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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여의 군주로 위구태왕의 아버지이다. 동명(東明), 선대 부여왕과의 관계는 불분명하며, 왕위는 아들인 위구태가 아닌 친족인 부태가 계승했다. 후한 안제 시기 낙랑을 노략질했으며 이후 태자 위구태를 후한에 보내 조공을 바쳤다. 136년에는 직접 한나라를 방문했다.2. 문헌
夫余王始將步騎七八千人寇抄樂浪,殺傷吏民,後復歸附。
안제 영초(永初) 5년(A.D. 111; 고구려 태조대왕 59)에, 부여 왕이 처음으로 보병(步兵)과 기병 7~8,000명을 거느리고 낙랑을 노략질하여 관리와 백성을 죽였으나, 그 뒤에 다시 귀부(歸附)하였다.
永寧元年, 乃遣嗣子尉仇台詣闕貢獻, 天子賜尉仇台印綬金綵.
영녕(永寧) 원년(120년), 사자(嗣子) 위구태(尉仇台)를 보내 예궐하고 공헌하니, 천자는 위구태에게 인수(印綬)와 금채(金彩)를 내렸다.
順帝永和元年,其王[1]來朝京師,帝作黃門鼓吹,角抵戲以遣之。
순제(順帝) 영화(永和) 원년(136)에 그 왕이 경사(京師, 도읍)에 와서 조알하니, 순제[帝]가 황문고취(黃門鼓吹)와 각저희(角抵戲)로써 이에 돌려보냈다.
《후한서》 <동이열전>(東夷列傳)
'夫余王始'라는 구절이 '부여의 왕 시'라고 해석될 수도 있고, '부여의 왕이 비로소(처음으로)'라고 해석될 수도 있기에 논란이 있다. 일단 해당 문서에는 이름으로 적혀있다.안제 영초(永初) 5년(A.D. 111; 고구려 태조대왕 59)에, 부여 왕이 처음으로 보병(步兵)과 기병 7~8,000명을 거느리고 낙랑을 노략질하여 관리와 백성을 죽였으나, 그 뒤에 다시 귀부(歸附)하였다.
永寧元年, 乃遣嗣子尉仇台詣闕貢獻, 天子賜尉仇台印綬金綵.
영녕(永寧) 원년(120년), 사자(嗣子) 위구태(尉仇台)를 보내 예궐하고 공헌하니, 천자는 위구태에게 인수(印綬)와 금채(金彩)를 내렸다.
順帝永和元年,其王[1]來朝京師,帝作黃門鼓吹,角抵戲以遣之。
순제(順帝) 영화(永和) 원년(136)에 그 왕이 경사(京師, 도읍)에 와서 조알하니, 순제[帝]가 황문고취(黃門鼓吹)와 각저희(角抵戲)로써 이에 돌려보냈다.
《후한서》 <동이열전>(東夷列傳)
일단 始를 음차로 쓴 예가 거의 없는 데다가 고구려의 인명은 절대 다수가 2자 이상이거나 1자인 경우, 음차를 다르게 하든지 성을 붙이든지 해서 문건에는 꼭 2자로 기록하고, 문맥적으로 "처음 공격한 것"이 맞기 때문에 이름이 아닌 것으로 본다. 이전에는 부태왕으로 본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111년과 167년 사이에는 56년 간의 기간차가 있어서 맞지 않다.
물론 비슷한 시기 재위했던 차대왕의 재위기간이 121년 ~ 165년이고, 그 동생인 신대왕이 다시 179년까지 재위하는 것을 감안하면 111년에 재위 극초반, 167년에 재위 극후반이었던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시'(始)를 파자해서 보자는 의견도 있으나 문건이 세로쓰기로 쓰여졌음을 고려했을 때 가능성이 없다. 그냥 부사로 쓰인 것이 맞는 것 같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도 '시'(始)를 고유명사가 아닌 부사로 처리했다.
[1] 앞에 나온 명사를 다시 받는 대명사이다. 앞 문장에서는 주어가 생략되어 있는데 그 앞 문장과 인과관계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 왕"은 시왕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