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a Elisabeth "Anneliese" Michel(1952년 9월 21일 - 1976년 7월 1일)
1. 개요
안나 엘리자베트 "아넬리제" 미헬(Anna Elisabeth "Anneliese" Michel)은 사망 전 해부터 사망 직전까지 가톨릭 교회의 구마 의식을 받은 독일인 여성이다. 아넬리제는 구마 의식을 받기 전 이미 7년여 동안 간질성 정신병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었다.2. 생애
아넬리제 미헬의 가족
1952년 9월 21일[1] 서독 바이에른 주 니더바이에른 현(縣) 슈트라우빙-보겐(Straubing-Bogen) 군(郡)의 작은 마을 라이블핑(Leiblfing)[2]에서 아버지 요제프와 어머니 안나 사이에서 네 자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부모와 마찬가지로 가톨릭 신자로 성장하여 신앙심이 깊었고 보통 일주일에 두 번 미사에 참례했다. 김나지움[3] 재학 중인 16살 때 심한 경련 증상을 겪고 병원에서 측두엽 간질성 정신병 진단을 받았으나, 학업을 계속하여 1970년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에 입학했다.
아넬리제 미헬의 대학교 재학 중에도 정신병 증상은 계속되었다. 결국 병원에 입원했는데, 1970년 6월 입원 중인 병원에서 세 번째 발작을 일으켰다. 세 번째 발작 후 새로 항경련제를 처방받았지만 경련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고 오히려 '악마의 얼굴'을 보는 환각과 '지옥에 관한' 환청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추가로 우울증이 더해져 자살충동을 겪었다. 아넬리제 미헬의 경련과 환청·환각과 우울증은 꾸준한 치료에도 불구하고 호전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되었으며, 5년 동안이나 치료를 받았음에도 증상이 호전되기는커녕 악화되기만 하자 의학적 치료 조치에 점점 신뢰를 잃고 좌절했다.
다른 한편, 미헬은 병원 치료 중 성당과 성물에 점차 거부반응을 보였다. 미헬과 직접 대화했던 지인의 증언에 의하면, 미헬은 더 이상 성소(聖所)인 성당에 출입하지 못했고 가톨릭 성인들의 성화(聖畫)와 사진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고 한다.
3. 구마
1973년, 정신병 증상이 꾸준한 치료에도 불구하고 호전되지 않고 악화되기만 하자, 아넬리제 미헬 본인 스스로는 물론 가족과 주변 사람들까지 가톨릭 사제들과 상담하면서 구마를 요청했다. 처음에 사제들은 그들의 구마 요청을 거절하고 치료를 지속하라고 권하면서 구마 의식에는 (엄격한 조건 하에) 주교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주지시켰다. 한편, 구마 문제로 사제들과 상담하는 중에도 아넬리제 미헬은 육체적 건강이 악화되었고 성격에서는 공격성을 보였으며 곤충이나 자기 소변을 먹고 마시는 등 기행(奇行)을 저지르고 몸을 자해했다. 1973년 11월부터 항경련제 겸 기분안정제인 테그레톨(Tegretol)을 복용하면서부터는 환청과 환각에 있어서 악마의 모습을 보고 말을 듣는 것 외에도 악마가 물건을 집어던지는 것을 목격하기 시작했다.아넬리제 미헬과 만나본 에른스트 알트(Ernst Alt) 신부는 "그녀는 간질 환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발작을 일으키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하고 선언했다. 알트 신부는 미헬이 악마에게 고통받는다고 믿게 되어 당시 뷔르츠부르크 교구장 주교 요제프 슈탕글(Josef Stangl) 주교에게 구마의식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다. 미헬은 알트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 모든 것은 헛됩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나아져야 합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라고 쓰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고통받고 싶습니다.[4]··· 하지만 이건 너무 고통스러워요."라고 쓰기도 했다.
1975년 9월, 2년여 동안 아넬리제 미헬에 대한 구마를 허락하지 않던 요제프 슈탕글 주교는 사제 2명이 미헬에게 구마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하되 동시에 비밀을 엄수하도록 지시했다. 1975년 9월 24일, 두 사제는 전통 전례에 따른 첫 번째 장엄 구마 의식을 거행했다.[5] 구마를 받으면서부터 미헬의 가족은 의사와 상담을 중단했다. 아넬리제 미헬은 죽기 전까지 총 67번의 구마 의식을 받았다. 이 동안 그녀는 "현대 교회의 배교자 사제들을 위해 보속하는 것"에 관해 자주 발언하고 식사를 거부했다.
1976년 7월 1일, 결국 아넬리제 미헬은 영양실조와 탈수로 사망했다. 망자의 사망 시 몸무게는 30kg이었다. 두 가톨릭 사제는 기소되어 과실치사로 유죄를 선고받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및 벌금이 형으로 선고되었다.
4. 녹취
아넬리제 미헬에게 구마 의식을 행할 때 이를 상당부분 녹음하였는데, 그 녹취록이 남아 유튜브에서도 이를 들을 수 있다. 이 녹음은 재판에도 제출되었다고 한다.Part 1
Part 2
Part 3
Part 4
Part 5
Part 6
Part 7
Part 8
Part 9
5. 의미[6]
이 사건은 이미 구마에 의구심이 증가하던 상황에서 불신이 더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에른스트 알트 신부는 미헬이 발작 증세를 보이지 않았으므로 간질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나 미헬이 보인 증상들은 대부분 간질로 설명할 수 있다.
미헬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후대 영화의 내용과 달리, 실제로는 미헬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보이지는 않았다. 가톨릭에서 장엄구마를 행하려면 대략 '신체 및 행동에서 가시적 변화',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 '익힌 적 없는 외국어를 사용', '그리스도교에 적대감을 보임' 등 엄격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7] 하지만 두 번째 조건은 충족하지 못했다.
세 번째 조건도 미헬이 말한 외국어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 가정에서 자랐다면 자연스럽게 접했을 간단한 신학 라틴어 몇 마디에 불과했기 때문에 충족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네 번째 조건도 충족되었다고 보기엔 부족하다. 성장 과정에서 평생 보고 들은 내용이 가톨릭 관련 이야기라면 심신이 피폐해진 상태에서 가톨릭 교리 상 부정적으로 가르치는 대상이 떠오르는 것은 충분히 있을 법하기 때문이다.
미헬에게 빙의되었다는 여섯 악령에 대해서도 의혹을 품을 만한 대목이 많다. 여섯 악령은 카인, 유다 이스카리옷, 네로 황제, 플라이슈만, 히틀러, 루시퍼이다. 그런데 인류 최초의 살인자 카인과 예수를 판 유다 이스카리옷은 성경을 조금만 읽었다면 알 수 있는 악인의 대명사이다. 공포감에 질린 독실한 신자로선 반그리스도교적 인물의 상징으로 충분히 떠올릴 수 있을 만한 대상. 하지만 카인은 최초의 살인자라고 평생 남에게 멸시를 받는 낙인이 찍혔지만 하느님께 용서를 빌고 그 죄를 받아들이고 개과천선하게 된다. 유다는 배신을 한 죄책감에 의해 나중에 예수가 죄 없다고 말하며 자신이 받은 은화를 집어던지고 자살하게 된다. 그러니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친 자들이 악령으로 나타나서 천주교 즉 하느님과 대립할 명분은 부족해보인다.
네로 황제 역시 폭군이고 암군임은 분명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박해를 설명하기 위해 지나치게 악마화되었다는 게 다수설임에도 이 사건에선 그냥 '전통적인 전승'대로 언급되었다. 히틀러 역시 미헬이 독일인이기에 곧바로 떠올릴 수 있는 악인이다. 루시퍼는 유대인이 미워한 바빌로니아의 몰락을 은유하기 위해 빗댄 샛별(금성)의 이칭일 뿐, 그가 타락 천사라는 설정(?)이 붙은 건 훗날의 일이다. 요약하면 여섯 중 다섯은 그냥 전통적인 가톨릭 교리에 충실한 신자가 곧바로 떠올릴 수 있는 악한 존재들일 뿐이다.
남은 이는 플라이슈만인데, 그는 1572년부터 1575년에 걸쳐 주교를 맡았고 바이에른주 내에서 살았던 타락한 성직자였으되[8] 미헬의 고향인 바이에른주에서 상대적으로 유명했을 뿐 나머지 다섯 존재만큼 널리 알려진 이는 아니다. 당장 봐도 다섯 존재보다 급이 확연히 떨어진다. 요약하면 여섯 '악령'은 미헬이 그냥 평소 배웠던 대로 떠올린 나쁜 놈들이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더욱이 여섯 악령은 각각이 빙의되었다고 보기엔 사용 어휘나 표현 등이 꽤 비슷했고 바이에른 지역 방언을 구사했다고 하는데, 악령들이 인류와 소통을 위해 친절함을 발휘했다 한들 오스트리아 태생인 히틀러마저 바이에른 쪽 말을 썼다는 건 영 좀...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구마사제가 "~이/가 맞는가? ~인가?" 하고 묻는 유도성 질문이 많은데, 구마는 원래 이런 유도성 질문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넬리제의 대답은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신앙과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천주와 성모가 얼마나 위대한지, 현대 사회와 종교계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교회의 최근 변화가 얼마나 나쁜지에 중점을 두었다.
아넬리제 미헬의 사인은 아사 직전 상태의 영양 부족과 탈수 현상이었다. 식사를 거부했더라도 어떻게든 영양을 공급했더라면 생존했을 거라는 시각이 있다.
여러 가지로 따져보면 아넬리제 미헬에게 나타난 증상은 그저 독실하고 보수적인 가톨릭 가족의 일원으로서 보고 듣고 접한 이야기의 영향에서 기인했다고 판단할 여지가 크다. 악마의 실재를 자신 있게 주장할 근거로 삼기에는 부족한 것이다.
일부 가톨릭 전통주의자는 아넬리제 미헬의 사건에 관심이 적지 않다. 미헬이 구마 의식을 받으면서 했다는 발언 때문이다. 엑소시즘 의식을 받는 도중에 미헬의 입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후(前後)로 나타난 여러 변화에 관해 비난조로 언급하는 발언이 자주 나왔다. 하지만 미헬의 성장배경을 감안하면 악마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을 법한 발언이다. 미헬이 장엄구마를 받은 1975-76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후 10여 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그 결과와 영향을 두고 반발이 한창 일어나던 때였다.
엑소시즘 의식을 받으면서 아넬리제 미헬의 입에서 나온 발언 상당 부분이 녹음되었다. 몇 년 전부터 유튜브에 이 녹취 약간과 영화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의 장면 몇을 짜깁기해서 업로드한 영상이 여러 개 올라와 있고, 나중에는 어느 한국인 가톨릭 전통주의자가 녹취록을 한국어로 번역했다. 이 문서에 링크된 영상이 바로 그것인데, 번역자의 주관에 따라 해석과 자료를 추가했음을 감안하고 보아야 한다.[9]
6. 영화
2005년 영화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는 아넬리제 미헬의 사건을 모티브 삼아 제작되었다. 영화의 배경은 실제 사건과 달리 미국이다.덱스터의 여동생 데보라 모건 역으로 유명한 제니퍼 카펜터가 에밀리 로즈를 연기했으며 악령에 시달리며 죽음에 가까워지는 에밀리 로즈의 모습을 박진감 넘치게(?) 연기하여 2006년 MTV 영화상의 '가장 무서운 연기' 부문을 수상했다.
독일에서도 레퀴엠이라는 이름으로 본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만들어졌다. 산드라 휠러가 아넬리제에 해당하는 역을 맡았다.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의 Public Image: First Issue에 'Annalisa'가 이 사건을 다루고 있다.
7. 관련 문서
8. 외부 링크
[1] 주일.[2] 2018년 현재 인구 4191명#[3] 후에 미헬의 급우들은 '내성적이고 신앙심 깊은' 사람이었다고 평가했다.[4]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하는 의미로 고통을 자처하겠다는 뜻. 가톨릭 신심에서 흔히 나타나는 모습이다. 가톨릭 성인들은 이런 원의(願意)로 차있었다고 한다.[5]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은 종교의례(전례)를 대대적으로 바꾸었다. 미사 전례는 1969년 새 형식이 공포되었지만, 새 전례에 따른 구마 기도문은 1999년이 되어서야 제정되었다.[6] 상당부분 서술은 이 문서 8.에 링크된 피키캐스트와 블로그의 글을 토대로 작성했다.[7] 요제프 슈탕글 주교가 장엄구마 허가를 망설였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8] 아이 4명이 있었고 이성, 술, 폭력에 몰두하는가 하면 주교관을 박살 내는 등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9] 번역자의 블로그를 보면 천동설과 지구평면설에 (근거의 적절성과는 별개로, 필자 나름대로 교부와 성인들에게서 근거를 찾아내서 제시하지만) 호의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