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fcd30><colcolor=#000> 보리스 블라디미로비치 대공 Великий Князь Бори́с Влади́мирович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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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보리스 블라디미로비치 로마노프 (Бори́с Влади́мирович Рома́нов) |
출생 | 1877년 11월 24일 |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 |
사망 | 1943년 11월 9일 (향년 65세) |
프랑스 파리 | |
묘소 | 콩트렉세빌 성 블라디미르와 성 마리아 막달레나 예배당 |
가문 |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 가문 |
아버지 |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 |
어머니 |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마리 여공작 |
형제자매 | 알렉산드르, 키릴, 안드레이, 옐레나 |
배우자 | 지나이다 세르게예브나 라솁스카야 (1919년 결혼) |
자녀 | 보리스 라크루아[1], 안나[2] |
종교 | 러시아 정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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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노프 왕조의 일원으로 알렉산드르 2세의 손자이며, 니콜라이 2세의 사촌이다.2. 생애
1904년 러일전쟁에 침여했으며, 뤼순을 방문하기도 했다. 1916년 하급귀족이자 대령의 딸인 지나이다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지나이다는 후에 딸을 낳았다. 어머니 마리야 파블로브나가 니콜라이 2세의 장녀인 올가와 결혼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무산되었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차르스코예 셀로에 가택연금 되었다가, 어머니와 동생 안드레이가 있는 키슬로보츠크로 이동했다.그곳에서 볼셰비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았으나, 백군이 키슬로보츠크를 점령하여 목숨을 부지했다. 이후 다시 아나파로 탈출했다. 어머니와 안드레이는 아직 러시아를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1919년 3월 지나이다와 함께 코스탄티니예로 탈출했다.[3] 1919년 7월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니스에 정착했다.
1920년 콩트렉세빌에서 사망한 어머니로부터 많은 보석을 상속받아 팔았고, 뫼동에 저택을 사서, 전쟁 전에 미국에 마련해둔 예금 등으로 평온하게 살았다.
1924년에는 형 키릴이 자신을 전 러시아의 황제라고 주장했지만 보리스는 망명 이후의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또한 지나이다와의 귀천상혼에 대해서도 가문의 수장이 된 키릴에게 동의를 얻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아, 서서히 서로 만나지 않게 되었다.
1922년의 형제자매[4] |
나치 독일의 프랑스 침공 이후에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1943년 파리에서 사망했고, 장례식은 성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성당에서 열렸다. 후에 어머니가 묻혀있는 콩트렉세빌 성 블라디미르와 성 마리아 막달레나 예배당에 이장되었다.
3. 가족관계
3.1. 조상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보리스 블라디미로비치 대공 (Grand Duke Boris Vladimirovich of Russia) | <colbgcolor=#fff3e4,#331c00>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 (Grand Duke Vladimir Alexandrovich of Russia) | <colbgcolor=#ffffe4,#323300> 알렉산드르 2세 (Alexander II of Russia) | |
니콜라이 1세 (Nicholas I) | |||
프로이센의 샤를로테 공주 (Princess Charlotte of Prussia) | |||
헤센의 마리 공녀 (Princess Marie of Hesse) | |||
헤센 대공 루트비히 2세 (Ludwig II, Grand Duke of Hesse and by Rhine) | |||
바덴의 빌헬미네 공녀 (Princess Wilhelmine of Baden) | |||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마리 여공작 (Duchess Marie of Mecklenburg-Schwerin) | |||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 프리드리히 프란츠 2세 (Friedrich Franz II, Grand Duke of Mecklenburg-Schwerin) | |||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 파울 프리드리히 (Paul Frederick, Grand Duke of Mecklenburg-Schwerin) | |||
프로이센의 알렉산드리네 공주 (Princess Alexandrine of Prussia) | |||
로이스쾨스트리츠의 아우구스타 (Augusta of Royce-Kösstreets) | |||
로이스쾨스트리츠의 하인리히 63세 (Heinrich LXIII, Prince Reuss of Köstritz) | |||
슈톨베르크베르니게로데의 엘레오노레 여백작 (Countess Eleonore of Stolberg-Wernigerode) |
3.2. 자녀
4. 여담
[1] 프랑스 여성과의 사생아[2] 지나이다와의 사이에서 안나라는 딸이 1916년 태어났는데 병으로 금방 사망했다는 말도 있고, 혼외자여서 멀리 보내져 1995년까지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3] 어머니와 동생 가족도 결국 1920년 2월에는 러시아를 탈출했다.[4] 왼쪽부터 옐레나, 안드레이, 형수인 빅토리아, 보리스, 키릴 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