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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e60d2e><colcolor=#fff> 라돔 Radom | |||
| | |||
| 문장 | |||
| Radom – Siła w precyzji 라돔 - 정밀함의 힘 | |||
| <nopad> | |||
| 지리 | |||
| 국가 | | ||
| 행정구역 | 마조비에츠키에 | ||
| 시간대 | UTC+01:00 (GMT)[서머타임] | ||
| 인문 환경 | |||
| 인구 | 206,946명[2] | ||
| 면적 | 112km² | ||
| 인구밀도 | 1,890/km² | ||
| 역사 | 1364년 도시 설립 | ||
| 공식 사이트 | |||
1. 개요
폴란드의 중동부에 위치한 도시. 폴란드에서 15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다. 사실 Radom은 원래 Radom'(부드러운 m을 사용하여 속격: Radomia)이었고 Radomir라는 이름의 약어인 Radom(속격: Radoma)이라는 이름의 소유 형용사였다. 따라서 Radom'은 "Radom에 속한 마을"을 의미했다. Poznań이 "Poznań에 속한 마을"을 의미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명은 명확하지는 않다.2. 전설
"은빛 깃털 독수리와 라돔 마을에 대하여"라는 전설에 따르면, 굶주림에 휩싸인 한 청년은 아름답고 매혹적인 마을에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나무와 덤불, 강이 그에게 뭔가 말하려는 듯 바스락다. 이 아름다움에 매료된 그는 "여기에 집을 짓고 싶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마을은 환멸을 느꼈다 그 주민들은 청년을 환영했고, 그 자리에 "라돔" 요새가 세워졌다고 한다.3. 역사
8세기 쯤부터 정착촌이 세워져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믈레츠나 강 계곡에서 소와 돼지를 키우고 기장과 밀을 재배하였다. 9세기 말에 강 수위 상승과 농장 침수로 인해 정착지가 근처 언덕으로 이전되었고, 10세기 에 방어 요새가 세워졌다. 10세기, 피아스트 왕조가 폴란드 국가를 형성하면서 라돔은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13세기 중엽, 라돔은 점차 도시적 성격을 갖추었으며, 지역 교역로의 요충지로 성장했다. 라돔의 전성기는 카지미에시 3세가 시장 광장, 시청 , 성을 갖춘 신도시를 건설하고 그 주변을 방어벽으로 둘러싼 1340년 부터 시작되었다. 1364년 도시 주민들은 세금 면제를 포함한 많은 특권을 부여받았다. 도시 발전에 기여한 주요 요인은 루테니아, 실레시아, 대폴란드, 포메라니아와의 무역로에 유리한 입지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루테니아에서 실레시아까지 이어지는 가장 중요한 "쇠고기 운송로"는 아마도 라돔에 무두질 길드를 설립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번영의 시기는 스웨덴의 폴란드 침공으로 끝났다. 스웨덴 군대는 1655년 11월에 전투 없이 도시를 점령했다. 이 시기 인구는 약 2,000명에서 1660년에는 395명으로 줄어들었고, 37채의 집만 남았다.3차 폴란드 분할 이후 라돔은 오스트리아 서부 갈리시아 지방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1815년 빈 회의 결정으로, 라돔은 러시아 제국의 영향 아래 있게 되었다. 이 시기 라돔은 행정 중심지로 지정되었고, 러시아식 행정 건물과 도로가 건설되었다. 그러나 폴란드인들의 11월 봉기, 1월 봉기 과정에서 라돔은 중요한 저항 거점 중 하나였다. 특히 11월 봉기 당시 라돔은 반란군의 집결지이자 보급소였다. 러시아 당국은 반란 진압 후 가혹한 탄압과 러시아화 정책을 실시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18년 폴란드가 독립을 회복하면서 라돔은 제2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 라돔은 농업 지대의 중심 도시이자 행정 도시로 기능했다. 도시의 인구는 증가했으며, 특히 유대인 공동체가 크게 성장해, 라돔 인구의 약 30%를 차지했다. 그러나 독일의 폴란드 침공 이후 나치는 1941년에 게토를 설립한 후 약 34,000명의 유대인을 그곳에 모았고, 이들은 1942년 7월에 트레블링카 수용소로 보내버렸다. 1945년 1월 16일, 라돔은 소련군에 의해 점령되었다가 소련이 세운 공산주의 정권 하에 폴란드에 반환되었고, 그 정권은 1980년대 공산주의가 몰락할 때까지 권력을 유지했다.
4. 경제
라돔은 오랫동안 신발·가죽 제품 생산지로 유명했다. 사회주의 시대에는 국가 주도의 대형 신발·섬유 공장이 도시 경제를 지탱했다. 폴란드 인민공화국 시절에는 무기·탄약 생산이 주요 산업 중 하나였다.5. 교통
루블린부터 우치까지 동서로 이어지는 철도와 바르샤바부터 키엘체 및 크라쿠프까지 남북으로 이어지는 철도가 만나는 도시가 이 지역이다.바르샤바 라돔 공항이 있다.
6. 스포츠
7. 출신 인물
8. 관광
- 구 시청사 (Stary Ratusz) : 라돔 구도심의 중심 건물로, 현재는 박물관·문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 라돔 성(궁전) 유적 (Zamek Królewski w Radomiu) : 14세기 카지미에시 대왕이 세운 왕실 성의 흔적으로 현재는 일부만 남아있다.
- 야첵 말체프스키 박물관 (Muzeum im. Jacka Malczewskiego) : 라돔 출신의 유명 화가 야첵 말체프스키의 이름을 딴 박물관으로 회화, 고고학, 민속, 자연사 등 다양한 전시를 소장하고 있다.
- 산도미에시 궁전 (Pałac Sandomierski) : 1827년 완공된 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로 폴란드 왕국의 주정부 중 하나의 정부 소재지가 되었다.
- 베르나르디노 수도원과 교회 (Klasztor i kościół oo. Bernardynów) : 1468년에 건립되었으며 폴란드에서 가장 잘 보존된 수도원 단지 중 하나이다.
9. 자매 도시
슬로바키아 반스카비스트리차
라트비아 다우가프필스
중국 후저우시
독일 마그데부르크
리투아니아 빌뉴스
불가리아 스타라자고라
대만 타오위안시
스페인 탈라베라데라레이나
우크라이나 테르노필
9.1. 이전 자매 도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도시와는 결연을 끊었다.9.2. 여담
- 라돔은 2년마다 열리는 폴란드 최대 규모의 에어쇼 인 라돔 에어쇼 의 본거지이며 , 매년 8월 마지막 주말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