸게 줄행랑을 친다. 물론 왕가채 아우들, 녹림삼흉과도 미리 의견을 나눠 알아서 도망치게 한 뒤였다.

2.6. 새로운 시작

약속 장소인 기련산에서 삼흉과 만난 왕삼구는 문득 예전에 신세를 졌던 대부노옹(大斧老翁)을 떠올려 운궁채를 방문한다. 하늘을 나는 궁전에서 살겠다는 숙원을 어쭙잖게나마 이룬 모습에 그는 염원을 이룰 수만 있다면 미치는 것도 불사하는 삼흉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다. 강시마군에게 강제로 음풍대강력(陰風大罡力)을 각성케 하여 음마문의 태상장로와 제무상을 재료로 직접 원하는 강시를 만들게 한다. 독군자에게는 강시가 만들어지면 혈맥과 내부 장기를 손보게 시켜 한 단계 더 발전할 기회를 준다. 섭혼검마에게도 강시마군처럼 강제로 깨달을 수 있도록 충격을 줘 검령비결(劍靈秘訣)의 혜광검(慧光劍)을 엿보게 한다. 섭혼검마가 직접 막을 수 있게 해 준 것이나, 강시마군과 독군자의 협력 및 실수가 겹쳐 만들어진 강시는 독을 뿜는 강력한 변종이었다. 그가 없앨 수도 한 번에 봉인할 수도 없었다. 이 와중에 태대노인과 백무흔이 산적과 수적들을 이끌고 나타나 왕삼구는 강시를 섭혼검마에게 떠넘기고는 줄행랑을 쳐 자취를 감춘다.

1년 뒤 개방의 세 장로는 녹림의 무상을 은룡곡으로 데려온다. 그들은 전대 녹림왕이었던 녹림천자(綠林天子)의 철혈무적강기(鐵血無敵罡氣)와 녹림무제(綠林武帝)의 절기를 이어받을 수 있는 후대를 찾는 것을 사명으로 가진 자들이었다. 태대노인이 왕삼구 대신하는 용왕 놀이에 재미를 붙여 위세를 부리는 동안 형제들의 묵은 원한을 모두 정리한 왕삼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나름의 고민이 있었다. 때마침 나타난 육무상의 뜻을 받아들여 그는 이전 두 녹림왕이 남겨놓은 진전(眞傳)을 얻기로 한다. 3년이 지나 찾아낸 철혈무상강기는 독특한 위용을 자랑했으며, 녹림무제의 절기는 녹림도에게는 당연히 이러한 성향이 어울린다는 듯이 강렬한 자극을 선사한다. 그것들을 배운 왕삼구는 아우들, 소귀 일행, 육무상까지 대동하고 종적을 완전히 지운 뒤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한다.

3. 무공


[1] 양일과 왕씨 칠형제는 괴한의 점혈법(點穴法)에 당해서 전혀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심문중이라도 말을 할수 없으니 몹시 두들겨 맞다가 결국 양일과 왕일,왕이가 죽는다.[2] 오류가 있다. 처음에는 이 사태에서 왕일과 왕이가 살아남아 녹림도로 2~3년 지내다가 죽었다고 한다······.[3] 여기도 오류가 있다. 초기 설정은 함허자가 그들을 구해주고 건곤일월경을 대충 전수한 다음, 다른 볼일을 보러 급히 떠난 것이었다. 그렇기에 왕삼구는 자신이 익힌 무공의 이름조차 몰라서 화산행을 결심한다. 이것이 소설 후반에서는 본문처럼 함허자가 왕씨 오형제와 한동안 같이 있었던 것으로 바뀐다.[4] 노호채 사건은 왕가채의 중요한 과거인데도 설정에 구멍이 있다. 초기에는 노호채가 규모가 커서 팔두령이니 구두령이라고 하는 놈이 대표로 쳐들어와 대두령의 명령으로 아무도 죽이지 않은 채 주먹만으로 왕가채를 쫓아냈다고 한다. 나중에는 본문에 기술한 것처럼 호조수에 죽은 형제들이 있는 것으로 설정이 바뀌어 왕삼구가 화산 가는 길에 백호채에 들러 피의 복수를 한다. 그리고 왕사영이 죽은 사유는 본 편에서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그의 죽음 이후 패거리가 나뉘었다는데, 작 중에 그런 상황이 나온 것은 노호채와의 일이 유일하다. 왕씨 형제와 남은 녀석들이 지금 왕가채의 기반이 되었다고 한 만큼 시기상 노호채의 침탈에서 왕사영이 죽은 것이 맞는 것 같아 본문에 기술한다.[5] 부채주가 육산이를 죽인 칼잡이었다. 막내 칠하를 죽인 곰보 놈도 세월이 흐른 사이 황가채에 가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