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by(物部氏,ruby=もののべうじ)] 모노노베씨 | |
<colbgcolor=#760360> 씨성 | 모노노베노 무라지(物部連) 모노노베노 아손(物部朝臣) |
시조 | 니기하야시노 미코토(邇芸速日命) |
씨조 | 모노노베노 도오치네(物部十千根) |
종별 | 신별(神別) 천신(天神) |
본관 | 가와치국 시부카와군 (河内国渋川郡) |
후예 | 아라야씨(新家氏) 다카오카씨(高岡氏) 고토씨(厚東氏) 아자이씨(浅井氏) 등 |
1. 개요
고대 일본의 대호족으로, 니기하야히노미코토(邇芸速日命)라는 신의 후예로 여겨질 정도로 일본에서 유래가 긴 호족 출신이다.[1]『일본서기』에서 모노노베의 조상이 아닌 모노노베라는 성이 직접적으로 나오는 건 리추 덴노 조가 처음으로, 그 족장이 오호무라지(大連)가 된 것이 확인된다. 이름의 특성을 고려하면 원래는 다른 성을 썼다가 왕실의 친위 세력이 되면서 성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모노노베(物部)는 모노(物)에 관련된 직업 집단(部)라는 뜻으로, 본래 무기나 제구(祭器) 등 왕권과 관련된 물건의 생산을 담당하였으리라 추정된다. 5세기 야마토 왕권에서 주로 무기 제조 및 관리를 맡아왔으며, 오토모씨와 함께 유력한 군사 씨족으로 성장했다. 야마토 왕권의 왕위 계승 다툼에서 군사적으로 활약하였고, 유랴쿠 조에는 최고 집정관으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아스카 시대 이후 소가씨와의 경쟁에서 밀린 뒤 영락하여 이후에는 큰 힘을 행사하지 못했다.
해부를 거느린 모노노베씨는 형벌, 경찰, 군사 뿐 아니라 주술, 씨성 등의 다양한 직무를 맡아왔다. 이 중에서 맹신탐탕의 집행자를 겸했다는 일설도 전해지고 있다. 나라현 텐리시 시가지 주변에는 모노노베 씨와 관련된 무덤이 위치해 있으며, 그들의 역사와 연결된 고분군들이 존재한다.
2. 행적
기기신화에 따르면 모노노베의 시조는 니기하야히노미코토(饒速日命)라는 인물로, 진무 덴노가 동정을 결심한 것과 비슷한 시기[2] 하늘에서 아마노이하후메(天磐船)[3]를 타고 내려온 천신(天神)의 아들로 아마노하하야(天羽羽矢)와 카치유키(步靫)를 그 증표로 들고 있었다고 한다. 니기하야히노미코토는 아마노이하후메를 타고 하늘을 날다가 이 나라를 보고 내려왔기에 '하늘에서 본 야마토노쿠니(日本國)'라고 불렀다.[4]니기하야히노미코토는 선주민인 나가스네비코(長髓彦)[5]의 여동생 미카시키야히메(三炊屋媛)[6]와 혼인하여 우마시마데노미코토(可美眞手命)라는 아들을 가졌다. 정확한 시기는 어쨌든 니기하야히노미코토는 진무 덴노보다 먼저 '하늘의 아들'로서 야마토(大和) 일대에서 임금으로 받들어지고 있었다고 한다. 일본서기에서 니기하야히노미코토의 처남인 나가스네비코(長髓彦)의 군세와 주로 충돌한 곳이 오사카부 동부와 나라 분지의 북부 일대에서 주로 충돌한 것을 고려하면, 니기하야히노미코토의 근거지도 이곳이었던 듯하다.[7]
진무 조 무오년 기사에 따르면 진무는 나라 분지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나가스네비코의 군세와 충돌하였는데, 오사카부 동부 지대에서 나가스네비코의 세력과 한번 싸운 뒤 정면돌파는 힘들다 판단했는지 길을 크게 돌아서 나라 분지의 동남쪽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하였고, 나라 분지의 패권을 두고 진무의 세력과 싸운 끝에 패배하였다. 나가스네비코는 나는 이미 하늘의 아들을 이곳의 임금으로 받들어 모시고 있는데 하늘의 아들이 어찌 둘일 수 있겠냐 항의하였고, 진무가 하늘의 아들은 하나가 아니라며 증거를 보여달라 요구하자 나가스네비코는 니기하야히노미코토가 가지고 있던 증표를 보여주었다. 이에 진무 또한 하늘의 자손임을 상징하는 징표를 보여주었고, 나가스네비코는 이제 와서 멈출 수 없다고 적대할 뜻을 굽히지 않자 니기하야히노미코토는 처남인 나가스네비코를 죽이고 진무에게 항복하였다. 진무는 니기하야히노미코토를 존중하였고, 그의 후손이 모노노베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니기하야히노미코토의 신화는 진무 이전 긴키 야마토(倭)의 오오키미(大王)가 이후에 긴키로 이주한 現 일본 왕조에게 대왕위를 넘기는 과정을 다룬 것으로 보인다. 진무의 동정 과정에서 이만한 위상을 가진 긴키의 선대 호족은 니기하야히노미코토 외에 나타나지 않으며, 모노노베가 니기하야히노미코토의 후손을 자처했다는 것은 전성기 모노노베의 위세가 그만큼 대단했음을 보여준다. 초대 야마토 대왕인 스진 덴노의 어머니가 모노노베의 조상인 오호헤소키(大綜麻杵)의 딸이라는 기록을 고려하면 모노노베는 現 일본 왕조 이전 대왕가들과도 관련이 있었던 듯하다. 모노노베노 무라지의 성은 리추 덴노 조에 처음 등장하는데, 리추 덴노를 기점으로 現 일본 왕조의 세대주의적 계승이 시작됨을 고려하면 現 일본 왕조의 대왕위 독점을 도운 친위 세력으로서 모노노베라는 성을 쓰게 된 듯하다.
모노노베씨는 528년에 규슈 북부에서 발생한 이와이의 난을 진압하는 임무를 받았으나, 이를 진압한 모노노베노 아라카히는 센카 천황 원년 7월에 사망하였다. 센카 천황 시대에는 모노노베노 오코시가 오무라치(大連)가 되었고, 백제에서 전해진 불상을 숭배하는 문제에서 불교 지지와 불교 배척 간의 갈등이 일어났다.
552년, 백제 성왕이 전한 불상과 경전을 두고 소가노 이나메[8]는 이를 수용해야 한다고 한 반면, 모노노베노 오코시와 나카토미노 카마타리는 이를 반대했다. "외래 종교인 불교의 도입이 일본 고유의 신도(神道)를 화나게 하여, 전염병과 같은 재난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실제로 불상을 파괴하고 승려들을 탄핵했다.
비다쓰 덴노(572-585 재위) 시대에도 이러한 갈등은 지속되었고, 역병이 더욱 확산되었지만 천황은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못했다.
587년, 소가노 이나메의 아들인 소가노 우마코는 모노노베노 오코시의 아들인 모노노베노 모리야를 상대로 전투에서 승리하며 모노노베 가문을 실질적으로 몰락시켰고, 이후 불교는 황실 내부에서 공인된 종교로 서서히 자리 잡았다.
684년, 덴무 덴노가 가바네(姓) 제도[9]를 개혁하면서 기존의 최상위 등급이었던 무라지(連) 성에서 차순위인 아손(朝臣) 성을 받았다. 후대의 학자들은 보통 이 기록에 대하여, 덴무 덴노에게 충성심을 보인 모노노베 씨들에 한정하여 아손 성을 부여받은 것이라고 해석한다.
3. 백제와의 관계
시나노(斯那奴/科野), 키(紀), 코세(許勢)와 마찬가지로 백제 관등이 확인된 야마토 왕권 귀족 가문 중 하나다. 일본서기에서는 6세기 중반부터 백제 관등을 가진 모노노베가 여럿 출몰하는데, 백제 멸망 이후 당나라로 이주해 흑치상지의 사위가 된 물부순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모노노베 씨족의 일부가 아예 백제로 귀화했으리라 추정된다. 귀화 당시부터 야마토 왕권에서 이름 날린 대호족이었던 모노노베 일파가 귀화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대규모 인적 교류가 이루어지던 나라 간의 관계상 오는 사람 있으면 가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고 모노노베라고 일족의 전부가 영달하지는 못했을 것이므로 백제에 귀화하는 게 해당 일파에게는 더 이익이었을지도 모른다.[10]다른 일본계 백제인 귀족들도 모노노베와 비슷한 시기부터 등장하며, 시대의 특성상, 한성백제의 멸망과 그로 인한 왕권의 약화로 왕들이 자주 시해당하는 혼란 속에서 자국 귀족을 신뢰할 수 없던 백제 왕실이 이들을 등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백제 모노노베는 주로 나솔(奈率)과 시덕(施德)의 관등을 가진 것이 확인되는데, 백제 16관등 중 나솔은 6위, 시덕은 8위다. 동시대 신라 17관등과 비교하면 6두품에 상당하며 시나노씨, 키씨, 코세씨도 나솔 관등이었기 때문에 대우가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11] 모노노베는 이들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지는데, 일본서기에 확인되는 일본계 백제인 성씨 중 모노노베가 독보적으로 숫자가 많다. 야마토 모노노베가 친백제 성향이 강했던 건 여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 모노노베는 왜와 중국 남조와의 외교를 주로 맡은 것으로 보이며 백제 모노노베가 왜에 파견되었다는 기록이 많은 것으로 보아 백제에 귀화한 뒤에도 본국과 원만한 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대부분의 백제 귀족들이 반대한 관산성 전투에 지휘관으로 참전하거나 시덕(施德) 마가무(麻奇牟)가 백제의 지방 구분인 5방 중 하나를 통솔하는 동방령(東方領)의 관직을 맡았던 것으로 보아 귀화인의 특성상 부여씨의 친위 세력에 속하던 가문으로 보인다.[12]
백제 멸망 이후 백제 모노노베의 행방은 알 수 없으나, 적게 잡아도 성왕 대부터 백제멸망전까지 100년 넘게 백제에 자리를 잡고 일족의 숫자를 불렸기 때문에 모든 모노노베가 당나라나 야마토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고 대성팔족같은 다른 백제 가문들이 그랬듯이 변성했다가 가문의 기원이 잊히고 한국인의 유전자에 동화된 것으로 보인다.[13] 다른 일본계 귀족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4. 인물
4.1. 실존 인물
- 모노노베노 아라카히
- 모노노베노 오코시[14]
- 모노노베노 모리야: 정미의 난(丁未の乱, 587) 때 소가노 우마코와 대립한 호족. 불교에 반대하고 친백제 외교노선을 걷던 정치파벌[15]의 수장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16].
- 물부순(勿部珣): 흑치상지의 사위. 일본식 발음은 모노노베노 슌 혹은 타마로 추측할 수도 있다.
- 모노노베노 마가무(物部麻奇牟): 관산성 전투에 참가한 백제인 장수. 기록상 관등은 8품 시덕(施德). 백제의 지방관제였던 5방을 기준으로 동방령(東方領)을 맡았다고 한다. 카바네는 무라지(連).
- 모노노베노 마가와사카(物部莫奇委沙奇): 관산성 전투에 참전한 왜인 장수. 풀네임은 츠쿠시노모노노베노마가와사카(竹斯物部莫奇委沙奇)이기에 츠쿠시(筑紫)[17] 출신으로 추측된다. 불화살을 잘 쐈다고 한다.
- 모노노베노 요가타(物部用奇多): 백제의 관료. 기록상 관등은 6품 나솔(奈率).
- 모노노베노 가히(物部奇非): 백제의 관료. 기록상 관등은 6품 나솔(奈率).
- 모노노베노 카쿠(物部烏): 백제의 관료. 기록상의 관등은 6품 상부나솔(上部奈率).
4.2. 가상 인물
5. 창작물
6. 기타
[1] 『고사기』 진무 덴노 단에서는 니기하야히노미코토의 아들 우마시마치를 物部連, 穗積臣, 采女臣의 조상으로 하는 계보 기사가 보이는데, 이 세 씨족이 같은 조상을 가졌다는 기사는 덴무 덴노 단에서 세 씨족이 밀접한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다.[2] 고사기에는 진무 덴노를 따라서, 일본서기에는 진무 덴노가 동정을 결심하기 얼마 전이라 나온다.[3] 녹나무로 만든 견고한 배[4] 그러나 7세기까지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를 사용하지 않았고 倭, 大和라 쓰고 야마토라 읽었음을 고려하면 이는 후대에 지어낸 것으로 보인다.[5] 나가스네비코(長髓彦)는 정강이가 긴 남자라는 말이다. 『일본서기』에서는 이 밖에도 선주민을 츠지구모(土蜘蛛), 야츠카하기(八束脛)라고 하여 다리, 정강이가 길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멸시하는 표현일 가능성이 크다.[6] 일본서기에 따르면 나가스네비메(長髓媛)나 토미야비메(鳥見屋媛)라고도 한다.[7] 반면에 現 일본 왕조의 초기 근거지는 대체로 나라 분지의 남쪽이나 동쪽이었다.[8] 蘇我稲目. 소가노 우마코의 아버지이다.[9] 자세한 설명은 우지(성씨) 문서 참고.[10] 고고학적으로 조몬인이 석기시대부터 원삼국시대 초기까지 대거 유입되거나 전방후원분을 대표로 한 많은 일본계 귀족들이 마한, 가야에 정착한 것이 확인되기 때문에 '명확하게 성씨가 기록에 남은' 일본계 가문은 이들이 최초다.[11] 단 사나노차주(斯那奴次酒)만은 4위 덕솔(德率)이었다.[12] 물부순이 결혼한 흑치상지의 흑치씨도 부여씨의 분가였다.[13] 획순의 일부만 바꿔서 추측이 용이한 다른 대성팔족과 달리 모노노베는 현대에 유사한 글자가 없는 것으로 보아 완전히 다르게 바꿨다가 잊히고 만 듯하다. 고대 일본에서는 성씨를 이전과 완전히 다르게 바꾸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14] 니기하야히노미코토(饒速日命)의 후손이라는 것이 ‘신찬성씨록’에 밝혀져 있다. 이에 의하면 모노노베노 오코시의 할아버지인 모노노베노 메(物部目)가 니기하야히노미코토의 12대손으로 나와 있으므로, 모노노베노 오코시는 니기하야히노미코토의 14대손인 것이다.[15] 반대파였던 소가노 우마코가 뚜렷한 친불교, 반백제 외교노선(혹은 왜국의 자주노선)을 걸었기 때문. 다만 왜국의 외교노선과는 별개로 소가노 우마코 개인은 백제 문물을 좋아했다고도 한다.[16] 애초에 모노노베 가문 자체가 백제 관료를 많이 배출할 정도로 백제와의 친연성이 있는 가문으로 추정된다.[17] 원문에는 죽사(竹斯)로 써있는데, 마찬가지로 츠쿠시로 읽는다.[18] 모노노베노 후토는 동방 프로젝트의 캐릭터로, 풍수의 진면목을 활용하여 상대의 운을 조작하여 공격하는 능력을 가진 캐릭터다. 그녀의 능력은 운기를 약화시키고 상대의 불행을 초래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후토는 벽콤보나 근접 공격 반격에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으며, 그녀의 모티브는 모노라는 인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