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들이 수학한 군사학교 목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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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와 뤄양군관학교 한인특별반은 엄밀히 말해 중국 국민혁명군 군사학교들의 부속기관이었으나, 교관진 등 운영위원들과 교과과정은 한국인들의 손으로 운영됨. ※ 일본육사 출신 독립운동가들은 주로 국치 이전 대한제국군의 장교로서 유학하여 일본육사에서 수학한 이들임. ※ 생시르, 구이저우, 버지니아 군사대학의 입교자는 각각 1명씩, 즉 이위종, 김홍일, 이복원임. |
1. 개요
東林武官學校.동림무관학교는 1915년 중국 왕청현 나자구 한인촌에 세워진 항일 무장투쟁을 위한 군사학교이다.
이동휘, 이종호, 장기영 등이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하였으며, 겉으로는 "왕청현 제1고등국민학교"로 불렀다.
2. 활동
이동휘와 장기영은 자금을 지원받아 1915년 6월에 학교를 열게 된다. 학교 건물과 기숙사는 지역 주민들이 지었고, 학교 운영비는 이종호가 부담하였다.학생들은 북만주, 훈춘, 연해주 등지에서 모여들었으며, 모두 합쳐 70명이였다. 1916년 1월 말에는 학생 수가 10명 더 늘어난다.
그들은 학교에서 총기사용법과 군사학을 배웠는데, 교재와 실습을 위한 총기는 모두 중국 지방 군대에서 기증한 것이였다.
이후, 1916년 3월, 학교는 일제의 탄압과 재정난으로 문을 닫게 된다.
3. 의의
이 학교는 이후 북로군정서 사관양성소와 명월구 무관학교의 기초가 되었다.4. 관련 문서
- 신흥무관학교 - 동림무관학교와 함께 독립군을 양성하던 학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