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6-09 19:54:44

뤼시앵 뮐러

뤼시앵 뮐러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클럽
파일:FC 바르셀로나 로고.svg

40대
파일:AS 모나코 FC 로고(2013~2021).svg

18대

}}} ||
프랑스의 前 축구 감독
파일:Août_59._Foot._Reportage_sur_le_TFC_(1959)_-_53Fi6450_(Lucien_Muller).jpg
<colbgcolor=#eee><colcolor=#000,#e5e5e5> 이름 뤼시앵 뮐러
Lucien Muller
본명 뤼시앵 뮐러슈미트
Lucien Müller-Schmidt
출생 1934년 9월 3일 ([age(1934-09-03)]세)
프랑스 제3공화국 비슈빌레르
국적
#!if 행정구 == null && 속령 == null
[[프랑스|{{{#!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프랑스 국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프랑스}}}{{{#!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속령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특별행정구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행정구}}}{{{#!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행정구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속령}}}{{{#!if 출력 != null
}}}}}}]]
신체 180cm|체중 미상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 선수 FC 비슈빌레르 (1953)
RC 스트라스부르 (1953~1957)
툴루즈 FC (1957~1959)
스타드 드 랭스 (1959~1962)
레알 마드리드 CF (1962~1965)
FC 바르셀로나 (1965~1968)
스타드 드 랭스 (1968~1970)
감독 CD 카스테욘 (1970~1974)
부르고스 CF (1975~1976)
레알 사라고사 (1976~1977)
부르고스 CF (1977~1978)
FC 바르셀로나 (1978~1979)
부르고스 CF (1979~1981)
RCD 마요르카 (1981~1983)
AS 모나코 FC (1983~1986)
RCD 마요르카 (1987~1988)
CD 카스테욘 (1990~1992)
국가대표 16경기 3골 (프랑스 / 1959~1964)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감독 경력

1. 개요

프랑스축구 선수 출신 前 축구 감독.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레이몽 코파와 유사한 경력을 걸어 '작은 코파(le petit Kopa)'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선수로는 스타드 드 랭스, 레알 마드리드 CF, FC 바르셀로나 등 유럽 최고 클럽들에서 뛰었고, 감독으로도 바르셀로나와 AS 모나코 FC 등을 이끌었다. 1985년 모나코 감독으로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차지했다.

뤼시앵 뮐러는 여러 면에서 레몽 코파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경력을 걸었다. 코파와 마찬가지로 기술적으로 뛰어난 뮐러는 득점력 있는 윙어로 경력을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미드필더공격형 미드필더로 팀의 게임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 코파처럼 아마추어 클럽에서 시작해 당시 그리 뛰어나지 않았던 프로클럽을 거쳐 1950년대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을 지배했던 스타드 드 랭스로 갔다. 코파처럼 그곳에서 국가대표가 되었고 이후 레알 마드리드 CF에 영입되었다. 그리고 둘 다 스페인에서의 시간을 마친 후 스타드 드 랭스로 돌아왔다. 따라서 뮐러가 때때로 '작은 코파'라고 불린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큰 코파와 작은 코파"는 3년간 같은 팀에서 함께 뛰기도 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FC 비슈빌레르에서 프로에 데뷔한 뤼시앵 뮐러는 RC 스트라스부르로 이적하여 4시즌을 뛰었다.

1956-57 시즌 말 스트라스부르가 2부 리그로 강등되자 뮐러는 툴루즈 FC로 이적했지만, 디비지옹 1에서 중위권 성적에 그쳤다. 1959년 여름, 4년 만에 두 번째로 유러피언컵 결승에 진출했지만,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또 다시 패배한 스타드 드 랭스는 마드리드에서 돌아온 코파뿐만 아니라 뤼시앵 뮐러까지 영입했다는 소식으로 대중을 놀라게 했다.

첫 번째 시즌은 뮐러의 첫 리그 우승으로 끝났다. 국가대표들로 가득한 환경에서, 선수들에게 자유를 주면서도 전술적으로 하나의 단위로 만든 감독 알베르 바토 하에, 그리고 38경기에서 109골을 넣은 공격진과 함께 뮐러의 패스 능력과 득점력이 처음으로 완전히 발휘되었다. 결국 그는 13골로 팀 내 득점 순위에서 쥐스트 퐁텐, 로제 피앙토니, 장 뱅상, 그리고 레몽 코파에 이어 5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와 클럽 모두에게 이적은 이미 성공적이었다. 시즌 초부터 뤼시앵 뮐러는 국가대표팀에도 처음 선발되었다.

1960-61 시즌부터 뮐러는 더 후방의 미드필더로 뛰었다. 이 해 랭스는 리그 3위에 그쳤지만, 1961-62 시즌 말에는 샹파뉴에서 두 번째 국내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위대한 롤모델의 발자취를 따라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뛰었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는 1961년 12월 프랑스 대 스페인 경기 후 만찬에서 뮐러에게 직접 이적을 제안했다.

레알과 함께 그는 다음 3년간 3번의 스페인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1964년 유러피언컵에서 AC 밀란, FC 취리히를 격파하며 결승에 진출했지만, 결승전에서 인터 밀란에게 1-3으로 패했다. 코파도 함께 뛰었던 디 스테파노, 페렌츠 푸스카스, 프란시스코 헨토, 호세 산타마리아 등은 이 시점에서 전성기를 넘겼고, 아만시오와 뮐러 같은 젊은 선수들로는 이를 완전히 보상할 수 없었다.

뤼시앵 뮐러는 1965년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해 그곳에서도 3년간 뛰었다. 카탈루냐 클럽과 함께 국왕컵UEFA컵을 우승했다. 1968년 랭스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성장을 시작한 클럽을 위해 2부 리그에서도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65경기를 소화했다. 1970년 여름 은퇴할 때까지 스타드 드 랭스가 다시 1부 리그로 승격하는 데 기여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뮐러는 1959년 10월부터 1964년 4월까지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16경기에 출전해 3골을 기록했다.[1] 1960년 자국에서 열린 유럽선수권대회에 참가했지만 뮐러는 1경기만 출전했고 프랑스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2년간의 공백 후, 그는 1966년 월드컵 본선에서 프랑스 대표팀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프랑스가 뮐러 같은 게임 메이커를 절실히 필요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앙리 게랭 감독은 전체 조별리그 동안 그를 벤치에 앉혀두었다. 그 후 프랑스는 조기 탈락해야 했고, 뤼시앵 뮐러는 곧바로 국가대표팀에서 더 이상 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3. 감독 경력

1970년대부터 뮐러는 스페인 1부 리그의 여러 클럽들을 지도했으며, FC 바르셀로나도 포함되어 있다. 당시 리그 준우승팀이자 컵 우승팀이었던 바르셀로나를 1978-79 시즌 초 리누스 미헬스의 후임으로 맡았다. 리그에서 이미 좋지 않은 성과를 보이며 27경기 후 7위에 머물렀고, 결국 1979년 4월 발렌시아 CF와의 컵 경기에서 0-4 패배가 결정타가 되어 전 선수 조아킴 리페로 교체되었다. 리페 하에서 팀은 5위로 마감했고 UEFA 컵위너스컵도 우승했다.

1983년 그는 RCD 마요르카프리메라 디비시온으로 승격시켰다. 1983년부터 1986년까지 AS 모나코의 감독을 맡았다. 이 역할에서 그는 선수로서 이루지 못했던 것을 달성했다. 1985년 공국 팀과 함께 프랑스 컵을 획득한 것이다. 은퇴 후 개인 생활로 물러난 후에도 그는 수년간 모나코를 조언하고 젊은 재능들을 발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감독 활동은 "작은 코파"와 "큰 코파"가 구별되는 몇 안 되는 측면 중 하나다.
[1] 랭스 시절 14경기, 마드리드 시절 2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