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28:52

맹꽁이 서당/에피소드/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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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 서당
에피소드
조선편 1권 · 2권 · 3권 · 4권 · 5권 · 6권 · 7권 · 8권 · 9권 · 10권
고려편/기타 11권 · 12권 · 13권 · 14권 · 15권 · 기타
등장인물


1. 개요2. 아내 덕에 출세한 이기축3. 간신배의 말로4. 김 정승 묘소5. 아리랑에 얽힌 사연6. 삼복 더위를 계곡에서7. 염라대왕의 심판8. 남한산성9. 서낭당10. 즐거운 토끼사냥11. 세배 소동12. 양반과 글

1. 개요

해당 권은 선대왕 이야기가 끝나고 비하인드 스토리가 하나도 없는 유일한 편이다.

2. 아내 덕에 출세한 이기축

학동들이 다들 서당에 오는 길에 마주친 어떤 거지가 학동들 나이와 이름을 척 맞혔고, 자기는 백제 때 사람으로 백제가 멸망한 후 산속에서 오늘날까지 살아온 이인(異人)이라며 미래를 내다보는데, 장차 글이 없어져 과거에서 제일 장난 심한 녀석을 급제시키며, 그렇게 맹꽁이 서당에서 정승, 판서가 쏟아져나온다고 한다.

훈장님도 흥미가 생겨 가보는데, 분명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뿅 하고 사라지기까지 한다. 훈장님이 "백제 때 사람이라니 만나보고 싶었는데..."라며 아쉬워하면서 주변을 돌아다니다 갑자기 땅이 쑥 꺼지고 거기서 그 이인(?)이 나왔다. 사실은 장쇠가 거지 분장을 하고 놀기 위해 일을 꾸민 것. 웃긴 건 제 입으로 장쇠라고 했는데도 학동들은 눈치를 못 챘는지, 하는 말이 "뭐 장쇠? 백제 때도 장쇠라는 사람이 있었구나!". 훈장님이 장쇠인 걸 알고 혼내고 나서야 비로소 장쇠가 장난친 걸 깨달았다.

훈장님은 장쇠와 학동들을 혼냈고 서당으로 돌아갔는데 웬 아이가 있었고 자기를 문인(問人)이라고 한다. 문(門) 앞에 입(口)이 있으니 즉 거지라고 하며 장쇠와 옷을 바꿔입었던 것.

훈장님은 여긴 양반이 글 배우는 곳이라며 썩 나가라고 하지만, 거지는 자기도 양반 핏줄이라고 한다. 할아버지 때부터 글 배우기를 질색하고 펑펑 놀다가 몇 대 못 가서 거지가 되었다고. 그러면서 놀기만 좋아하면 너희도 문인 된다는 명언을 남기고 갔고, 이 얘기를 듣고 충격 먹은 학동들은 빨리 글공부를 하자고 했다. 이 문인 이야기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일화에도 나오는 이야기다.

이번 선대왕 이야기는 노비 출신이었다가 앞날을 훤히 내다보는 아내의 도움으로 출세한 이기축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3. 간신배의 말로

수업 빼먹고 단체로 꽃놀이를 갔을 때, 하필 그곳에 훈장님이 어른들과 함께 잠복하고 있었다. 전날 밤 주역을 읽고 꽃놀이 하기 좋은 때라고 직감한 훈장님이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고 미리 준비한 것.

학동들은 자기들이 매 맞을 자리를 보고 웬 신선들이 놀고 간 자린가 하고, 회초리 더미를 보고는 어떤 멍청이가 나무를 이렇게 해놓았냐고 웃었다. 그리고 각자 시를 읊기도 하는데, 그나마 괜찮은 한 녀석만 제외하고[1] 나머지는 모두 남의 시를 베꼈거나 내용이 가관이다.

거기서 까불이라는 학동이 훈장님으로 변장해서 훈장님의 행동들[2]을 따라하고 학동들은 그걸 보며 낄낄대는데, 진짜 훈장님은 바위 위에서[3] 잠복하며 학동들이 하는 짓을 보고는 그대로 종이에 종아리 때리는 횟수를 하나하나 적었으며 최대 500대에서 최소 70대. 물론 500대 맞을 학동은 훈장님을 따라하며 열심히 매를 번 까불이.

훈장님은 그 종이들을 바위 위에 숨어서 던지고, 학동들은 그게 뭔지 의아해했는데...
까불이: 야 신난다 내가 제일 많구나!
다른 학동 1: 뭔데 제일 많다고 좋아하니?
까불이: 이 바보들아, 척 보면 몰라? 하늘이 우리에게 내려준 수명이란 말이야. 난 500살을 사니 얼마나 좋냐?
맹추: 아이고, 그런데 난 왜 겨우 300살이냐-
다른 학동 2: 난 고작 180살인데...
다른 학동 3: 70살도 있다 뭐-[4]
그 다음에 진짜 훈장님이 "흥. 그건 네놈들이 맞을 회초리 대수야."라고 하면서 등장하고, 곧이어 학동들의 가족, 친척들이 등장하면서 달려나오고 학동들은 제대로 매타작을 당했다.
훈장님: 무릉도원이 매 맞는 도원으로 변했도다.
학동 아버지 1: 언제 사람이 되려고 이 모양이냣?
학동 아버지 2: 이 사람되기 틀린 놈아.
학동 아버지 3: 스승님 그림자를 밟아도 안 되거늘 조롱해?
학동 1: 아버지, 살려 줘요.
학동 아버지 4: 네가 70대 벌어놨지?
학동 2: 아녜요, 난 7대예요-
까불이 아버지: 네가 제일 많은 500대야.
까불이: 다신 안 그럴게요.
학동 아버지 5: 180대 맞아봐라.
학동 3: 하루에 1대씩 반년 동안 때려줘요-
해당 장면

결국 꽃놀이 좋아하다 매만 푸짐하게 번 학동들을 보고[5] 학동의 아버지들은 더더욱 엄격하게 해달라고 하고
학동 아버지 1: 앞으로는 더더욱 매질을 하면서 가르쳐주십쇼.
학동 아버지 2: 그래야 사람이 될것 같습니다.[6]
훈장님: 알겠습니다.
훈장님은 앞으로도 매를 벌게 종종 그러라고 놀리며
훈장님: 앞으로도 종종 그래라. 그래야 매를 벌게 아니냐? 선대왕 공부를 시작한다.

4. 김 정승 묘소

장쇠가 김 정승 묘소 앞에 앉아 학동들을 불러세우고 이야기를 한다. 이 김 정승은 장원급제해서 정승, 판서도 지낸 뛰어난 인물인데 결국 죽었듯이, 인간이 오래 살아야 100년 살다 죽으면 끝인데 뭐하러 글을 배우냐고 했다. 학동들도 동조하여 글이 무슨 소용이냐고 하고, 다들 글을 안 배우기로 했다.

이를 본 마당쇠가 훈장님에게 "훈장님이 도둑질을 나서게 됐다"고 하는데, 이 말인즉슨 옛말에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할 사람이 없다는데 학동들이 다들 글을 때려쳐서 수입이 없어져 굶게 될 훈장님은 결국 도둑질을 나설 거라는 것...

어쨌든 마당쇠는 훈장님을 데려가면서 자기도 글 같은 건 안 배울 거라고 하고, 김 정승 묘소 앞에 있던 학동들은 훈장님도 본체만체하며 더는 글을 안 배울 거라고 하고 마당쇠도 동조하며 사람을 괴롭히는 글은 싹 없어져야 마땅하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마른 벼락이 치자 마당쇠와 학동들은 겁먹고 하늘에 빌고 빌었고, 벼락이 그치자 마당쇠는 도망치고 학동들도 서당으로 글공부하러 간다. 이 일이 있은 후, 김 정승 묘소 앞에서 글 배우기 싫다고 하면 벼락이 떨어져 죽는다는 전설이 생겨났다고. 이때 전설이 생긴 걸 설명하는 컷에서 늙은 마당쇠가 나와서 그 전설을 퍼트리는 장면이 나온다.

5. 아리랑에 얽힌 사연

학동들이 경기 아리랑을 부르면서 서당에 왔는데, 그게 조상님들이 글 배우기 슬퍼서 부른 노래라고 개드립쳤다.[7] 어이가 출타한 훈장님은 학동들에게 "다신 그런 소리 하지마. 누가 들을까 겁난다"라면서 호통을 친다.

그 다음엔 장쇠가 산에서 황급히 돌아오는데, 갑자기 강아지 앓는 소리가 나서 모두가 의아해 한다. 장쇠는 빨리 글공부나 하자고 재촉하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들이닥친다. 장쇠를 제외한 모두가 병풍 뒤로 숨지만 장쇠는 안 숨고 문만 걸어잠근 뒤 문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는데, 훈장님이 "너는 안 숨고 왜 거기 앉았어?"라고 물어보자 학동들이 말한다는 게 "내버려두세요. 그래야 들어와도 장쇠만 물고 나가죠."

이때 다시 장쇠의 품 안에서 강아지 앓는 소리가 나자 훈장님이 품 속에 감춘 게 뭐냐고 물어보자 장쇠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대답을 회피한다. 화난 훈장님이 냉큼 꺼내보라고 일갈하자 어쩔 수 없이 꺼내는데 새끼 호랑이였다. 어미가 새끼 찾으러 서당까지 오는 바람에 하마터면 훈장님과 학동들 전원이 호환을 당할 뻔했던 것.

기겁한 훈장님과 학동들은 당장 어미에게 돌려주라고 했지만 장쇠는 이건 자기가 기를 거라며 뻐팅긴다. 그 사이 호랑이의 앞발이 창호지를 뚫고 들어오고 훈장님이 미친 듯이 혼내서 결국 새끼를 돌려주자 어미가 물러났다.[8] 이후 당연히 슈퍼 제재 타임. 극대노한 훈장님은 담뱃대로 장쇠 머리를 후리면서 "똥을 누다가 그런 건 왜 주워왓" 하고 소리치자 장쇠 왈, "혼자 놀고 있잖아요. 그래서 어미가 없는 놈인 줄 알았죠"라고 말대꾸를 하자 훈장님은 겁도 없다며 사색이 된다. 이후 장쇠가 새끼를 잘 키워서 나중에 타고 다니려 했다 말하자 훈장님이 "내가 제자를 둔 건지 바보천치를 둔 건지 모르겠다"라고 말하자 한 학동이 "바보 천치, 멍청 미련 곰, 한심이를 둔 겁니다"라면서 맞장구를 친다.

6. 삼복 더위를 계곡에서

삼복 더위가 찾아온 날 학동들이 훈장님 몰래 또 서당의 솥과 쌀, 각종 장류를 빼돌렸다. 학동들을 기다렸던 훈장님은 대낮에 무슨 도둑이 들고, 또 도둑이 훔칠 게 따로 있지 그런 걸 훔쳐가냐고 어이없어 한다.

그때 학동들이 들어오고, 훈장님이 왜 늦었냐고 물어보자 이 핑계 저 핑계를 다 댄다. 훈장님도 너무 더웠던 터라 훈장님은 학동들에게 오늘은 계곡으로 피서 한다며 학동들을 기쁘게 해준다. 당연히 학동들은 구들장이 꺼지게 좋아하고, 당장 계곡으로 가자고 한다. 그러나 훈장님은 아직 안 온 장쇠와 동팔이 녀셕들을 기다리자고 한다. 그러자 학동들이 그 애들은 먼저 가서 있다고 자백한다. 훈장님은 지금 결정한 것을 어떻게 알고 있었냐고 하자 학동들은 그들이 노는데 도사라 미리 안 거라고 한다. 계곡에 가보니 실제로 폭포 속에 숨어 있었다. 학동들은 원래부터 글공부를 빼먹을 계획이었던 것.

어쨌든 훈장님과 학동들 모두 계곡에서 시원하게 피서하다가 훈장님이 갑자기 연기가 나는 것을 발견한다. 자기가 담뱃불을 흘려서 불을 냈다고 허둥지둥하자 장쇠가 지금 매운탕과 밥을 짓는 중이라고 한다. 근데 요리하는 도구들이 학동들이 서당에서 훔쳐온 것들이었다. 훈장님은 제자란 놈들이 스승 물건을 훔쳐가냐고 어이없어 했지만 어쨌거나 학동들이 끓인 매운탕을 맛있게 먹고 쉰 뒤 선대왕 공부를 하면서 3권 때와는 달리 훈훈하게 끝났다.

7. 염라대왕의 심판

어느 한 선비가 길을 걷다가 하인이 투덜대는 소리에 "다시 투덜대면 3일을 굶을 줄 알아."라고 엄포를 놓다가 우연히 재판놀이를 보게 되었다.

장쇠가 염라대왕을 하고 다른 학동은 창힐을 맡아서 창힐이 한자를 만든 것을 두고 재판을 열어, 뭐 하러 글을 만들었느냐며 창힐을 엄히 문초(問招)하며 재판놀이를 하고 있었다. 창힐역을 맡은 학동이 자신을 변호하면, 옥졸지기 역을 맡은 학동이 반론을 하는 방식인데 이때 그 선비가 그걸 보더니, 학문을 닦아야 사람이 된다며 서당에 다니는 학동으로서 공부를 게을리 하면 그건 잘못된 것이라고 충고하자 학동들이 "글만 읽더니 머리가 돌아버렸소?"라고 집단으로 분노해서 그 선비를 집단으로 패려고 하자 도망가서 마침 피곤하여 잠시 졸고 있던 그 선비의 하인을 두들겨 팼는데... 그 선비의 정체는 암행어사였고 당연히 하인도 어사 방자. 두들겨 맞은 방자는 도망치면서 어사한테 따지는데 어사가 누가 들을세라 말리려고 하면 할수록 더 소리가 커진다. 방자가 "뭐라도 좀 사 주고 하슈! 맨날 고생질에 밥도 못 먹고 일만 하는데 3일을 더 굶긴다고? 게다가 흠씬 매질만 당하게 하니, 댁이 암행어사욧? 고생어사욧!!?"이라 악을 쓰니 암행어사도 "하이고.. 이거 정말 미안하다!"라고 사과한다.

한편 이후 염라대왕은 글을 만들어 온 세상을 괴롭게 만든 너의 죄는 불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하지만 본인도 실은 글 때문에 좀 괴롭고 하니(...) 다시 인간세상으로 보내 줄 테니 글을 다시 다 없애 버려 고통을 덜라는 판결을 내린다. 당연히 판결을 듣고 학동들은 좋아라 하며 춤을 추지만, 당연히 현실은 달라진 게 없었기에 결국 실망하며 서당으로 갔다. 그런데 나졸들이 서당 주변을 포위하고 있었다. 멍 때리던 학동들에게 나졸 한 사람이 수업 중에 딴 짓하거나 졸거나 성적이 뒤진 놈은 곤장으로 다스릴 거라면서 으름장을 놓았고, 나졸들이 씩 웃으며 곤장을 쳐들고 씩 웃거나 침 뱉으면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학동들이 대체 누가 이런 명령을 내렸냐며 당황할 때 그 나졸이 "누구긴 누구야. 암행어사님이지!"라고 하니까 그 선비의 정체를 알게 된 학동들은 다들 뒤로 나자빠졌고, 훈장이 그 모습을 보고 고소해한 건 덤.

8. 남한산성

학동들이 가을 추수가 바쁘다는 핑계로 서당을 쉬자고 한다. 그런데 웬일로 훈장님은 순순히 서당을 쉬겠다고 하는데, 사실 훈장님은 학동들을 데리고 금강산에 가려던 차에 학동들이 꾀를 부리자 엿 먹인 것. 학동들은 아무리 쉰다고 해도 금강산에 비기냐며 취소해달라고 간청하지만 훈장님은 요지부동.

뒤늦게 온 장쇠가 전말을 모르고 서당을 쉬는데 왜 슬퍼하냐면서 훈장님에게 일구이언하지 말라고 하다가 학동들에게 얻어터지고 금강산 갈 일이 취소된 걸 알게 된다. 이에 꾀를 내어 무조건 내일 출발한다면서, 학동들에게 노잣돈 두 푼씩과 쌀 두 홉씩 가져오라고 했다.[9]

그 말을 들은 훈장님은 어이가 없어져 거지처럼 빌어먹고 다닐 거냐며 장쇠에게 "노자 열 냥에 쌀 한 말씩 지고 와"[10]라고 했고, 장쇠는 훈장님 말대로 노자 열 냥에 쌀 한 말씩 갖고 오라면서 금강산 가는 걸 확정시켜 버렸다. 이후 훈장님은 실수를 깨닫고 한탄하며 "구렁이 같은 녀석"이라며 혼잣말을 한 뒤 장쇠를 담뱃대로 쥐어박으며 선대왕 공부를 시작한다. 이렇게 다들 금강산에 가기로 결정했으며 이후 금강산 이야기는 5권으로 이어진다.

9. 서낭당

학동들이 글 배우기 싫어서 서낭당에다가 글을 없애 달라고 빌었다. 이때 지나가던 말뚝이가 '한심하다'며 보다 못해 나무 뒤에서 귀신 행세를 한다.
"너흰 양반자식으로서 태어나 어쩔 수 없이 글 읽을 팔자다. 그러니 글을 읽기 싫다면 너희들을 저승으로 데려가야만 한다."
기겁한 학동들은 그럴 바엔 차라리 글을 읽겠다니까 말뚝이는 한 입으로 두 말 하냐고 화내는 행세를 했고, 학동들은 바로 서당으로 도망쳤다.

학동들이 모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망연자실해 있자 훈장님이 무슨 일이냐고 묻고, 자초지종을 들은 훈장님은 어이가 없어서 뒤집어지고 빌 게 따로 있지, 그딴 걸 빌고 앉아있냐고 질책한다. 그 다음 말뚝이는 훈장님에게만 이 사실을 털어놨다. 훈장님도 말뚝이 말에 맞춰서 말뚝이가 서낭당 귀신을 만났는데 단단히 화가 나서 너희들이 서낭당을 지나갈 때 글을 물어봐서 모르는 놈은 무조건 저승으로 데리고 가겠다고 말했다고 겁을 줬다. 이 말에 겁을 먹은 학동들이 서당이 쨍쨍 울리도록 글을 외쳤다.

10. 즐거운 토끼사냥

혹한기에 서당을 또 째고 겁도 없이 산에 노루 잡으러 몰려갔지만 실패했고, 말토끼(산토끼)라도 잡으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놓쳤다. 이미 때는 늦어 어둑어둑해지고 눈보라까지 만나서 동태가 될 뻔했다. 결국 수동이라는 아이가 쓰러져서 장쇠가 억지로 업고 가게 됐다.

그러다 산을 넘고 넘어서 겨우 다른 지역 절을 발견해 묵게 되는데, 훈장님도 애들을 찾아나섰다가 우연히 절에 왔다.[11] 훈장님은 이미 학동들이 기진맥진한 상태라 꾸중만 했다.

식사 시간 때는 학동들 때문에 난장판이나 다름없었고, 밤에는 훈장님의 코 고는 소리 때문에 그 절에 있던 승려들이 제대로 잠을 못 잤다. 스님들은 다들 극성이라고 한탄했지만 주지스님은 그래도 정승감이 하나 있더라고 했다. 식사 시간 때부터 주지스님은 장쇠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던 걸로 보아 아마 그 분을 뜻한 듯.

마을로 돌아올 때 학동들이 훈장님에게 "본인이 노루 고기가 먹고 싶어서 아이들이 간 거라고" 이야기해달라고 간청했고, 어이터진 훈장님은 자포자기해서 "그래! 이 녀석들아. 걱정마"라고 화내면서 소리친 뒤 나중에 부모님이 아이들을 혼낼 때[12] 정말로 거짓말로 감싸줬다. 학동들은 그 자리에서 혼날 일은 면했다고 좋아했지만 학부모님들은 훈장님이 사태를 커버시켜 주려고 거짓말한 것을 간파하고 있었고 집에서 보자며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이걸로 스토리는 끝나 더 이상 나오는 건 없지만 그날 밤 학동들은 분명 부모에게 엄청나게 혼났을 것이다.

11. 세배 소동

설날 서당에 온 학동들이 훈장님이 안 계시자 세뱃돈을 안 주려고 튄 거라고 여기고 험담을 했다가 뒷간에 있던 훈장님에게 야단을 맞았다. 그래도 어쨌든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세배를 하는 학생들에게 훈장님이 “오냐, 너희도…”하고 하는데 학동들은 “...도 금년엔 더욱 실력이 일취월장 하여랴”라는 개드립을 치고 훈장님은 어이없어한다.

나중에 장쇠도 오고 훈장님에게 세뱃돈을 달라고 할 때 장쇠가 "우리 때문에 늘 훈장님이 고생하시는데 염치없이 세뱃돈을 달라고 하냐. 돈 보기를 돌같이 해봐라"라고 했는데, 훈장님은 기특하게 여겼지만 막상 찾아보니 세뱃돈 주머니가 없어져있었다. 자기가 갔다온 곳은 뒷간밖에 없어 장쇠 보고 나가서 찾아보라고 했지만, 장쇠는 그럴 필요 없다며 세뱃돈 주머니를 꺼낸다. 사실은 훈장님이 뒷간 갔다가 흘린 걸 장쇠가 밖에서 주워 가졌던 것.

당연히 훈장님과 다른 학동들은 그러면서 돈 보기를 돌같이 해보네 어쩌네 했냐고 방방 뛰면서 내놓으라고 했으나, 장쇠는 자긴 이미 세뱃돈 받았는데 뭘 어쩌냐니까 훈장님은 주지도 않은 걸 받았다고 하냐고 호통치고, 학동들이 안 내놓으면 어떻게 될지 아냐며 협박해서 결국 장쇠가 내놓는데,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는지 "엽전 하나로 모두 나눠 가져"라고 하는 바람에 분노한 학동들이 집단으로 두들겨 패면서 서당이 난장판이 되고 병풍마저 박살나버렸다. 피떡이 돼버린 장쇠 왈 "이 의리도 없는 것들아. 돈 때문에 친굴 때려?"

그 뒤 세뱃돈 주머니는 되찾아서 학동들에게 나눠줬고, 훈장님은 창호지에 물을 적셔서 병풍을 대충 고치는 와중 "사람 될 놈은 한놈도 없다니까"라며 탄식한다. 이후 선대왕을 공부하겠다고 하자 학동들이 세상에 설날에 공부하는 서당이 어딨냐고 했다가 남 놀때 공부하면 그만큼 이익인걸 알라며 혼났다. 보통 학동들이 선대왕 공부를 좋아했는데, 이 날엔 새해라 쉴 줄 알았는지 싫어했다.

12. 양반과 글

학동들이 훈장님 앞에 마당쇠를 끌고 와서 이놈이 공자, 맹자 욕을 했다고 한다. 마당쇠는 부정하며 자초지종을 말하는데, 여느 때처럼 학동들이 글공부가 싫다고 툴툴대는 걸 보고 심심해서 곯려주고자 했다.

그리고는 글공부가 얼마나 힘드냐면서 처음엔 "나무를 지고 고개를 넘는 것만큼 힘드냐"고 하니 글이 더 어렵다고 하고, 그럼 "큰 바위를 지고 고개를 넘는 것만큼 힘드냐"니까 역시 글이 더 어렵다니까, 그럼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것만큼 힘든 건가"라니까 학동들은 무식쟁이 취급하며 글이 훨씬 어렵다고 한다. 그러자 마당쇠는 그렇게 힘든 글공부 하는 학동들보다야 안 하는 내 처지가 더 낫지 않냐고 하며 글 배워서 고생하다 글 때문에 죽을 바에는 종아리나 맞고 다니라며 놀려먹는다.

그러면서 학동들에게는 공자, 맹자가 원수 같을 거라며, 글을 만들어서 후세 사람들을 괴롭히니 악인과 다를 게 뭐냐고 낄낄거렸는데 이 대목에서 결국 열 받은 학동들이 "저, 저 머슴놈이 감히 공자, 맹자 어른을 욕해?!"라고 단단히 화가 나서 마당쇠를 끌고 온 것.[13] 훈장님은 "분명히 공자, 맹자님을 악인이라고 했겠다?"라고 슬슬 화난 모습을 보이며 추궁했고, 학동들도 역시 화가 난 상태로 "그렇다니까요! 저 놈이 공자, 맹자 어른을 욕했다고요!"라고 찬동하고, 이 상황에 당황한 마당쇠는 "그, 그건 농으로 한 소리 올시다"라고 말한다. 훈장님은 그 말을 듣자마자 분노해서 농담이라도 그딴 소릴 하냐며 마당쇠를 잡고 흠씬 쥐어팼다. 서당 이름도 '공맹서당'으로 지을 정도로 공자, 맹자를 존경하는 훈장님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실컷 두들겨 팬 뒤 훈장님은 "알겠지? 다음에 다시 한 번 공자, 맹자 어른이 원수라는 등 그딴 어리석은 소릴 했다간... 관가에 끌려가서 제대로 곤장 맞을 줄 알아라."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사실 조선시대 기준으로 유교는 국가의 주도 이념이었고 따라서 공자나 맹자는 국가의 주도 이념을 주창한 인물로써 '성인'으로 여겨졌다. 즉 현대 기준으로 말하면 '공자와 맹자는 악인'이라는 것은 단순히 훈장님이 존경하는 사람을 욕했다는 수준을 넘어 '민주주의 타도하자!'라거나 '김일성, 김정일 만세!'를 외치는 것과 비슷하게 여겨지는 이단적 주장인 셈이다. 관가의 행정 책임을 맡는 사또도 결국은 유학을 배워 벼슬을 하는 인물이니, 훈장님이 팬 것보다 심하면 심하지 적당히 끝날 리가 없다. 학동들도 그걸 알고 일부러 마당쇠가 크게 혼나도록 끌고 온 것.

아무튼 간에 학동들 놀리려다 입조심을 못해 화가 난 학동들에게 터지고 훈장에게 실컷 맞은 마당쇠, 하지만 자기 잘못은 생각 안하고 억울하다며 앙앙 울어댔고, 서당 근처에서 울지 말라고 하자 조금 떨어져서 어디 오늘 글공부 할 수 있나 두고 보자며 더 크게 울기 시작한다. 화가 난 훈장님이 매를 들고 쫓아냈는데 다시 울음소리가 들리길래 나와 봤으나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 마당쇠는 서당 지붕 위로까지 올라가서 울고 있었다. 결국 훈장님이 상전에게 이르겠다고 하니까 마당쇠가 그건 안 된다고 하면서 울음을 그치고 서둘러 막고 도망쳤다. 훈장은 "아무튼 당분간은 서당 근처에도 오지 말고, 그때 소리는 농이라도 아예 하지 말거라."라고 당부한다.


[1] 내용은 "아이야 꽃구경 가자. 글만 읽다 봄날 가면 도화(복사꽃) 두견(진달래) 슬퍼한다." 이다.[2] 얘들이 왜 안오는지 한탄하는 모습, 매질로 때리는 행동 등.[3] 어떻게 올라간 건지 몇 미터는 되도록 높다란 바위 꼭대기에 앉아서 평소처럼 담배까지 피우며 밑의 학동들을 지켜보고 있었다.[4] 다만 당시 시대에서는 70살도 엄청나게 장수한 것이다. 물론 딴 애들은 최소 100 단위니 억울할 만도 하다.[5] 까불이는 공부 끝나고 가서 또 맞아야 한다고 한탄한다. 아마 다른 학동들도 그럴 것으로 보인다. 어째서인지 맞는 장면에서 장쇠는 나오지 않는데, 아버지 없이 노모하고만 사는 장쇠가 맞았는지는 불명.[6] 자식의 못된 점은 때려서라도 고쳐달라는 의미이다.[7] 발병이 난 것도 종아리를 너무 맞아서 헐었다는 뜻이라고...[8] "장쇠 녀석, 두고 보자!"면서 복수를 다짐하는 어미 호랑이의 반응이 인상적이다.[9] 지금으로 치자면 돈 이천 원 정도에 컵라면 2개 준비해와서 몇 날 며칠간 도보로 지리산까지 여행 가는 격이다(...).[10] 지금으로 치면 돈 70만원에 라면 20개 정도.[11] 이때 주지스님이 중 한 명에게 훈장님을 모셔오라고 보냈는데 곧바로 다시 모시고 와서 이 중이 축지법을 쓰는 줄 착각했다.[12] 훈장님이 아이들을 데려오기 전, 늑대나 승냥이 무리 혹은 호환을 당하거나 동사한 것이 아닌지 걱정하며 울기까지 하는 부모님들의 모습을 보면 묘하게 찡하다.[13] 공자, 맹자를 악인이라고 하는 걸 들은 학동들이 상놈이 양반을 희롱한다며 진심으로 화가 난 걸 보아 학동들도 어느 정도 자존심은 있는 듯하다. 학동들 역시 글을 만든 창힐을 미워하지, 공자와 맹자는 존경하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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