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커는 1853년 1월 30일, 프로이센 왕국의 군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린커는 1870년 프로이센 왕국군에 입대했고, 그해 벌어지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참전했다. 린커는 프리드리히 왕세자의 부관이었는데 이 덕분에, 이후 빌헬름 황태자와 그의 동생 아이텔 프리드리히의 군 관련 멘토가 되었다.
1908년 11월, 군사대신, 디트리히 폰 휠센헤슬러가 갑작스레 사망하자, 린커는 그의 후임이 되었다. 하지만, 카이저는 린커를 좋게 보았다.[2]
1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똑같이 육군 내각에서 종사했다. 그는 해군 대신인 게오르크 알렉산더 폰 뮐러와 함께 일했다. 이후 소 몰트케가 해임당했을 때, 에리히 폰 팔켄하인과 다음 참모총장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팔켄하인이 참모총장이 되었다. 린커는 팔켄하인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러시아 제국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1916년 8월 27일, 루마니아 왕국이 동맹국에 선전포고를 했을 때, 전쟁에서 졌다고 했다.[3] 전후 1919년 전역했고, 1932년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죽었다.
[1]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대로는 '폰린커'로 표기한다. 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2] 아이러니하게도, 헤슬러는 사실상 카이저 때문에 죽었다.[3] 루마니아는 금방 점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