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31 00:09:36

소가노 우마코

1. 개요2. 상세3. 기타

1. 개요

蘇我 馬子
551년? ~ 626년.

아스카 시대일본을 휘어잡았던 소가씨의 대표적인 권력자. 소가노 이나메(蘇我 稲目)의 아들이자, 소가노 에미시(蘇我 蝦夷)의 아버지, 소가노 이루카의 할아버지이다.

2. 상세

소가씨란 성은 당대의 주요 영주들이 토지를 기반으로 성장해 본거지의 지명을 성씨로 사용했는데, 소가 역시 본래는 아스카의 지명으로 소가씨는 소가를 본거지로 두고 있었기 때문에 소가씨라고 불린 것이었다. 여담으로 아스카에서 소가 바로 북쪽을 당대에는 백제라 불렀다고.

모노노베(物部)씨와 일본내 불교 수용을 둘러싸고 치열한 내전을 벌였다고 알려져있다. 참고로 베(部)는 왕실에서 모종의 목적으로 하사한 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를 보면 소가노 우마코와 모노노베씨와의 다툼은 단순한 외래 종교를 수용하자는 입장과 토착 신앙을 지키자는 측면뿐만 아니라 당시 토착 영주와 왕실 친위 귀족 사이의 전쟁으로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결국 587년 정미의 난(丁未の乱)을 통해 모노노베씨를 학살하고, 32대 스슌 덴노를 강제 즉위시키다가 얼마 안가 사이가 벌어지자 암살하는 등 이때부터 죽을 때까지 극강의 세도를 누렸다. 당장 스슌 덴노를 암살한 후 조카딸인 스이코 덴노를 옹립하고 조카 손자인 쇼토쿠 태자에게 섭정을 맡겨 사실상 둘이서 이시기 일본을 좌지우지했다. 즉, 소가씨 친인척끼리 다 해쳐먹은 셈. 다만 그가 죽고 20여년 후인 645년 소가씨는 을사의 변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3. 기타

일본내 불교 수용에 적극적이었던만큼 일본 최초의 사찰로 알려진 아스카데라(飛鳥寺)를 짓는데도 깊이 관여했다. 국사 교과서에 종종 언급되는 고구려 승려 혜자백제 승려 혜총이 일본에 가서 불교를 전파하고 쇼토쿠 태자의 스승으로 활동하는 등 활약한 것도 그의 집권기에 벌어진 일이다.

소가씨 자체가 백제-마한계 도래인이라는 설도 한국 학계에선 제기되지만, 백제계든 현지 토착 세력이든 뭐든 소가노 우마코가 백제 문화에 꽤나 심취했던 건 역사적 근거가 있어보인다. 중세 시절 역사서 <부상략기>에는 33대 스이코 덴노 시절인 "593년 1월 아스카사(아스카데라) 목탑 초석에 사리를 안치하는 행사를 할 때에 소가노 우마코를 필두로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두 백제 옷을 입고 나타나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해줬다"라는 기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