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베어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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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베어의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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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tha, Berliner Sport-Club e.V Fahnenträger | |||||
<colbgcolor=#004d9e> 이름 | 에리히 베어 Erich Beer | ||||
본명 | 에리히 "에테" 베어 Erich "Ete" Beer | ||||
출생 | 1946년 12월 9일 ([age(1946-12-09)]세) | ||||
연합군 점령하 독일 바이에른 자유주 오버프랑켄 현 노이슈타트 바이 코부르크 | |||||
국적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73cm | 체중 67kg | ||||
직업 | 축구 선수 (미드필더[1], 공격수[2] / 은퇴) 축구 감독 | ||||
소속 | <colbgcolor=#004d9e> 유스 | SpVgg 게르마니아 에빙 (1953~1960) VfL 노이슈타트/코부르크 (1960~1967) SpVgg 그로이터 퓌르트 (1967~1968) | |||
프로 | 1. FC 뉘른베르크 (1968~1969) 로트바이스 에센 (1969~1971) 헤르타 BSC (1971~1979) 알 이티하드 FC (1979~1981) TSV 1860 뮌헨 (1981~1984) | ||||
감독 | TSV 1860 뮌헨 (1983) TSV 1860 뮌헨 (1984) SpVgg 바이로이트 (1985) | ||||
국가대표 | 24경기 7골 (서독 / 1975~1978)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5px" {{{#!folding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colbgcolor=#004d9e,#191919> 별명 | 에테 (Ete) 베를린 베어 (Der Berliner Beer)[3] | |||
등번호 | 헤르타 BSC - 8 | ||||
주발 | 오른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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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te |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초기 경력
1946년 12월 9일 코트부르 바이 노이슈타트에서 태어난 에리히 베어는 1953년 SpVgg 게르마니아 에빙 유스팀과 계약하며 자신의 축구 경력을 시작하였다. 1960년에는 고향 팀 VfL 노이슈타트/코부르크 유스팀에 입단하였고, SpVgg 그로이터 퓌르트를 잠시 거쳐 1. FC 뉘른베르크와 프로 계약을 체결한 뒤 1968년 1군 데뷔전을 치렀다.뉘른베르크에서 한 시즌을 치른 베어는 다음 해인 1969년 로트바이스 에센으로 이적하였고, 2시즌 동안 70경기에서 12골을 기록하는 등 분전했으나 팀은 강등되고 말았다. 분데스리가에 계속 뛰길 바랐던 베어는 이적을 결심하였고, FC 바이에른 뮌헨과 1. FC 쾰른이 영입에 관심을 보였으나 자신을 중심으로 팀을 꾸리겠다고 계획한 헤르타 BSC로 이적하게 되었다.
2.1.2. 헤르타 BSC
바이에른과 헤르타 양 팀의 상징이었던 프란츠 베켄바워와 에리히 베어 |
1974-75 시즌 헤르타는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과의 서베를린 더비에서 전승, 바이에른과의 홈 경기에서 프란츠 베켄바워의 자책골과 베어의 멀티골로 4:1 대승을 거두는 등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에서 15승 2무를 기록하며 홈에서 극강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VfL 보훔을 상대로 승리하며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 이어 준우승을 확정 지었다. 이는 현재까지도 구단 역사상 최고의 시즌으로 여겨진다. 분데스리가에서만 32경기 11골을 기록한 최다득점자 베어는 돌풍의 중심이자 헤르타에서 가장 위협적인 선수였다.
1975-76 시즌 베어는 루트비히 뮐러의 주장직을 이어받았고, 구단은 DFB-포칼 준결승에 진출하며 직전 시즌의 돌풍을 이어나갔다.
1976-77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포칼 결승에 진출하였으나 1. FC 쾰른을 만나 1차전 1:1 무승부, 2차전에서 0:1 패배를 거두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베어는 1차전 연장후반에 헤르타의 명백한 패널티킥이 부여받지 않은 것에 대해 큰 불만을 제기하였다.
"바이에른은 쾰른이 우승할 경우에만 UEFA컵에 진출할 수 있었다. 경기 시작 전에도 DFB가 이번 결승전에 뮌헨 출신의 심판을 기용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후 나는 심판에게 가서 항의했고, 그는 연장전 종료 직전 팀(헤르타)에게 패널티킥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1978-79 시즌 시작 전, 베어는 여전히 헤르타의 주장직을 역임하고 있었다. 베어와 그의 팀 동료 올레 라스무센은 이른 저녁을 먹은 뒤 여전히 허기가 져 22시 30분에 샌드위치를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갔고, 그것을 발견한 쿠노 클뢰처 코치가 그들에게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이 시간에 식사를 하면 안됐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 베어는 코치를 찾아가 자신의 주장직을 내려놓았다.새로 주장직에 선출된 우베 클리만이 이끄는 1978-79 시즌 헤르타는 UEFA컵에서 준결승에 진출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준결승 상대는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였고, 1차전 원정에서 1:0 패배를 기록한 헤르타는 2차전 홈에서 2:1 승리를 기록하였으나 원정 다득점에 의해 탈락하고 만다. 2달 뒤 하노버에서 개최된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의 포칼 결승에서도 0:1 패배를 기록하며 결국 이 시즌에도 무관에 그치게 된다.
1978-79 시즌이 끝나고 백만 유로 이상의 이적시장 흑자가 필요했던 헤르타는 베어를 이적시키기로 결정하였고, TSV 1860 뮌헨, RC 스트라스부르, 미국 등에서 이적 제의를 받았으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축구단 알 이티하드 FC로 이적하였다.
2.1.3. 후기 경력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뛰는 최초의 독일 축구선수가 된 베어는 알 이티하드 FC에서 2시즌을 보낸 뒤 1981년 TSV 1860 뮌헨으로 이적하였고, 1984년 은퇴를 결정하게 된다.2.2. 국가대표 경력
이후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최종 명단에도 발탁되어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나, 서독은 8강에서 탈락하는 등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게 된다. 이 대회 이후 베어는 국가대표에서 은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