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6-04 10:54:11

오상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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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군의 위관급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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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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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출처

1. 개요

  • 한자: 吳相默

구한말의 군인.

2. 생애

대한제국 육군 부사관 출신으로 장교로 신분 전환했다.
  • 1903년 육군 보병 참위 임용 / 친위 1연대 3대대 부
  • 1905년 징계 사면 및 재임용
  • 1907년 군대 해산 제대

1903년에 장교로 임관한 배경이 신문 기사에 실렸다. 대한제국군 친위대 정교(상사)였던[1] 오상묵은 홍릉에 파견되었는데[2] 송충이가 소나무를 갉아먹자 분노하여 송충이를 잡아 한 사발을 집어삼켰다. 이 이야기가 왕에게까지 들어가서 장교로 임관됐단 내용이다. 평양연대(진위4연대)의 연대장인 길영수가 오상묵을 위해 특별히 회식도 열어주었다. # 실제 관보에서는 육군무관학교 2회 정규 1차 졸업자들의 임용과 동시에 부사관 5명의 특별임관이 처리되고 있어서, 통상적인 인사에 대한 미담 전파 목적으로 추정된다. #

1905년에 징계를 당했는데 1904년 12월 29일에 대안문에서 당직을 서던 병졸들이 일본군 헌병에게 돌을 던진 일 때문이었다. 이 일로 육군법원에 압송되었다. # 추후에 나온 문서에 따르면, 민간인 등이 일본군 주둔지가 있던 대관정 앞에 모여 있었다. 진위 4연대 1대대 소속의 병정 이윤태가 술에 취해 있자 일본군 헌병이 체포하였고, 민간인과 일본 헌병과 점차 갈등이 고조되자 돌을 던지고 헌병이 칼을 휘두르는 등의 충돌이 발생하였다. 민간인의 집회로 일본과 충돌 양상이 보이자 도수(맨손) 상태로 병사를 파견했는데 이들이 일본군과 충돌에 휘말리는 등 러일전쟁 때의 긴장감을 볼 수 있다. 사병 127명이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다. 오상묵 본인은 소대원들을 통제하지 못했다고 유배형에 처해졌다. # 같은 해에 사면되었다.

1919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원령 1호로 도장관이 임명되었는데 함경북도 도장관으로 오상묵이 임명되었다. 본인인지는 불명이다. #
7. 10.
대한민국임시정부, 國務院令 제1호로 聯通制 실시 공포. 도에는 督辦(道長官), 군에는 郡監(郡守), 면에는 司監(面長)을 둠. 각도의 督辦은 평북 安秉讚, 평남 尹聖連, 황해도 崔錫浩, 함남 吳相根, 함북 吳相默, 전남 奇東衍, 전북 李德煥, 경기도 閔哲勳, 충청도 李起祥.

3. 출처


[1] 관보에는 정교로 나오는데, 기사에는 이등병이라 나온다.[2] 명성황후가 묻힌 곳이며, 고종도 죽은 뒤에 이곳에 묻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