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16:48:29

메리나 왕국

마다가스카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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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나 왕국
Kingdom of Merina
Fanjakan'Imerina
파일:메리나 왕국 국기.svg 파일:85px-Coat_of_arms_of_the_Merina_Kingdom.svg.png
국기 국장
1540년 ~ 1897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메리나 부족사회 프랑스령 말라가시
정치체제 전제군주제
입헌군주제
수도 안타나나리보[1]
국가원수 국왕
언어 말라가시어
종교 전통종교
개신교(성공회)[2]
국가 신이시여!
위치 마다가스카르
1. 개요2. 역사
2.1. 역대 국왕2.2. 국서(國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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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늘날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 있었던 왕국으로 이메리나 왕국(Kingdom of Imerina)이라고도 한다.

2. 역사

중부 고원 지역의 메리나족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근대화를 추진하다가 도중에 뒤엎는 등 내부적으로 갈등을 빚는 모습을 보였으며 결국 1897년 프랑스의 침공으로 멸망하였다.

2.1. 역대 국왕

왕위 계승 방식이 상당히 독특했는데 부자간보다 부부간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여왕이 많이 배출되었으며 왕비였던 여왕이 결혼하지 않고 승하하면 그제서야 아들이 왕위를 잇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라소헤리나 여왕 이후로 실권은 총리대신에게 있었다.
  • 마다가스카르 섬 통일 이후의 군주
    • 안드리아남포이메리나 (재위 1787년 ~ 1810년)
      마다가스카르 섬을 모두 통일하여 메리나 왕국 치하에 두었다.
    • 라다마 1세 대왕 (재위 1810년 ~ 1828년)
      생몰년 1793~1828.
    • 라나발로나 1세 (재위 1828년 ~ 1861년)
      생몰년 1778~1861. 라다마 1세의 15살 연상의 아내로 남편을 계승해 여왕이 되었다. 나라를 서구권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자립 정책을 펼쳤지만 그 과정에서 기독교 탄압과 무자비한 학살을 통해 메리나 왕국 인구의 절반을 학살한 폭군이라는 혹평도 많다.
    • 라다마 2세 (재위 1861년 ~ 1863년)
      생몰년 1829~1863. 라나발로나 1세의 아들로 왕위를 계승했다. 아버지는 라다마 1세라고 공표되었지만 실제 아버지는 다르다고 한다.[3] 재위 2년 만에 군인들의 쿠데타로 암살[4]되었으며 그의 사후에는 아내들인 라소헤리나와 라나발로나 2세가 연이어 왕위를 계승했다.
    • 라소헤리나 (재위 1863년 ~ 1868년)
      생몰년 1814~1868. 원래는 라다마 2세의 첫째 왕비였다. 본명은 라보도(Rabodo)로 남편이 암살되고 나서 왕위에 올랐다. 이쪽도 15살 연상의 아내로서 결혼했다.
    • 라나발로나 2세 (재위 1868년 ~ 1883년)
      생몰년 1829~1883. 원래는 라다마 2세의 둘째 왕비였다. 라소헤리나와는 사촌 관계. 본명은 라모마(Ramoma)로 성공회를 받아들여 국교로 삼고 삼피(Sampy)라고 불리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부적[5]들을 불태웠다.
    • 라나발로나 3세 (재위 1883년 ~ 1897년)
      생몰년 1861~1917. 라나발로나 2세 여왕의 조카딸이자 안드리아남포이메리나 왕의 증손. 마지막 여왕으로 1897년 프랑스에 의해 왕국이 멸망하였으며 레위니옹 섬에 유배되었다가 알제리로 유배되었고 그 곳에서 서거했다. 왕위 계승자인 마리루이즈[6]는 후손을 남기지 못한 채 1948년에 사망했다. 이 시점에 이미 왕조는 잊혀져서 왕조가 사라졌는데도 관심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2.2. 국서(國壻)

  • 라이니하로(Rainiharo): 라나발로나 1세의 새 남편.
  • 라이니조하리(Rainijohary): 라나발로나 1세의 새 남편.
  • 라이니보니나히트리니오니(Rainivoninahitriniony): 라소헤리나의 새 남편.
  • 라이닐라이아리보니(Rainilaiarivony): 라나발로나 1세의 새남 편이자 총리인 라이니하로의 차남으로, 36살이었던 1864년에 형의 지위를 이어받아 총리대신이 되었으며 프랑스에 의해 쫓겨나는 1895년까지 무려 31년간 라소헤리나, 라나발로나 2세, 라나발로나 3세 세 명의 여왕과 연이어 결혼했다.[7] 아버지처럼 여왕의 국서(國壻) 겸 총리였긴 한데 비범한 건 세 여왕들을 계속해서 그렇게 모셨다는 것이다.[8]


[1] 현 마다가스카르의 수도.[2] 1869년 이후[3] 라다마 1세의 서거가 1828년 7월인데 라다마 2세는 1829년 9월에 태어났다.(14개월 전후의 임신 기간을 갖는 동물은 기린이나 범고래 정도뿐이다.) 그런데 그게 맞다면 어머니는 51세에 그를 낳았다는 소리가 된다. 이 동네에 기록 같은 게 제대로 있을 리 없으니 진실은 저 너머에...[4] 쿠데타의 목적은 어머니의 폭정이 그의 치세에도 지속되었기 때문이며 결국 참다 못한 군인들이 들고 일어나 모녀지간의 잔재를 제거한 것이다.[5] 삼피는 종이 부적이 아니라 일종의 장난감 같은 모양으로 나무조개로 만들었다.[6] 애당초 이 인물의 조카딸과 이름모를 프랑스 병사 사이의 사생아로서 프랑스가 이 동네 왕조 혈통을 바꾸고자 계승자로 임명한 것이다. 자손은 없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에 자유 프랑스군에 종군하여 간호업무에 종사하여 나름 구실은 했다.[7] 물론 라다마 2세의 왕비 출신인 라소헤리나, 라나발로나 2세와는 재혼한 것이다.[8] 새 남편을 총리로 임명한 건 라나발로나 1세 때와 같았지만 라다마 2세 왕이 백주대낮에 암살당하고 나서 왕권이 땅바닥에 떨어져 총리가 정권을 전횡하게 되었고 이후 여왕들은 사실상 총리 영부인에 지나지 않았다. 자손들은 많았으나 대부분 어리석고 무능해서 이 사람이 죽자 모두 존재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