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魂術
1. 개요
동양의 전설에 나오는 죽은 인간을 되살리는 술법. 망령과 교류하거나, 전형적인 불로불사의 금기를 다루는 이야기.현대 서브컬처 물에도 가끔 등장한다.
2. 반혼술의 역사
2.1. 고대 인도의 반혼술
불경에는 석가모니 부처의 일족인 석가족이 고타마 성을 쓰게 된 유래에 대해, 석가족의 먼 조상으로 출가한 왕이 자신이 출가하여 스승으로 섬겼던 선인(仙人)의 성씨를 받은 것이라고 한다. 〈불설십이유경〉 계통의 불전에 보면 아승기겁 이전 고대 인도의 어느 왕이 일찍 부모를 여의고 나라를 아우에게 넘기고 자신은 출가하여 어느 바라문(婆羅門)을 섬겼는데, 그 바라문의 성이 구담(고타마)이었다.스승은 출가하겠다는 왕에게 "어의를 벗고 나처럼 구담(고타마)이라는 성을 쓰라"고 권해서 왕은 그대로 따랐다. 고타마 선인을 따라 출가한 왕은 소(小)고타마라 불리며 따로 감자원이라는 곳에 정사(암자)를 짓고 수행을 행했다. 왕의 어의를 벗고 머리를 깎고 수행자의 모습으로 탁발을 다니는 그가 한 나라의 왕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당시 나라 안에 5백 명이나 되는 도적떼가 활보하고 있어서 온통 시끄러웠는데, 군사들에게 쫓기던 도적들이 마침 소 고타마가 수행하던 감자원을 지나면서 자신들이 훔친 것을 그대로 버리고 가 버렸다. 도적들의 발자국을 쫓아 감자원까지 들어온 군사들은 소 고타마가 수행하는 감자원의 정사 이곳저곳에 도둑맞은 보물들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발자국도 감자원으로 이어져 있는 것까지 더해, 감자원 안에서 수행하던 소 고타마가 도적과 한패가 아니냐고 의심하고 그를 잡아다 혹독한 고문을 가하며 도적들 어디 갔느냐고 자백하라고 을렀다.
마침 소 고타마와는 먼 곳에 떨어져서 수행 중이던 스승 고타마 선인은 멀리서 신통으로 제자가 도둑으로 몰려 혹독한 고문을 당하는 것을 보고 놀라 공중으로 날아서 제자가 있는 곳까지 왔지만, 이미 소 고타마는 혹독한 고문도 모자라 몸도 나무에 꿰여져 피가 바닥까지 흘러 넘칠 정도로 처참한 꼴이 되어 있었다. 소 고타마는 자신이 도둑이 아니라고도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도둑들이 어디로 갔는지도 말하지 않았고, 이미 그를 도둑이라고 단정한 병사들은 왕에게 이를 보고해, 왕은 "도적놈이 어떤 꼴을 당하게 되는지 본보기로 보이라"면서 그를 산채로 나무에 꼬챙이 꿰듯이 꿰어 놓도록 명령했던 것이다. 이윽고 소 고타마는 왕명에 의해 쇠뇌에 맞아 죽음을 맞았다.
불경에는 이때 감자원에 들어와 훔친 것을 던져 놓고 도망간 도적들은 원래 전생에 소 고타마에게 원한을 품은 자들이었고, 소 고타마는 전생에 그 도적들에게 산 원한의 대가로 처참한 죽음을 맞게 된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고타마 선인은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소 고타마를 장사지내고, 그의 몸에서 흘러 나온 피가 고인 흙을 파서 두 개의 그릇에 담아 제단에 올려놓고 "이제 죽은 내 제자가 진정으로 결백하며 동시에 수행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다면, 이 피 섞인 흙이 사람이 되게 하소서."라고 빌었다. 그리고 열 달 뒤 왼쪽 그릇에 담겨 있던 흙에서 남자가 나오고, 오른쪽 그릇에 담겨 있던 흙에서 여자가 나왔다. 이 남녀가 서로 결혼하여 그 자손들은 모두 고타마를 성씨로 쓰게 되었다... 는 이야기이다.
소 고타마 본인이 살아난 것은 아니고 소 고타마가 흘린 피가 섞인 흙에서 사람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라, 어찌 생각하면 반혼술보다는 골렘이나 호문쿨루스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만 골렘과 달리 온전한 인간이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그 후손을 남기기까지 했고, 호문쿨루스와는 다르게 정액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현대 과학의 기준으로는 복제인간과도 가깝다.
2.2. 한무제의 반혼술
중국 한나라의 황제 한무제(漢武帝)는 이부인(李夫人)을 잃은 슬픔에 부인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어하였다. 한무제는 방술사(方術士)에게 명하여 서해(西海) 취굴주(聚窟州)에 있는 향나무 반혼수(返魂樹)로 반혼향을 만들게 하고, 이 향을 피워서 부인의 혼령을 불러와서 재회를 했다.2.3. 대한민국의 반혼술
이능화의 저서 <조선무속고>에서는 이규경의 <오주연문>[1]의 기록을 인용해, 중국 송나라 때의 설화집 <이견지>에 죽은 자를 일으켜 세우는 주술인 접살법(接煞法)의 존재를 소개하면서, 이를 우리나라 풍속에서 반혼(返魂)이라 부른다고 기록하고 있다.2.4. 일본의 반혼술
2.4.1. 사이교 법사의 반혼술
헤이안 시대 말기, 가마쿠라 시대 초기에 살았던 사이교 법사를 소재로 한 설화집 찬집초(撰集抄)에 등장하는 이야기이다.사이교는 온 나라를 떠돌아다니면서 산이나 들에 살았기 때문에 외롭고 쓸쓸했다. 어느 때는 고야 산의 곤고부지에서 다른 승려와 다리에서 풍류를 즐기는데, 그 친구가 상경해야 할 일이 생겼다며 떠나 버리자 그 외로움을 견딜 수 없게 되어, 반혼술을 써서 '꽃과 달의 풍취를 같이 즐길' 친구를 만들려고 생각했다. 그 절차는 다음과 같다.
1. 들판에 나가서 사람이 없는 곳에서 흩어진 사람의 뼈를 주워 모은다.
2. 뼈를 사람의 모습에 맞춰 늘어놓는다.
3. 비상석(砒霜石)[2]로 만든 약을 뼈에 바른다.
4. 딸기와 별꽃(ハコベ, Stellaria)의 잎을 뼈에 비비어 맞춰서 뼈 위에 늘어 놓는다.
5. 등나무의 어린 잎으로 실을 짜서, 뼈를 꿰어 맞춘다.
6. 물로 몇 차례 씻는다.
7. 쥐엄나무(サイカチ)와 무궁화(ムクゲ)의 잎을 태운 재를 머리뼈의 머리카락 나는 부분에 문질러 바른다.
8. 흙 위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뼈를 엎드려 놓는다.
9. 바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전체를 돗자리로 감싼다.
10. 14일 동안 방치한다.
11. 침향나무 진액과 향을 피우고, 반혼의 진언을 외운다.
이렇게 사이교는 반혼법을 성공시켰지만, 만들어진 것은 인간의 모습과 닮아 있기는 하지만 얼굴 색은 불쾌한 것으로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또 목소리는 거문고나 피리의 소리와 같았다고 한다. 당연히 이러한 것을 가까이 두어도 기분이 나빠질 뿐이므로, 사이교는 결국 이것을 고야산의 깊은 곳에 내다버리고 말았다.
훗날 상경한 사이교는 반혼법의 대가로 이름인 높은 도쿠다이지 좌대신 미나모토노 모로나카(源師仲)[3]를 만나 이 사실을 알렸더니, 모로나카는 이렇게 말했다.
"대체로 그렇게 하는 게 맞습니다만, 반혼술을 행하기에는 아직 수행이 부족하시군요. 나도 가끔 시조 대납언 경께 전수받은 그 비술로 여태까지 몇 명이나 인간을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는 대신이나 납언에 오른 자도 있죠.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이름을 밝힌다면 그 만든 자도 만들어진 자도 녹아서 사라져 버리니까요. 말할 수는 없어요.
이러면서 모로나카는 다음과 같이 귀띔해 주었다.
1. 반혼술을 할 때는 향을 피우지 말고[4] 침향을 피울 때는 젖을 섞어서 피워라.
1. 비술을 행할 때 이레 동안은 아무 것도 먹지 마라.
하지만 사이교 법사는 이후 다시는 반혼술을 행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모로나카로부터 반혼술 설교를 듣다가 어쩐지 지루해져서(...)
미나모토노 모로나카의 증조할아버지인 츠치미카도 우대신 미나모토노 모로후사(1008~1077)[5]도 반혼술을 할 줄 알았는데, 하루는 어느 노인이 모로후사의 꿈에 나타나서 "내 허락도 없이 왜 내 뼈를 주워다 그딴 걸 만드느냐"고 한맺힌 얼굴로 꾸짖었다고 한다. 모로후사는 생전에 자신의 일기 도유키(土右記)에 반혼술에 대해 써 두었는데, 만년에 "이거 잘못하면 나중에 내 자손들이 귀신한테 해를 입을 것이다"라며 자신의 일기를 태워 버렸다고[6] 한다. 찬집초의 저자는 해당 이야기 말미에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무익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다. 이걸 듣고도 사람을 만들려는 자는 충분히 주의해 두는 것이 좋다. 다만 백이와 숙제는 천로(天老)라는 귀신이 빈천(頻川) 인근에서 만든 현자라고 한다.
2.4.2. 진언 다치카와 류(真言立川流)의 반혼술
일본의 대표적인 음사사교(淫祠邪教). 진언입천류는 가마쿠라 시대에 번성하였다가 남북조 시대에 탄압을 받아 멸망한 사교이다. 이들은 촉루본존환희법(髑髏本尊歓喜法)이라는 독특한 술법을 벌였다고 하는데, 여기에 반혼술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술법이다.- 인간의 해골을 준비한다. 가능한 죽은지 얼마 안 된 것이 좋다.
- 진언을 외우면서 해골에 옻칠을 한다. 미술품처럼 아름답게 마무리 한다.
- 몇 명의 미녀와 성교를 하면서 그 때 쌍방에게 흘러 나온 애액과 정액을 해골에 칠하는 것을 120회 반복한다.
죽겠다. - 매일 밤 12시부터 2시까지 반혼향이라는 향을 피워서 그 향이 해골에 스며들게 한다. 이 때 반혼진언(反魂真言)을 매일 천 번씩 주창한다.
- 이상의 과정을 7일 간 계속하는데 그 동안 계속 열심히 성관계를 맺어야 한다.
말라죽겠네. - 날수가 찬 날에는 해골 안에 비밀 부적(呪符)을 넣는다. 해골의 정수리에 금박을 붙이고, 거기에 제불(諸仏)의 교합 만다라를 그린다. 그림 물감으로는 남녀의 성액이 혼합된 것을 사용한다.
- 8일 째 자정에서 새벽까지는 개안 공양을 한다. 해골의 입술에 붉은 색을 칠하고, 이빨은 은박으로 덮는다. 마지막으로 모조품 안구를 넣고, 미녀 같은 화장을 칠한다.
- 아침 6시가 되면 완성된 촉루본존을 비단 주머니에 넣는다. 이후 촉루본존을 주머니에서 꺼내선 안된다.
- 7년 동안 완성된 촉루본존이 들어간 주머니를 매일 밤 안고 잔다. 일어나면 단상에 안치하고 독경을 한다.
- 8년째에 완성되면 위대한 힘이 본존에 깃들어서 소원을 성취한다.
진언 다치카와 류 반혼술은 교고쿠 나츠히코의 소설 광골의 꿈의 주요 소재이기도 하다.
3. 서브컬처의 반혼술
지옥선생 누베에서는 동굴에 갇히게 된 누베가 동굴 안에 있던 자살한 여자의 뼈를 모아서 부활시킨다. 정이 들어서 동굴에서 나가면 여동생으로 삼아 데리고 살려는 결심까지 했지만, 자기 자신이 남긴 유서를 읽고 생전의 기억을 찾은 여자는 살아갈 의지를 잃어 도로 백골로 돌아가버린다.인어 시리즈에는 인어의 간을 소재로 반혼술을 쓰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누야샤에서는 키쿄우가 강제적으로 반혼술로 의해 부활하게 된다.[7][8] 반요 야샤히메에서 키쿄우처럼은 아니지만 리온도 어느정도 비슷하게 무덤의 흙과 뼈를 빚은 가짜 몸을 통해 반혼술을 사용해서 부활 했었다.
누라리횬의 손자에선 아베노 세이메이가 자신의 강력한 백귀야행을 끊임없이 유지하고자 연구하던 술법이 이 반혼의 술로 나오는데, 최종적으론 죽을 때가 가까워질 때마다 자신의 어머니 하고로모기츠네에게서 다시 태어나 전생하는 방법으로 완성을 증명하려 하고 있다.
나루토의 예토전생하고도 관련이 있는거 같다.[9]
동방 프로젝트의 사이교우지 유유코의 최후 발악 패턴 스펠카드의 이름이 반혼접(反魂蝶)이다. 유유코가 과거에 자살했단 점과 유유코의 시체가 나무 밑에 묻혀있음을 생각해보면 다소 의미심장하다.
모노가타리 시리즈의 식신 오노노키 요츠기는 15년전, 모 대학교 오컬트 동아리원들[10]에 의해 불사의 괴이로 되살아났다. 이 때 사용한 것이 반혼술. 그러나 이쪽은 죽기 전 원래의 기억이 없다.
요괴헌터 시리즈에서도 에피소드 '죽은 자가 돌아왔다'의 중심 소재로 쓰였다. 남편의 죽음을 견디지 못한 어떤 여인이 집안에 전해지는 반혼술을 이용해 남편을 부활시켰는데[11], 남편의 영혼이 아닌 이계의 존재가 들어가 버리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등장한다. 여기서의 반혼술은 살아있을 당시의 '껍데기'만 재현할 수 있지, 그 존재의 영혼까지 재생시킬 수는 없다는 설정이며 촉매의 효력을 없애는 물질을 이용해 백골로 되돌릴 수 있다.
유희왕/OCG의 듀얼 터미널 스토리 카드군 중 리추어는 의수경을 이용해 쓸 수 있는 동명의 주술이 있으며, 작중 묘사들에 따르면 산 자의 영혼을 대기로 바치는 대신 되살아난 자들에게 부작용이 없는 모양. 작중에서는 리추어 노엘리아가 자신의 과오로 한 번 사망했던 딸 리추어 에밀리아를 되살리는 데 사용했고, OCG에서는 필드 위 몬스터 1장을 덱으로 되돌리는 코스트로 두 장의 몬스터를 샐비지하는 효과로 구현되었다. 이 주술은 후신이라 할 수 있는 네크로즈가 이어받은 뒤 무녀를 통해 개량되어 사용된다. 기존의 죽은 자를 되살리는 것 이외에도, 창성신 tierra가 파멸한 뒤 인페르노이드들의 진공관들에 갇힌, 섀도르(qilpoth 시스템)에 잠식된 희생자들을 원래대로 되돌릴 때 사용하였다. OCG에서는 묘지에 존재하는 네크로즈를 소환할 수 있는 의식 카드로 구현되었다.
[1] 조선무속고의 적힌 그대로 옮김.[2] 비소를 함유한 광물[3] 1116~1172. 무라카미 겐지로 후시미 겐 주나곤(伏見源中納言)이라고 불렸다. 사이교에게 처음 반혼술을 가르쳐 주었고, 모로나카 본인도 후지와라노 긴토(996~1041)에게서 배웠다고 전한다.[4] 향에는 악마를 내쫓고 보살들을 불러모으는 힘이 있는데, 보살들은 삶과 죽음을 몹시 혐오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죽은 뼈에는 깃들지 않는다[5] 이 사람의 아버지가 무라카미 덴노의 아들인 도모히라 친왕으로, 무라카미 겐지의 시조다.[6] 반혼술 부분만 태웠다는 것 같다. 도유키 자체는 지금도 일부로나마 남아 있다.[7] 해당 문서에 가면 있지만 간단하게 요약하면, 귀녀 우라스에라는 요괴가 키쿄우를 부활시켜 자신이 조종할 요량으로 환생체인 히구라시 카고메를 납치하고 키쿄우의 유골을 훔쳐서 뼛가루와 흙을 섞어 반죽한 인형에 혼을 넣어 부활시킨다.[8] 반혼술로 부활한 인물은 몸이 흙으로 빚어진 터라 튼튼하지만, 사혼을 계속 채워주지 않으면 움직일 수가 없다고 한다.[9] 전생은 환생과 동의어로 볼 수 있고, 앞의 예토는 더러운 땅, 즉 이승을 가리킨다. 즉 죽은 자를 이승으로 전생시키는 술법이라 할 수 있으며 반혼술이 사람의 뼈를 요구하는 것과 비슷하게(?) 예토전생도 되살려낼 존재의 유전자(DNA)를 요구한다. 절차도 좀 더 간단하고 대가가 더해졌지만(산재물을 요구함) 기본적 이미지는 유사하므로 예토전생 역시 반혼술의 영향을 받은듯.[10] 설계는 가엔 이즈코, 실행한 것은 주인 카게누이 요즈루와 테오리 타다츠루, 오시노 메메, 카이키 데이슈이다. 이 넷은 결국 저주를 받는 것으로 대가를 치렀다.[11] 부활시키기 위해 한 노력이 가관이다. 남편을 화장할 때 뼈는 온전히 남게 해달라고 부탁해 관리자를 벙찌게 했고, 납골 항아리 무게를 맞추기 위해 항아리에 돌맹이들을 잔뜩 채워넣은 뒤 유골을 빼돌려 반혼술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