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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 → | 2007년 |
1. 아마추어 시절
1.1. 고교 이전
학강초등학교 시절[1] |
1.2. 광주동성고등학교 야구부 시절
동성고등학교 시절[2] |
2005년(고2)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에서 신일고에 2-1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할 당시 구원 투수였다. 한기주가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내려가자 2회에 구원 등판했고 6⅓이닝 5피안타 무실점으로 잘 막았다.
2006년(고3) 대통령배 2연패에 도전, 이용찬의 장충고와 맞붙어 결승전에서 7⅔이닝 14탈삼진을 기록했지만 타선이 터지지 않으며 0:2로 패했다. 이 날 경기에서 8회 2사 상황에서 4번타자 이두환에게 솔로 홈런을 맞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4]
당시 공식전 최고 구속은 140km였지만, 프로에서 메커니즘을 좀 더 다듬고 근력을 끌어 올린다면 더 빠른 구속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그래서 KIA 타이거즈가 사상 최초로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얻은 2차 지명 전체 1번으로 입단하였다. 양현종이 광주팜(동성고) 출신이지만 1차 지명에서 KIA는 당대 고교 최대어 중 하나인 광주진흥고의 정영일[5]과 광주일고-인하대 출신의 오준형을 지명했다.[6] 그러나 정영일은 지명을 거부하며 미국에 진출했고, 오준형은 프로에서 좋은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지명 순서에 대해서는 KIA 타이거즈가 2005년에 최하위를 해서 2차 지명 1순위 지명권을 얻게 되어 계약금을 아끼기 위해[7] 2차 1번으로 넘어간 것이지 꼴찌가 아니었더라면 1차 지명되었을 것이라는 게 중론.[8] 하지만 동성고의 에이스이자 양현종의 1년 선배로, 계약금 10억을 받으며 기대를 모았었던 한기주만큼 기대치가 높았던 것은 아니었다.
KIA 입단식 (아랫줄 오른쪽에서 두번째)[9] |
2. 연도별 성적
2.1. 투수 기록
역대 기록 | ||||||||||||
<rowcolor=#fff> 연도 | 소속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2004 | 광주동성고 | 3 | 3⅔ | 1 | 0 | 0.00 | 4 | 0 | 0 | 5 | 0 | 0 |
2005 | 8 | 37 | 2 | 0 | 0.49 | 27 | 0 | 10 | 33 | 4 | 2 | |
2006 | 16 | 90⅔ | 8 | 3 | 0.99 | 50 | 2 | 30 | 141 | 11 | 10 | |
통산 (3시즌) | 27 | 131⅓ | 11 | 3 | 0.82 | 81 | 2 | 40 | 179 | 15 | 12 |
2.2. 타자 기록
역대 기록 | ||||||||||||||||
<rowcolor=#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2004 | 광주동성고 | 2 | 0 | .000 | 0 | 0 | 0 | 0 | 0 | 0 | 0 | 0 | .000 | .000 | .000 | |
2006 | 6 | 5 | .200 | 1 | 0 | 0 | 0 | 0 | 0 | 0 | 0 | .200 | .200 | .400 | ||
통산 (2시즌) | 8 | 5 | .200 | 1 | 0 | 0 | 0 | 0 | 0 | 0 | 0 | .200 | .200 | .400 |
3. 관련 문서
[1] 모자의 로고를 잘 보면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유니폼에 쓰인 모자 로고와 같다. 참고로 이 학교 야구부의 현재 유니폼은 과거 해태 타이거즈의 상징이었던 검빨 유니폼과 똑같다.[2] 당시 동성고의 로고는 두산 베어스와 비슷했다.[3] 좌완 투수 부분 올스타전과 대회 평균자책점 1위.[4] 양현종은 이두환과의 인연이 특별한데 이두환의 투병부터 사망까지 지켜봤던 절친이었으며 이니셜인 DH를 모자에 항상 적어놓았다.[5] 2006년 한 해동안 혹사의 아이콘이었다. 대통령배 1회전 경기고와의 게임에서 13⅔이닝, 242투구수, 64타자, 23탈삼진, 12피안타, 11사사구, 6실점을 기록하고도 연장 16회에서 패했다. 같은 해 청룡기 경남고와의 결승전에서는 16이닝, 222투구수를 기록하고도 연장 16회에서 패했다. 대통령배, 청룡기, 무등기에서 혼자 다 던지다시피해서 결국 메이저 리그 진출은 커녕 마이너 리그에서도 부상, 재활 등으로 부진한 채 쓸쓸히 귀국했다.[6] 2007년 한 해만 신인 1차 지명으로 2명을 뽑을 수 있었다.[7] 실제로 양현종의 계약금은 2억원으로 오준형의 계약금 1억 8천보다 2천만원 더 많다. 팬들은 양현종이 1차 지명되었다면 계약금이 3억 정도는 되었을 것으로 본다.[8] KIA는 또 2007년에 꼴찌한 대가로 2008년에 고교 4대 유격수 중 한 명이었던 안치홍을 2차 지명 1라운드에서 뽑아갈 수 있었다.[9] 뒷줄 맨 오른쪽 32번을 단 선수가 권윤민 現 KIA 타이거즈 전력기획팀장이다. 그리고 앞줄 맨 왼쪽에 있는 선수는 다름아닌 現 롯데 자이언츠 단장인 성민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