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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경전)


사서삼경
사서 삼경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시경 상서 주역

1. 개요2. 구성3. 내용
3.1. 삼강령3.2. 팔조목
4. 원문
4.1. 『예기』의 대학4.2. 보망장
5. 외부 링크6. 기타

1. 개요

대학()은 유교경전으로, 논어, 맹자, 중용과 더불어 사서오경(혹은 사서삼경) 중 사서 가운데 한 권이다. 주희는 이 책을 공자의 제자인 증자가 저술한 것으로 이해했으나, 정확한 성립과정은 자세하지 않다.주희의 사서집주가 완벽한 책은 아니지만, 한국사-한국문학-한국철학 등을 연구하려면 대학장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또한 많은 번역본이 대학장구를 저본으로 삼아 번역되어있다.

본래 《예기》(禮記)의 제42편이었으나, 남송 시대에 성리학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중용》과 더불어 독립적인 텍스트로 인식되기 시작하였고, 주희가 내용의 편차를 바꾸고, 주석이 덧붙이면서 《대학장구》를 편찬하며, 완전히 독립되어 '사서'에 속하게 되었다. 이름만 보면 분량이 방대할 것 같지만 실은 1700자 남짓으로 A4 한장 내외에 원문 전체가 들어갈 정도로 짧다.

이 책은 개인의 인식론에서 기초하여 윤리학, 그리고 사회정치철학에 이르기까지 이들 모두를 단일한 차원에서 통일적, 체계적으로 제시한 경전이다. 성리학 교육체계에 있어서 - 즉 주희의 해석[1]을 따르자면 - 대학은 "공부하는 방법"을 담은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이 책의 주제는 공부의 목적이다.

2. 구성

오늘날 일반적으로 읽히는 대학은 주희의 편집을 거친 것으로, 주희의 《대학장구》를 기본으로 한다. 주희는 고본 《대학》의 오탈자나 착간 여부를 상당히 적극적으로 교정해 장과 구절을 나누고, 또 빠진 내용이 있다고 하여 이를 보충해 삽입[2]하는 등 매우 적극적인 손질을 가했다. 일부에서는 주희의 대학장구가 대학의 표준으로 인식되고, 예기 속의 원문 대학을 고본대학으로 부르는 것에 경계하기도 한다. 흔히 고본대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대학 자체이기에 고본이라는 표현을 덧붙일 필요가 없으며, 주희가 주석을 단 대학은 그대로 대학장구로 불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다만, 경전의 원시성 논쟁은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높고, 결론 없는 논쟁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이 때문에 주희가 '조경(造經)', 즉 경전을 아예 새로 지었다며 비난을 받기도 한다. 어쨌든 이 과정을 통해서 오늘날 일반적으로 알려진 1장 및 10장의 체제와 순서가 확립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원대 진호(陳澔)의 《예기집설》, 명대 호광의 《예기집설》대전 같은 글에서는 빠졌다.(...) 물론, 그건 주자 이후의 예기 관련 저작에서 그럴 뿐이지 예기의 고주라 할 수 있는 《십삼경주소》의 《예기정의》(禮記正義)와 같은 책에서는 그대로 실려있다. [3]

다만, 성리학은 동아시아에서 오랜 세월 관학의 지위에 올라, 학술적으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으므로 으레 대학, 중용, 논어, 맹자를 이야기 할 때에는 관습적으로《사서집주》의 네 권을 가리킨다. 주객이 전도된 감은 있지만, 시중의 번역본 가운데 '논어','맹자','대학','중용'이라고 나온 책들은 많은 경우 사실상 《사서집주》를 토대로 한 것이 많으며 다른 주석을 참고하는 경우 오히려 《논어고금주》, 《논어주소》등으로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원칙상 '대학장구'라고 불러주는 것이 맞으나, 오히려 '대학'이 곧 '대학장구'인 경우가 많다.

총 1장으로 구성된 경(經) 파트에서는 대인(大人)의 학문인 대학의 도를 명명덕(明明德), 친민(親民) 또는 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으로 제시하며 이를 3강령으로 삼는다. 3강령에 다다르기 위한 방법은 8조목으로 순서대로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天下平)이다. 또한 사물에는 본말이 있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듯이 8조목의 앞단계를 거치지 않고 뒷단계를 달성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강조한다.

이어지는 전(傳) 파트는 총 10장으로 구성된다. 이곳의 1장, 2장, 3장은 각기 명명덕, 친민/신민, 지어지선의 3강령에 대한 해설이다. 4장에서는 사물의 본말을 논한다. 5장은 본디 격물과 치지에 대한 해설인데, 원문에서의 내용의 대부분이 망실된 것으로 판단한 주희는 이 부분을 직접 삽입해 넣었다. 이것이 격물치지보망장(格物致知補亡章)으로 원문의 6자에 더해 128자를 주희가 새로 집필하였다. 6장은 성의, 7장은 정심과 수신, 8장은 수신과 제가, 9장은 제가와 치국, 그리고 마지막 10장은 치국과 평천하를 해설했다.

3. 내용

책의 핵심은 '敬'의 태도를 실현하는 것이다. 경의 태도를 가지고 책의 모든 내용을 학습해야 한다. 경의 태도는 '하나를 주장하여 옮겨감이 없다.' 항상 깨어있는다.' '그 마음을 수렴하여 다른 어떤 한 일도 넣지 않는다.' 등으로 이전의 학자들이 정리해놓았다. 더욱이 삼강령 및 팔조목에서 무엇을 우선시할 것인지에 대해서 일과 사물의 본말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근본과 말단이 무엇인지 잘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즉 대학의 요지는 실천의 측면에서는 경이며, 지식의 측면에서는 본말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내용은 명명덕, 신민/친민, 지어지선의 3강령, 즉 학문을 쌓는데 있어서 기본이 되는 세 가지 지향점을 바탕으로 평천하, 치국, 제가, 수신, 정심, 성의, 치지, 격물의 8조목을 설명하는 것이다. 삼강령 가운데 명명덕이 근본이고, 신민이 말단이며, 그것을 실천하는 가운데 명명덕과 신민이 모두 지어지선의 경지에 있어야 한다.삼강령은 맹자의 성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복합적으로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대학》본문에는 본성에 대한 논의가 나오지 않고 마음이 곧바로 나온다. 소위 "성선설"이라고 표현하는 맹자의 사상은 하늘이 내린 사람의 본성에는 이미 인, 의, 예, 지와 같은 "옳고 선한 것"에 대한 갈망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은 억지로 애를 쓰며 해야 하는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의 본성에 어긋나지 않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주장이다.

3.1. 삼강령

첫 번째 강령인 "명명덕(明明德)", 즉 "밝은 덕을 밝게 밝힌다"는 것은 배움을 통해 사람이 기본적으로 타고나는 밝은 성정을 발현시키는 것을 말한다. 주자는 이 구절을 중용 및 맹자의 성론과 결합시켜 하늘이 내린 사람의 본성은 밝은 덕(明德)을 발현시킬 수 있는 그릇이므로 배움과 수양을 통해 이를 구현시키는 것을 "큰 배움의 길"(大學之道)라고 해석하였다.[4]

두 번째 강령인 "친민/신민(親民/新民)"은 대표적으로 주자의 의도가 반영되었다는 논란이 있는 대목으로, 친민의 경우 백성과 가까이 되는 것이고, 신민의 경우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으로 뒤의 단어가 주자가 고친 대목이다. 다만 경전의 주석을 '기계적으로' 달 수는 없기 때문에 주자의 주장은 주장대로 이해할 필요는 있다. 원래는 임금이 덕을 밝히면 백성과 가까워진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었지만, 당대 발흥하던 불교도교에 대한 대항에 일환으로 주자 이후 이 말이 백성을 일깨워야 한다는 계몽 추구로 해석되었다. 이 때문에 주자의 성리학은 왕양명에게 거센 공격을 받았고 신민이 아니라 친민이 맞다는 신민/친민 논쟁이 열리게 되었다. 물론 대학에 이미 신민이나 유신(維新)이라는 말이 있긴 했고 주자는 이것을 가져와 친민보다 본질에 더욱 가까워졌다는 주장도 있다.

세 번째 강령인 "지어지선(止於至善)"은 "지극히 선한 것에 그친다"는 뜻으로, 밝은 덕을 밝게 밝히는 일에 온 힘을 쏟되, 그 목표는 선함에 그쳐야 한다는 이야기다.

3.2. 팔조목

4. 원문

4.1. 『예기』의 대학

1. 大學之道,在明明德,在親民,在止於至善。知止而后有定,定而后能靜,靜而后能安,安而后能慮,慮而后能得。物有本末,事有終始,知所先後,則近道矣。

큰 배움의 도(道)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으며, 백성을 가까이하는 데 있으며, 선(善)에 이르러서 그치는 데 있다.

그침을 알은 뒤에야 정함이 있으니, 정한 뒤에야 고요할 수 있고, 고요한 뒤에야 편안할 수 있고, 편안한 뒤에야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한 뒤에야 얻을[5] 수 있다.

사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일에는 끝과 시작이 있으니, 먼저와 나중의 경우를 안다면 도(道)에 가까울 것이다.

2.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先治其國;欲治其國者,先齊其家;欲齊其家者,先修其身;欲修其身者,先正其心;欲正其心者,先誠其意;欲誠其意者,先致其知,致知在格物。物格而後知至,知至而後意誠,意誠而後心正,心正而後身修,身修而後家齊,家齊而後國治,國治而後天下平。自天子以至於庶人,壹是皆以修身為本。其本亂而末治者否矣,其所厚者薄,而其所薄者厚,未之有也!此謂知本,此謂知之至也。

옛날에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히려는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렸고,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였고,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려는 자는 먼저 그 자신을 닦았고,
그 자신을 닦으려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했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자는 먼저 그 뜻을 성실하게 하였고,
그 뜻을 성실하게 하려는 자는 먼저 그 앎을 다하였으니,
앎을 다하는 것은 사물을 바로잡는[6] 데에 있다.

사물을 바로잡은 뒤에야 앎이 이르니,
앎이 이른 뒤에야 뜻이 성실해지고,
뜻이 성실해진 뒤에야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뒤에야 자신이 닦이고,
자신이 닦인 뒤에야 집안이 가지런히 되고,
집안이 가지런히 된 뒤에야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야 천하가 평정된다.

천자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다 자신을 닦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근본이 어지러운데 말단이 다스려지는 자는 없었으니, 후한 자가 박하고 박한 자가 후하다는 건 아직 있지 아니하다![7] 이것이 '근본을 안다'는 것이고, 이것이 '앎이 이르렀다'는 것이다.[8]

3. 所謂誠其意者,毋自欺也,如惡惡臭,如好好色,此之謂自謙,故君子必慎其獨也!小人閑居為不善,無所不至,見君子而後厭然,掩其不善,而著其善。人之視己,如見其肺肝然,則何益矣!此謂誠於中,形於外,故君子必慎其獨也。曾子曰:「十目所視,十手所指,其嚴乎!」富潤屋,德潤身,心廣體胖,故君子必誠其意。

이른바 '그 뜻을 성실하게 하는 자'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 없는 것이다. 마치 악취를 싫어하는 것 같고, 좋은 빛깔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이를 일컬어 '스스로 겸손해진다' 라고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혼자일 때 삼가는 것이다!

소인은 한가로이 살면서 선(善)하지 않음을 하는 것이 이르지 않는 바가 없으니, 군자를 본 뒤에야 싫어하는 척 그 선하지 않음을 숨기고 그 선함을 드러내는데, 남이 나를 보는 것이 마치 폐와 간을 보는 듯이 그러하다면 어찌 이익일 것인가![9] 이는 '안에서 성실히 하고서야 밖에서 드러내 보인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혼자일 때 삼가는 것이다!

증자께서 "열 개의 눈이 보는 바이고 열 개의 손이 가리키는 바이니, 그 엄격함이여!" 라고 말씀하셨다. 부유함은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자신을 윤택하게 하며, 마음이 넓으면 몸이 살찐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뜻을 성실하게 하였다.

4. 《詩》云:「瞻彼淇澳,菉竹猗猗。有斐君子,如切如磋,如琢如磨。瑟兮僩兮,赫兮喧兮。有斐君子,終不可諠兮!」「如切如磋」者,道學也;「如琢如磨」者,自修也;「瑟兮僩兮」者,恂慄也;「赫兮喧兮」者,威儀也;「有斐君子,終不可諠兮」者,道盛德至善,民之不能忘也。《詩》云:「於戲前王不忘!」君子賢其賢而親其親,小人樂其樂而利其利,此以沒世不忘也。



5. 《康誥》曰:「克明德。」《太甲》曰:「顧諟天之明命。」《帝典》曰:「克明峻德。」皆自明也。



6. 湯之盤銘曰:「茍日新,日日新,又日新。」《康誥》曰:「作新民。」《詩》曰:「周雖舊邦,其命惟新。」是故君子無所不用其極。



7. 《詩》云:「邦畿千里,惟民所止。」《詩》云:「緡蠻黃鳥,止于丘隅。」子曰:「於止,知其所止,可以人而不如鳥乎?」《詩》云:「穆穆文王,於緝熙敬止!」為人君,止於仁;為人臣,止於敬;為人子,止於孝;為人父,止於慈;與國人交,止於信。



8. 子曰:「聽訟,吾猶人也,必也使無訟乎!」無情者不得盡其辭,大畏民志。此謂知本。



9. 所謂修身在正其心者:身有所忿懥,則不得其正;有所恐懼,則不得其正;有所好樂,則不得其正;有所憂患,則不得其正。心不在焉,視而不見,聽而不聞,食而不知其味。此謂修身在正其心。



10. 所謂齊其家在修其身者:人之其所親愛而辟焉,之其所賤惡而辟焉,之其所畏敬而辟焉,之其所哀矜而辟焉,之其所敖惰而辟焉。故好而知其惡,惡而知其美者,天下鮮矣!故諺有之曰:「人莫知其子之惡,莫知其苗之碩。」此謂身不修不可以齊其家。



11. 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其家不可教而能教人者,無之。故君子不出家而成教於國:孝者,所以事君也;弟者,所以事長也;慈者,所以使眾也。《康誥》曰:「如保赤子」,心誠求之,雖不中不遠矣。未有學養子而後嫁者也!一家仁,一國興仁;一家讓,一國興讓;一人貪戾,一國作亂。其機如此。此謂一言僨事,一人定國。堯、舜率天下以仁,而民從之;桀、紂率天下以暴,而民從之。其所令反其所好,而民不從。是故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無諸己而後非諸人。所藏乎身不恕,而能喻諸人者,未之有也。故治國在齊其家。《詩》云:「桃之夭夭,其葉蓁蓁;之子于歸,宜其家人。」宜其家人,而後可以教國人。《詩》云:「宜兄宜弟。」宜兄宜弟,而後可以教國人。《詩》云:「其儀不忒,正是四國。」其為父子兄弟足法,而後民法之也。此謂治國在齊其家。



12. 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上老老而民興孝,上長長而民興弟,上恤孤而民不倍,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所惡於上,毋以使下;所惡於下,毋以事上;所惡於前,毋以先後;所惡於後,毋以從前;所惡於右,毋以交於左;所惡於左,毋以交於右。此之謂絜矩之道。《詩》云:「樂只君子,民之父母。」民之所好好之,民之所惡惡之,此之謂民之父母。《詩》云:「節彼南山,維石巖巖。赫赫師尹,民具爾瞻。」有國者不可以不慎,辟則為天下戮矣。



13. 《詩》云:「殷之未喪師,克配上帝。儀監于殷,峻命不易。」道得眾則得國,失眾則失國。是故君子先慎乎德。有德此有人,有人此有土,有土此有財,有財此有用。德者本也,財者末也,外本內末,爭民施奪。是故財聚則民散,財散則民聚。是故言悖而出者,亦悖而入;貨悖而入者,亦悖而出。《康誥》曰:「惟命不于常!」道善則得之,不善則失之矣。楚書曰:「楚國無以為寶,惟善以為寶。」舅犯曰:「亡人無以為寶,仁親以為寶。」



14. 《秦誓》曰:「若有一个臣,斷斷兮無他技,其心休休焉,其如有容焉。人之有技,若己有之;人之彥聖,其心好之,不啻若自其口出。實能容之,以能保我子孫黎民,尚亦有利哉!人之有技,媢嫉以惡之;人之彥聖,而違之俾不通。實不能容,以不能保我子孫黎民,亦曰殆哉!」唯仁人放流之,迸諸四夷,不與同中國,此謂唯仁人為能愛人,能惡人。見賢而不能舉,舉而不能先,命也;見不善而不能退,退而不能遠,過也。好人之所惡,惡人之所好,是謂拂人之性,災必逮夫身。是故君子有大道,必忠信以得之,驕泰以失之。



15. 生財有大道。生之者眾,食之者寡,為之者疾,用之者舒,則財恒足矣。仁者以財發身,不仁者以身發財。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未有好義其事不終者也,未有府庫財非其財者也。



16. 孟獻子曰:「畜馬乘,不察於雞豚;伐冰之家,不畜牛羊;百乘之家,不畜聚斂之臣。與其有聚斂之臣,寧有盜臣。」此謂國不以利為利,以義為利也。長國家而務財用者,必自小人矣。彼為善之,小人之使為國家,災害并至。雖有善者,亦無如之何矣!此謂國不以利為利,以義為利也。



4.2. 보망장


間嘗竊取程子之意以補之曰: "所謂致知在格物者, 言欲致吾之知, 在卽物而窮其理也. 蓋人心之靈莫不有知, 而天下之物莫不有理, 惟於理有未窮, 故其知有不盡也. 是以大學始敎, 必使學者卽凡天下之物, 莫不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 以求至乎其極. 至於用力之久, 而一旦豁然3)貫通焉, 則衆物之表裏精粗無不到, 而吾心之全體大用無不明矣. 此謂物格, 此謂知之至也."

근래에 한번 함부로 정자의 의도를 취해서 보충하였다. "이른바 '앎을 지극히하는 것이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데 달려있다는 것은, 나의 앎을 지극히하려고 한다면, (그 관건이) 사물에 나아가 그 이치를 궁구하는데 달려있다. 대개 영험한 인심은 알지 않음이 없는데, 천하의 물건 가운데 이 이치가 있지 않음이 없으니, 이치는 다해 없어지지 않음이 없다. 따라서 지각이 다함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학에서 가르침을 시작할 적에 반드시 학자들로 하여금 모든 천하의 사물에 나아가게 하니, 모든 것이 이미 알고 있는 이치를 통해서 더욱 궁리하여 그 표준을 구하지 않음이 없다.그 힘씀이 오래되게 되면, 하루아침에 훤히 깨달아 관통하고 통달하게 되니, 그렇다면 뭇 물건들의 표리와 정추가 극치에 다다르지 않음이 없어 내 마음의 전체와 대용이 밝아지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이것을 일러 사물의 이치가 표준에 이르렀다고 하고, 이것을 일러 앎이 지극해졌다고 한다.

5. 외부 링크

6. 기타

  • 개화기 시절 일본이 서양의 고등교육 기관인 University, College의 번역어로 이 책의 이름을 사용했다. 이처럼 당시 일본의 학자들은 중국의 고전에서 번역어를 가져왔다. 가령 'Economy'라는 영어 단어를 유학의 용어 경세제민의 줄임말인 경제라고 번역한다거나, 'Metaphysics'를 주역에 나온 용어를 차용하여 형이상학으로 번역한다거다 하는 식.

[1]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한 학문[2] 이른바 '보망장(補亡章)이라고 불리는 부분으로 전5장에 해당하는 부분을 사실상 창작하여 통째로 삽입해 넣었다.[3] 한국에 출판된 예기 번역본의 경우 '주자 장구를 찾아본다.'정도로 나온 예가 있다. 자유문고 번역과 명문당 번역이 그렇다.[4] 이 명명덕이 무슨 의미냐에 따라서 윤리와 사상 문제 혹은 국어 비문학 지문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저 '명명덕'의 의미를 해석한 여러 유학자들의 견해가 지문으로 나온 적이 있다.[5] 큰 배움의 도(道)를 얻을 수 있다는 말.[6] 格은 '바로잡다'는 뜻으로, 여기선 사물에 대한 지식을 올바르게 바로잡는 것을 말한다. 이 맥락에서 '연구하다', '궁구하다'는 뜻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7] 근본이 후한 자가 말단이 박하거나, 근본이 박한 자가 말단이 후한 경우는 있은 적이 없다는 얘기다.[8] 직역하면 '이것이 근본을 안다는 것을 가리키고, 이것이 앎이 이르렀다는 것을 가리킨다'가 되는데, 문장의 맥락에 맞게 '가리키다(謂)'를 생략하였다.[9] 矣는 '~일 것이다' 라는 뜻을 지닌 추측의 어조사이다. 즉, 남의 속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 앞에서는, 소인은 그 선하지 않음을 쉽사리 들키게 되니, 이는 소인에게도 결코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