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2 12:18:50

류큐 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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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 신토의 여성 성직자인 노로(ノロ)

1. 개요2. 영력3. 신4. 니라이카나이5. 카민츄(종교인)6. 우타키

1. 개요

류큐 신토(琉球神道)는 예로부터 류큐인 사이에 전해져온 전통 신앙을 말한다. 일본 본토의 전통 종교인 신토와 비슷한 점들이 있지만, 구별되는 점들도 많다. 특히 샤머니즘과 조상 숭배의 요소가 강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물론 '신토'란 단어는 일본 본토에서 온 말이며, 오키나와에서는 쓰이지 않는다. 류큐 신토라는 단어는 일본 제국 시절의 민속학자들이 류큐의 전통 종교에 고대 일본 신토의 요소들이 남아있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붙은 이름이다. 하지만 류큐 왕국 시절에 본토의 신토가 어느 정도 전파되기도 하였으며,[1] 나하시의 나미노우에 궁(波の上宮) 같은 신사들이 세워지기도 했다.

2. 영력

시지(シジ)[2]는 류큐 신토에서 영력(霊力)을 이르는 말이다. 시지가 칼에 붙으면 영검(霊剣)이 되고, 사람에 붙으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시지의 원천은 먼 바다에 있는 낙원인 니라이카나이(ニライカナイ)이다.

3.

  • 우카미(御神, ウカミ): 조상신. 가문의 시조는 카미우관수(神御元祖, カミウグヮンス)라고 한다.
  • 이비수(恵比寿, イビス): 상업과 어업의 신. 일본 본토의 에비스에 해당한다.
  • 우콴눈(御観音, ウクヮンヌン): 바다의 안전을 지키는 신. 관음보살이며, 신티콴눈(先手観音, シンティクヮンヌン)이라고도 한다.
  • 히누칸(火の神, ヒヌカン): 휘누칸(フィヌカン)이라고도 한다. 불의 신이자 부뚜막의 신. 한국의 조왕신에 해당한다.
  • 우틴누카미(御天の神, ウティンヌカミ): 하느님
  • 콴티오(関帝王, クヮンティーヲー): 관우. 중국에서 관우 신앙이 류큐에 건너왔으며, 안전과 출산의 신으로 받들여졌다.
  • 산포코신(三宝荒神, サンポーコージン): 항해안전의 신.
  • 세누칸(塞の神, シェーヌカン): 길의 신.
  • 비데틴(弁財天, ビデーティン): 일본 본토의 벤자이텐이다. 항해안전의 신이다.
  • 부사(菩薩, ブーサー): 보살. 항해안전의 신이다.
  • 미루쿠(弥勒, ミルク): 미륵보살. 니라이카나이에서 오곡의 풍요와 행복을 전해준다고 한다. 포대화상의 이미지처럼 웃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 아마미키요(アマミキヨ), 시네리키요(シネリキヨ): 류큐 열도를 만든 여신과 남신.

4. 니라이카나이

니라이카나이(ニライカナイ)는 류큐 신토에서 바다 저 멀리 동쪽에 있다고 믿는 낙원이다. 신들과 망자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또한 시지(영력)가 나오는 근원이기도 하다.

5. 카민츄(종교인)

류큐 신토의 종교인들을 카민츄(神人, カミンチュー)라고 한다.
  • 노로(ノロ), 혹은 누루(ヌール)는 류큐 왕국의 여성 사제를 의미한다. 신분이 높은 여성들 가운데에서 선택되어 임명되었으며, 류큐 왕국에서 직접 관리했다. 야에야마 제도에서는 츠카사(ツカサ)로 불렀다. 가장 높은 노로는 키코에오오기미(聞得大君)[3]로, 왕족 여성 가운데에서 임명되었다. 가끔 유타처럼 신내림을 받아 노로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 유타(ユタ): 류큐의 무당. 노로가 국가에 의해 운영되었다면, 유타는 개인이나 마을, 가문을 위한 존재였다. 유타가 되기 위해서는 신내림을 받아야 하며, 이 점은 한국 무속신앙무당과 비슷하다. 현재에도 존재하며 전화 상담 서비스 등도 운영되는 중.
  • 토키(トキ): 류큐의 남성 샤먼. 주로 점을 치거나 길일을 고르는 일을 했다.

18세기에 유타와 토키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류큐 왕국 정부에서는 이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또 일본 제국은 오키나와의 종교 전통을 미신으로 여기며 카민츄들을 탄압했다.

6. 우타키

우타키(御嶽)란 류큐에서 예로부터 제사를 지내오던 성소(聖所)를 말한다. 수풀이나 샘과 같은 자연물인 경우가 많다. 일본 본토 신토 신사의 원시적인 형태를 간직했다는 평이다.

난조시의 세화 우타키(斎場御嶽)는 우타키 중에서 가장 격이 높다. 세화 우타키에 위치한 삼각암 사이로 창조신들이 처음 만든 육지인 쿠다카지마(久高島)가 보인다. 류큐 왕국에서는 세화 우타키에서 쿠다카지마를 바라보며 제사를 지냈다.

우타키 앞에 일본 신사에서 볼 수 있는 토리이를 세운 경우가 꽤 있는데, 일본 제국 시절에 황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건립한 것이다. 일본 제국은 오키나와를 일본식 신토 문화로 물들이려고 하였으나 강한 반발로 인해 우타키 앞에 '이것은 성역(聖域)을 표시하는 상징물'이라는 의미로 토리이를 세우는 정도밖에 나아가지 못했다. 오키나와 전투 이후 많은 우타키 앞 토리이들이 철거되었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토리이들이 적지 않다.

혹시 오키나와에 여행을 가서 우타키를 보게 된다면 함부로 들어가지는 말자. 신성한 곳이라 지금도 금남(禁男)의 관습을 지키거나 외지인들에게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 곳이 많다. 세화 우타키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볼 수 있지만, 아직도 류큐인들에게는 소중한 곳이므로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방문해야 한다. 세화 우타키가 '관광자원'으로 쓰인다는 점에 불만을 품은 주민들도 적지 않다.

우타키들 중 세화 우타키와 소노향 우타키(園比屋武御嶽)의 석문이 유네스코 세계유산류큐 왕국의 구스쿠 유적지와 관련 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1] 특히 사츠마 번과 일본 제국의 지배를 거치면서 일본 본토의 신토가 오키나와에서 완전히 자리잡게 되었다.[2] 옛말로는 세지(セジ, セヂ)라고도 했다.[3] 오키나와어로는 치휘우후진가나시(チフィウフジンガナシ)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