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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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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좌우 성향 논란3. 서구와 미국의 패권주의 비판4. 기술자 옹호, 제로센 찬양 논란5. 아이패드 비난 논란6. 반지의 제왕 비판 논란

1. 개요


미야자키는 하야오 감독은 직설적인 화법으로 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해서 꽤 논란을 많이 일으키는 인물이기도 하다. 자신의 사상과 창작물들에 대한 고집도 아주 강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굽히거나 타협하는 경우도 거의 없는 성격 때문에 "작품은 좋아도 미야자키 개인은 싫다" 라고 평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서양에서 만들어진 사상, 물건, 문학은 모두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고, 젊은이는 틀렸고 자신은 옳다는 식으로 단언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다 서양 문물을 지나치게 싫어하는 탓에 그가 얻는 지식도 일본의 번역서, 뉴스에 의존하기 때문에 지식도 꽤 편협한 편이다.

젊을 때도 이랬어서 당시 애니메이션 잡지에서 인터뷰를 해도 다른 크리에이터를 욕한다거나,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모조리 바보로 부르거나, 꽤나 틱틱대는 투로 말을 해서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다. 애니메이션 잡지 월간 OUT, 아니메쥬에서는 미야자키의 인터뷰를 자주 넣었는데 인터뷰를 할 때마다 다른 사람의 작품은 재미없다고 해 당시 여러 작품의 팬에게 큰 반발을 샀다.[1] 1980년대 당시 미야자키의 이미지는 천재는 천재인데 오만한 천재였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이런 발언을 잘 안 하는데 그건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가 그러면 안 된다고 하지 못하게 막았기 때문이라고.

다만 당시 미야자키는 감독은 애니메이션 잡지를 애니메이션을 돈벌이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잡지로 여겨서 별로 협조적이지 않았고, 당시 아니메쥬 편집자였던 스즈키 토시오가 찾아왔을 때도 몇 번을 내쫓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간혹 인터뷰가 실리더라도 제대로 된 발언이 실릴 리가 없던 것이다. 아무튼 1970년대와 1980년대는 애니메이션 잡지의 영향력이 막강했는데, 이렇게 미야자키가 팬하고 소통을 잘 못하다 보니 토미노 요시유키, 데자키 오사무, 오시이 마모루, 아시다 토요오 감독 같이 애니메이션 잡지에서 팬과 소통을 잘하던 크리에이터들에 비해 1980년대만 해도 상대적으로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2. 좌우 성향 논란

인종차별자라든가 혐한론자라는 의혹과 상반되게, 노조 활동이나 일본공산당 신문의 연재 이력 때문인지 무정부주의 좌파라는 얘기도 듣고있는데, 그런 색깔이 강하게 나타나는 작품으로는 반파시즘적인 색깔이 확연한 붉은 돼지, 반전 메시지가 강한 미래소년 코난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있다. 아무래도 본인의 어린 시절이 제2차 세계 대전일본 제국 등에 의해 상당히 암흑으로 점철됐었다는 하야오 본인의 말을 들어보면 그런 것들이 이해가 갈 만도 하다.

그리고 가쿠슈인대학 재학 중에 직접 공산당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좌익을 지지하는 글을 투고했다고도 한다. 실제 이때 좌 사상에 상당히 심취했으며 타카하타 이사오와 친해진 것도 좌익 사상이 맞아서였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전공투적군파로 대표되는 행동파 운동권 좌익이라기 보단 스스로 관심가지고 공부해서 좌익이 된 경우다.

정치적 발언의 기피로 우익이라는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우익 성향을 나타냈다기보다는 정치적으로 파장을 부를 수 있는 민감한 발언을 삼갔다고 보는 게 맞다. "나우시카" 개봉 당시 영화잡지 '키네마준보'에 나우시카가 은연 중에 가미가제 특공을 미화하고 있다는 비평이 게재되었을 때 이에 반론하지 않은 것으로 오해를 산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떻게 발언을 해도 좌익과 우익에서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가불기 상황에서 아예 민감한 대답을 피한 것이다. 이 일은 1980년대에 있었던 일인데, 그 당시조차 일본의 참전자 단체나 우익 야쿠자들이 공공연히 백주에 테러를 저지르던 시기였기 때문.

마찬가지로 그가 한국을 2000년대 초반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당시 이슈가 되고 있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저는 그문제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고 대답한 바가 있는데, 이것도 한국 네티즌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 바로 그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가까움을 강조하면서 한국에 대해 친근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독도, 센카쿠 열도, 쿠릴 열도 등등 주변국들과의 영토분쟁에 대해서는 반으로 나누든가 공동관리를 제안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 문제는 국제사법재판소에서조차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양국간의 견해차를 좁히는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라는 옹호도 있으나, 일본과 영토문제를 겪고 있는 한, 중, 러 국민들은 물론 일본이 실효지베중인 센카쿠 열도를 기준으로보면 일본인 입장에서도 좋게 받아들이기는 힘든 발언이다. 상식적으로 한 나라가 실효지배하고 있는 영토를 가지고 "당연히 우리땅인데 왜 땅을 나누거나 공동 관리를 해야하느냐?"라는 반응이 나오는건 너무나도 당연하다.(참고)

좌파 운동권 출신의 오시이 마모루 감독에게는 두고두고 까인다. 안노 히데아키 감독 또한 비슷한 의견을 개진한 적이 있고 심지어 미야자키의 작품은 "데이트 무비"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극언을 붉은 돼지 공개 직후 한 적도 있다.(인터뷰집 스키조 에반게리온 참조)

하지만, 나우시카 이외에 미야자키의 작품에서 우익 논란이 있었던 작품은 거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우익적으로 보이는 연출이 미야자키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보인 것에 가깝다. 키네마준보에서 지적한 카미카제 논란에 대해서는, 미야자키 본인도 전혀 의식하지 못하다가 정곡을 찔려서 아무 대답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2] 애니판과 다르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코믹스의 경우 우익 논란 따위는 쏙 들어가버리게 할 정도로 엄청나게 무정부주의적이고 반(反)전체주의적인 사상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미야자키의 최대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 나우시카 코믹스를 보면, 미야자키는 일단 좌익 쪽에 기울어져 있지만 현실에서 나타난 공산주의 체제의 모습에 대해서도 상당히 부정적이며 특히 좌우파를 막론하고 나타난 전체주의(스탈린주의와 파시즘 양쪽 다)를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 오시이 아모루가 나우시카를 까는 것도 어이 없는 것이 희생을 미화했다고 우익이라고 하는 것인데 그런 식으로 치면 데즈카 오사무철완 아톰 첫번째 애니메이션 판도 그런 식의 결말이니 우익 애니메이션이라는 소리가 된다. 그런데 데즈카 오사무가 우익인가? 이런 건 기동전사 건담에도 나온다. 그럼 토미노 요시유키도 우익인가? 좀 평소 친하던 미야자키를 까기 위해서 깐다는 느낌의 평론이므로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애초부터 이 결말은 미야자키가 생각한 것도 아니고 스즈키 토시오타카하타 이사오가 제안한 것이다. [3]

좌익 논란을 떠나서, 적어도 환경 문제, 노동 문제에 대해서는 굉장한 관심을 가진 건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 경향의 작품으로는 미래소년 코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벼랑위의 포뇨 등등이 있다. 또한 미야자키는 1961년에 만들어진 토에이 동화 노동조합에서 제2대 서기장을 맡아서 치열하게 노동운동을 하기도 했다.

2013년 7월에 미야자키 감독이 쓴 칼럼이 공개됐는데, 미야자키가 본인의 사상적인 문제에 대해 이렇게 분명히 밝힌 적은 여태껏 없는 일이었던지라 화제가 되었다. 참고.

해당 칼럼에서는 '일본은 변명의 여지가 없이 주변국들에게 나쁜 짓을 저질렀다'는 논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어렸을 때는 '어째서 이런 글러먹은 나라에서 태어나버린 것일까'라는 생각까지 했었다고. 30대가 되어서 일본을 좋아하게 되긴 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로서가 아닌 '일본이라는 섬'으로 좋아하게 됐다는 듯. '일본은 인간만 없으면 정말로 아름다운 땅이다'라며, 일본 정치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안고 있으며, 아베 정부의 헌법9조 개정 문제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하였다. 아베노믹스도 조만간 망할 게 뻔하다고 말했다.

바람이 분다는 제로센 미화 논란이 일기도 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그런 반응이 있건 말건 개의치 않고 2014년 2월 TBS 라디오에서 방송된 인터뷰에서 "제국주의 시대에 일본은 지배되지 않도록 노력한 결과 자신들이 제국주의를 흉내냈다. 결과적으로 3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전쟁을 했고, 원폭이 두 번이나 떨어지는 일을 당했다. 주변국의 원한은 없어지지 않는다. 법적으로 해결한다 해도 감정이 풀리지 않고 남아 있다."라며 일본이 침략전쟁으로 주변국들에게 피해를 줬으며 일본 정부가 법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주장해도 주변국들의 상처는 없어지지 않는다며 일본이 "어떻게든 해야 한다." 라는 소신 발언을 그치지 않았다. 또한 단세포적인 아베 총리를 비판하면서 일본이 헌법을 수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사1, #기사2

말년이 되고 인터뷰가 쌓이면서 미야자키 감독의 성향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고 있다. 미야자키는 인간은 거대한 사회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는 생물이라 거대한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면 지구는 언젠가 파괴되고, 인간의 행복도 결여될 수 밖에 없으니 좀 더 작은 단위의 공동체 (가족,고향 등)로 돌아가서 원시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거대 사회를 지향하는 과학 문명, 군국주의, 제국주의에 극도의 혐오를 보이며 나아가서는 공산주의의 거대 공동체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 우파나 좌파를 넘어선 미야자키 만의 결론이라 할 수 있으며, 이를 무의식적으로 인지한 좌파, 우파 관객들이 미야자키의 작품에서 기묘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굳이 말하면 평화적 아나키스트에 가깝다. 그가 시청자들에게 종용하는 메세지도 이런 썩어빠진 세상을 혁명으로 파괴하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부터 먼저 욕심을 버리고 지금의 피로한 사회 시스템에서 벗어나 소소한 일상으로 돌아가보라는 평화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말년에 와서 일본 좌익에 회의감이 오긴 했지만 미야자키 감독은 기본적으로 좌익이 맞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오시이 마모루가 미야자키를 까는 것도 우익이라서 까는 게 아니고 "좌익이란 사람이 그래서야 되겠냐"에 가깝다. 그런데 한국에선 오히려 좌익과 별 연관성이 없는 토미노 요시유키가 좌익으로 알려지고 미야자키는 바람이 분다 같은 거나 만드는 우익이라는 식으로 정 반대로 잘못 알고있는 사람들이 많다. 애초에 미야자키 가지고 좌익이냐 우익이냐로 토론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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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구와 미국의 패권주의 비판

미야자키 감독은 본인이 직접 반미주의자라고 표명한 적도 없고, 미국 등의 서양 문화를 싫어한다고 인터뷰에서나 책에서 직접 밝힌 적도 없다. 그가 1963년에 토에이 동화에서 입사해서 배운 애니메이션 기법은 디즈니를 비롯한 서양의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초창기 작품에도 미국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연출이 두드러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을 몇 번 비판했다고 반미주의자 취급을 한다면, 그보다 몇 배로 일본 국내 상황을 비판했으니까(원전이라든가 교육이라든가) 오히려 반일주의자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미야자키 감독이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의 패권주의와 자연을 인간의 소유물이자 도구로 생각하는 사상에 비판적이라는 것은 여러 행적을 통해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2002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을 때 미야자키가 방미를 할 것인지가 초유의 관심이 되었지만 그는 미국에 가지 않았다. 지금은 기사가 지워졌지만 #남아있는 흔적[4] 과거 미야자키는 이를 두고 LA 타임즈에서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으므로 보이콧하겠다.' 라는 발언을 남긴 적이 있다. 심지어는 오카다 토시오의 저서 "오타쿠학 입문"에 따르면 미야자키는 도에이 동화에 들어갈 때 면접에서 한 말이 "미제[5] 놈들의 디즈니에게 대항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 였다고 한다. 단 오카다는 허언이 심한 인간이고 이 발언에 마땅한 근거는 없다.[6]

오시이 마모루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반미주의자 같은 사람이란 말을 여러 번 하였고 # 그 중 하나 NHK 다큐 '끝나지 않는 사람 미야자키 하야오'에서도 서구 문화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이 전파를 탔다. 피겨왕 2002년 10월호 인터뷰에서는 "미국인은 빵하고 쏘면 독일이 폭발하는 그런 영화만 만들고 있다. 그래놓고는 아프가니스탄을 오폭하지 않았는가. 일본인이 이런 걸 보고 좋아하는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다" 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토에이 동화에 근무할 때의 경험을 말하는 인터뷰를 살펴 보면 디즈니를 부정하지도 않았다.
다카하타 - 요즘의 젊은 연출가나 애니메이터들은 새 작품을 만들기 힘들 겁니다. 미야자키 작품이 이미 우뚝 솟아 있으니까요. 우리가 젊었을 때는 아무도 하지 않은 것들이 많이 남아 있었지요. 디즈니에는 굉장한 작품이 많이 있지만, 우리의 지향점과 달라서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미야자키 - 아니요, 저는 꽤 신경이 쓰였습니다(웃음). 우리 작품을 만들기 전에 참고용 시사라고 해서 디즈니 작품을 빌려와 스튜디오에서 상영회를 했지요. 그걸 보고 제 자리로 터벅터벅 돌아와 제가 그린 그림을 보니 너무 한심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차이를 어떻게 메워야 할까 매일 고민했습니다.

디즈니의 작풍의 영향도 그의 작품 전반에서 나타나지만 붉은 돼지에서는 디즈니를 욕하는 장면을 넣기도 했다.[7] 디즈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발언도 직접적으로 한 적이 있다. "나는 디즈니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디즈니 영화는 입구와 출구의 넓이와 높이가 똑같이 낮다.[8][9] 관객을 우습게 보고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라는 발언을 한 바가 있다.[10] #

지금이야 전혀 안 그렇지만 과거의 디즈니는 전쟁 선전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고 한동안 백인우월주의 사상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으므로 미야자키가 싫어하더라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 미야자키가 젊은 시절 미국의 애니메이션 기술은 일본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으므로 미국과 디즈니가 싫어도 이걸 따라잡기 위해서 보고 모방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은 딱히 모순된 태도는 아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미국 애니를 보긴 하는 것은 명백한데 그가 각본 및 연출을 한 루팡 3세 2기 145화 155화 '안녕, 사랑스런 루팡이여'에 나오는 로봇 라무다는, 플라이셔 스튜디오에서 만든 슈퍼맨 애니메이션인 "The Mechanical Monsters(1941)에 나오는 로봇에서 그 디자인을 따왔고 그 그림도 구도도 따라했고, 그 로봇은 훗날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나오는 로봇의 모델도 되었다. 그 밖에도 그가 그린 원화 장면에서는 디즈니를 따라한 장면이 많이 있다. 그리고 훗날 설립한 스튜디오 지브리는 디즈니와 제휴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월트 디즈니사는 스튜디오 지브리가 만든 모든 작품의 배급권과 비디오화 판권을 가지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디즈니를 싫어한다는 말은 루머일 가능성이 높다.

단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는 미국 및 서구의 패권주의 문화를 싫어하는 것이지 인종이나 국가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1990년대에 송락현이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종차별 주의자라고 루머를 퍼뜨려 이를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 정도로 무개념한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는 좌익으로서 서양의 패권주의와 자연을 인간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문화를 비판하는 것이지 인종이나 미국이란 국가 자체를 비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 비판의 강도 역시 강하지 않았으며 어느 정도 미국인 입장에서도 공감할만한 비판점이기 때문에 서양에서도 문제삼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서구 문화나 미국 문화를 무조건 싫어하는 것도 절대 아니다. 패권주의가 아니고 개인의 소소한 삶이나 있는 그대로의 역사와 문화라면 수용하고 인정한다. 예로 그의 작품 대부분은 유럽을 모델로하며 그는 미국을 무대로 한 꼬마 너구리 라스칼을 만든 적이 있다. 그리고, 미국인 픽사존 라세터와는 벌써 수 십년째 친교를 이어오는 동료 겸 친구다. 존 라세터 작품엔 미야자키 작품 캐릭터인 토토로가 카메오 출연했다. (토이스토리3, 주토피아) 또한 지브리 애니 블루레이를 일본과 미국에서 유통했던 회사는 다름아닌 디즈니다. [11] 2006년 방송에선 디즈니 아트전을 두고 매우 극찬하기도 했다. [12] 디즈니는 1990년대 뮬란을 통해서 미야자키가 싫어할만한 점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왔고 2000년대부터 디즈니와 미야자키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다.

4. 기술자 옹호, 제로센 찬양 논란

(이하 내용은 바람이 분다의 '일제 미화 논란' 부분도 함께 참조)

일본인들에게 일반적으로 제로센은 상당히 호감가는 위치에 있고, 특히 일본 밀덕에게는 중심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위에서의 링크도 일본인에게서의 제로센의 위치에 한 문단 전부를 길게 할애하고 있다. 현대에는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워낙 위치가 확고하여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제로센은 전범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로망'으로서의 요소도 있다는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제로센이 한참 로망을 달리던 시기를 청춘으로 보내고, 성장한 사람이다. 그래서 미야자키는 제로센에 대해서 '활기찼던 젊은 시절의 상징'이자, '참혹했던 전쟁의 상징'이라는 양면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이 부분은 아래의 인터뷰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Q: 전쟁을 비판하는 한편으로, 제로센이라는 무기에 애착은 갖는다. 모순되지 않습니까?
A: 모순 덩어립니다.

제로센 관련으로 악명높은 카미카제 자살특공대를 '그들은 구식이라 별 역할을 한 게 없다' 라고 표현한 것을 지적하여 제로센 찬양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인터뷰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원문은 (카미카제 피해자인 한국인에 대한 책임에 대해)'호리코시 지로가 만든 제로센이란 전투기는 구식이라 카미카제 특공대가 활동할 때 유용하게 쓰이진 않았다. 그가 잘했다고는 할 수 없다.'로, 제로센은 구식이라고 까는 내용이다.[13]

다만 PV도 제로센을 신화적이라며 추켜세우며 묘사하였는데 반대로 이를 제로센 미화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일본인 외에 있겠는가? 이전 서술들은 순전히 그의 입장만을 반영했지 무책임한 언행들로 고통받을, 직접적인 당사자인 보는 사람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본인의 입장이다.

일본 전쟁 영화《전쟁과 한 여자》의 제작진은 이에 대해 "미야자키는 전쟁의 비극과 일본의 전쟁 책임론을 직접적으로 다루기를 회피하고 있다", "미야자키는 역사 의식이 없는 사람" 이라며 강도높게 비판을 하였다. #

토미노 요시유키는 이를 두고 "미야자키는 제로센의 죄, 기술자의 죄라는 걸 확실하게 묘사하였다. 나는 바람이 분다를 보고 처음으로 '아, 미야자키가 그냥 메카 오타쿠가 아니었구나'라는 걸 알았다."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 그리고 다른 인터뷰에서는 "바람이 분다는 호리코시 지로를 미화한 작품이 아니다. 전투기에 홀린 남자의 비참한 말로를 그린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라는 반응을 보였다. # 참고로 토미노 요시유키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와 마찬가지로 상당한 반전주의자이며[14], 전쟁을 미화하는 작품에는 냅다 욕부터 박는 사람이다.

5. 아이패드 비난 논란

관련 기사

지브리가 발행하는 소책자 '열풍' 2010년 7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당신이 손에 쥐고 있는, 그 게임기 같은 것을 이상한 손놀림으로 문지르는 행동은 나에게는 어색할 뿐이며 어떠한 감동도 주지 못합니다. 혐오감만 줄 뿐이죠. 전철 안에서 이상한 손놀림으로 자위행위를 하는 것처럼 (아이패드를) 문지르는 사람들이 늘겠죠."라는 말로 아이패드를 비판했다.

자국인 일본 네티즌들은 뼈가 가루가 되도록 깠다. 중에는 신상품 하나 들고 있다고 스스로 창조적인 사람이나 된듯한 기분에 빠져 있었다고 반성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대체적으로 "창조적인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오만한 발언"이라거나 "새로운 세계를 거부하는 옛 사람 고집"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외에도 터치패드, 타블렛에 대해서도 굉장히 부정적이라 몇 번 연습은 해봤지만 "타블렛으로 그린 그림엔 미래가 없다." 라면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부터 다시 종이 제작 체제로 돌아갔다. 2016년 방송 '끝나지 않는 사람 미야자키 하야오' 라는 다큐에서 털벌레 보로를 제작하던 미야자키 하야오는 종이에 그릴 때와 다르게 0.몇 미리씩 오차가 발생하는 타블렛에 그림을 그리며 짜증을 내는 반응을 보였다.[15][16]

이와 관련하여 Apple 측에선 별 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가 2020년에 Apple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수석부사장 크레이그 페더리기가 테크 유튜버 Marques Brownlee와의 인터뷰에서 밝히길 당시 스티브 잡스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고 하며, 미야자키 하야오의 태블릿 무용론에 대해 그림을 그리는 대중들에게 익숙하고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만 언급했다.[17]

6. 반지의 제왕 비판 논란

2002년에 한 반지의 제왕이 인종차별이 담겨진 작품[18]이라고 한 논평(인터뷰)가 15년 후인 2017년에 논란이 됐다.# #

여기서 말하는 "아시아-아프리카인"은 내용상 하라드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반지의 제왕에 인종차별적인 내용이 있는 것 아닌가라는 논란이 존재했었다.[19] 당시 백인이자 영국인으로서의 시각의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 반지의 제왕 해당 항목 잠조.

같이 비판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경우도 실제로 제국주의, 인종차별에 관한 비판이 많이 존재한다. 당장 영화 내용만 해도 "작중에 나오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는 한없이 미개하고 야만적이며 결국 그들의 보물은 영웅적인 활약을 한 백인 남성이 구해내고 이후 서양의 박물관에 장식된다는 결말"이라는 내용이니. 실제로 2편의 경우 인도 요리를 "지옥의 음식"이라며 비하하고, 실제로 인도에서 먹지 않는 혐오 식품들을 인도의 요리라고 포장한 탓에 인도에서는 상영이 금지되었다.

요컨대 미야자키 하야오가 할리우드 영화의 백인우월주의적 성향[20]과 인종차별적 성향을 비판한 것.[21]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인터뷰에 대한 논란은 2017년에 터졌지만, 이 발언이 나온 인터뷰는 그 보다도 15년 전인 2002년 때 이뤄진 것이었다. 즉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가 개봉된 지 1년이 지난 뒤다. ~일본 위키피디아에는 "구미 세계에 대한 비판" 이란 내용으로 꽤나 오래 전부터 서술되어 있던 내용인데, 나중에서야 마토메 블로그 등지에서 화제가 된 것이라고 한다.


[1] 물론 정말 잘 만들면 가끔 호평을 하기도 했다. 시끌별 녀석들 1981년판 등. 그리고 미야자키가 까칠하게 평가하는 건 자신의 전문 분야인 애니메이션뿐으로 만화와 소설은 호평한 작품이 많다.[2] 비슷한 예로, 홍콩의 오우삼 감독이 본인의 대표작인 "영웅본색" 시리즈와 "첩혈쌍웅"에서 남자 주인공들의 관계가 동성애적 코드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미국 평론가의 지적에 대해 "나는 그렇게 의도하고 연출한 것이 아니지만, 당신의 말을 듣고 보니 그렇게도 보인다."라고 수긍한 적이 있다. 작품이 작가의 구속에서 탈출한다고도 하는데 이런 경우로 보는 쪽이 타당할 듯.[3] 스즈키 토시오가 밝힌 애니에이션 영화 나우시카의 결말 사정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생각해 둔 결말 아이디어는 여러 안이 있었지만, 시간적으로나 여러 사정으로 결국 스즈키 토시오와 타카하타 이사오가 제시한 결말을 따랐다고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생각한 결말 아이디어중에 하나는 오오무거신병이 직접 전면 대결을 하고, 거신병을 물리친 오오무는 애벌레 상태(원래 오오무의 그 형태는 성체가 되기전의 애벌레 구더기 모습이라고 한다)에서 탈피를 해서 거대한 나비 모습의 날벌레가 되어 지구 대기권 밖을 벗어나 우주로 날라가는 엔딩이었다고 한다.[4] 과거 미야자키가 미국에 대해서 한 발언이 포함된 기사가 많이 지워졌다. 스튜디오 지브리 측에서 미야자키의 이미지를 생각해 지우려는 것으로 보인다.[5] 제국주의에 빠진 악마같은 미국 놈들이라는 뜻으로 공산권 국가나 일본제국에서 미국의 멸칭으로 사용하던 말이다.[6] 오카다 토시오가 쓴 오타쿠학 입문에 실제로 적힌 글은,  学習院大学卒業後、宮崎駿は東映に入社し、アニメーターとなる。その理由が凄い。「米帝ディズニーに対抗するアニメの拠点を日本で作る」というのが、青年・宮崎駿の志望動機だった。(학습원 대학졸업후, 미야자키 하야오는 토에이에 입사해, 애니메이터가 된다. 그 이유가 대단하다. 미제 디즈니에게 대항하는 아니메의 거점을 일본에서 만든다 라는 것이 청년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망동기였다. ) 미야자키 하야오가 면접에서 실제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오카다 토시오의 뇌내망상으로 그랬을 것이라는 만들어낸 말이다. 오카다의 망상은 계속 이어져서,  こうして宮崎駿の思想は、より強固になっていく。「米帝ディズニー許すまじ」だったのが、「ハンバーガーを食う若者は大嫌い」となり、「ディズニーが大好きと何度も公言する手塚治虫は許せない」と発展してくる。(이러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사상은 보다 강고해져서, 미제 디즈니를 용서하지 않겠다. 라는 것이 햄버거를 먹는 젊은이가 무척 싫다가 되고, 디즈니를 좋아한다고 몇 번이고 공언하는 데즈카 오사무를 용서하지 않겠다로 발전해갔다)라고 오카다는 지 맘대로 망상을 펼쳤다.[7] 영화관 장면인데, 돼지가 여자를 납치해서 미키 마우스같이 생긴 쥐/토끼가 추격해서 마침내 돼지를 쓰러뜨리고 여자와 키스를 한다. 어디에도 디즈니를 디스하는 요소가 없다.[8] 미야자키 본인이 생각하는 훌륭한 대중영화란 들어오는 입구는 낮고 넓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지만 반대로 나가는 출구는 높고 고상해야 하는데, 디즈니 영화는 입구와 출구가 똑같이 낮은 데에 있다는 점을 지적한 말이다.[9] 같은 글에서 미야자키는 신데렐라, 백설공주 등 디즈니 영화에 자주 쓰이는 로토스코핑 기법을 개인적으로 싫어한다고 말하며, 애니메이션 고유의 표현을 버리고 실사 영화를 어중간하게 따라하려 한다고 비판하였다.[10] 宮崎駿「日本のアニメーションについて」『講座日本映画』7 (日本映画の現在)、今村昌平ほか、岩波書店、1988年1月。ISBN 4000102575。[11] 단 2011년 부터는 손을 떼 GKIDS에서 배급한다.[12] 알려지지 않은 디즈니의 마법 ~ 디즈니 아트전을 100 배 즐겁게 보는 방법[13]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실제 가미카제 작전에 참가했던 99식 함상폭격기, 97식 뇌격기 , 1식 육상공격기 등의 다른 특공기와 비교하면 제로센쪽의 전과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제로센이 아무리 구식전투기라곤 하지만 나름 단발전투기로써 기동성이나 속도는 폭격기들과 비교불가능한 수준이며 이로인해 비교적 쉽게 적 함선 코앞까지 접근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미카제에 격침된 최초의 호위항모도 제로센의 충돌공격으로 인해 격침되기도 했다.[14] 토미노는 아버지가 2차 세계 대전 당시 병기 개발에 관여한 걸 보고 충격받은 뒤로 반전주의를 가졌다. 애초부터 우주세기 건담 시리즈는 군국주의를 비판하는 작품이며, 시마 가라하우처럼 독가스로 대학살을 자행한 고위급 간부들도 죄책감과 PTSD에 시달리는 장면도 묘사했다.[15] 다만 컴퓨터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털벌레 보로 제작 현장으로 추정되는 동영상에서 액정 타블렛을 이용할 당시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지우개가 어딨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컴퓨터가 공기저항까지 계산했다며 컴퓨터 활용에 대해 흥미롭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CG팀이 매력적인 생명체를 만들어 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결국 본인과 타블렛 방식이 안맞는다고 봐야 한다.[16] 그리고 현재 지브리에서도 디지털 작업을 도입한 지 오래이기에 종이 제작이라고 해봤자 원화 그 이상을 넘어서지는 못하며 종이 원화, 배경 채색을 직접 하는 정도의 수작업까지가 한계이며 나머지는 모두 디지털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한 방송국에서 스튜디오 지브리 내부 촬영 당시 한 직원이 사내 컴퓨터의 포토샵 프로그램을 켠 상태로 등장한 적이 있었다.[17] 다만 2023년 기준 현재는 스마트폰 혹은 태블릿PC로 보이는 기기를 사용하는 걸로 추측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케플러의 WADADA를 듣는 모습이며 세월이 지나며 스마트기기 자체는 익숙해진 것으로 보인다.[18] 정확히는 당시 할리우드 영화들을 전부 비판했다.[19] 이 논란은 하라드림뿐 아니라 오르크까지 포함되는 논란이었다.[20] 요즘은 인종차별 덜해졌는데? 라고 할지 몰라도 논평이 올라온건 15년전인 2002년이며 요즘의 할리우드 또한 화이트워싱블랙워싱 논란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목소리가 커진 계층은 어디까지나 흑인이지 아시아계가 아니다. 아시아계는 아직도 주인공을 받쳐주는 조역 아니면 중국 시장을 노리고 끼워넣은 들러리이다. 심지어 이 조차도 오리엔탈리즘에 찌들어 있어 아시아인이면 늘상 닌자, 일본도, 사무라이, 쿵푸, 도교, 기, 신기함, 반물질주의적 분위기, 무술도장, 미개함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21] 다만 이런 문제는 미국 헐리우드 영화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본 서브컬처 역시 비슷한 문제는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제국주의 문제와 국수주의, 혐한, 외국인 차별 문제는 일본 매체에서 끊임없이 발견할 수 있다. 꽤 심각한 문제인데도 미국과 달리 별 논란도 안되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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