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48:27

브라이언 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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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 Will Be Alright in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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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벨
Brian Bell
파일:브라이언 벨.jpg
<colbgcolor=#fff><colcolor=#000> 본명 브라이언 레인 벨 (Brian Lane Bell)
출생 1968년 12월 9일 ([age(1968-12-09)]세)
미국 아이오와 주 아이오와 시티[1]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직업 가수,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소속 카니발 아트 (1990~1993)
스페이스 트윈스 (1993~2005)
위저 (1993~현재)
더 릴레이션십 (2007~2020)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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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00> 부모님 아버지 톰 벨
어머니 린다 메나스코
형제 동생 레아 벨 (1977년생)
신체 180cm
학력 비어든 하이스쿨
뮤지션스 인스티튜트[2]
사용 악기 기타, 피아노, 키보드, 보컬, 베이스
활동 기간 1989년 ~ 현재 }}}}}}}}}}}}
1. 소개2. 어린 시절3. 밴드 활동
3.1. 위저 이전(1990~1993)3.2. 위저(1993~)3.3. 더 릴레이션십(2007~2020)
4. 음악5. 디스코그래피
5.1. 위저 정규 앨범5.2. 기타 밴드 정규 앨범
6. 여담

[clearfix]

1. 소개

밴드 위저의 기타리스트. 리듬 기타, 키보드, 백보컬 및 토크박스, 하모니카 등등 아무튼 필요한 대부분의 악기들을 담당하고 있다. 1993년에 위저의 데뷔 앨범인 블루 앨범 작업 막바지에 밴드에 합류했고, 현재까지 위저의 모든 스튜디오 앨범에 기타 및 백보컬, 키보드 등으로 참여했다.
스페이스 트윈스, 더 릴레이션십 등의 밴드를 만들고 프론트맨을 맡기도 했다.

2. 어린 시절

1968년 12월 9일 아이오와 주 아이오와 시티에서 테네시 대학의 지리학 교수인 톰 벨과 초등학교 교사인 린다 메나스코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아이오와 출신이기 때문에 브라이언도 아이오와 주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에 테네시 주 녹스빌로 이사한 이후로 쭉 그곳에 살았던 듯하다. 9살 터울의 여동생 레아 벨이 있다.

브라이언은 4살 때 테네시 주에서 부모님과 함께 엘비스 프레슬리 공연을 보고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모아 둔 레코드 컬렉션을 들으면서 음악에 대한 흥미를 키워나갔고, 어머니께 졸라서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3] 따라서 브라이언은 글을 읽는 법과 악보를 읽는 법을 동시에 배웠을 정도로 악보와 음악 이론에 친숙한 어린이였다. 초등학생 때는 색소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할 수 있는 가장 로큰롤한 악기였기 때문에 색소폰을 선택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또래보다 키도 크고 체격이 좋았던 브라이언은 늘 운동을 좋아하고 또 잘하는 편이었다. 한때는 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기도 했지만 고등학생 때는 성장이 멈춘 데다 운동 경기에서 체급을 기준으로 참가 자격을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보다 큰 친구들이 훨씬 많아서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따라서 15살 때 운동 선수의 꿈을 포기하고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미 어릴 때부터 악기를 꾸준히 연주해 온 데다 금요일 밤에 친구들이 모두 놀러갈 때도 혼자 기타 레슨을 받으러 갈 정도로 열정적인 학생이었기 때문에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지 겨우 6개월만에 상당히 수준 높은 연주를 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는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 친구들과 함께 밴드를 결성했다. 하지만 이후 인터뷰에서 테네시 녹스빌 지역의 밴드씬에서 활동한 적은 없다고 밝힌 것으로 보아 실제로 데뷔를 목표로 한 밴드는 아니었고, 그냥 친구들과 악기를 연습하기 위해 만든 스쿨 밴드에 가까웠던 듯하다.

3. 밴드 활동

3.1. 위저 이전(1990~1993)

1987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18살의 브라이언은 대학에 가는 대신 LA로 이사해 뮤지션스 인스티튜트의 전신인 GIT(기타 인스티튜트 오브 테크놀로지)에서 기타를 배웠다. 1990년에는 밴드 카니발 아트(Carnival Art)에 합류하면서 정식으로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카니발 아트는 이미 1987년에 1집 앨범을 발매하고 활동을 이어나가는 중이었는데, 브라이언은 기존의 기타리스트가 탈퇴하고 베이시스트가 대신 기타를 맡으면서 공석이 된 베이시스트 자리를 채웠다.[4] 카니발 아트는 영국의 인디 레이블인 Beggars Banquet Records와 계약을 맺고 음반을 발매한 후 영국에서 공연을 하는 등 지역 인디밴드 치고는 꽤 성공을 거뒀지만, 음반 판매량 부진으로 인해 레이블 측으로부터 계약을 해지당했다. 이후 새로운 레이블을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1993년에 해체했다.

브라이언은 카니발 아트의 미래가 불투명해진 1993년에 여자친구 수잔 팍스와 함께 밴드 스페이스 트윈스(Space Twins)를 결성하기도 했다. 다만 실제로 음반을 발매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고 주로 어린이들의 생일 파티 같은 작은 행사에서 동요나 기타 재미있는 노래를 부르는 밴드였다고 한다. 본인들의 이름 대신 '스페이스헬멧'과 '문부트'라는 별명을 사용하면서 스타트렉에 나올 법한 SF스러운 복장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는 점에서 일종의 컨셉 밴드이기도 했다.

3.2. 위저(1993~)

위저의 역사는 위저 항목 참고.

1993년경 해체 직전의 상태에 놓인 카니발 아트와 스페이스 트윈스 활동을 병행하던 브라이언은 역시 LA에서 활동하던 위저 멤버들을 만났다.
They started playing on the scene, and I instantly saw something unique in them. I didn't necessarily want to be in their band. They were for some reason, in with the wrong crowd and playing at the wrong venues. I wanted to help them out any way I could and I wanted to play a show with them.
그들(위저)은 (LA 밴드)씬에서 연주하기 시작했고, 난 바로 그들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꼭 그 밴드에 들어가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들은 어째서인지 맞지 않는 관객들 앞에서, 맞지 않는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돕고 싶었고, 또 그들과 함께 공연을 하고 싶었다.
- 위저와의 첫만남에 대한 브라이언의 감상
1995년에 브라이언이 인터뷰를 통해 밝힌 위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 브라이언은 위저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호감을 가졌다. 특히 Say It Ain't So가 흔치 않은 '클래식한' 사운드를 가진 곡이고, 아직도 이런 노래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자신이 언젠가 위저의 멤버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고, 대신 카니발 아트가 위저 공연에 오프닝 밴드로 서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 위저 멤버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연락처를 교환했다.

1993년 중순, 카니발 아트와 유난히 실망스러운 공연을 한 브라이언은 공연장에서 차를 타고 집에 오면서 밴드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집 전화기에 한창 뉴욕에서 데뷔앨범을 녹음하고 있던 위저의 베이시스트 맷 샤프로부터 연락을 달라는 메시지가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음날 브라이언의 전화를 받은 맷은 애초에 메시지를 남긴 목적을 바로 말하지 않고 이것저것 안부를 물으면서 딴 이야기만 했다. 그러자 맷의 옆에 있던 위저의 프론트맨 리버스 쿼모가 전화기를 뺏어서 브라이언에게 위저에 가입할 의사가 있는지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다. 위저의 원년 멤버 중 리듬기타 담당이었던 제이슨 크로퍼가 음반 작업 막바지에 갑자기 밴드를 나가게 되었기 때문에 급하게 대타를 구하고 있었던 것이다.[5]

이미 위저를 뛰어난 밴드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데다 마침 카니발 아트를 탈퇴하기로 마음먹었던 브라이언은 주저 없이 리버스의 스카웃 제의를 받아들였다.[6] 그 다음에는 위저와 계약을 맺은 게펜 레코드 측에서 보내준 데모곡 테이프를 듣고 즉석에서 기타와 백보컬을 녹음한 다음 이를 다시 뉴욕으로 보내는 약식 오디션을 거쳤다. 위저 멤버들이 브라이언의 실력에 만족했고, 제일 좋아하는 스타 워즈 피규어가 뭐냐는 질문에 대해 '해머헤드'라고 답한 것도 마음에 들어했기 때문에 브라이언도 위저에 정식으로 합류하게 되었다.[7] 앨범을 마무리할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브라이언은 오디션을 통과하자마자 바로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녹음 작업을 진행 중이던 다른 멤버들과 합류했다.[8] 브라이언은 리듬 기타와 백보컬 포지션으로 위저에 가입했으나, 이미 앨범 작업을 끝내야 할 데드라인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브라이언이 제이슨이 연주했던 리듬 기타 파트를 모두 익혀서 새롭게 녹음할 시간이 부족했다. 따라서 1집에서는 리드 기타리스트인 리버스가 기타 파트를 모두 녹음했고, 브라이언은 백보컬로만 참여했다.

2집 Pinkerton부터는 리듬기타와 백보컬을 모두 맡았다. 또한 2집의 첫 싱글인 El Scorcho에서는 브라이언이 일부 파트를 불렀고, 기타 솔로 역시 리드 기타리스트인 리버스가 아닌 브라이언이 만들어서 녹음했다고 한다.

위저가 2집을 발매한 후 휴식기를 가지는 동안에는 3년 전에 만들었던 밴드 스페이스 트윈스의 활동을 재개했다. 스페이스 트윈스는 원래 여자친구와 장난스럽게 결성한 밴드였지만, 1996년에는 앨범 발매를 목표로 새 멤버들을 영입하고 밴드를 부활시킨 것이다. 1997년과 1998년에 싱글을 하나씩 발매하고 데뷔 앨범을 준비했지만 그 뒤로는 리버스가 가져온 수많은 데모곡 중 정규 앨범에 수록할 곡을 추려내고 투어를 돌고 3집 작업을 했고, 2001년에 3집을 발매 후 즉시 4집을 준비해서 이듬해 발매했기 때문에 위저에 전념해야 했다.
결국 브라이언은 다시 여유가 생긴 2003년에야 자체적으로 설립한 레이블을 통해 스페이스 트윈스의 첫 정규 앨범 The End of Imagining을 발매했다. 모던 인디 록에 프로그레시브 록과 싸이키델릭이 가미된 앨범으로, 팬들은 물론 평론가들에게도 대체로 호평받았다. 롤링 스톤 지의 한 평론가는 2003년 최고의 앨범 7위에 랭크시키기도 했을 정도. 2003년에는 SXSW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했고, 2005년에는 공식 홈페이지에 오랜만에 멤버들이 모두 모여 합주를 했다는 소식도 포스팅했지만 2006년 인터뷰에서 브라이언은 더 이상 스페이스 트윈스로 활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2005년에 발매된 5집 Make Believe에서는 싱글곡 We Are All On Drugs의 도입부와 This Is Such a Pity의 기타 솔로를 썼다. 리드 기타리스트이자 프론트맨인 리버스는 This Is Such a Pity의 기타 솔로가 훌륭하다고 칭찬했지만, 신디사이저가 들어간 노래이기 때문에 정작 라이브로 연주할 때는 브라이언은 기타를 못 잡고 키보드만 연주해야 했다고.
2005년부터는 라이브에서 리버스가 아닌 다른 멤버들이 메인 보컬을 맡는 경우가 있었는데, 브라이언도 Why Bother?, Smile, Getchoo, Keep Fishin' 등 다양한 노래를 불렀다.

2006년에는 드러머 패트릭 윌슨과 함께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노래 Heroin을 커버했다. 이 노래는 원래 앤디 워홀의 뮤즈였던 에디 세즈윅을 다룬 영화 <팩토리 걸>의 사운드트랙으로 쓰일 예정이었으나 발매되지 않았다. 브라이언과 패트릭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멤버인 루 리드존 케일 역으로 특별 출연하기도 했다.
파일:브라이언&팻(팩토리걸).jpg

2008년에 발매된 6집 레드 앨범에는 최초로 브라이언이 작곡하고 부른 노래가 수록됐다. Everybody Get Dangerous의 후렴구와 Dreamin'의 후반부, 그리고 Thought I Knew 전체를 브라이언이 불렀다. Thought I Knew는 브라이언이 단독으로 만든 곡으로, 사이드 프로젝트인 더 릴레이션십 1집에 편곡해서 수록하기도 했다. 레드 앨범의 아이튠스 딜럭스 버전에 실린 It's Easy도 브라이언이 혼자 만들고 부른 노래다. 또 2008년 투어에서도 El Scorcho 등 위저 초기 곡들을 불렀다.

2009년에 발매된 7집 Raditude의 경우 레드 앨범에 이어 드러머 패트릭 윌슨이 만든 노래가 수록되어 있지만 브라이언은 2007년에 결성한 개인 밴드 더 릴레이션십의 1집 앨범을 준비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작곡에 기여하지는 않았다.

2016년에 발매된 10집 화이트 앨범에는 오랜만에 브라이언과 리버스가 공동작곡한 곡이 실렸다. L.A. Girlz와 Endless Bummer까지 두 곡이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브라이언이 부른 L.A. Girlz의 데모 음원도 짧게 들어볼 수 있는데, 앨범에 수록된 버전과 가사가 조금 다르다.

2018년 위저/픽시즈 투어 때는 블랙 사바스의 Paranoid를 짧게 부르기도 했는데, 2019년 초에 발매된 커버앨범 틸 앨범에 해당 곡이 수록되면서 오랜만에 정규 앨범 수록곡에서 단독 메인 보컬을 맡았다.

2019년에 발매된 13집 블랙 앨범 수록곡인 The Prince Who Wanted Everything을 리버스, 루서 러셀과 공동으로 작곡했다. 다만 브라이언은 최종적으로 앨범에 수록된 버전은 자신의 구상과 달라서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3.3. 더 릴레이션십(2007~2020)

2007년에 브라이언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LA 뮤지션들과 함께 밴드 더 릴레이션십(The Relationship)을 결성했다. 데뷔 앨범에 션 레논이 참여할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졌다. 2008년에는 위저의 Troublemaker Tour 중 세 번의 공연에서 더 릴레이션십이 오프닝 공연을 맡기도 했다. 즉 브라이언은 한 공연에서 더 릴레이션십의 프론트맨이자 위저의 기타리스트로 1인 2역을 한 셈.

더 릴레이션십의 1집 앨범은 2008년 10월에 이미 믹싱 작업까지 끝났지만 2010년 11월에야 발매됐다. 아마 2008~2009년은 위저가 레드 앨범, Raditude와 Hurley를 연속적으로 발매하고 투어를 돌던 시기라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 듯. 레드 앨범에 수록된 브라이언의 노래 Thought I Knew의 더 릴레이션십 버전이 1집에 수록되어 있다.

2017년에는 2집 Clara Obscura를 발매했다. 싱글곡인 Break Me Open을 발매하면서 더 릴레이션십의 유일한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

2019년 인터뷰에서 더 릴레이션십이라는 이름으로는 두 개의 좋은 앨범을 낸 것에 만족하므로 더 이상 활동하지 않을 것이며, 위저 이외의 솔로 커리어를 한다면 다른 밴드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듬해인 2020년에는 브라이언이 파일을 정리하다가 발견했다는 더 릴레이션십의 미발매 데모곡들을 모은 Together Tomorrow를 발매했다.

4. 음악

브라이언은 위저의 리듬 기타 담당이지만 무대에서는 주로 리드 기타와 리듬 기타를 번갈아가면서 친다. 보컬이자 리드 기타리스트인 리버스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는 브라이언이 리드 기타를 맡다가 기타 솔로는 다시 리버스가 연주하는 식이다.
브라이언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으면서 글을 배우는 동시에 악보를 보는 법도 익혔고, 음악 이론에 대한 지식도 쌓았다. 따라서 악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작곡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도 악보에 기록한 다음 패턴을 찾으려고 하는 편이고 새로운 노래를 익힐 때도 먼저 악보로 멜로디를 나타낸 후에 연습을 한다. 따라서 브라이언은 본인의 기타 연주가 매우 체계적이고 정교하다고 자평했다.[9] 또 슈레딩을 비롯한 화려한 기타 테크닉이나 대담한 연주 스타일에 능숙한 리버스와 패트릭과 달리 자신은 그런 쪽에 흥미도 없고 잘 하지도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신 브라이언은 멜로디의 조화, 피킹 패턴과 타이밍 등에 집중하는 편이라고.[10]

기타보다 피아노를 훨씬 일찍 배우기 시작했으므로 스스로를 기타리스트인 동시에 피아노 연주자로 여긴다고 한다. 따라서 위저 무대에서 키보드를 연주할 일이 있으면 주로 브라이언이 맡는 편이다. 따라서 위저 공연을 보면 무대 앞쪽에서 기타를 치던 브라이언이 키보드가 사용된 노래가 나올 때는 키보드 앞으로 이동해서 기타를 치다가 키보드 파트가 시작하기 직전에 기타를 놓고 얼른 키보드를 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끔은 키보드와 기타 파트를 매우 빠르게 번갈아가면서 치기 위해 왼손은 여전히 기타 코드를 잡고 오른손만으로 키보드를 치기도 할 정도다.

위저 1집부터 백보컬로 참여했다. 보컬인 리버스 쿼모의 미성이나 또 다른 백보컬 담당 멤버인 베이시스트 맷 샤프의 트레이드 마크인 팔세토 백보컬과는 대비되는 두껍고 힘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위저에 합류하기 전에는 카니발 아트에서 베이스 연주 경력도 쌓았다. 위저 공연에서는 Beverly Hills의 토크박스, My Name Is Jonas의 하모니카 연주도 주로 브라이언이 맡는다.

5. 디스코그래피

5.1. 위저 정규 앨범

  • Weezer(Blue Album) (1994)
  • Pinkerton (1996)
  • Weezer (Green Album) (2001)
  • Maladroit (2002)
  • Make Believe (2005)
  • Weezer (Red Album) (2008)
  • Raditude (2009)
  • Hurley (2010)
  • Everything Will Be Alright in the End (2014)
  • Weezer (White Album) (2016)
  • Pacific Daydream (2017)
  • Weezer (Teal Album) (2019)
  • Weezer(Black Album) (2019)
  • OK Human (2021)
  • Van Weezer (2021)

5.2. 기타 밴드 정규 앨범

  • 카니발 아트(Carnival Art)
    • Thrumdrone (1991)
    • Welcome To Vas LLegas (1992)
  • 스페이스 트윈스(Space Twins)
    • The End of Imagining (2003)
  • 더 릴레이션십(The Relationship)
    • The Relationship (2010)
    • Clara Obscura (2017)
    • Together Tomorrow (2020)[11]

6. 여담

  • 동네 아저씨들처럼 옷을 입는 다른 멤버들과는 다르게 특히 패트릭 옷을 상당히 잘 입는다. 공연장의 위치에 따라 다양한 패션 아이템을 매치하기도 하고,[12] 무대에서는 물론 일상 사진에서도 정장을 입은 모습을 자주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자전거 탈 때도 정장 자켓 입고 구두를 신는다 브라이언을 위저 멤버로 스카웃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던 베이시스트 맷 샤프가 브라이언이 '우리 모두가 자라면서 봐온, 완전 마르고 거식증에 걸린 것 같은 전형적인 기타 신의 계보를 이은 듯한 마른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고 묘사했을 정도로 마른 편이라 옷핏이 매우 좋다.
  • 성격이 매우 sassy 해서 팬들에게 sass master라고 불린다. 본인도 이 별명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자신은 스스로를 쌔씨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왕이면 style master라는 별명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2001년에 1965년생인 베이시스트 스콧 슈라이너가 가입하기 전까지는 위저 멤버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맏형이었다. 물론 그래봤자 드러머인 패트릭이랑 생일이 겨우 2개월 정도밖에 차이 안 나긴 한다.
  • 연기 경험이 있다. 2006년에는 앤디 워홀의 뮤즈였던 에디 세즈윅을 다룬 영화 <팩토리 걸>에 루 리드 역으로 특별 출연했다. 2019년 인터뷰에서는 음악 외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단으로 연기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연기 수업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같은 밴드 멤버인 리버스가 브라이언을 'trained actor'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연기에 꽤 진지하게 임한 듯. 2019년에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 지나가는 행인 역할로 출연했다.[13]
  • 위저의 프론트맨 리버스 쿼모가 어릴 때부터 축구를 좋아하는 것과는 달리 브라이언은 미식축구를 좋아한다. 로스앤젤레스 램스의 팬이라 유니폼을 입고 직관을 가기도 한다. 2019년에는 집에서 TV로 램스 경기를 보던 중 자신이 리버스와 공동 작곡한 노래인 The Prince Who Wanted Everything이 나와서 몹시 놀랐다는 인스타그램을 올리기도 했다.
  • 9살 터울의 여동생 레아 벨은 위저의 공연 포스터를 디자인한 적도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홈페이지에서 레아가 디자인한 다양한 포스터와 작품들을 열람 및 구매 가능하다. 레아는 현재 유타 주 솔트레이크 시티에 남편과 세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일상 사진을 자주 게시하는데, 가끔 조카들을 데리고 미식축구를 보러 가거나 동생네 가족들을 위저 공연에 초대하는 등 브라이언의 근황도 올라온다. 어릴 때부터 남매간 우애가 꽤 좋은 듯. 브라이언의 조카들도 위저를 좋아하는지 스쿨밴드에서 위저 노래를 커버하거나 할로윈에 틸 앨범 커버의 리버스 코스프레를 하기도 했다.
    레아의 이름은 Leia라고 쓰는데, 스타 워즈 시리즈의 레아 공주와 철자가 같다. 브라이언은 어릴 때부터 스타 워즈와 스타트렉을 좋아해서 20대에 SF 컨셉밴드를 만들 정도의 너드였는데, 이런 브라이언의 취향이 동생의 이름에 영향을 줬을지도. 스타 워즈 티셔츠를 입은 브라이언이 갓난아기인 동생 레아와 찍은 사진도 있다. 레아가 태어난 1977년은 스타 워즈가 개봉한 해이기도 하다.
  • 브라이언의 아버지 톰 벨은 지리학 교수인데, 브라이언은 인터뷰에서 팬들이 왜 위저의 초기 앨범에 열광하고 새로운 시도에는 불만을 표시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아버지가 영문학 교수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 내용을 인용하기도 했다. 톰 벨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5~22살 사이에 들은 노래가 평생의 음악 취향에 큰 영향력을 가진다고 하는데, 위저의 초기 앨범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노래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인터뷰 출처
  • 위저의 유일한 미혼 멤버다. 브라이언을 제외한 멤버들은 모두 결혼해서 두 명의 아이가 있지만 브라이언은 1993년에 수잔 팍스와 교제 중이었다는 사실 외에는 사생활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 밴드 더 릴레이션십의 공식 트위터 및 인스타그램 계정을 사실상 브라이언의 개인 계정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상 소식을 간간히 업로드할 뿐만 아니라 기타 및 피아노를 연습하는 영상도 올린다.
  • 비틀즈를 좋아해서 소규모 커버 공연을 하기도 했다. 더 릴레이션십 인스타그램에서 브라이언이 비틀즈 노래들 및 비틀즈 멤버들의 솔로곡을 어쿠스틱 버전으로 혼자 연습하는 영상을 볼 수 있다.
  • 밴드 애쉬(Ash)가 1997년에 발매한 싱글 I Only Want to Be With You에 브라이언의 전화 메세지가 히든 트랙으로 수록되어 있다. 위저 멤버인 맷이 머리를 자르는 이발소가 어디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으로, 아마 1996년 12월에 애쉬의 프론트맨 팀 윌러에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링크


[1] 단 어린 시절 이사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고향은 테네시 주 녹스빌이다.[2] 정확히 말하면 뮤지션스 인스티튜트의 전신인 GIT(기타 인스티튜트 오브 테크놀로지) 출신이다.[3] 원래는 기타를 더 배우고 싶었지만 어린 브라이언이 제대로 연습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 어머니가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대신 피아노라도 배우게 된 것이라고. 결국 기타는 고등학교 1학년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4] 브라이언이 LA로 이사한 1980년대 후반에는 메탈이 강세였기 때문에 화려한 기타 테크닉을 자랑하는 기타리스트가 많았다고 한다. 보통의 밴드맨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기타를 치기 시작한 브라이언은 당시에는 아직 자신의 기타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기 때문에 우선 베이시스트로서 커리어를 시작했다고. 하지만 곧 기타리스트가 밴드를 나가면서 기타로 포지션을 바꿨다.[5] 당시 위저는 데뷔 음반 준비에 한창이었는데, 여자친구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크로퍼는 작업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녹음 중에 계속 멍하니 있다가 다른 멤버들이 괜찮냐고 물으면 괜찮다고 대답했다가 갑자기 혼자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소리를 지를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고. 결국 밴드에 매우 중요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멘탈을 다잡지 못하는 크로퍼가 밴드의 장래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한 리버스가 완장을 차고 탈퇴시켰다.[6] 브라이언은 인터뷰에서 25살에도 밴드로 성공하지 못하면 음악을 그만두고 대학에 입학해서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밝혔다. 1993년 중순에 브라이언이 만 24세였음을 감안하면 위저는 브라이언에게 마지막 기회나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른다.[7] 브라이언은 원래 카니발 아트에서는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는데도 불구하고 기타리스트로 스카웃된 이유에 대해 아마 리버스가 자신이 스페이스 트윈스에서 기타를 치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또 LA 기반 인디 밴드 치고 꽤 성공적이었던 카니발 아트 멤버로서 영국 투어 경험도 있다는 점이 위저 멤버들에게 인상 깊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초에 브라이언에게 전화를 걸었던 맷은 당시 브라이언의 기타 실력이 어땠는지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고, '우리 모두가 자라면서 봐온, 완전 마르고 거식증에 걸린 것 같은 전형적인 기타 신의 계보를 이은 듯한 마른 체형(one of those slight frames that kind of resembled the long lineage of wafer-thin, anorexic, archetypal guitar gods that we all grew up on)'이었다는 이미지만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고 증언했다.[8] 이때 위저 멤버들은 뉴욕의 호텔에 묵고 있었는데, 브라이언이 객실 문을 두드리자 방에서 나온 리버스는 아주 풍성한 콧수염을 기른 상태였다. 멤버들이 전부 콧수염을 기르는 게 1집 앨범 아트의 컨셉이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리버스는 브라이언에게도 우선 콧수염을 기르라고 했지만 브라이언의 만류로 다행히 콧수염 컨셉은 폐기됐다. 게다가 드러머 패트릭 윌슨과 같은 방을 쓰면 된다는 안내를 받은 브라이언이 패트릭네 객실 문을 열자 패트릭은 "위저에 온 걸 환영해"라는 말과 함께 뒤돌아서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보여줬다고 한다. 여러모로 인상 깊은 신고식을 겪은 듯한 브라이언이 위저에 가입했을 당시 상황은 블루앨범 발매 25주년 기념 기사에 비교적 자세히 나와 있다.[9] 출처. 하지만 같은 인터뷰에서 리버스는 반대로 브라이언은 자신보다 훨씬 변화무쌍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연주 스타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1절과 2절의 연주가 서로 달라질 정도라고 말했다.[10] 출처[11] 미발매곡을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12] 2019년 남미 투어에서는 판초를 입었고, 2021년 헬라 메가 투어 중 보스턴 레드 삭스의 홈 구장인 펜웨이 파크에서 공연을 할 때는 정장에 빨간 양말을 신었다.[13] 쿠엔틴 타란티노는 2009년 10월 23일에 위저가 지미 키멜 쇼를 녹화하고 있을 때 와서 구경하고 멤버들을 만난 적이 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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