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5 13:57:25

안드리 보로닌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Збірна України з футболу
파일:Andriy_Voronin_2019.jpg
이름 안드리 보로닌
Andriy Voronin
본명 안드리 비크토로비치 보로닌
Andriy Viktorovych Voronin
출생 1979년 7월 21일 ([age(1979-07-21)]세) /
소련 우크라이나SSR 오데사
국적 우크라이나 파일:우크라이나 국기.png
신체 178cm|체중 81kg
직업 축구선수 (공격수, 미드필더[1]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 (1997~2000)
마인츠 05 (2000~2003)
FC 쾰른 (2003~2004)
바이어 04 레버쿠젠 (2004~2007)
리버풀 FC (2007~2010)
헤르타 베를린 (2008~2009/ 임대)
디나모 모스크바(2010~2014)
포르투나 뒤셀도르프(2012~2013/ 임대)
감독 FC 뷔데리히 (2017)
우크라이나 대표팀 (2017~ / 전력분석관)
국가대표 75경기 8골 (우크라이나 / 2002~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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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2.1.2. 마인츠와 FC 쾰른2.1.3. 바이어 04 레버쿠젠2.1.4. 리버풀 FC2.1.5. 헤르타 베를린(임대)2.1.6. 리버풀 FC 복귀2.1.7. 디나모 모스크바2.1.8.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임대)2.1.9. 디나모 모스크바 복귀
2.2. 국가대표 경력
3. 지도자 경력4. 여담

1. 개요

우크라이나의 축구감독, 축구 전력분석관, 전 축구선수. 스트라이커와 공격형 미드필더 양쪽 모두를 소화할 수 있었던 선수였고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75경기에 출전한 베테랑이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

우크라이나의 고향팀 Chornomorets Odessa에서 유소년 선수로 뛰다가 1995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 유스팀에 입단했다. 1997년 묀헨글라드바흐와 정식 프로계약을 체결하였고, 바이에른 뮌헨과의 분데스리가 경기에서 첫 1군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대부분 2군 경기에 출전하였고 2000년 더 많은 출전기회를 얻기 위해 팀을 떠났다.

2.1.2. 마인츠와 FC 쾰른

2000년 당시 2. 분데스리가에 있던 마인츠 05로 이적했고, 이적 세 번째 시즌인 2002-03 시즌, 스트라이커로서 포텐을 터뜨려 31경기 20골을 득점하며 2. 분데스리가 득점왕에 선정된다. 그러나 보로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인츠는 승격에 실패했고, 팀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이로 인해 고국 우크라이나의 명문 클럽인 디나모 키예프를 비롯해 VfB 슈투트가르트를 위시한 분데스리가 강호들의 관심을 받았고, 승격팀 1. FC 쾰른으로 이적했다. 쾰른에서 21경기에 출전해 6골을 넣으며 맹활약했으나, 팀의 강등을 막지 못했고, 그는 다시 이적을 타진했다.

2.1.3. 바이어 04 레버쿠젠

쾰른에서의 맹활약에 분데스리가의 강호 바이어 04 레버쿠젠이 관심을 보였고, 2004년 여름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팀의 주축 공격수였던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와 호흡을 맞춰 첫 시즌 분데스리가 32경기에 출전해 15골을 넣었고,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32강전 조별 예선 6경기에 모두 출전했고, 디나모 키예프를 상대로 1골씩을 넣으며 큰 임팩트를 남겼다. 2005-06 시즌에도 34경기 8골로 괜찮은 활약을 했고, 2006-07 시즌에는 43경기에 출전, 12골을 넣음으로써 팀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선수가 되었다.

2.1.4. 리버풀 FC

파일:andriy-voronin.jpg
리버풀 팬 한정 금기어
레버쿠젠과 우크라이나 대표팀에서의 활약상에 힘입어 2007년 여름 리버풀 FC로 이적했다. 처음에는 UEFA 챔피언스 리그 3라운드 툴루즈와의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는 등 나쁘지 않은 활약을 선보였고, 라파엘 베니테즈의 칭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갈수록 결정적인 찬스를 말아먹는 등 먹튀스러운 기량을 보이더니 5골밖에 넣지 못했고, 부상까지 겹치고 리버풀에서의 적응에서조차 실패하자[3] 리버풀 FC 최악의 스트라이커 2위에(...) 기록되기까지 하는 굴욕을 겪었다. 여담으로, 더비 카운티와의 프리미어 리그 경기에서 발바닥(...)으로 골#을 기록한 적이 있다. 0:44초부터 보자. 애초에 보로닌의 리버풀 시절 골 모음 영상인데 보로닌이 5골밖에 넣지 못해서 별로 길지도 않다.

2.1.5. 헤르타 베를린(임대)

결국 2008년 분데스리가헤르타 BSC로 임대이적했다. 독일 무대에서는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기도 했고, 33경기에 출전해 11골 6도움을 기록하며 기량이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2.1.6. 리버풀 FC 복귀

이처럼 헤르타 베를린에서 맹활약하자 라파엘 베니테즈는 다시 보로닌을 리버풀로 불러들이는데 보로닌 본인도 # 리버풀로 복귀하면 다시 잘 하고 싶다며 부활의 의지를 내비친 바 있었다. 그러나 돌아온 리버풀에서는 거짓말같이 다시 부진하였고 12경기에 출전해 한 골도 넣지 못하며 리버풀을 떠났다.

2.1.7. 디나모 모스크바

결국 리버풀에서 방출되어 2010년 1월 디나모 모스크바로 이적했다. 첫 시즌에는 29경기에 출전해 4골밖에 기록하지 못했으나 다음 시즌에는 37경기에 출전해 11골을 기록하며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무대에 완벽히 적응했다.

2.1.8.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임대)

2012-13 시즌을 앞두고 분데스리가 승격팀 포르투나 뒤셀도르프로 임대되었다. 허나 11경기에 출전했고 무득점으로 경기를 마치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고, 다시 디나모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2.1.9. 디나모 모스크바 복귀

2013년 여름 원소속팀 디나모 모스크바로 돌아왔고, 그때는 이미 많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17경기에 출전, 7골을 넣으면서 로테이션 멤버로서 쏠쏠한 활약을 해주었다. 2014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2002년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이래 안드리 셰브첸코와 호흡을 맞춰 우크라이나 대표팀이 2006 FIFA 월드컵 독일 본선에 진출하는데 기여했다. 2011년 우크라이나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3. 지도자 경력

2017년 독일 5부리그 팀 FC 뷔데리히 감독을 역임했다가 곧 사임했고, 안드리 셰브첸코가 우크라이나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자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력분석관으로 부임했다.

4. 여담


[1] 주로 스트라이커였지만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는 경우도 있었다.[2] 우크라이나 정교회 신자다.[3] 2008년 4월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독일과 비교하며 영국 사회를 디스하고, 심지어 리버풀 특유의 억양인 스카우스를 조롱하며 팀의 레전드인 제이미 캐러거스티븐 제라드를 까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