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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시는 대수를 건너뛰어 중임한 횟수를 의미한다. 보수당 당수 · 자유민주당 당수 · 스코틀랜드 국민당 당수 |
<colcolor=#fff> 영국 제119대 추밀원 의장 마이클 풋 Rt Hon. Michael Foot FRSL | |
<colbgcolor=#AF292E> 본명 | 마이클 매킨토시 풋 Michael Mackintosh Foot |
출생 | 1913년 7월 23일 |
영국 잉글랜드 플리머스 | |
사망 | 2010년 3월 3일 (향년 96세) |
영국 잉글랜드 런던 | |
재임기간 | 제4대 고용부장관 |
1974년 3월 5일 ~ 1976년 4월 8일 | |
제119대 추밀원 의장[겸임] | |
1976년 4월 8일 ~ 1979년 5월 4일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가족 | 아이작 풋 (아버지) |
학력 | 옥스퍼드 대학교 워담 컬리지 (PPE / 학사) |
종교 | 무종교 (무신론)[2] |
직업 | 정치인 |
정당 | |
서명 |
[clearfix]
1. 개요
노동당 소속의 영국 정치인이었다.2. 생애
1913년 7남매 중 다섯째로 잉글랜드 플리머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자유당의 당원이었으며, 1929~1935 6년동안 플리머스시의 시장으로 재임했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정치경제철학을 전공하고[3] 1945년 플리머스, 데본 포트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하지만 1955년 낙선하며 5년간 정계에서 잠깐 떠나 있다가, 1960년 재보선에서 에브 베일 선거구에 출마, 4선에 성공하며 다시 정치 활동을 재개한다.풋 의원은 의회에서 계속 노동당의 좌클릭을 주도했으며 1974년 윌슨 총리에게 고용 국무장관에 임명, 취임한다. 1976년 윌슨 총리가 갑작스럽게 사임하자 노동당 대표 경선에 출마했으나, 제임스 캘러헌에게 패해 낙선한다. 캘러헌 내각에서는 추밀원 의장 및 서민원 원내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이 시기 서민원 원내대표로서 노동당의 분열 속에 어렵사리 경찰민원처리위원회(PCB), 종합학교 설립, 노숙자 문제 해결을 위한 주택공급 의무화, 보편적 아동수당, NHS 제도 내 유료 병상 제도 폐지 등 여러 안건을 가까스로 통과시키는데 성공했지만 정작 후술할, 캘러헌 내각으로서는 가장 중요했던 내각불신임결의에서는 단 한 표를 단속하지 못해 의결을 허용하고 만다.
1979년 제임스 캘러헌이 불만의 겨울을 극복하지 못한채 내각불신임결의를 받고, 이어진 총선에서 패해 낙마하자 이듬해 열린 노동당 대표 선거에 출마해 데니스 힐리 전 재무장관을 누르고 당선, 캘러헌의 후계자로 대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때 캘러헌을 이기고 총리가 된 마거릿 대처와 마주하게 되는데, 오일쇼크와 신자유주의 정책 강행으로 인한 실업률 상승에 불만을 품은 대중들의 지지를 받아 순간적으로 당 지지율이 47%까지 폭등하게 된다.
이렇게 5년만에 정권교체 기회가 다가오는듯 했지만 노동당의 계속된 분열과 더불어, 일방적 핵무장 해제[4], 부유층에 대한 과도한 과세, 유럽 경제 공동체(EEC) 탈퇴, 항공사&조선사 재국유화 같은 여러 과도한 수준의 좌클릭 정책들을 제시한 마이클 풋의 노동당은, 포클랜드 전쟁 승전으로 정권 붕괴 위기를 탈출하고 지지율을 크게 끌어올린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에게 1983년 총선에서 크게 밀렸고, 1945년 이후 당 역사상 최저 의석인 209석만을 획득했고[5] 마이클 풋은 노동당 대표직에서 사퇴한다.
같은 노동당 소속 정치인 제럴드 카우프만(Gerald Kaufman)은 이 당시 풋과 노동당의 공약을 역사상 가장 긴 자살 유서(The longest suicide note in history)라고 묘사하며 비판했는데 과연 그 비판이 맞아떨어진 것. 이후 닐 키녹이 대표에 당선되며, 노동당은 과감히 우클릭을 시도했고, 당의 주류 역시 토니 벤 중심의 '벤 좌파'에서 사회자유주의 노선의 노동당 우파에게 넘어가게 된다.
마이클 풋은 대표직 사임 이후에도 의원 활동을 계속해서 하다가, 무려 12선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1992년 영국 총선에 불출마하며 정계를 은퇴한다.
2010년 심부전으로 인해 9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장례식은 3월 15일 엄수되었다.
3.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 선거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락 | 비고 |
1945 | 제38회 영국 총선 | 플리머스 데본포트 | | 13,395 (54.05%) | 당선(1위) | 초선 |
1950 | 제39회 영국 총선 | 30,812 (50.59%) | 재선 | |||
1951 | 제40회 영국 총선 | 32,158 (51.93%) | 3선 | |||
1955 | 제41회 영국 총선 | 24,721 (46.96%) | 낙선(2위) | |||
1960 | 영국 서민원 보궐선거 | 에뷰 베일 | 20,528 (68.73%) | 당선(1위) | 4선 | |
1964 | 제43회 영국 총선 | 25,220 (83.60%) | 5선 | |||
1966 | 제44회 영국 총선 | 24,936 (85.14%) | 6선 | |||
1970 | 제45회 영국 총선 | 21,817 (72.39%) | 7선 | |||
1974.2 | 제46회 영국 총선 | 20,660 (69.50%) | 8선 | |||
1974.10 | 제47회 영국 총선 | 21,226 (74.10%) | 9선 | |||
1979 | 제48회 영국 총선 | 20,028 (69.23%) | 10선 | |||
1983 | 제49회 영국 총선 | 블리나우 그웬트 | 30,113 (69.96%) | 11선 | ||
1987 | 제50회 영국 총선 | 32,820 (75.89%) | 12선 |
4. 여담
- 마거릿 대처 총리의 생애를 다룬 영화 철의 여인에도 제1야당 노동당 당수로 등장한다. 배우는 마이클 페닝턴. 다만 극중에서 영국 역사상 첫 여성 총리가 된 대처를 성별로 조롱한다든가 포클랜드 전쟁 파병을 반대했다가 전쟁 이후 대처한테 한소리 듣는 등 실제 풋과 묘사가 크게 달라 논란이 되기도 했다.
- 영국인답게 축구를 매우 좋아했는데, 플리머스 아가일 FC의 열렬한 서포터로 알려져있다. 실제로 몇년간 해당 클럽의 이사로 재직한 적도 있고, 프리미어 리그에서 플리머스의 경기를 볼때까지는 죽을 수 없다는 열렬한 지지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6]
[겸임] 서민원 원내대표 겸임[2] "The Labour Party has been led by three self-avowed "public" atheists: Michael Foot, Neil Kinnock, and now Ed Miliband." #[3] 옥스퍼드에서 가장 인기있는 학과이다.[4] 이 시기는 아직 냉전기의 후반기로 미-소간 체제 경쟁이 이어지는 상황이었다.[5] 2019년 영국 총선에서 제러미 코빈이 이끄는 노동당이 202석에 그치면서 이 기록이 깨지게 된다.[6] 하지만 풋에게는 안타깝게도 플리머스는 풋 생전에 프리미어 리그에 승격하지 못 했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