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5D7FC8><colcolor=#ffffff>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Sergio Marchionne[1] | |
출생 | 1952년 6월 17일 |
이탈리아 아브루초 주 키에티 | |
사망 | 2018년 7월 25일 (향년 66세) |
스위스 취리히 | |
국적 |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캐나다|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세인트 마이클 칼리지 스쿨 (졸업) 토론토 대학교 (철학과/학사) 윈저 대학교 (상업/석사) 요크 대학교 오스굿 홀 로스쿨 (법학/석사) 월시 칼리지 (명예박사) |
가족 | 아버지 콘체치오 마르치오네 어머니 마리아 주콩 아내 올란다나 슬하 2남 |
악력 | 딜로이트 회계사 로손 이사 론자 CEO SGS 회장 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FCA) CEO FCA 이탈리아 CEO FCA US LLC CEO 마세라티 회장 CNH 인더스트리얼 회장 페라리 CE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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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 출신의 이탈리아-캐나다 이중국적 기업인. FCA 등의 여러 기업의 회장과 CEO를 역임했다.2. 생애
2.1. 초창기
이탈리아인이자 로마의 카라비니에리 군경찰을 역임한 아버지와 크로아티아인 어머니 곁에서 태어나 14세 때 친척들이 있는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하며, 캐나다 국적을 취득한다. 토론토 대학교, 윈저 대학교, 요크 대학교 오스굿 홀 로스쿨 등에서 철학, 상업, 법학을 공부하고 학사와 석사학위를 땄다.1983년 딜로이트에 입사 후 회계 및 세무 전문가로 근무하며 커리어가 시작됐으며, 2년 후 로손으로 옮겨 그룹 컨트롤러, 기업 개발 이사를 역임했고, 1989년 Glenex Industries의 부사장, 1990년 Acklands Ltd.의 재무 부사장, CFO를 거쳐 1994년 론자에 인수된 로손으로 다시 옮겨 법률 및 기업개발담당 부사장 및 CFO를 역임했다.
1994년 취리히의 Algroup(Alusuisse Lonza Group Limited)으로 다시 옮겨 1997년 CEO를 맡았고, Algroup에서 분사된 론자의 CEO를 거쳐 2002년 회장직으로 오른다.
2002년 제네바의 SGS(Société Générale de Surveillance)로 다시 옮겨 상무이사를 맡던 중, 2003년 위기를 겪었던 피아트의 이사로 입사한다.[2]
그후 뼈를 깎는 지구책으로 임원 10%를 감축하고, 8개의 자동차 기업과 제휴를 추진하거나,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들을 매각하는 구조조정을 통해 피아트를 2년 만에 4억 달러의 흑자로 기사회생하며, 피아트 가문의 조언으로 이사회 구성원으로 편입돼 자동차 업계에 첫 발을 내딛었고, 이듬해인 2004년 CEO로 임명된다. 그는 2007년 출시한 500(친퀘첸토) 레트로 프로젝트에 많은 도움을 줬고, 전 세계적으로 피아트을 알린 효자상품이 됐다. 2006년 SGS의 회장으로 임명된다.
2.2. 크라이슬러 인수, FCA가 되기까지
1998년 다임러-벤츠와 합병한 이후, 2007년 다임러에서 쫓겨나고, 2009년 대침체로 GM과 함께 파산위기에 처했던 크라이슬러 인수에 도움을 주었다. 이때 피아트는 크라이슬러 지분을 20%를 소유하면서, 그는 로버트 나델리를 대신해 CEO가 된다.이후 현대 엑센트를 멕시코 시장에서 리뱃징 하여 판매하던 닷지 애티튜드를 자기 멋대로 판매를 중단하도록 하는 자충수를 뒀고[3], 2011년 피아트가 크라이슬러 지분을 58.5%까지 늘림과 동시에 회장이 됐고, 피아트와 크라이슬러를 2014년 완전히 합병 후 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FCA)를 탄생시켰다.
FCA의 CEO로서 마르치오네는 그룹의 고수익성 브랜드인 지프, 마세라티, 알파로메오와 램 트럭스에 집중투자를 가하고 고수익성 헤일로카 개발에 집중하는 반면, 나머지 계열사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필요한 최소 수준만큼만 투자하는 상당한 긴축재정 정책을 펼쳤다.[4] 또한 다임러크라이슬러 시절에는 다소 소극적이었던 플랫폼 공용화[5]가 상대적으로 적극적으로 구현되어 크라이슬러 LX 플랫폼이 마세라티의 엔트리 라인업 개발에 활용되거나 피아트 계열의 컴팩트카 플랫폼으로 크라이슬러 200과 닷지 다트/피아트 비아지오같은 북미시장용 비SUV 승용차 라인업을 만들어 북미, 아시아 등지에서 생산하거나 지프의 소형 SUV 라인업을 개발해 유럽 현지생산까지 단행했다. 계열사들 중 란치아와 크라이슬러, 램과 피아트 상용차 부문은 한동안 라인업 공용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으며 피아트 브랜드의 북미시장 재진출도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이 과정을 거쳐 FCA는 램과 지프를 통한 북미 시장에서의 수익성을 극대화함으로서 유럽을 비롯한 나머지 시장에서의 적자를 커버할 수 있었으며, 마르치오네 휘하의 기대주였던 알파로메오 줄리아와 스텔비오는 자동차 매니아들로부터 크게 환영받았다. 마세라티 역시 자원 공용화를 통해 개발한 엔트리 라인업인 기블리와 르반떼를 출시하며 일시적으로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했다. 반면 디젤게이트 이후로 중요성이 높아지기 시작한 트렌드인 전동화에는 미국 3사들 중 가장 소극적이었고, 계열사들 중 긴축재정 정책이 크게 펼쳐진 크라이슬러와 란치아는 브랜드 폐지를 예상하는 전망이 쏟아질 정도로 신차기근에 시달렸다. 여기에 이 과정에서 FCA는 북미에서 GM과 함께 메이커별 평균연비 충족기준 CAFE 충족을 반쯤 포기하고 벌금 지불로 때우고, 유럽에서는 이산화탄소 배출권을 테슬라로부터 대량구입하는 지출까지 추가되었다.
2.3. 투병과 사망
2018년 6월 26일 카라비니에리에 지프 랭글러 경찰차를 전달한 것을 끝으로 공식석상에 마지막 모습을 드러낸 다음, 어깨 수술을 이유로 병가를 냈다가 혼수상태에 빠져, 동년 7월 25일 취리히의 한 대학병원(University Hospital of Zürich, USZ)에서 향년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원인은 1년 전인 2017년 오른쪽 어깨에 발병한 침윤성 육종 진단을 받고 올해 수술을 받았다가, 갑작스럽게 뇌손상과 색전증을 일으켜 의사가 치료를 할 경우 회복이 어렵다고 말했고, 끝내 합병증 악화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생전 담배도 독할 정도로 즐겼던 만큼, 피아트 시절부터 10년 이상의 파트너이자 커뮤니케이션 부서 직원인 마누엘라 세례자토(Manuela Battezzato)의 아버지가 그의 폐건강 악화를 우려했고, 건강을 위해 금연을 선언했다.
이는 그가 2019년 4월 은퇴할 계획을 밝혔던 FCA에 충격을 줬고, FCA 측도 이 사실을 그가 사망한 후 알게 됐다고 한다. 이후 마이크 맨리 대표가 1분간 묵념을 하고, 피아트 본사는 국기를 들었으며, 이탈리아의 한 공장은 10분간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애도를 표했다.
사망 후 FCA의 회장 자리는 지프 CEO를 맡았던 마이크 맨리가, 페라리 회장은 필립 모리스 출신인 루이스 카밀레리가 승계했다.
3. 여담
-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 정장을 입는 타 기업인들과 달리 검은색 스웨터, 청바지를 즐겨 입었으며,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
- 생전 지독한 일벌레로 유명했다. 일주일 동안 24시간 중 무려 20시간을 일에 몰두하면서 3~4시간만 취침했다고 하며, 새벽 3시 30분에 기상한다고 한다.
- 생전 미국, 이탈리아, 스위스 등지를 오갔던 대규모 기업인인 만큼, 스마트폰을 무려 5~6대씩이나 소유하고 있었다.
- 생전에 담배를 하루에 무려 3갑씩 회의할때 즐겨 피웠던 골초로 유명했다. 애용했던 담배는 필립 모리스 사의 무라티 프리베(Muratti Privat)라고. 다만 지병 악화로 금연했다고.
- 2007년 스위스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고속도로에서 페라리 599 GTB 피오라노를 시속 100km/h로 몰고 가던 도중, 앞차가 속도를 급하게 줄이는 바람에 미쳐 보지 못하고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교통사고가 났는데, 다행히 앞차와 본인 모두 큰 부상 없이 멀쩡하게 탈출했다고 한다.
4. 같이 보기
[1] 간혹 어법에 따라 세르지오 마르키온네, 세르지오 마키오네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2] 1980년대부터 피아트는 품질 문제가 지속적으로 불거지고, 경영에 큰 타격을 입어 그가 입사할 당시 120억 달러(11조)의 적자가 나고 점유율이 반토막나는 등 협력관계였던 GM의 지분 20% 매각설이 불거졌으나, 이탈리아 정부의 반대로 무산된다.[3] 이후 현대자동차는 멕시코에 현지법인을 얼마 못 가 설립하여 직판체제를 갖추었다.[4] 예컨데 지프는 소형 SUV 시장에 진입하고 픽업트럭 시장에 재진출하거나 중국시장용 현지모델을 도입하는 라인업 확장이 이루어졌으며 4xe 브랜드를 내세운 전동화도 계열사들 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이루어진 반면, 크라이슬러와 닷지는 FCA 결성 초창기의 신차계획들까지 취소하는 수준의 재정긴축이 이루어져 최소한의 핵심 라인업과 소소한 업데이트로만 연명하는 식의 운영이 이루어졌다.[5] 다임러크라이슬러 시절에는 크라이슬러 LX 플랫폼 정도를 제외하면 다임러벤츠가 오히려 크라이슬러의 제휴 상대로 미쓰비시 자동차를 푸쉬하는 움직임이 강했다. 미쓰비시의 개발진들과 플랫폼을 활용하기 위해 크라이슬러가 보유하던 컴팩트카 개발진들이 상당수 정리해고되는 일이 벌어졌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