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21 23:5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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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논란


홈페이지
信仰界

대한민국의 종교 전문 출판사로 해당 사에서 발간되는 종교 전문 월간지.

1. 개요

1967년, 창립과 동시에 전도용 월간지로 발행을 시작했다.[1] 당시 발행인 조용기 목사. 1968년부터 초교파 종교 잡지로 발간하기 시작하였으며 현재도 신앙계가 나오는 주간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주일 설교에서 광고를 한다. 현재 발행인 겸 편집자는 이영훈 목사.

특이한 점은 성공회 대천덕 신부[2]의 일대기를 연재하여 시골에서 상속하던 외국인 신부의 영성을 세상에 알렸다는 점이다. 20년 간 연재된 당해 내용은 산골짜기에서 온 편지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있다. 그 밖에도 신앙 서적 출간을 병행하고 있다.

1988년에는 국민일보 창간에 따라서 한 때는 이 신문사의 월간 잡지로 발행되기도 하였으며 2008년 2월호부터는 '플러스인생'이라는 제호로 발행되다가 2015년 1월호부터는 원래의 이름으로 발행되고 있다.

또한 이 잡지는 다른 기독교 잡지들과 다르게 상업광고도 존재했는데, 과거에는 해태제과, 신동아그룹[3], 삼성그룹 일부[4], 한국주택은행[5], 엘칸토 등의 회사들이 많았으며[6] 이후에는 기독교 계열 회사들의 광고를 게재한다.

2017년에는 창간 50주년을 맞이하였다.

2. 논란

  • 2000년에는 민족반역자 김활란을 한국 개신교의 영웅이라고 옹호하는 기사를 쓴 바 있다.[7] 문제는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잡혀 고문 끝에 숨진 주기철 목사와 동급으로 놓는 짓을 하여 친일 매국노인 김활란과 주기철 목사의 위상이 똑같다라고 주장했다는 점. 그리고 불교를 믿던 신라, 고려유교 믿던 조선과 달리 현대 한국은 기독교를 믿고 부강했다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8]
  • 과거에는 원주 사랑의 집 사건의 주범 장진남 목사의 육골즙 광고도 게재한 적이 있었다. 그 전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가 후에 여러 만행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되었다.
  • 1995년 8월호 발행분에서 가야를 기독교 국가라고 주장했다.[9]

[1] 전도용 주간지인 '행복으로의 초대'와는 다르다.[2] 1918년 1월 19일 중국 산둥성 출생. 빈부의 격차가 없는 평등사회를 실천하고자 1965년 강원도 태백시(당시 삼척군 황지읍 및 장성읍)에 예수원을 설립하였다. 2002년 8월 6일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향년 84세. 예수원은 지금도 성공회 대전교구의 특수사목교회로서 초교파 수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3] 주로 대한생명63빌딩 또는 한국콘티넨탈식품 등의 계열사 대다수. 그러나 한국콘티넨탈식품은 1988년에 경영분쟁으로 폐업했고 신동아그룹은 외환위기옷로비 사건 등의 악재로 인해 1999년에 해체되었으며 대한생명은 2002년에 한화그룹으로 넘어갔으며 10년 후 현재의 한화생명으로 변경하였다.[4] 삼성전자삼성생명 등과 삼성영상사업단에서 기독교 음악 관련 CD를 홍보하기도 했다. 참고로 삼성영상사업단은 캐치원Q채널을 운영하며 케이블 방송 사업에도 진출하였으나 외환 위기로 인해 1998년에 해체되었다.[5] 주로 올림픽복권(1983년부터 광고에 게재되었다.)과 일반 예금상품. 2002년 KB국민은행에 인수됨. 참고로 이 광고는 당시 주택은행의 구 로고의 마지막 시기이던 1982년경부터 게재되었다.[6] 게다가 1990년대에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막장 다단계 회사인 산융산업의 광고도 있었다. 해당 광고는 1993년 숭민산업으로 변경되면서 사라졌다. 참고로 숭민산업은 2004년 파산했으며 주수도와 조희팔 등 악명높은 사기꾼들이 이 회사의 영업부장으로 있었다.[7] 김활란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으며 이외에도 이기붕의 부인인 박마리아, 모윤숙 등과 함께 등재되기도 하였다.[8] 이것은 신학적으로 보아도 건전하지 못한 주장이다(번영신학). 사실 대한민국의 개신교가 전파된 것은 조선시대 말기인 1832년 이후의 일이다. 그리고 개신교가 본격적으로 확장된 것은 한국전쟁 후인 60년대부터이다.[9] 기독교의 한반도 전래는 매우 늦은 편이었으며, 당시 한반도 국가들이 죄다 그랬듯이 가야의 종교도 무교, 불교, 도교, 유교 등이 주류였다. 이 때문에 가락종친회와 김해 김씨 관련 단체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