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오재석
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오재석의 클럽 경력을 정리한 문서.2. 프로 이전
축구 명문인 의정부 신곡초에서 축구를 시작해 의정부서중으로 진학했지만, 그의 재능은 전국 스카우터들에게 알려져 중학교 2학년에는 서울에 재현중으로 전학갔다.그러다 당시 허정무 총감독의 지휘 아래 전국의 축구 천재들을 쓸어모으던 용인FC의 눈에 들어 중학교 3학년을 앞두고 백암중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이후 신갈고로 진학했고, 김보경, 이승렬, 박준태 등 쟁쟁한 동기들과 함께 전국 대회를 휩쓰는 압도적인 팀의 일원이 된다. 이러한 활약으로 당시 각종 연령별 대표에 꾸준히 승선했다.
이후 경희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고, U-20 국가대표에서 월드컵 8강 신화 덕에 J리그에서 이적 제의를 하기도 했으나, 'K리그에서 뛰겠다'라는 발언을 하며 드래프트에 신청했다. 당시 대학을 중퇴하고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것 대신, J리그로 가는 선수들이 굉장히 많았다.
3.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0년 K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하였으며 이 때 수원이 1순위로 지명,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수원의 팬이었으며 수원이 자신을 지명하여 기쁘다는 발언을 해서 수원 팬들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다.등번호 17번을 배정 받았다.
2010년 3월 6일, 수원 홈 경기 개막전에서 오른쪽 풀백으로 첫 데뷔, 부산의 왼쪽 공격수들을 잘 틀어막으면서 무난한 활약을 보여서 후반전에 교체될 때 박수를 받기도 했다.
차범근 감독에게 신임을 받으며 송종국의 후계자로 지목 받으며 오른쪽 윙백 및 풀백으로서 전반기 동안 리그 3경기, ACL 2경기, FA컵 1경기, 리그컵 1경기 등 신인치고 적지 않은 경기에 출장하고 있었다. 또한 여름 휴식기에 송종국이 알 샤밥으로 이적하며 더 많은 중용을 기대케했다.
여담으로, 당시 싸이월드링크를 상당히 많이 활용했고, 잘생긴 외모와 실력이 합쳐져 신인임에도 개인 콜이 있다! [1]
그렇게 윤성효 감독 부임 초반 FA컵과 리그컵에서 기회를 받았지만 8월부터 본격적으로 리웨이펑에게 밀리며 벤치에 앉는 시간이 길어졌고, 9월에 부상을 당해 서서히 경쟁에서 밀렸다.
4. 강원 FC
2011 시즌을 앞두고 올림픽 대표팀에서 경쟁력을 갖추고자 많은 출전 기회를 보장한 강원 FC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관련 기사완전 이적이 아니라 당시 K-리그에서 보기 드문 1년 임대 영입이다. 새로운 감독 아래 개혁을 진행하는 수원에게도, 쟁쟁한 선수들 사이에서 적은 출장 기회로 실력이 정체될 위기에 빠져 있었던 오재석 본인에게도, 양질의 유망주를 임대로 영입한 강원 FC 입장에서도 좋은 영입으로 평가받고 있다.
4.1. 2011 시즌
등번호 12번을 배정받았다.주 포지션인 우측 풀백은 이상돈에게 밀렸지만, 주전 좌측 풀백으로 낙점받아 개막전부터 꾸준히 주전으로 나섰다. 하지만, 팀은 시즌 초반 리그 7연패 및 12경기 연속 무승의 부진에 빠질 만큼 최악의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결국 한 시즌 동안 리그에서 3승을 기록하며 꼴찌에 머문 팀에서 소년 가장 역할을 했고, 강원 팬들은 올림픽 대표팀 주장단에 있는 그에게 오싹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지난 시즌 수원에서 험난한 주전 경쟁을 했던 것과 달리, 리그 22경기, 리그컵 2경기, FA컵 3경기 등 시즌 총 27경기에 나서는 등 충분한 출전 기회를 받았다.
그러나 시즌 후 완전 이적을 원하는 강원과 센터백을 원하는 수원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져 곽광선과 전격 트레이드가 성사되며 강원에 완전 이적하게 됐다.[2][3]
4.2. 2012 시즌
시즌 전 경희대에서 달던 번호이자, 트레이드 대상인 곽광선의 번호인 등번호 4번으로 변경했다.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주전 풀백으로 경기에 나오고 있다. 강릉 홈 개막전인 대구와의 경기에선 김은중의 선제골을 멋진 크로스로 어시스트했다. 이상돈의 부상으로 주전 우측 풀백으로 나섰고, 좋은 활약을 펼쳤다.
시즌 중 2012 런던 올림픽에 차출되기전인 6월 27일 경남전까지 거의 모든 경기에 나서며 팀의 강등권 경쟁에 힘을 보탰다. 이후 8월 18일 부산전에서 교체 투입되며 복귀전을 치렀다.
올림픽이란 세계적인 무대에서 경험을 쌓고 돌아온 오재석은 한층 성장한 기량을 보였다. 특히 새로 부임한 김학범 감독 아래 빠른 스피드, 과감한 돌파, 뛰어난 크로스, 좋은 위치선정 및 투지를 보여줬다. 특히 반대쪽의 전재호가 노련하게 오버래핑할 때면 특유의 역동적이고 파워풀함으로 힘과 높이에서 우수한 모습을 보여 강원 공수의 핵심 역할을 했다. 그렇게 강원의 하위 스플릿에서의 상승세 주역 중 하나로 꼽혔다.
결국 하위 스플릿에서 막판 연속 득점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을 펼치며 강원의 잔류의 혁혁한 공을 세우며 프로 데뷔 이후 최고의 활약을 보였다.
시즌이 끝나고 감바 오사카로 이적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팀의 대들보라 할 수 있는 선수지만, 막장 운영으로 인해 구단은 재정난에 허덕였고, 때마침 일본 명문 팀에서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에게 10억이라는 높은 이적료를 제시하며 선수와 구단 모두 윈윈하는 이적을 낳았다. 그러나, 감바 오사카가 J2리그로 강등됨에 따라, 내년 시즌은 일본 2부리그에서 보내게 됐다.[4]
5. 감바 오사카
5.1. 2013 ~ 2019 시즌
첫시즌에는 후보로 있었다. 그러나, 2014년에는 좌우풀백을 오가며 주전으로 출전하였다.2015 시즌에는 부상으로 벤치에 밀려났다가 복귀한뒤, 중요한 경기에 출전하며 좋은 폼을 보여주었다.
2016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첫 라운드에서 수원으로 원정을 와 염기훈을 악착같이 틀어막는 모습에서, 수많은 수원 팬들이 과거 오재석과 곽광선을 맞바꿔버린 윤성효의 호구딜을 떠올리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양 팀은 득점 없이 비겼다.
2017시즌까지도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2018시즌도 감바 오사카 소속.
2018시즌 팀이 부진한 가운데 잔부상이 잦아져서 결장한 경기가 좀 있지만 부상에서 복귀한 후에는 주전을 잃지 않고 있다.
9월 15일 비셀 고베 원정경기에서 J1 100경기 출전기록을 세웠다. 이날 첫골의 어시스트도 기록하며 팀의 1대2 승리에 공을 세웠다.
2019시즌에 올림픽 동기였던 김영권이 합류하면서 오랜만에 일본에 돌아온 동료의 적응에 큰 도움을 주고 있지만, 정작 오재석은 출전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중이다. 리그에서는 모습을 비춘지 오래되었고 르방컵에서만 간간히 보이고있다.
5.2. FC 도쿄 (임대)
스리백을 쓰는 감바 전술에서 더이상 설 자리가 없어지면서 입지 축소로 오타 코스케를 판매한 FC 도쿄 임대를 택하게 되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은사였던 하세가와 켄타 감독과 다시 재회하게 되면서 2013년 이적 이후로 7시즌만에 감바 오사카를 떠나게 됐다. 임대 기간은 2020년 1월까지다.마지막까지 감바를 떠나는 것을 계속 고민했지만,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되었다고 인터뷰 했다. 떠나는 것을 확정지은 순간 많이 울었다고 한다.
은사 하세가와 감독과 재회하고 다시 주전으로 올라왔다.
5.3. 2020 시즌
도쿄에서는 바로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완전 이적을 택하지는 않고 바로 원소속팀 감바 오사카로 복귀하게 되었고, 개막전에서 선발로 출전을 하면서 김영권과 함께 수비를 책임지면서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요코하마에게 승리를 거두게 된다.그러다가 여름 이적 시장을 앞두고 감바 오사카를 떠나 J리그 내의 다른 팀으로 떠난다는 설이 돌았는데, 본래는 K리그에서도 염두에 둔 팀이 있었으나, FA 이적이 아닌 이적료가 포함된 이적이라 K리그보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J리그 잔류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스포츠니어스에서 방송하는 이적설 풀이 프로그램에 따르면 갑자기 K리그2의 대전 하나 시티즌으로 선회하였다고 한다. 처음에 K리그 모 팀에서 제시한 이적료의 2배를 불렀다고. 하지만 이 말이 나오자마자 온라인 축구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서호정 기자는 바로 나고야 그램퍼스로 이적한다며 반박설을 내놓아 한치 앞을 알수 없게 되었다. 이후 나고야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일본 잔류를 원했지만, 코로나사태 등으로 영입 제안이 없어 한국의 구단과 협상을 하던 도중[5] 나고야에서 영입 제의가 왔다고 한다.
6. 나고야 그램퍼스
리그 재개 후 출전이 없었고 일본 언론에서도 나고야행 확정 보도가 나오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J리그 이적시장이 예년보다 늦게 열리기 때문에 발표가 늦어지는 것으로 보인다.2020년 7월 9일 나고야 그램퍼스 구단은 오재석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다만 오재석이 감바와의 계약이 만료된 상태라 영입 발표 자체는 빠르게 할 수 있었지만, 선수 등록 기간은 7월 31일부터 시작이기에 8월부터 경기 출장이 가능하다고.
2020년 12월 3일 인천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한다는 단독보도가 나왔다.
처음에 팬들 반응은 ‘오재석은 인성은 좋지만, 나이도 있고 약간 불안하다.’는 반응이 있었지만, 주전으로 뛰면서 최근 계속 강등권에 위치했던 나고야를 챔피언스리그로 복귀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고 팬서비스 또한 감바때부터 유명했던 선수였던지라 현재는 아쉽다는 팬들의 반응이 많다.
팀 측에서도 인천에 위약금까지 제시하며 이적을 막으려고 할만큼 잔류를 설득했다고한다. 그러나 최종전이 끝나고 일본 언론에서 한국 복귀 기사가 계속 뜨고 있는것을 본다면 다시 K리그에서 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7. 인천 유나이티드 FC
2021년 1월 12일, 나고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인천 유나이티드행이 확정되었고# 뒤이어 이틀 뒤인 1월 14일, 인천 구단에서도 공식 오피셜이 나오면서 8년만에 K리그 무대에 복귀하게 되었다. 선수 소개 멘트는 사이드의 히어로가 된다.
나고야에서 달던 등번호 34번을 인천에서도 배정받았다.
7.1. 2021 시즌
2월 28일 포항 스틸러스개막전에 선발로 나오면서 포항의 팔라시오스를 막았으나 팀은 2 : 1 역전패 당했다. 3월 6일 대구 FC전에서 상대 공격수 정치인을 완벽히 봉쇄하며 팀의 첫승에 공헌했다.2021시즌 인천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을 합쳐 26경기 출전 2도움.[6]
7.2. 2022 시즌
2022시즌 강민수하고 공동으로 선수단 부주장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동계 훈련 중 당한 근육 부상으로 시즌 초반 결장 중이다.4월 27일 광주와의 FA컵 3라운드에 풀타임 출전하며 복귀했지만 좋지 못한 폼을 보였고, 팀의 6실점을 막지 못했다.
이후 사실상 전반기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10월 8일 K리그 파이널라운드 강원 FC전에 오른쪽 윙백으로 선발출장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87분에 교체 아웃되었으며, 10월 11일 제주와의 홈 경기에서는 날카로운 크로스로 김민석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2022시즌은 부상의 여파로 리그 3경기 출장에 그쳤다.
7.2.1. 이적 사가
2022시즌 종료 후 스포츠니어스를 통해 대전 하나 시티즌 이적설이 보도되었다.#, #해당 영상과 기사에 따르면 애초에 2020시즌 중반 대전이 연봉을 2배 이상 제안하는 등 강력하게 러브콜을 보내왔고, 이적 직전까지 갔으나 막판에 나고야 구단 측의 러브콜을 받고 나고야로 행선지를 틀며 대전행은 결렬됐다.
하지만 이종현 외에 우측 수비수 자원이 부족해 미드필더인 이현식과 김영욱을 포지션을 바꿔가며 기용했을 만큼 대전이 측면 수비 보강에 필요성을 느끼고 다시 오재석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2년 반만에 이적이 성립된 것이라고 한다.
성공적인 K리그1 안착을 노리는 대전과 22시즌 인천에서 경기에 많이 뛰지 못해 재기를 원하는 오재석 간 이야기가 맞아떨어지며 이적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라고 한다.
이후 인천과 대전이 12월 16일 밤 오재석과 권한진을 트레이드하기로에 대한 최종 합의를 마쳤다고 보도되면서 대전 이적은 기정사실화 되었다.[7][8]#
8. 대전 하나 시티즌
2023년 1월 3일 대전 구단은 오재석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이번 오재석 영입을 통해 조유민, 김민덕, 서영재 등과 함께 2023시즌 더욱 강력한 수비진을 구축하게 됐다. 또한 고교 시절 은사인 허정무 대전 이사장과 약 16년 만에 재회했다.
8.1. 2023 시즌
강원과의 개막전 홈경기에서 우측 윙백으로 풀타임을 소화하며 지난 시즌 MVP 후보였던 김대원을 꽁꽁 묶으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4월 들어 서영재가 부상으로 이탈했고, 그의 공백을 메우고자 좌측 윙백으로 기용되었으며, 대체적으로 포백 체제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지만, 쓰리백에서 사이드를 담당할 경우에는 안정적인 플레이를 보였다.
2023시즌 한해 리그 25경기 출장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8.2. 2024 시즌
3라운드 강원과의 홈개막전에서 전반 초반 부상을 입은 강윤성을 대신해 투입되어 오른쪽 풀백 자리에서 강원의 기대주 윙어인 양민혁을 노련하게 틀어막았고 팀은 극적인 1:1 무승부를 거두었다.16라운드 대구와의 홈경기에서 팀이 부상으로 센터백 스쿼드가 박살나자 오른쪽 스토퍼로 선발출전해 팀의 무실점 1:0 승리에 크게 공헌하였다. 피지컬이 훨씬 우월한 에드가 실바를 상대로도 경합을 마다하지 않고 싸워주며 많은 대전팬들의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이날 경기장에 포기한 사람? 우린 아니야라는 걸개가 걸렸는데 제주전 패배 이후 팀이 최하위로 처지자 오재석은 포기하지 말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말을 하며 대전팬들과 선수들은 대구전 승리를 시작으로 반등해보자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
30라운드 서울과의 원정경기에서 김문환의 경미한 부상으로 오랜간만에 선발출전하여 80분정도를 소화해내며 준수한 수비력을 보였고 팀은 3:2 승리를 거두었다. 경기중료 후 대전팬들을 향해 포효를 하며 상암을 대전팬들의 환호성으로 뒤덮었다.
37라운드 인천과의 원정경기에서 대전이 승리를 가져가며 K리그 1 잔류를 확정지었다. 시즌초반 극도의 부진으로 이민성 감독이 경질되고 황선홍 감독이 부임한 후에도 제컨디션을 찾지못하며 헤맨 대전이지만 주장인 주세종과 함께 베테랑으로써 팀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그라운드안팎에서 해내며 팀의 잔류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러나 이 날 친정팀의 강등을 지켜보며 착잡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 현재 수원 선수들 중 개인 콜이 있는 선수는 김대의나 조원희 급 고참급 선수들 정도밖에 없다.[2] 심지어 수원이 오재석에 웃돈도 얹어 주었다. 수원이 호갱이거나, 오재석의 굴욕이거나... 그리고 수원 팬들은 팀의 미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될 가능성이 충만한 선수를 내주고 또 숭실대학교 출신 선수를 데려왔다고 윤성효를 신나게 깠다.[3] 아무리 호구딜 소리를 들어도 오재석이 오범석이라는 월드컵 대표 풀백을 이기긴 어려웠기에 어차피 구단 입장에선 파려면 맞는 선택이긴 했다. 물론 웃돈은 할 말 없지만.[4] 감바와 강원이 계약을 합의하던 시점은 2012년 10월로, 강원의 강등이 유력한 시점이었는데, 오히려 예상치 못하게 감바가 강등당하며 꼼짝없이 2부리그에서 뛰게 됐다. #[5] 정황상 대전일 가능성이 높다.[6] 도움 하나의 경우 오프사이드 오심으로 인정된 행운이 따른 도움.[7] 현재 K리그는 트레이드 시 선수 동의가 필수다. 과거에는 양수 구단이 양도 구단에서 맺은 계약보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연봉을 제시하면서 선수가 거부할 수 없었지만 현재는 규정이 개정돼 선수 동의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 트레이드의 마지막 키를 쥐고 있던 오재석이 12월 16일에 최종적으로 동의하며 상황은 마무리됐다고 한다.[8] 흥미로운 것은 오재석과 권한진이 경희대 스포츠지도학과 08학번 동기라는 사실이다. 권한진이 1살 위지만 학번은 같다. 경희대 축구부에서 함께 활약했다. 오재석이 수비상을 수상하고 권한진이 주전 스트라이커로 뛰었던 대회도 있다. 이번 트레이드를 통해 서로 팀을 바꾸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