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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권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박석권
朴錫權 | Park seok gwon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925년 1월 20일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면 월암리 327번지
(현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월암리)
사망 1990년 10월 22일 (향년 65세)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가족 배우자 조병희, 슬하 1남 1녀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1묘역-235호
상훈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1. 개요2. 생애3.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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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군인, 행정공무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훈하였다.

2. 생애

1925년 1월 20일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면(현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월암리 327번지에서 태어났다.

1944년 일본 제국 육군징병되어 중화민국 장시성 주장현(九江縣)[1]에 배치되었다. 1944년 4월 23일 이정수(李庭壽)와 부대를 탈출한 뒤 허난성 신양현(信陽縣)[2] 부근에서 조일윤(趙一潤)·유병우(兪炳雨)·최수영(崔壽永)·권혁주(權赫柱)와 우연히 만나 이들과 합류하였다. 그리고 후베이성 한커우특별시(漢口特別市)[3]에서 국민혁명군 공작원과 접선하였고, 공작원의 인도에 따라 후베이성 예청(野城)에 주둔한 제9전구(戰區) 정진(挺進) 제5선대(線隊)에 편입되어 일본 제국 육군을 상대로 공작활동에 종사하였다.1944년 3월 10일 한국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에 입대하였고, 한미합동 기갑반에서 기갑 훈련을 받기 위해 충칭시에 있던 제1지대 본부에서 문정진·최기옥·유시보 등과 대기하던 중 8.15 광복을 맞이하였다.

1945년 7월 17일 중화민국 『중양일보(中央日報)』 충칭특파원 판스친(范世勤)과 「일본의 한인 징용과 중국대륙」이라는 제목의 인터뷰를 하였다. 이후 귀국해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임관하였다. 1950년 제8보병사단 제10보병연대 1대대 9중대장으로 오대산에서 공비 섬멸전에 참여하였고, 6.25 전쟁 발발 당시 강릉 전투에 참여해 정족산~진흑동 정면에서 조선인민군에 맞서다 부상을 입었다. 5.16 군사정변 이후 중령으로 예편하였다.

이후 1962년 5월 28일부터 1963년 4월 14일 제13대 평창군수, 1963년 제14대 횡성군수, 1964년 화천군수, 1964년 8월 1일부터 강원도 교육위원회 관리국 문교과 행정사무관 등을 역임하였다.

197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을 수훈하였다. 1978년 2월에는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전농동 588-90번지에 거주하고 있었다.[4]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훈하였다. 1990년 10월 22일 새벽 1시 30분에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서 숙환으로 사망하였다.[5] 유해는 1990년 10월 27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1묘역에 안장되었다.

3. 자료

독립유공자 공훈록
[1]중국 장시성 주장시[2]중국 허난성 신양시[3]중국 후베이성 우한시[4] 1978년 2월 28일 동아일보 기사[5] 1990년 10월 23일 동아일보 부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